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이름 : 리빙그린
- 글쓴이 : 그레그 혼
- 옮긴이 : 조원범, 조향
- 펴낸곳 : 사이언스북스 (2008.8.11.)
- 책값 : 1만1000원
(1) 지구 환경을 무너뜨리는 사람은 누구
.. 매일 50∼100종의 야생 동식물이 인간들 때문에 사라지고 있다. 세계 인구의 5퍼센트에 불과한 미국인이 세계 자원의 25퍼센트를 소비한다. 소비된 자원의 대부분은 결국 쓰레기 매립장에 폐기물로 버려지거나 태워진 후 대기 중으로 날아가 우리의 건강과 환경을 장기간에 걸쳐 황폐하게 한다 … 현대적인 생활 방식에 따라 사는 평균적인 미국인 한 사람은 주요 온실가스인 이산화탄스를 한 해 평균 24톤 이상 배출하고 있다 .. (29쪽)
입은 비뚤어져도 말은 똑바로 하라고 했습니다. 날마다 쉰에서 백 가지에 이르는 들풀과 들짐승이 죽어 사라지는 까닭은 ‘사람들 때문’이 아니라 ‘미국사람들 때문’입니다. 그리고 ‘미국사람처럼 살려는 한국사람이나 일본사람 같은 사람들 때문’입니다. <리빙그린>에 나오듯 날마다 백 가지에 이르는 들풀과 들짐승이 죽어서 사라지는데(예전에는 훨씬 많이 사라졌으나 요즈음은 ‘사라질 만한 생물종이 벌써 많이 사라졌’기에 이만한 숫자로 줄어들었습니다), 세계 인구가 100이라 한다면 미국사람은 5퍼센트 숫자로 25퍼센트나 되는 자원을 쓰고 있으니, ‘미국이 아닌 나라에서 살아가는 사람들보다 여덟 곱절이 넘는 자원’을 쓰는 셈입니다. 한국이나 일본이나 유럽 같은 ‘과소비’ 나라를 빼고서 헤아린다면, 이른바 ‘제3세계’나 ‘가난한 나라’ 사람들은 하루에 한 가지 들풀이나 들짐승조차 죽이지 않으나, 미국사람은 날마다 쉰 가지쯤 죽이고 있는 셈입니다.
한국사람들 자원 소비량을 따져 보아야 할 텐데, 우리들 한국사람도 날마다 열 가지쯤 되는 들풀과 들짐승을 죽이고 있지 않을까 모르겠습니다. 그러니까, ‘인간들 때문에 야생 동식물이 사라진다’고 말해서는 안 되며, ‘미국사람들 때문에, 또 미국사람과 같은 살림살이를 꾸리는 한국사람들 때문에 야생 동식물이 사라진다’고 말해야 올바르다고 느낍니다.
그렇지만 이런 숫자나 부피를 살갗으로 느끼면서 살아가는 ‘도시 소비자’는 거의 없다고 느낍니다. 우리가 날마다 자가용을 몰면서 일터를 오가거나 볼일을 보는 동안 꽃 하나가 죽고 나무 하나가 시들며 들짐승 한 마리가 보금자리를 빼앗깁니다. 이들은 아무 잘못이 없으니 그예 저승으로 가고 맙니다. 전철이나 버스를 타면 조금 적게 죽인다고 하지만, ‘죽이는 꼴’은 마찬가지입니다.
일을 해도, 두 다리로 걷거나 자전거를 타고 갈 수 있는 거리에 있는 일터에서 일하고, 정 어쩔 수 없으면 일터와 가까운 곳으로 집을 옮겨야 합니다. 농사짓는 사람들이 걸어서 갈 만한 거리에 있는 논밭을 일구며 살듯, 도시에서도 우리들은 대중교통을 타고 오갈 거리에 있는 일터가 아니라, 집 가까운 곳 일터를 얻거나, 일터 가까운 곳에 집을 얻어야 합니다.
그래야 애먼 기름을 먹는 교통 흐름을 줄이고, 사람(바로 우리)들 때문에 애꿎게 죽어 나가는 풀과 짐승 보금자리를 지킵니다(말은 참 쉽다고 하지만, 더 많은 벌이가 아닌 더 나은 삶을 찾아서, 벌이가 좀 적더라도 생각과 매무새를 고친다면, 더 나아진 삶에서 적게 벌고 적게 쓰면서도 한결 넉넉할 수 있다고 느낍니다. 제 스스로 이렇게 살아가면서, 사람다운 길이 무엇인가 하고 깨닫고 있습니다).
.. 제품에 들어가는 재료를 따져 볼 때 즉석 식품은 값이 턱없이 비싸다. 또한 동일한 재료를 사용해 건강에 좋은 다양한 음식을 직접 만드는 데 그리 더 많은 시간이 걸리는 것도 아니다 .. (67쪽)
저는 손빨래를 하고, 손수 저잣거리 나들이를 하면서 찬거리를 마련하고, 손수 다듬어서, 손수 밥을 하고 손수 밥상을 차리고 손수 설거지를 합니다. 그제 저잣거리에서 버섯 한 근을 오천 원어치 산 다음 미역국을 끓이는 데에 반을 넣고, 감자와 빨간무와 양파를 썰어서 함께 무치는 데에 반을 넣었습니다. 이렇게 하니 이틀치 네 끼니를 먹을 수 있더군요.
두 식구가. 모두 여덟 끼니치가 나온 셈이니 한 끼마다 버섯을 배불리 먹어도 한 사람 앞에 600원 조금 더 치른 셈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버섯밥집에 가서 버섯찌개를 시켜서 먹었다면, 두 사람 한 끼니에 만 원을 훌쩍 넘었을 터이며, 찌개에 버섯보다 버섯 아닌 푸성귀가 훨씬 많이 들어 있었을 겝니다. 더욱이 갖가지 화학조미료를 잔뜩 뿌렸을 터이니 우리 몸에 좋을 턱이 없습니다.
버섯을 다루는 밥집까지 찾아가는 데에 드는 시간, 밥이 나오는 동안 기다리는 시간, 밥을 먹으며 치르는 돈, 밥을 먹고 집으로 돌아오는 시간을 모두 헤아려 보면, 제 두 발로 저잣거리를 찾아가서 버섯을 산 뒤 집에 와서 손질해서 미역국을 끓이고 무침을 마련하는 데 들어간 품이나 시간이 훨씬 적습니다(‘탄소배출량’까지 생각해 본다면, 우리가 밥집에 가서 밥을 시켜서 먹기 때문에 밥집에서 따로 전기를 돌리고 간판불을 켜고 물을 쓰고 직원을 쓰며 가게를 꾸미고 하는 것들도 따로 돈이 들어간 일이라서, 돈 몇 푼 치르고 밥을 사먹은 셈이라고만 쉬 넘길 수 없습니다). 몸에는 더욱 좋고 맛은 훨씬 나으며 돈은 아주 조금만 써도 넉넉합니다.
.. 일회용 기저귀는 쓰레기 매립지에 묻히는 여러 쓰레기들 가운데 세 번째로 많은 양을 차지한다. 미국에서만 매년 180억 개의 일회용 기저귀가 사용된다. 그리고 500만 톤의 배설물이 처리되지 않은 채로 기저귀와 함께 쓰레기 매립지로 향한다 .. (84쪽)
이웃 할머니가 당신 손주 키울 때 쓰던 기저귀를 물려주셨고, 옆지기 어머님이 당신 막내아들(내 처제)을 키울 때 쓰던 기저귀를 물려주셨습니다. 천으로 된 이 기저귀들은 날마다 마흔 장쯤 빨아야 아기 똥오줌에 댈 수 있습니다. 우리는 1회용 기저귀를 써 보지 않아서 모르겠습니다만, 1회용 기저귀를 쓴다고 치면, 며칠에 한 번쯤, 큰 상자를 하나씩 들여야지 싶습니다.
1회용 기저귀가 오줌을 여러 번 받아들여서 덜 갈아 주어도 된다고 하지만, 오줌을 누었을 때 바로바로 닦이고 기저귀를 갈 때와 여러 번 누도록 그대로 둘 때하고, 아이가 받는 느낌은 사뭇 다를밖에 없다고 봅니다. 무엇보다도, 1회용 기저귀를 쓰게 되면, 이 1회용 기저귀는 곧바로 쓰레기가 되어 땅에 묻혀 버리니, 아이가 살아갈 터전을 더럽히는 셈입니다.
날마다 1/4씩 빨래를 하는 데에 쓰면서 한 달쯤 보내다 보니까, 엊그제부터 어깨죽지가 결리고 등 힘살이 모두 굳어집니다. 오늘은 기저귀를 빨 때 몹시 힘겹습니다. 그래도 아기 기저귀를 갈고 빨래를 하고 옥상마당에 널어 놓고 말린 다음 거두어들이는 동안, 이 일이 고되거나 귀찮다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다. 얼른 빨래를 마치고 아기와 옆지기 있는 방으로 들어가서 옆지기 팔다리를 주무르고 아기가 잘 자거나 노는지 지켜보아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다가 밥때가 되면 얼른 미역국을 끓이거나 덥히고 찬거리 하나 마련합니다.
아기는 우리가 평화로이 밥을 먹도록 내버려 두지 않기에, 밥을 차려도 삼십 분쯤은 밥숟갈을 못 뜨는데, 말을 못하는 아기한테 우리 삶을 맞춰야지, 우리한테 아기를 맞출 수 없으니, 기쁘게 받아들입니다. 이러는 가운데 우리들 어머니가 우리를 어떻게 키우셨을지 생각해 봅니다. 예전에는 아버지는 돈벌러 일 나가고 어머니 혼자서 집에서 살림 다하고 밥 다하고 빨래 다하면서 아기까지 돌보았을 텐데, 몸풀이나마 제대로 하면서 그 일을 다 치러 내셨을까 궁금하기도 합니다.
우리 몸이 수월해지거나 가벼워지는 쪽을 찾는 일도 나쁘지 않을 테지만, 구태여 기계와 전자제품을 쓰기보다는, 자연 그대로 아이가 느껴 주기를 바라고, 어머니와 아버지 손을 오래오래 많이 타면서 아이가 자라 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두 사람은, 아이를 키우는 동안 우리 삶터에 하나라도 더 많은 쓰레기가 나오도록 하는 삶이 아닌 가운데 아이를 키우고 싶습니다. 그래야 한다고 몸으로 느낍니다. 자연사랑이나 환경사랑은 책이나 지식으로 가르칠 수 없고, 아이 어버이인 우리 두 사람이 어떤 마음과 매무새로 어떻게 살아가느냐에 따라서 아이 스스로 몸으로 받아들이게 된다고 느낍니다. 우리가 입으로만 떠드는 ‘자연스러운 삶’을 꾸리면서 도시에서도 살아가는 모습이 아니라, 몸으로 부대끼고 치러 내면서 자연스러울 삶을 찾아나가야, 이런 어버이들 부대낌이 아이한테 하나하나 스며든다고 느껴요.
어버이 된 사람이 먼저 열리고 너른 가슴으로 살아야 아이도 열리고 너른 가슴으로 살아갈 테니까요. 어버이 된 사람이 먼저 착하고 곱게 살도록 힘써야 아이도 착하고 곱게 살아가는 매무새를 기를 테니까요. 어버이 된 사람이 우리 삶터를 1회용품과 갖가지 전기제품으로 무너뜨리지 않아야 아이도 자기 몸과 자기가 디딘 땅을 더 사랑할 수 있을 테니까요.
(2) 알려고 해도 바꾸기 어려운 세상인데
‘푸르게 푸르게’ 살아가려는 마음을 품게 된 어느 미국사람이 쓴 <리빙그린>을 읽습니다. 글쓴이는 아주 똑똑하고 돈도 많이 벌고 이름값도 드높은 분입니다. 그러나 똑똑함은 지식이 많음일 뿐이었고, 돈이 많음은 어마어마한 자원을 써서 주머니만 불리는 일이었으며, 이름값이 드높음은 말짱 헛것이나 뜬구름이었다고 깨닫습니다. 나중에, 한참 나중에. 몸이 아프고 저리고 쑤신 다음에야 비로소 깨닫고, 자기 삶이 왜 이렇게 되었는가를 돌아보면서, ‘돈벌이와 이름값 올리기와 도시에서 물질문명 누리기’를 저버리지 않는 가운데 ‘푸르게 사는 길’이 무엇인가를 알아봅니다.
.. 나는 양상추가 펼쳐져 있는 거대한 들판에 서서 밝게 빛나는 녹색 잎사귀로 꾸며진 샐러드와 샌드위치를 생각했다. 이 광대한 녹색 들판에 감탄하다가 나는 농장 인부들이 긴 소매 옷을 입고 두꺼운 장갑과 고무장화를 착용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들 중 일부는 얼굴에 마스크까지 쓰고 있었다 … 농장 주인 말에 의하면 상추가 우리 식탁에 오르기까지 최대 50가지 종류의 살충제와 살균제 그리고 제초제를 평균 12번 정도 밭에 뿌린다고 했다. 고무장화와 장갑은 바로 여러분과 내가 매일 먹는 화학 물질로부터 농부를 보호하기 위한 장비였던 것이다! … 내가 화학제품을 사용한 상추를 사기 때문에 농약에 대한 수요가 발생하고 토양이 오염되는 것이다 .. (44쪽)
며칠 앞서 ‘국민과의 대화’를 했던 대통령 이명박씨가 ‘탄소배출량’ 이야기를 해서 깜짝 놀랐는데, 탄소배출 문제를 꺼내기는 했지만, 탄소배출을 줄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또 자기는 무엇을 할 생각인지는 하나도 들려주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탄소배출을 엄청나게 늘릴 ‘뉴타운 개발’을 시골 구석구석까지 해야 한다고 말할 뿐이었습니다. 농촌도 뉴타운으로 한 곳에 사람들이 북적북적하게 하고 공장도 짓고 쇼핑센터도 세우고 뭣도 해야 발전이 된다고 말하는데, 이렇게 하는 동안 쏟아져나올 탄소는 어찌하게 될까요.
논밭과 산을 허물고 아파트를 지어서 나오는 탄소배출량만큼 ‘나무를 심으면 된다’고 말씀하시던데, 나무가 조용히 잘 자라던 땅에 있던 나무를 베어낸 뒤, 어디에다 나무를 심을 수 있을까요? 이미 심겨진 자리에 또 심을까요? 나무와 나무 사이는 몇 미터 떨어뜨려야 하는데, 그렇게 해서 나무 백만 그루를 심을 땅이 우리 나라에 있을까요? 아니, 우리 나라에 나무 심을 땅이 남아 있기나 한지요. 그리고 나무만 심는다고 환경사랑이 될까 궁금하기도 합니다.
람사조약에 가입을 해 놓았을 뿐 아니라 세계람사대회를 치르기로 한 한국이면서, ‘새만금 메우기를 대법원에서 인정’해 버린 나라가 우리 나라입니다. 정부 정책에서도 환경생각이 없었고, 법조계 분들도 환경생각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정부와 법조계만 탓할 일이 아니라고 느낍니다. 언론계는 어떠하며, 교육계는 어떠할까요. 재계는 어떠하고 과학계는 어떠할까요. 건설업 하는 분들은 어떠하며, 여느 시민이라고 하는 우리들은 어떠한지요. 우리들 스스로 얼마나 환경생각을 하면서 자기 삶을 꾸려 나가고 있을까요.
.. 이것이 왜 문제인가? 왜냐하면 지구 온난화는 단지 이론이 아니라 분명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 (181쪽)
이야기책 <리빙그린>을 덮으면서, 예전에 읽은 <즐거운 불편>이 자꾸 생각났습니다. 오늘저녁이면 다 읽게 될 <지구를 걸으며 나무를 심는 사람, 폴 콜먼>이라는 책이 자꾸만 겹쳐집니다.
그러나 <모래 군의 열두 달>(알도 레오폴드)이나 <씨앗의 희망>(헨리 데이비드 소로우)이나 <회색곰 왑의 삶>(어니스트 톰슨 시튼)이나 <수달 타카의 일생>(헨리 윌리엄슨)이나 <침묵의 봄>(레이첼 카슨)이나 <슬픈 미나마타>(이시무레 미치코)나 <복합오염>(아리요시 사와코) 같은 줄거리나 마음결을 바라면서 <리빙그린>을 읽지 않았습니다. 또, 바랄 수 없으며 바라서도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리빙그린>을 쓰신 분은 ‘미국사람으로서 자기 소비 문화를 버릴 생각이 없는 가운데, 될 수 있는 만큼 환경파괴를 줄이는 길을 찾기’로 걸어간 보기 드문 분입니다. 먹고살기 힘들다는 핑계로 환경파괴를 일삼고 있는 자기 삶을 돌아보지 못하는 사람이 거의 모두인 형편을 돌아본다면, 이만큼 알아보고 생각하고 자기 삶도 조금은 고치는 삶이 얼마나 대단한지 모릅니다.
그렇기는 한데, <리빙그린>에는 ‘즐거운 불편’이 하나도 없습니다. 모두 다 ‘조금 더 돈을 치르면 얼마든지 더 환경사랑이 된다’는 이야기일 뿐입니다. “그린 헬스, 그린 홈, 그린 퓨처”로 나뉘어진 <리빙그린>에서 말하는 ‘푸름(그린/녹색)’은 ‘좀더 환경을 생각하는 소비문화로 바꾸어야 우리 아이들이 앞으로도 한겨울에 스키를 즐길 수 있는 삶을 자기 아이들(글쓴이한테는 손자)한테 물려줄 수 있다’는 생각을 보여주기만 합니다.
나라안에도 <고릴라는 핸드폰을 미워 해>(박경화) 같은 훌륭한 책이 있습니다만, 이 책도 ‘자기 실천’에서는 그다지 보여주는 이야기가 없습니다. <착한 도시가 지구를 살린다>(정혜진)라는 책은 <리빙그린>과 견주어 ‘자동차를 하이브리드로 바꾼다고 해서 달라질 수 있는 삶이란 없기에 자동차를 버리고 자전거를 타려고 했으나 실패했다’는 이야기가 실려 있기도 하고, 글쓴이 나름대로 환경 이야기를 쓰는 기자로서 입으로만 떠들지 않겠음을 보여줍니다. 우리 삶터는 ‘녹색 소비’만으로 지킬 수 없기 때문입니다. “지구 온난화는 단지 이론이 아니라 분명한 사실”이라면, ‘녹색 소비’만으로는 세상을 올바르게 돌려놓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스스로 풀빛을 닮지 않으면, 스스로 풀빛이 되지 않으면, 스스로 도시사람이나 시골사람을 넘어서면서 ‘풀사람’이 되지 않으면, 지구 삶터 지키기나 가꾸기는 이룰 수 없습니다. 환경사랑은 쓰레기 줍기부터 실천을 할 수 있겠습니다만, 쓰레기 안 버리기가 먼저요, 쓰레기 안 만들기가 먼저요, 삶터를 푸르게 가꾸기가 먼저입니다. 삶터를 푸르게 가꾸는 일은 하지 않으면서, ‘자기가 번 더 많은 돈으로 나무를 심겠다’는 ‘탄소상쇄’는, 우리 삶터 밑뿌리는 곪은 대로 그대로 내버려 두면서 잎과 꽃만 예쁘게 키우려는 마음결하고 매한가지입니다.
그나마, 알려고 애쓰니 이만한 책 <리빙그린>을 쓰고, 이만한 책이라도 읽고서 다문 한 가지라도 ‘녹색소비’를 해 준다면 우리 삶터는 아주 티끌만한 크기로라도 달라질 테지만, 날마다 수십 수백 가지 목숨붙이가 죽어 사라지는 마당에, 터럭만큼 나아지게 하는 삶으로는 우리 아이들한테 물려줄 지구는 너무 더러운 땅덩이가 되고 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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