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벼가 익어가는 계절. 그걸 느껴보는 건 어떨까? 넓은 들판을 마냥 걷기는 지루할 것 같고, 올망졸망한 논둑길이 있으면 좋을 텐데. 가을 최고의 선물인 황금들판을 걸어가 보자.
여수를 들어오는 마지막 재인 둔덕재. 요즘 새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시골 풍경과 어울린 아파트 풍경도 그리 싫지만은 않다. 둔덕재에서 바라보면 건너편 전남대학교 여수캠퍼스가 보이고, 그 사이로 작은 개울을 따라 양쪽으로 날개를 펴든 논들이 올망졸망 산으로 올라가고 있다.
전남대학교 둔덕문 옆으로 흙길이 있다. 길을 따라 내려가면 잡풀로 우거져서 길이 쉽게 보이지 않는다. 풀숲을 헤치고 개울을 따라 찾아들면 시멘트 포장길의 끝과 만난다. 마지막 작은 다리를 만들고서 더 이상 길은 이어지지 않는다. 아마 이 길이 계속 이어졌다면 도시로 향하겠지만 길은 도시를 거부하듯 막다른 길이 되었다.
개울물은 흘러흘러 연등천이 되어 여수 시내를 지나 바다로 나간다. 하지만 길은 더 이상 흐르지 않는다. 다른 선택이 없이 올라가게만 만들어진 길. 개울을 따라 포장된 길은 경운기 한 대 다닐 정도의 길이다. 자연적으로 형성된 길을 포장만 해 놓았는지 반듯한 곳이라곤 없다.
가을로 깊숙이 들어선 논들은 벼들이 추수를 기다리고 있는 듯 말없이 고개를 숙이고 있다. 개울에는 고마리꽃이 가득 피었다. 구불거리는 길을 따라가니 빨간 지붕 모정이 어서 오라는 듯 손짓을 한다. 모정에서는 삼거리를 만든다. 개울을 따라 올라가는 길과 둔덕재에서 내려오는 길로 갈린다.
모정에 올라가 잠시 쉰다. 황금 들판은 풍요롭기만 하다. 정비되지 않은 논들은 더욱 정감이 넘치고, 계단을 만들며 올라가는 논들은 아름다운 선들을 만들어 내고 있다. 화가가 아무리 아름다운 선을 그린다고 해도 오랜 세월 동안 자연스럽게 그려진 논두렁의 아름다움을 표현할 수 없을 것 같다.
인근 아파트에서 시민들이 산책을 나온다. 꼬마 손을 잡고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가족, 한가로이 주변 풍경을 즐기는 사람들 그리고 황금빛으로 물들어 가는 논. 모두가 아름다운 풍경이다. 도시와 농촌이 공존하는 공간. 애들도 즐겁고, 어른도 즐겁다. 깊어가는 가을. 먼데 나가기 힘들면 가까운 들판을 찾아 가을을 느껴보는 것도 좋겠다.
덧붙이는 글 | 여수 용수골 농로는 대략 2㎞정도 되며, 둔덕재에서 라온아파트 뒤로 내려서는 길과 전남대학교 둔던문에서 올라가는 길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