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부터 시작된 미국의 금융 대란, 세라 페일린의 등장으로 이슈는 실종된 채 말꼬리 잡기만 무성했던 미 대선전은 온전히 경제 이슈에 집중되었다.
양당 전당 대회 효과도, 페일린 거품도 거의 다 꺼진 상황에서 오바마-매케인의 지지율은 전당대회 이전인 8월 중순으로 되돌아가게 되었으며, 주초부터 미국을 휩쓴 경제위기가 오바마에게 유리한 환경을 마련해 줄 것으로 많은 사람들은 기대하고 있으나, 그 효과가 뚜렷하게 지지율에 반영되지는 않고 있는 상황이다.
오바마-매케인 지지율, 양당 전당 대회 이전 상태로17일 저녁에 발표된 <뉴욕 타임즈>와 CBS 뉴스의 여론 조사 결과를 보면, 오바마가 매케인을 전국 지지율 48% 대 43%로 앞서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9월 12일부터 16일 사이에 이뤄진 여론 조사로, 8월 중순 같은 기관에서 조사했던 결과와 동일한 것으로 나타나 양당의 ‘전당대회’ 효과는 거의 다 사라진 것으로 분석된다.
오바마의 지지율 회복은 여성 유권자들에 의해 견인된 것으로, 전당대회 이전에는 45%, 이후에는 54%의 여성들이 그에 대한 지지 의사를 밝힌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에 매케인의 경우에는 전당대회 이전이나 이후나 여성 유권자 38%의 지지를 받음으로써 '페일린 효과'가 여성 유권자 전반에 영향을 미친 것은 아닌 것으로 분석되었다.
그러나 현재처럼 박빙의 차이로 지지율이 나뉘고 있는 상황에서는 공화당 지지층의 표심을 다지는 것만으로도 큰 도움이 되는 터라, '페일린 효과'는 분명히 매케인에게는 긍정적으로 작용하기는 했다. 한편 매케인은 '전형적인 공화당 후보자'의 이미지로 부시 대통령과 차별성을 드러내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나, 매케인 진영에게는 여전히 큰 숙제로 남아 있게 되었다.
연령별로는 44세 미만의 유권자에게는 오바마가 16%, 65세 이상의 유권자들에게는 매케인이 17% 차이로 앞서고 있었다. ABC의 찰스 깁슨과의 인터뷰 이후에 조사된 영향인지, 여론 조사 참여자 중 60% 정도는 매케인의 유사시 페일린이 대통령 직을 계승하는 것에 대해 우려를 나타내었고, 반면에 바이든이 대통령이 되는 경우에 대해서는 3분의 2 정도가 그의 자질에 대해 지지를 보냈다.
<뉴욕 타임즈>/CBS 뉴스의 여론조사 결과는 같은 날 발표된 퀴니팩 여론 조사의 결과에 의해서도 뒷받침 되는데, 전국적으로는 오바마가 매케인을 49% : 45%로, 여성 유권자의 경우엔 오바마가 매케인을 54%: 40%로 앞섰다.
NBC의 정치부장인 척 토드는 현재 나오고 있는 모든 여론 조사의 결과, 우세는 오바마에게 향하고 있다고 지적하며, 9월 26일 미시시피주 옥스포드에서 열리는 첫 대통령 토론회 때까지 매케인이 동률을 이루지 못한다면, 그가 당선될 가능성은 앞으로 점점 더 어려워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일단 토론회가 시작되면, 3번의 토론회로 승기를 잡지 못할 경우 대세를 뒤집을 가능성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사실 오바마에게 더 중요한 희소식은 전국 지지율의 회복보다는 격전지로 분류되는 일부 스윙 스테이츠(Swing States : 정치적 성향이 뚜렷하지 않는 주)에서의 지지율 상승이다. 어차피 미국의 대통령 선출 방식은 국민 전체 득표수가 아닌 선거인단 투표수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기 때문에 미시간, 오하이오, 뉴 햄셔 등에서의 지지율 우세와 특히 공화당 우세지역으로 분류되었던 인디애나, 놀스 캐롤라이나, 플로리다 등에서 나타난 지지율의 상승은 오바마에게 희소식이 아닐 수 없다.
금요일 아침 헨리 폴슨 미 재무부 장관은 미국 역사상 전무하다고 할 수 있는 경제 대책안을 발표했다. 현재 금융 시장 혼란의 원흉이라고도 할 수 있는 부실 모기지의 대부분을 미국 정부가 떠안겠다고 선언해버린 것이다. 구체적인 내용은 이번 주말 준비를 걸쳐 다음 주 초반에 발표될 예정이나, 이 같은 정부의 결단은 전날 저녁 양당의 의회 지도자들과의 협의 이후에 결정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폴슨이 대국민 성명을 발표하기도 전에, 매케인은 위스콘신에서 대국민 성명서를 먼저 발표했다. 언제나처럼 페일린의 소개로 연단에 오른 매케인은 연설의 대부분을 자신의 경제 해법을 제시하는 데 쓰기보다는 오바마를 비난하는 데 투자했다.
저돌적이지만 방향 감각 상실한 매케인의 리더십이미 목요일에 M.F.I. (Mortgage and Financial Institutions)라는 것을 소개한 바 있었던 메케인이었기에 이 기관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이 있을 것으로 기대되었으나, 월가의 금융 기관들이 파산하기 직전에 이들을 구해주는 기관이 될 것이라는 기존의 설명 이상의 것을 들을 수는 없었다.
금융 대란이 시작되었던 월요일, 미국 경제의 근간이 튼튼하다고 말했고, 화요일에는 9/11 위원회와 같은 비상 경제 위원회를 만들어 현 경제 위기의 원인을 찾아내게 만들겠다고 해, 경제 위기의 해법 제시에 대해 준비되어 있지 않다는 세간의 비판을 증명하고 있던 매케인이었다.
워싱턴의 변화와 개혁을 일으킬 인물로 스스로 재정의하기 시작했던 매케인은 이번 금융 대란에 대해서도 월가를 대대적으로 개혁하고 정부의 규제를 대폭 강화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지난 20여 년 간 정부의 시장 개입에 대해서 반대의 목소리를 내왔고, 전 연방 준비 은행장 앨런 그린스펀과 전 텍사스 상원의원인 필 그램의 자유 시장 경제 체제를 옹호해왔던 매케인이었다.
그러나 최근 경제 위기 상황에서는 어떤 정치인보다도 더 정부의 역할을 강화하고 월가를 개혁하겠다 외치고 있으며, 급기야 미 증권거래 위원장을 해고시켜버리겠다고 소리쳤다. 현 미 증권 거래 위원장은 크리스토퍼 콕스로 지난 17년간 매케인과 의회에서 한솥밥을 먹던 공화당 동료 의원이다. 매케인은 콕스 위원장이 국민의 신뢰를 배반했다며, 자신이 대통령이라면 그를 해고시켜버릴 것이라고 말했다.
금요일의 성명서에서 매케인은 오바마가 9월 초 정부의 구제를 받았던 페니 메와 프레디 멕의 CEO들로부터 많은 지원을 받았기 때문에 오바마는 이번 경제 위기에 큰 몫을 한 것이나 다름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월가의 위기가 워싱턴 정계와의 정경 유착 문화에서 비롯된 것이므로 오바마는 이 문제의 중심에 서 있는 것이라고 연결지었다. 그러나 매케인은 자신의 주요 선거 참모들 또한 두 회사의 로비스트였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양진영 어디에도 속해 있지 않은 독립 기관의 분석 결과, 오바마의 세제안이 중산층들에게 더 많은 혜택을 준다고 나와 있지만, 매케인은 자신의 세금 혜택안이 중산층들에게 더 많은 혜택을 줄 것이라고 했다. 매케인 감세 정책의 실질적 혜택을 보는 사람들은 미국의 최상위 부유 계층들이고, 부동산 거부인 도널드 트럼프는 바로 그런 사람들이 일자리를 창출하는 사람들이라며, 매케인의 감세 정책을 열렬히 지지했다.
그러나 현실은 현재 미국 정부의 적자 상황에서 매케인과 오바마 어느 누구의 감세 정책도 실천되기 어렵다는 데 있기 때문에, 누구의 감세 효과가 더 큰지를 논하는 것에는 무리가 있다.
어쨌든 금요일 유세장에서 매케인은 수천억 달러씩 급료와 보너스로 챙겨갔으나 결국 오늘날의 위기를 만들어낸 월가의 CEO들은 그동안 벌어갔던 돈을 다 쏟아내야 할 것이라고 말해 모인 청중들의 열화와 같은 박수를 받기도 했다.
위기 때 숨어 버리는 부시의 리더십... 금융 대란 3일 만에 얼굴 내밀어
금요일 오전, 전날의 모습과는 달리 제법 긴 연설문을 부시 대통령은 차분하게 잘 읽어내려갔다. 이번에는 혼자가 아닌 헨리 폴슨 재무부 장관과 밴 버낸키 연방 준비 위원장, 미 증권거래 위원장 크리스토퍼 콕스를 대동했다. 그러나, 폴슨의 성명서 발표 이후 마련되었던 자리인지, 부시 대통령은 폴슨의 내용을 거의 그대로 되풀이했으며, 기자들의 질문을 또다시 받지 않은 채 총총히 사라졌다. 그러나 성명서에 드러난 위기의식은 전례 없는 것이었다.
전날 목요일 아침, 백악관에 매우 심각한 표정으로 나타난 부시 대통령은 2분 동안의 짧은 성명서 낭독을 통해 "우리가 앞으로도 계속 금융 시장을 강화, 안정시키고 투자자들의 자신감을 회복시키는데 경주하리라는 것을 미국인들은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한 뒤, 구체적인 해결 방안 제시도 없고 기자들의 질문도 받지 않은 채 성급히 자리를 떠났다. 지난 월요일 가나 대통령과의 합동 기자 회견에서 경제 상황에 대한 간단한 언급만을 한 이후 처음이다.
긴급 상황에 대한 부시 대통령의 이 같은 늑장 대응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05년 카트리나 참사 때에도 4일 만에 수해 현장을 찾았던 그이다. 그러나 이라크 전쟁이 발발되었을 때, 러시아가 그루지야를 침공했을 때에는 발 빠르게 자신의 입장을 구체적으로 표명하기도 했었다.
<뉴욕 타임즈>에 따르면, 리먼 브러더스가 파산하고 9/11 이후 최악의 증시 폭락이 있었던 월요일 저녁, 부시 대통령 내외는 100여 명의 하객들과 함께 만찬을 즐기고 있었으며, 이후엔 백악관의 로즈가든에서 뮤지컬 <라이온 킹>의 배우들이 부르는 주제곡 메들리를 감상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 다음 날 부시 대통령은 허리케인 아이크에 의한 재해 지역을 둘러보기 위해 텍사스로 내려갔으며, A.I.G.에 대해 어떤 대책을 세울 거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우린 텍사스 겔바스톤의 주민들과 얘기를 나누기 위해 여기 온 것이고, 그들에게는 훌륭한 시장이 있다. 이들이 참 열심히 일한다"라고 대답해 주었다고 한다.
대통령의 구체적인 입장 표명을 기다려왔던 언론사들이 동요하기 시작하자 백악관은 결국 목요일의 성명서를 준비한 것으로 보인다.
금요일, 상원 은행/주택/도시 업무 위원회의 의장인 민주당의 크리스 토드 의원은 현재의 상황이 정쟁으로 소모되어서는 안 되는 때이나, 부시 대통령에 대한 실망감을 감출 수가 없다면서, 지난 3월 베어 스턴 사태 때 이후로 경제 문제 논의를 위해 대통령이 의회 지도자들과 만난 적이 없다고 한탄했다.
그러면서 전날 저녁 행정부 책임자들-폴슨 재무부 장관과 버냉키 위원장-을 포함한 양당 의회 지도자들과의 긴급회의도 백악관이 아닌 낸시 펠로시 하원 의장의 사무실에서 가졌다며, 이 같은 위기일 때야말로 대통령이 리더쉽을 발휘해야 하는 것 아니냐며 반문했다.
30년 대공황 이후로 최악이라는 이번 위기 상황에 부시 대통령의 존재는 재무부 장관 헨리 폴슨과 연방 준비 위원장 밴 버냉키의 그늘에 완전히 가려졌다. 큰일이 터지면 어쩔 줄을 모르는 부시 대통령의 면모가 다시 한번 확인되는 요즘이다.
신중하지만 여전히 의문스러운 오바마의 리더십금요일의 정부 구제안에 대해 성명을 발표한 '마지막 타자'는 오바마였다. 클린턴 행정부 하에서 경제 관련 장관 및 고위 책임을 졌었던 선거 경제 자문위원 7명을 대동한 채 성명을 발표했다. 오바마는 우선 폴슨 장관의 정부 구제안에 지지를 보낸다고 하면서, 그러나 월가 금융권에 대한 구제 못지않게 일반 국민들을 위한 구제에도 힘을 써야 하고 월가의 구제가 납세자에게 피해를 주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또한 구체적인 경제 구제안 내용을 당분간 발표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금요일 오전, 오바마는 자신의 경제 자문 위원은 물론 워렌 버핏 같은 경제인의 의견을 두루 경청한 이후 담화문을 발표했다. 그는 폴슨 장관과 버낸키 위원장의 노력에 지지를 보내며 현 시점에서 중요한 것은 시장과 국민의 자신감을 회복하기 위해 당파를 초월한 협력을 이뤄내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재무부와 연방 은행, 그리고 자신의 참모들로부터 받은 보고를 바탕으로 해서 몇 가지 원칙을 가지고 구체적인 대응방안을 마련할 것이라고 말했다.
무엇보다 초점을 둬야 하는 것은 일반 노동자 가정을 위한 구제안이라면서, 그런 점에서 일자리 창출과 집을 잃게 된 사람들을 위한 즉각적인 방안이 마련되어야 한다고 했다. 또한 이번 정부의 구제안은 잠정적이어야 할 것이며 금융 기관 전반에 대한 감시와 규제를 새로운 시대에 맞게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미국 혼자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므로 G-20 국가들과 협력을 도모할 것이라고도 했다.
당파를 초월한 국민적 화합을 강조했던 오전과는 달리 오후 유세장에서 오바마는 자신이 이번 경제 위기의 원인이라는 매케인의 비난에 대해 그가 지금 좀 겁을 먹은 것 같다면서 선거에서 이기기 위해 말과 행동을 가리지 않는 것은 물론 어떠한 원칙도 어기고 있다고 되받아쳤다.
또한 거듭되는 구제 방안으로 인한 막대한 정부의 지출과 현 미국의 어려운 경제 상황에도 불구하고 중산층에 대한 감세 약속을 반드시 지킬 것이라고 강조했으며, 그 이유는 그 어느 때보다도 지금이야말로 중산층의 기반을 튼튼하게 해야 하며, 그 방법의 하나로 감세는 중요한 수단이 될 것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보다 신중하고도 정확한 대안 제시를 위해 상황을 지켜보겠다는 오바마에 대해 공화당은 그가 준비되지 않았다고 비난했다. 위기가 닥쳤을 때 아예 뒤로 숨어버리는 부시의 리더십과 저돌적이되 방향을 상실한 매케인의 리더십, 신중하지만 여전히 의문스러운 오바마의 리더십. 남은 46일간 경제이슈로 점철될 미국 대선의 향방을 결정할 중요한 팩터(factor: 요인)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