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량산 가는 길은 여전히 멀고 구불구불하다
시원하고 서늘한 산으로 알려진 청량산 산행이 9월21일로 잡혔다. 그동안 청량산 아래 있는 청량사는 두어 번 가보았지만 청량산에는 한 번도 오르지 못했다. 우리 회원들을 실은 차는 아침 7시에 출발해 단양휴게소에서 잠시 쉰다. 단양휴게소는 중앙고속도로에서 조금 벗어나 산자락에 있기 때문에 주변에 대한 조망이 남다르다.
휴게소에는 예천과 안동 경계를 이루는 학가산으로 떠나는 관광버스가 한 대 정차해 있다. 우리 일행 중 농담을 좋아하는 회원이 청량산 대신 학가산으로 갈 사람은 바꿔 타라고 해서 좌중을 한 번 웃긴다. 이곳 휴게소에서 아침 식사를 못한 분들이 잠시 요기를 한다. 관광안내소에 들러 봉화군에서 발행한 축제 팸플릿을 하나 받는다.
그곳에 보니 9월27일부터 30일까지 4일간 제27회 '청량문화제'가 열리고 제12회 '봉화 송이축제'가 함께 열린다. 이들 두 행사가 동시에 열리기는 하나 최근 무게 중심이 송이축제로 넘어간 것 같다. 송이축제에 대한 소개가 더 많기 때문이다. 봉화는 최근에 군의 브랜드 슬로건을 파인토피아(Pinetopia)로 정한 바 있다. 파인토피아라면 소나무 천국 정도로 이해할 수 있겠다. 송이가 소나무에서 나는 버섯이어서 그런 슬로건을 만든 것 같다.
차는 다시 고속도로를 타다 영주 나들목으로 나온다. 잠시 후 영주 시내를 지나 36번 국도를 타고 봉화 방향으로 달린다. 중간에 잠깐 길을 잘못 들어 거촌리 쌍벽당 앞을 지난다. 문화유산 답사라면 꼭 한번 보아야 할 곳이지만 오늘은 산행이 먼저이기 때문에 이내 봉성 쪽으로 나간다. 봉성은 옛날 봉화현청이 있던 곳이어서 향교도 있고 길가에 공덕비도 여럿 보인다. 차는 봉성에서 918번 도로를 만나 명호면 소재지로 향한다. 918번 도로는 포장이 되어있지만 여전히 구불구불한 옛길이다.
명호면 도천리에 이르러 35번 국도와 낙동강을 만난다. 낙동강은 이곳 도천리에서부터 청량산 도립공원을 끼고 남쪽으로 흘러간다. 이 지역의 낙동강은 협곡 사이를 지나가기 때문에 비교적 물살이 세고 주변 경치가 아름다워 래프팅 장소로 유명하다. 어제 밤사이 비가 내려 물은 좀 탁한 편이다. 도천리에서 하류로 10㎞쯤 내려가면 북곡리 청량교에 이르고 이 다리를 건너면 청량산 도립공원 지역으로 들어가게 된다. 버스는 청량사 일주문 앞에 우리를 내려놓는다.
산 속에서 우연히 시를 읽는 재미
우리 일행은 차에서 내려 오늘의 산행 출발지인 입석으로 걸어 올라간다. 입석으로 가면서 보니 길 좌우로 높은 봉우리가 흘립해 서 있다. 오른쪽 높은 봉우리 위에는 산성이 보이는데 청량산 남쪽의 정상인 축융봉(845.2m)까지 이어진다고 한다. 길 오른쪽으로는 작은 시내가 있고 맑은 물이 소리를 내며 흘러간다. 길가에는 '청량문화제'를 준비하느라 봉화지역 시인들의 시를 걸어 놓았다.
그 중 눈에 띄는 것이 전선구 시인의 <청량사 가는 길>이다. 청량사의 늦가을 풍경에 화자의 감상을 실었다. 아직은 조금 때가 이른 감이 있다. 그리고 시어의 선택에서도 아쉬움이 느껴진다. 1연의 '썩혀서'를 '떨구어'로 바꾸면 어떨까? 2연 '쇠북소리가'에서 '가'를, '여울져서'에서 '서'를 빼고 '때'를 '제'로 바꾸면 어감이 훨씬 부드러울 텐데 아쉽다. 3연의 '채비한다'보다는 '재촉한다'가 나을 것 같다. 마지막 두 연에 나오는 까치밥과 홍시의 대비는 정말 훌륭하다.
낙엽이 제 살 썩혀서 보시하는 청량사 길. 해 저녁 쇠북소리가 여울져서 퍼져날 때 끝까지 남은 잎새는 만행 길을 채비한다. 늦가을이 산머리에 장승처럼 다가오면 금탑봉 처마 끝에는 까치밥이 익어 간다. 절집은 산새들 둥지 부처 말씀 홍시일세.
이들 시제를 읽으면서 약 5분쯤 오르면 오늘의 산행 출발지인 입석에 이르게 된다. 입석은 말 그대로 선돌이다. 선돌은 대개 상하로 긴데 이것은 좌우로 길다. 그것은 입석이 인위적으로 세운 돌이 아닌 자연석이기 때문이다. 입석은 예부터 명호면과 재산면을 나누는 이정표 구실을 했다. 우리는 입석에서 북서쪽으로 방향을 틀어 응진전과 금탑봉으로 향한다.
절보다 산을 찾는 산행인데도 문화유산과 이야기 거리가 많다
입석에서 응진전까지는 0.9㎞로 가파른 오르막이다. 15분쯤 오르니 응진전과 금탑봉이 한 눈에 들어오는 전망 좋은 지점이 나온다. 응진전은 청량사의 부속암자로 금탑봉 아래 좁은 공간에 자리 잡고 있다. 이곳에서 다시 5분을 걸으니 응진전이다. 응진전은 석가삼존불과 16나한상을 모시고 있는 맞배지붕의 기와집이다. 건물의 구조도 단조롭고 단청도 없는 아주 소박한 건물이다.
응진전을 지나면서부터는 본격적인 산행이다. 산을 조금 더 오르니 고운 최치원(857-?)과 관련된 유적인 치원암, 총명수, 풍혈대가 나온다. 이중에서 현장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이 총명수이다. 최치원이 청량산에 들어와 이 물을 마시고 총명해졌다는 총명수가 나오는 굴이 보인다. 이곳을 돌아드니 청량사가 한 눈에 들어오는 전망 좋은 지점에 이른다.
이곳에서 내려다 보니 가장 높은 지점에 유리보전이 있고, 그 옆으로 선방인 심검당이 있다. 유리보전 아래로는 만든 지 오래되어 보이지 않는 5층석탑이 있다. 석탑 오른쪽으로 난 계단을 따라 다시 한 단 아래에 2층의 종루가 있다. 종루 왼쪽으로 나무 계단이 보이고 계단 오른쪽으로 안심당이 보인다. 안심당은 찻집으로 절을 찾는 사람들이 잠시 쉬어가는 곳이다. 그리고 심검당 뒤 가장 높은 곳에 산신각이 보인다.
이곳에서부터 다시 3분 정도 올랐을까? 김생굴이 나온다. 김생(711-791)은 이 굴에서 10년간 글씨를 연마해서 자신만의 독특한 필법을 완성했다고 한다. 김생필법은 그때까지 전해오던 왕희지체와 구양순체를 토대로 개발한 우리 식 서체이다. 그런 의미에서 김생은 우리나라 최초의 타이포그래피(서체) 개발자이다.
그는 예서, 행서, 초서에 능하여 해동(海東) 서성(書聖)이라 불렸다. 그의 필적은 태자사(안동시 도산면 태자리에 위치)에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옮겨진 <낭공대사백월서운탑비>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이 탑비는 통일신라시대 활동했던 낭공대사 행적(行寂)을 기리는 비석으로 최언위가 짓고 글씨는 김생의 행서를 집자(集字)해서 만들었다고 한다.
김생굴 옆으로는 김생폭포가 있는데 장마철에나 물줄기를 볼 수 있을 것 같다. 김생폭포라는 이름도 후대에 만들어 붙인 것 같다. 김생의 흔적은 충주시 금가면 유송리 김생사지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이곳 김생사지에서 김생은 만년을 보내며 후학들을 가르쳤다고 한다. 김생사지는 2005년 발굴을 통해 사찰의 규모와 위치 등 대강의 모습이 확인되었고, 이곳에는 현재 김생의 집자비가 세워져 있다.
경일봉에서 자소봉까지는 진짜 등산이다
경일봉은 김생굴 뒤에 있는 해발 750m 봉우리다. 밋밋한 육산이어서 특별한 멋은 없다. 김생굴에서 경일봉까지는 30분 정도 걸려야 올라갈 수 있다. 중간에 청량사 북쪽 봉우리인 자소봉과 탁필봉 그리고 연적봉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지점이 있다. 자소봉은 일명 보살봉으로 큰 덕이 있어 보인다. 왼쪽의 탁필봉은 길고 뾰족해서 붓모양이다. 그 옆의 연적봉은 물기가 많아서인지 봉우리 정상에 소나무가 자라고 있다. 이들 세 개의 연봉을 보면서 오른쪽으로 15분을 오르면 경일봉에 닿을 수 있다.
경일봉은 또한 청량사에서 보면 동쪽에 자리 잡고 있는 봉우리이다. 특히 춘분(春分)과 추분(秋分), 낮과 밤의 길이가 같을 때 해가 경일봉 위로 뜬다고 한다. 그래서 주세붕이 해를 맞이한다(擎日)는 뜻으로 경일봉이라 이름 지었다는 것이다. 주세붕이 지은 <무릉잡고>에 보면 '회암 주자의 운을 차해서 지은 경일봉'이라는 시가 나온다.
경일봉 擎日峯次晦庵韻 김생굴을 방문하려고 하다가 欲訪金生窟먼저 경일 묏부리에 올랐다. 先登擎日岑높이 솟은 하늘아래 높은 산 우뚝하여 聳霄巉骨卓솟아오르는 해를 맞는 정성 깊기도 하다. 賓旭積誠深피리 소리가 삼천 하늘로 올라가고 一笛三天上외로운 젓대소리 고향생각 나게 하는구나. 孤筇萬里心다음 해에도 나막신에 의지해서 他年阮孚屐다시 찾을 수 있을지 헤아려볼 뿐이다. 準擬再來尋
경일봉을 지나 841m 봉우리까지는 육산이 이어진다. 그리고 이곳에서부터는 산행의 방향이 서쪽으로 이어진다. 그래서인지 서쪽으로 자소봉이 비교적 가까이 보이고, 청량사 서쪽에 있는 연화봉의 모습도 잘 보인다. 자소봉에는 철제 사다리가 설치되어 있고 사람들이 그 사다리를 따라 오르고 있다. 그리고 남쪽으로 눈을 돌리니 저 멀리 청량산성의 성곽이 선명하게 들어온다.
이제 자소봉까지는 그리 멀지 않았다. 그런데 자소봉에 가기 위해서는 큰 바위 봉우리를 넘어야 한다. 이 봉우리를 넘지 않고 왼쪽으로 우회하는 길도 있다. 그러나 나는 다소 무리가 가더라도 암봉을 넘어가기로 한다. 이 봉우리에는 줄도 매어있지 않아 두 손과 두 발에 의지해서 올라야 한다. 조금은 위험하다. 그러나 일종의 암벽 등반으로 스릴이 있다. 목에 건 카메라가 바위와 부딪치기도 한다. 내가 지금 사용하는 카메라가 7년 된 것인데 등산 때문에 곳곳에 상처가 나 있다. 한번은 렌츠 틀이 떨어져 수리를 한 적도 있다.
그러나 힘들여 암봉에 오르니 자소봉이 바로 눈앞에 펼쳐진다. 자소봉 쪽에서 올라 온 사람도 "자소봉이 이래 잘 보이네"라고 감탄을 한다. 자소봉 정상은 너무 가파르기 때문에 오를 수 없어서인지 자소봉 옆 넓은 공간에 사람들로 붐빈다. 나는 암봉을 다시 내려간다. 내려가는 것도 만만치 않다. 사실 암봉은 올라갈 때 보다 내려갈 때 더 위험하다. 아래로 내려가니 경일봉 쪽에서 우회해 오는 길, 탁필봉으로 가는 길, 자소봉으로 오르는 길이 만나는 삼거리다. 이곳에서 나는 자소봉에 오르기 위해 철제 사다리 쪽으로 간다.
덧붙이는 글 | 9월21일 충주의 산행담소 회원들과 봉화군에 있는 청량산과 청량사를 다녀왔다. 산행이 주목적이지만 역사와 문화에 대한 공부도 부가적인 목적이었다. 청량산에는 옛 선인들의 자취가 많이 남아있고, 청량사도 볼거리가 많은 편이다. 청량산과 청량사를 보면서 느낀 감회와 이야기를 3회 정도 연재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