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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가위 무등의 보름달
한가위 무등의 보름달 ⓒ 류홍렬

서걱대는 억새 소리에 울어대던 풀벌레도 멈추고 달까지 빛을 멈춘다. 한가위 보름달이라고 해서 그런지 하늘은 온통 둥근 달이 차지했는데, 무등의 어깨에 내리쬐는 달빛은 서걱대는 억새들 사이로 애잔하게 잘려 뿌려진다. 서걱대는 억새 속에 서서 내리쬐는 달빛을 맞아 본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달빛의 황홀함이다.

한가위 날 오후 6시, 산을 좋아하는 '풀꽃산행'팀 15명이 무등산 원효사 입구 주차장을 출발하였다. 순전히 달을 보기 위한 산행이었다. 한가위 달을 독자님 모두에게 보여주고 싶은 마음도 있었고, 핑계 삼아 달빛을 따라 산을 오르는 이색산행에 대한 기대도 있었다.

야간 산행이어서 어려운 길에 접어 들 수가 없다. 무등산은 원효사 입구 주차장에서 정상인 천황봉까지 군사도로가 나 있다. 포장이 되지 않은 자갈길이고 일반 차량의 출입은 통제된 길이다. 그 길을 따라 중봉까지 오르기로 하였다.

조금 올라갔는데 날이 저물었다. 그 사이에 떠오른 달이 무등산 위에 군데군데 가려진 구름과 숨바꼭질을 하고 있다. 조금 올라가니 이내 어둠이 차차 내려온다. 온 산에 내려온 어둠을 따라 그 위에 내려온 달빛은 더욱 하얗게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우리들은 하얗게 쏟아지는 달빛을 따라 앞으로 나아갔다. 길을 덮어버린 큰 나무 밑을 지날 때에는 몹시 어둡기도 하였지만 하얀 달빛을 따라 가는 달빛산행은 별 어려움이 없었다. 산길이 아니라 비포장 자갈길을 오르기 때문에 별 어려움도 없었다. 모두 전등도 켜지 않고 앞으로 나아갔다.

 한가위 무등의 달빛산행
한가위 무등의 달빛산행 ⓒ 류홍렬

 한가위 무등의 보름달
한가위 무등의 보름달 ⓒ 서종규

사람들의 흔적도 모두 달빛으로 가려진 산길이다. 길가에 하얗게 보이는 꽃들이 몇 점씩 모여 흔들거린다. 아직은 하얀 구절초는 아닌 것 같고 무더기로 모여 있는 모습이 분명 보랏빛 쑥부쟁이 일 게다. 달빛에 자기의 색깔도 감추고 하얗게 흔들거리는 꽃송이들이 앙증스럽다.

쉼 없이 들려오는 풀벌레 울음소리가 쏟아지는 달빛을 더욱 하얗게 밝혀주고 있다. 때로는 요란하게 울리는 벌레소리도 있고, 작고 조용하게 울려대는 소리도 있다. 여름에 가장 시끄러운 여치의 울음은 아닌 것 같은데, 이제는 풀벌레 소리를 듣고도 그 벌레 이름을 알 수 없는 것이 죄송하다.

산길이란 원래 구불구불 돌고 돌아간다. 늦재를 타고 돌 때 광주 시내의 모습이 한 눈에 들어온다. 완연한 어둠에 싸인 시내는 찬란한 등불들이 점령했다. 밤하늘엔 하얀 달빛 때문에 별들이 거의 보이지 않는데 울긋불긋한 시내의 등불들은 화려하게 깔려 있다. 가끔은 인간이 만들어 놓은 도시의 야경이 밤하늘의 별들보다 더 화려하게 보이는가 보다.

출발한 지 2시간 정도 되어서 군부대 복원 터에 도착했다. 바로 무등산 중봉 아래 부근이다. 이 군부대 터에서 곧바로 오르면 서석대를 거쳐 입석대로 갈 수 있다. 그리고 도로를 따라가면 장불재가 나온다. 지금은 서석대와 입석대 오르는 길이 통제되어 있다. 

군부대를 복원해 놓은 터에는 억새가 장관을 이룬다. 군부대의 모습은 이제 근처에 세워진 간판만이 그 사실을 말해 주고 있고, 그 터 가득 자라난 억새의 군락이 찾는 이의 마음을 가득 사로잡는다. 무등의 또 다른 절경으로 자리 잡은 군부대 복원 터에는 어김없이 수많은 억새들이 꽃을 피워내고 있다.

억새 사이에 난 길을 따라 중봉으로 올라갔다. 그리 긴 길은 아니지만 억새 사이를 지나는 발걸음은 너무나 상쾌하다. 어느 새 달은 하늘 높이 솟아 있다. 억새 틈으로 멀리 무등의 줄기들이 실루엣처럼 보이고, 더 높은 하늘에 달이 구름 사이를 지나며 달무리 져 있다.

 한가위 무등의 달빛산행
한가위 무등의 달빛산행 ⓒ 류홍렬

 광주시내 야경
광주시내 야경 ⓒ 서종규

 광주시내 야경
광주시내 야경 ⓒ 류홍렬

군부대 터에서 계단식으로 된 길을 오르면 중봉(925m)이다. 서석대에 오르지 못하는 아쉬움이 있지만 중봉에서 바라보는 무등산의 모습이 가장 아름답다. 서석대와 천황봉이 한 눈에 들어오고, 장불재와 백마능선과 안양산 능선을 따라 가면 영암 월출산까지 보인다. 천황봉 아래 누에봉을 따라 가면 북쪽의 봉우리들이 다 보이고, 동화사터를 따라 가면 담양의 모든 산들도 한 눈에 들어온다.

중봉에서 바라보는 광주시내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특히 밤에 올라와 바라보는 야경이 아름답다. 울긋불긋한 불빛들이 선으로 이어져 있기도 하고, 점점이 모자이크 되어 있기도 하다. 인간이 만들어 놓은 야경이 따뜻하게 보이기도 하다. 달빛을 따라 왔던 산행이지만 도시의 야경을 바라보는 재미도 대단하다.

한가위에 달빛을 따라 시작한 산행은 우리들의 마음을 넉넉하게 하여 준다. 모든 것을 다 포용할 수 있을 것 같다. 흔들거리는 억새꽃의 여유로움, 그 사이에서 울어대는 풀벌레들의 노래, 하얗게 쏟아지는 달빛의 부드러움, 모두 우리들의 마음을 보름달처럼 넉넉하게 만들어 준다.

"바람이 다가오더니 … 뜨거워진 가슴을 열어 준다. 중봉으로 향하는 벌판 … 풀들의 숨소리가 사륵거린다. 그들의 연인 달 … 빛, 만지고 안기고 들여다보고, 그의 노래를 듣고, 아, 내 노래를 들려준다. 풀잎처럼, 나도 그들이 되어 애절하게 애절하게 달빛에 취해간다."

동행한 정금자 선생이 노래를 한다. 노래가 시가 된다. 모두 귀 기울이며 달빛에 취해간다. 따라 부르는 이가 있다. 모두의 마음에 노래가 울려 퍼진다. 중봉에 앉아, 또는 서서 하늘의 달을 바라보며 노래를 한다. 소원을 빌면 성취된다던 말은 잊은 지 오래다. 오로지 달빛에 취하여 마음에서 울리는 노래를 한다.

세상이 한가위 보름달만큼만 평화로웠으면 좋겠다. 한반도 위에 비추는 저 달빛이 모두의 마음에 넉넉함으로 자리 잡았으면 좋겠다. 수배자가 되어 가족과 함께하지 못한 사람들에게도, 한우를 키우다 스스로 목숨을 버린 이의 무덤 위에도, 입시 준비 때문에 추석 휴무날에도 교실에 앉아 있는 청소년들에게도, 고향에 가고 싶어도 가지 못하고 도시에서 서성거리는 사람에게도, 국방을 책임지고 있는 젊은이들에게도. 그리고 동포들이 굶주려 죽어간다는 소식을 들어도 '나 몰라라'하는 사람들이 없었으면 좋겠다.

 한가위 보름달
한가위 보름달 ⓒ 서종규


#한가위#달빛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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