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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마을 전남 순천시 해룡면 농주리 솔터마을. 순천만 갈대밭과 S자 수로를 뒤로 하고있는 약 20호가 되는 고향마을. 내가 어릴적에는 120명정도가 거주했으나 지금은 평균연세가 77세가 넘는 노인들 15명 정도만이 노후를 보내고 계시는 장수마을이다.
고향마을전남 순천시 해룡면 농주리 솔터마을. 순천만 갈대밭과 S자 수로를 뒤로 하고있는 약 20호가 되는 고향마을. 내가 어릴적에는 120명정도가 거주했으나 지금은 평균연세가 77세가 넘는 노인들 15명 정도만이 노후를 보내고 계시는 장수마을이다. ⓒ 양동정


대학생 조카들과 딸 "우린 고향 안가요, 공부해야 해요"

금년 추석은 일요일이라 연휴가 3일밖에 되지 않는다. 주말 전후에 추석 연휴가 걸리면 5일까지도 쉴 수 있는데 하는 아쉬움이 든다. 고향이 전라남도 순천인 나로서는 서울에서 그 머나먼 고향을 다녀 올 일이 걱정이다. 그래서인지 역귀경하는 가정이 많아졌다는 보도에 눈길이 간다.

추석을 앞두고 잔머리 굴리기에 들어갔다. 우선 차편을 어떻게 결정하느냐다.

고속버스, 열차, 승용차 등 몇 가지 방법이 있다. 어떤 수단을 이용해야 할까. 승용차를 이용하자면 연휴기간이 짧아 도로가 엄청나게 막힐 것 같아 걱정이다. 뿐만 아니다. 가스 차량이기는 하지만 기름값 약 12만원에 고속도로비 3만원 정도를 포함하면 약 15-16만원 정도가 들 것 같다. 물론 나쁘기만 한 건 아니다. 9인승인 관계로 6명만 태우면 버스 전용차로를 통해 갈 수 있다.

이런저런 변수를 고려하니 경우의 수가 복잡해진다. 주판알을 튕기느라 결정 못하고 출근하는 등 뒤에 대고 아내가 "어떻게 고향 갈 거요?"라고 묻는다. "글쎄! 어떡하지? 아직 결정을 못했는데? 영등포 동생 댁이랑 형님 댁이랑  한 번 알아보지? 같이 갈 건지?"라고 답변하고 출근했다.

출근하고 나서 형님네, 동생네와 통화를 했다. 고향에 가는 사람은 우리 식구 내외, 동생 내외, 형수님 해서 모두 5명이란다. 아! 한 명이 모자라다. 6명부터 전용차로에 들어갈 수 있으니, 이 인원으로는 어쩔 수 없이 일반차로를 타야 한다. 다시 고민에 들어갔다. 고향에 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가서도 중요하다. 아버지 형제분과 친척이 고향마을 곳곳에 흩어져 있어 돌아다닐 일이 많다.

그래, 결정했다. 결국 현지 사정을 감안해 승용차를 쓰기로 했다. 이번 추석에 내려가는데 있어, 우리 형제의 자식들 중 한 명이라도 귀향 의사를 밝혔다면 이렇게 고심하진 않았을 것이다.

우리 형제는 6남매 모두가 수도권에 살고 있다. 그런데 아이들이 어린 막내 동생 내외를 빼고 대학생 이상인 조카들은 한 사람도 부모님 고향엘 가지 않겠단다. 대학 3학년인 딸애 역시 설득을 해 봤으나 공부해야 한다는 핑계로 완곡히 거절을 한다. 우리 세대와는 생각이 사뭇 다르다는 생각에 서글픔이 든다.

고향에 내려갈 사람들은 오늘(12일) 오후 다섯 시까지 우리집에 모이기로 했다.

80평생 고향 마을 지키신 아버지, 올해부터는 어머니 차지

올해부터는 명절 분위기가 많이 달라질 것 같다. 80 평생 동안 고향마을을 지키신 아버지, 일제에 징용으로 끌려가신 2년을 빼고는 설과 추석 명절 기간 동안 한 번도 선산이 있는 고향집을 비우신 적이 없는 아버지께서 지난해 교통사고를 당해 올해 2월에 돌아가셨으니 그 빈자리가 너무도 클 것이다.

아버지께서 계실 때에는 명절 전 주쯤 되면 "언제쯤? 누구 누구 내려 올 것이냐?"고 궁금해하며 전화를 하셨다. 어젯밤(11일)에는 어머니께서 전화를 하셨다. 벌써 빈자리가 느껴진다. 연휴 전날 퇴근하고 오후 다섯시 쯤 출발해 내려가면 순천 고향집에 통상 새벽에 도착하게 된다. 도착하는 동안 "어디쯤? 왔느냐?"는 전화를 여러 차례 하시는 것도 아버지셨다. 이제는 어머니께서 물려받으실 것이다.

차례상을 차릴 때도 시제를 모시는 6대조 이상 선조를 뺀 5대조 부모에 작은 할머니까지 포함해서 메(밥)를 열한 그릇 올렸는데 이제는 아버지 몫까지 해서 열두 그릇을 올려야 할 것이다. 제수용품 시장 보는 일을 당신께서 꼭 순천 역전시장에 나가 보셨는데 이제는 어머니 몫이 되었다.

과연! 아버지께서 고향집에 안 계신 첫 번째 추석 명절은 어떨 것인지? 아버지 돌아가신지 7개월 된 시점에서 아버지 생각이 절절한 2008년 추석이 될 것 같다.


#솔터사람#솔터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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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가는 인터넷신문 오마이뉴스의 역할에 공감하는 바 있어 오랜 공직 생활 동안의 경험으로 고착화 된 생각에서 탈피한 시민의 시각으로 살아가는 이야기를 진솔하게 그려 보고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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