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아지똥>은 이미 세간에 널리 알려져 아이들에게나 어른들에게 좋은 이야기다. <강아지똥>을 읽으면 뭔가 토종의 맛이 난다. 구수한 된장찌개 냄새다. 자연에 대한 잔잔한 감동이 느껴진다. 길가에 버려진 강아지똥이 민들레꽃을 피게 해주는 중요한 존재여서 그런가보다.
<강아지똥>을 읽으면 '토종의 맛'이 난다
고 권정생 선생(1937년~2007년)의 <강아지똥>은 여태까지의 왕자나 공주가 사는 환상의 세계와는 다르다. 전혀 딴판인 세상이다. 지금까지의 우리 동화가 어린이들에게 환상세계를 보여 주는 게 주류였다면, 권정생 선생은 이 세상에서 가장 낮은 곳에 서서 그 곳에도 왕자나 공주 못지않게 따뜻한 영혼을 가진 수많은 존재들이 살고 있다는 사실을 일러주고 있다.
‘강아지똥'은 하찮은 존재라 누구 하나 거들떠보지 않는다. 더럽다고 세상 사람들이 다 피하는 버려진 존재다. 그런데 권정생 선생은 이렇게 '세상에서 가장 버림받은 존재'에 남다른 관심을 가졌다.
"넌누구니?"
"난 예쁜 꽃을 피우는 민들레야."
"어떻게 그렇게 예쁜 꽃을 피우니?"
"그건 하느님이 비를 내려 주시고 따뜻한 햇볕을 비추시기 때문이야."
"그래, 그랬구나."
"그런데, 네가 거름이 돼 줘야 해."
"내가 거름이 되다니?"
"네 몸뚱이를 고스란히 녹여 내 몸 속으로 들어와야 해."
"내가 거름이 되어 고운 꽃이 피어난다면 내 몸을 녹여 너를 돕겠어."
시골길 돌담 외딴구석에 홀로 남겨진 어린 강아지똥은 작은 참새와 조그만 흙덩이마저도 하찮게 보는 여리고 쓸모없는 존재이다. 그나마 말동무라도 되어주던 흙덩이도 떠나고 추운 겨울을 외롭게 보낸 강아지똥은 봄이 되어 암탉과 병아리 가족을 만난다. 하지만, 그들 역시 강아지똥에게 아무런 쓸모를 발견하지 못하고 강아지똥을 지나쳐 버린다. 봄비가 내리는 어느 날, 강아지똥은 자신의 곁에 피어난 민들레를 만나게 되고 민들레는 별처럼 고운 꽃을 피우는 존재라는 사실에 민들레를 부러워한다.
자신은 아무 쓸모없다고 생각하던 강아지똥이 민들레를 통해서 자신도 쓸모 있는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되는 장면은 어른의 눈으로 봐도 참 감동스럽다. 강아지똥은 이 땅의 가장 낮은 곳에서 소외와 가난 속에서 버림받은 존재들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일상적 삶의 이야기다. 하찮은 존재들의 삶에 대한 권정생 선생의 사랑은 유다르다.
"세상에 쓸모없는 것은 아무 것도 없어"
그러므로 강아지 똥 이야기는 왕자와 공주이야기 또는 신데렐라 이야기와 같은 화려하고 환상적인 성공신화의 세계가 아니다. 도리어 어둡고 춥고 가난하고 슬픈 이 땅의 소외계층의 일상적 삶의 세계이다. 그런데 그곳에서 왕자와 공주이야기 또는 신데렐라 이야기와는 전혀 다른 따뜻한 영혼들의 아름답고 순박한 삶의 이야기가 보석처럼 빛난다.
그 동안 우리는 너무 서양동화에 천착해 왔다. 그런 나머지 대부분 왕자나 공주가 되는 이야기들만 즐겨 읽었다. <신데렐라>, <백설공주>, <피터팬> 등의 이야기가 전부였다. 물론 <콩쥐팥쥐>, <흥부와 놀부>, <홍길동전> 같은 작품도 있지만, 무엇인가 세상을 위해서 큰일을 해야 될 것 같고, 세상에는 온통 나쁜 사람 아니면 착한 사람만 있을 것 같던 그런 동화책이 우리의 삶에 어떤 영향을 주었을까?
우리에게는 우리의 독특한 역사가 있다. 그런 까닭에 우리에게는 서양과는 다른 동화가 필요하다. 허황되게 왕자나 공주만을 따라 잡을 게 아니다. <강아지똥>과 같이 우리 겨레의 끈질긴 생명의식을 이야기 속에 담아내야 한다.
어느 날이었던가, 권 선생은 처마 밑에 버려진 강아지똥이 비를 맞아 흐물흐물 그 덩어리가 녹아내리며 땅 속으로 스며드는 모습을 보았다. 그런데 강아지똥이 녹아내리는 그 옆에서 민들레꽃이 피어나고 있었다.
'저렇게 보잘 것 없고, 천대만 받는 저런 것도 자신의 온 몸을 녹여 한 생명을 꽃피우는구나.'
권 선생은 그 모습을 보고 '아, 저거다'하면서 눈물을 흘리며 며칠 밤을 새워가며 이 강아지똥 이야기를 썼다고 한다.
<강아지똥>은 '세상에서 가장 버림받은 존재'에 대한 관심이다
일련의 권정생 선생의 작품을 두고 생전의 이오덕 선생은, "동화라면 으레 천사 같은 아이들이 나오고, 그 아이들이 꿈꾸는 무지개 같은 세계가 펼쳐지는 것으로만 알고 있는 이들에게 권정생 씨의 작품은 확실히 하나의 이변이며 충격일 것 같다"고 평하셨다.
"특히 권정생 선생의 동화엔 천사는 물론이고, 옷, 밥걱정 없이 학교에 다니는 행복한 아이들도 안 나온다. 아이들보다 사람들에게 학대받는 짐승이나 곤충이 많이 나오는데, 그것도 사람들이 가장 싫어하는 모기라든가, 지렁이, 구렁이 파리 같은 것이다. 그리고 또, 흉악한 냄새가 나는 시궁창에 버려진 똘배, 사람들에게 뜯어 먹히는 물고기, 강아지의 똥, 사냥당하는 산짐승…. 이런 미움 받고, 버림당하고, 짓밟히고, 희생되는 목숨들의 얘기가 대부분이다."
"권정생 선생의 작품은 확실히 하나의 이변"이라고도 말했다. "어쩌면 넥타이 매고 점잔을 빼며 살아가는 세상의 신사 숙녀들이 보면 침이라도 퉤퉤 뱉고 지나가 버릴 듯한 가련한 목숨들의 세계를 찾아가 그들을 부둥켜안고 뜨거운 눈물과 무한한 사랑을 쏟는 것이 작가의 세계다"며 이 작가가 보여주는 부활은 소박한 현세 부정의 속임수 같은 그것이 아니고, 삶을 긍정하는 보다 폭 넓고 깊은 신앙에서 오는 것 같다고 말씀하셨다. 그게 권정생 선생의 작품세계였다.
권정생 선생은 1937년 일본 도쿄의 빈민가에서 태어났다. 광복 직후인 1946년 외가가 있는 경상북도 청송으로 귀국했지만, 가난한 탓에 가족들과 헤어져 어렸을 때부터 나무장수, 고구마장수, 담배장수와 가게 점원 등을 했다. 전신 결핵에 걸려 대구, 김천, 상주, 문경 등지를 떠돌다가 30살부터 경북 안동시 일직면 조탑동의 교회 문간방에서 종지기를 하며 혼자 살았다. 1984년 교회 뒤 빌뱅이 언덕 밑에 자그마한 흙집을 짓고 살며 작품을 써왔다.
선생의 삶 또한 작품 속 주인공들과 다르지 않았다
동화작가 권정생 선생은 '가난'의 상징이다. 권정생 선생은 한국 아동 문학사상 최고의 걸작으로 평가받고 있는 <강아지똥>과 <몽실언니>의 작가로 생전에 1000여 편의 동화를 남겼다. 그렇지만 그 자신이 평생 동안 소유해 본 것은 다섯 평짜리 오두막 한 채가 전부였다. 그런 그가 10억원의 유산과 지속적으로 나오는 1000여만원대의 인세 전부를 북한 어린이에게 남겼다. 그로서 그는 마치 진정한 '가난'이란 이런 것이라는 듯 스스로 자신의 '가난'을 완성 짓고 떠났다.
선생의 작품은 기독교적 믿음을 바탕을 두고 자연과 생명, 어린이, 이웃, 북녘 형제에 대한 사랑을 따뜻하게 그렸다. 깜둥바가지, 벙어리, 바보, 거지, 장애인, 외로운 노인, 시궁창에 떨어져 썩어가는 똘배, 강아지 똥 등 그가 그려낸 주인공들은 다들 세상의 가장 낮은 곳에 있는 약한 존재들이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을 죽여 남을 살려냄으로써 결국 영원히 사는 삶을 살아간다. 선생의 삶 또한 작품 속 주인공들과 다르지 않았다.
저서로는 동화 <몽실언니>·<강아지 똥>·<사과나무밭 달님>·<하느님의 눈물>·<점득이네> <밥데기 죽데기>·<하느님이 우리 옆집에 살고 있네요>·<한티재 하늘>·<도토리 예배당 종지기 아저씨> 등과 시집 <어머니 사시는 그 나라에는>, 수필집 <오물덩이처럼 뒹굴면서> <우리들의 하느님> 등이 있다.
사족으로 덧붙이면, <강아지똥>을 말할 때 정승각 선생을 빼놓을 수 없다. <강아지똥>이 정승각 선생을 만나서 비로소 지금의 빛깔을 얻었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 어린이 그림책에서 삽화가는 그 존재감이 드러나지 않았다. 그러던 것이 강아지똥을 그린 정승각 선생에 의해 우리 어린이 그림책에도 제 색깔을 낼 수 있게 되었고, 이야기와 동떨어진 삽화가 아닌 매 장면 하나 하나가 그대로 하나의 그림이 될 수 있는 그림책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강아지똥>과 더불어 삽화가 정승각 선생도 새롭게 조명해야 할 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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