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남으로 가는 남지나해의 뱃전에서 바닷속으로 던져버린 조잡한 오뚜기 인형 한쌍. 출국명령을 받고 떠나는 군용트럭 위로 포항 몰개월의 '똥까이' 미자가 던져준 유치한 이별의 선물을 받아들이기엔 소설화자 '나'는 아직 젊었고 인생의 시련을 몰랐다고 해야 할까.
"몰개월 여자들이 달마다 연출하던 이별의 연극은, 살아가는 게 얼마나 소중한가를 아는 자들의 자기표현임을 내가 눈치챈 것은 훨씬 뒤의 일이다. 그것은 나뿐만 아니라, 몰개월을 거쳐 먼 나라의 전장에서 죽어간 모든 병사들이 알고 있었던 일이다." (황석영 '몰개월의 새' 마지막 대목)1976년에 발표된 이 짧은 단편소설의 소설적 성취와 육중한 문학적 감동에 대해서는 이미 많은 사람들의 언급이 있었거니와, 30년이 지난 지금 다시 읽어도 그 감동은 조금도 덜하지 않다. 사정은 의외로 단순한지도 모른다.
소설의 마지막 대목에 그 흔한 형용사나 부사의 도움 없이 담담하게 토로되어 있는 대로, 한 젊은이가 살아가는 일의 어떠함에 대해 알게 되는 것은 오직 그 자신의 시간과 시련을 통해서일 것이다. 대개 그것은 뒤늦은 깨우침일 수밖에 없고, 돌이킬 수 없는 것이겠지만, 인간의 성숙을 말하기로 한다면 달리 어떤 방법이 있을까.
문제는 누구나 한마디 거들 수 있을 법한 이 공공연한 사정에 도달하기까지 작가 황석영과 작품 '몰개월의 새'가 감당했을 고유한 시간일 것이다. 그 시간의 대체 불가능한 힘이 있었기에 우리는 소설화자가 "몰개월을 거쳐 먼 나라의 전장에서 죽어간 모든 병사들"을 자신의 뒤늦은 깨우침의 동료로 함께 호명하는 담대하고 슬픈 진실에 기꺼이 동참할 수 있었던 것이리라. 이 경우 체험적 진실의 힘은 필요조건일 수는 있겠지만, '몰개월의 새'가 뿜어내는 문학적 감동의 광휘가 그 너머의 것이라는 사실 또한 달리 부연할 필요가 있을까.
흥미롭게도 작가 황석영이 최근에 발표한 <개밥바라기별>은 '몰개월의 새'의 전사(前史)에 해당하는 시기를 소설적 시간으로 다루고 있다. 베트남으로의 출국을 앞두고 서울로 무단이탈을 감행한 기간의 차이 등 사소한 소설적 변용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전체적으로 두 소설의 화자 '나'는 동일인물이며 '나'를 둘러싼 소설적 정황 또한 하나로 보아도 전혀 무리가 없다. 심지어 우리는 두 소설에서 같은 정황을 묘사한 동일한 문장을 읽게도 된다.
작가 자신 <개밥바라기별>을 '자전적이고 개인적인' 소설이라고 밝히고 있기도 하거니와, 황석영에게 월남전 참전을 앞둔 이 시기가 젊음의 방황에서 특별한 구간임을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다. 아마 돌아보아야 한다면 바로 거기서 돌아보아야 한다고 생각했으리라.
<개밥바라기별>은 그렇게 베트남의 전장으로 떠나기 직전, 몰개월로의 복귀를 위해 서울역을 떠나는 한 젊은이의 시간에서 일단 멈춘 뒤, 고등학교 시절로 소설의 시간을 길게 되돌렸다가 다시 서울역을 떠나는 열차칸으로 돌아와 끝난다.
덕분에 우리는 베트남의 전장에서 뒤늦게 "인생에는 유치한 일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고 되뇌게 되기까지 한 젊은이가 숨겨두었던 격렬한 성장기의 싸움을 관전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개밥바라기별>에서 명문고생인 주인공 유준과 주변 친구들의 정신적 성장을 지배하고 있는 것은 한마디로 잿빛 관념이다. 그것은 1950년대 후반 전후의 폐허를 지나며 조금씩 거리의 서점가로 나오기 시작한 세계문학전집이나 사상전집 속의 세계다. 거기에서 엿본 자아의 공간, 그 황홀한 자유의 가능성이 그들을 유혹하지 않았다면 그거야말로 기이한 일일 것이다.
<지상의 양식>을 그들도 읽지 않았을까. "나타니엘이여, 이제는 나의 책을 던져버려라. (…) 떠나라." 그러나 그 떠남과 일탈이 지불해야 할 댓가 또한 그들은 알고 있었고 대개는 그 경계에서 떠남과 일탈의 흉내를 내보곤 자신의 궤도로 돌아가기 마련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좌절하거나 아니면 살아남아서 요 모양의 산업사회를 이끌어갈 사회 지도층이 되었다"고 소설은 기록하고 있다.
유준은 어떠했나. 그는 궤도 이탈을 감행해서, 한차례 유급을 거쳐 학교를 자퇴했다. "어쨌든 내가 그때의 그 모퉁이에서 삐끗,했던 것은 지금에 와서 보면 필연이었다. (…) 그러나 벗어났을 때의 공포는 당시에는 견디기 힘들었다"고 작가는 써놓았거니와, 아마도 정직한 고백이 아닐까. 예비 문사(文士)의 유치한 자부심 따위란 이 공포 앞에서 얼마나 무력한 것이었을까.
이후, 유준은 거친 방랑의 길로 들어서게 되는데 이 뒷배에 묵묵히 아들을 믿어준 어머니의 존재가 있었다는 점은 인상적이다. 의대에 가길 원했지만, 학교를 그만둔 뒤론 아들이 대학노트에 깨알같이 쓴 글을 읽어달라시던 어머니. 전처럼 노트를 치우거나 아궁이에 넣지 않았다. "책을 쓴다는 건 좋은 일이지만 제 팔자를 남에게 다 내주는 일이란다." 어머니의 존재 없이 유준의 싸움은 가능하지 않았다는 점을 확인하는 순간은 <개밥바라기별>의 가장 아름다운 대목이라 해야 하리라.
부랑노동자 장대위를 따라 오징어배를 타고, 공사판을 떠돌며 이른바 '날것'의 살아있는 세상과 만나던 행복은 중단될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스스로 벗어났다고 믿었던 것과는 달리, 유준은 여전히 궤도 위에 있었다. 문학이라는 궤도. "그렇다, 세상의 표면만이 또렷할 뿐 나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글을 쓸 수 없다면 내 존재는 없는 거나 마찬가지다. 잘못 돌아왔다." 유준은 자살을 감행하고 닷새 만에 깨어난다.
이쯤에서 우리는 유준, 아니 작가 황석영의 연보를 엿보아도 되지 않을까. "1962년 봄 경복고를 자퇴하고 가출하여 남도 지방을 방랑하다 그해 10월에 돌아옴. 11월 단편 '입석부근'으로 <사상계>신인문학상 수상." "1966년 해병대에 입대하여 이듬해 청룡부대 2진으로 베트남전 참전." "1969년 5월 군에서 제대." "1970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탑' 당선."
그러니까 '입석부근'에서 다시 '탑'으로 돌아오기까지 8년의 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그사이에 <개밥바라기별>과 '몰개월의 새'의 시간이 말없이 놓여 있다. 작가연보의 짧고 건조한 문장들 사이사이에 오래 눈길이 머물 수밖에 없는 이유다.
결론을 맺자. 문제는 궤도 이탈을 둘러싼 우승열패(優勝劣敗)의 문제가 아닐 것이다. 자신의 궤도로 돌아갔던 젊은이들 역시 나름의 고투 속에 자신의 시간과 자신의 삶을 산 것일 테니까. 그 결과가 '요 모양의 산업사회'라 해도 쉽게 비난할 수 있는 성질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다만 이렇게 말해볼 수는 없을까.
어떤 젊은 영혼은 자신의 길을 애써 뒷길로 만들며 세상이 마련해놓은 궤도를 거절한다. 그가 그 막막한 뒷길에서 겪었을 아득한 공포의 댓가로 한 사회는 아주 가끔 뛰어난 문학과 작가를 얻는다. 이것을 혹, 세상의 보이지 않는 균형이라고 말한다면 너무 가혹한 이야기가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