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 잡아먹고 오리발 내민다'라는 속담은 시치미를 뗀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예전에 닭은 달걀을 낳아주는 귀한 가축이었다. 또한 귀한 손님이 오면 씨암탉을 잡아 대접하는 것이 우리네 아름다운 풍속이었다. 이렇게 귀한 닭을 몰래 잡아먹은 어느 생원이 전전긍긍하다가 오리발을 내밀었으니 그 뻔뻔함이야 일러 무삼하겠는가.
그런데 ‘오리 잡아먹고 닭발 내 민다’라는 속담은 결코 있을 수 없다. 닭발은 그래도 먹을 수는 있지만 오리 발은 먹을 수도 없는, 천하에 쓸모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 조상들은 귀한 가축인 닭의 모든 것을 먹었다. 닭 머리를 제외한 모든 닭의 구성 성분이 훌륭한 단백질 공급원이었던 것이다.
닭발을 먹는다? 만일 푸른 눈의 이방인이 닭발을 먹는 우리의 모습을 본다면 어떤 표정을 지을 것인가? 그네들의 생각과 문화로는 도저히 납득이 되지 않을 것이다. 생긴 모습도 흉측하려니와 도저히 맛이 있을 것 같지 않은 닭발을 먹다니? 그러나 우리 민족은 닭발을 잘도 먹었다. 그것도 아주 맛있게 오도독 씹어가면서 먹었다.
늦은 밤, 10시. 부산 동래역 근처. 술집과 상점들이 몰려 있는 곳인지라 늦은 시간에도 사람들의 행렬이 끊이지 않는다. 사람들은 모두들 긴 팔을 입고 있다. 늦더위의 마지막 기승이 물러가고 가을이 어느새 다가와 찬바람이 몰아치기 때문이다.
동래역을 등지고 자리 잡은 초라한 간이 노점. 50대 후반으로 보이는 아줌마 한 분이 정성스레 손님들을 맞이한다. 닭발이며 돼지껍데기, 선지국, 파전 등속을 안주로 해서 소주를 파는 곳이다. 손님들은 주로 40대·50대 중 후반의 서민들. 남루한 차림의 일용직 노동자들이 싼 값에 소주 한 잔 걸치기도 하고, 집으로 가는 월급쟁이들이 간단하게 한 잔을 외치며 소주잔을 기울이기도 한다.
닭발과 소주를 주문하니 닭발 한 접시에 이천원, 소주는 이천오백원이란다. 허허, 참으로 싸기도 싸구나. 주문을 받은 아줌마는 가스 불에 닭발을 살짝 데운다. 곧 이어, 매콤하면서도 기름기가 도는 닭발 접시가 소주 한 병과 세트로 나온다. 그야 말로 달랑 소주 한 병과 닭발 한 접시다.
닭발은 척 보기에도 무척 메워 보인다. 고춧가루와 땡초가 듬쁙 들어가서 붉다 못해 시커먼 색을 띠고 있다. 한 입 살짝 배워 문다. 혀 끝에 감도는 매운 맛에 입 안이 얼얼해진다. 그 매운 맛을 털기 위해 급히 소주를 한 잔 털어 넣고 입 안을 오물거린다.
길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을 쳐다보며 늦가을에 먹는 닭발과 소주는 또 하나의 별미였다. 참으로 오랜만에 맛보는 닭발의 매콤함. 계속 먹으니 입 안은 불이 난 것처럼 홧홧거린다. 매운 맛의 농도가 점점 쌓여서 이제는 물이 없으면 혀를 달랠 길이 없다. 결국에는 아줌마에게 물을 주문해서 물과 함께 닭발을 먹어야 한다.
솔직히 닭발은 그리 맛이 있진 않다. 살덩이가 아예 없으니 연한 물렁뼈와 껍데기를 씹는 맛과 매운 양념 맛으로 먹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닭발에는 민초의 향기가 숨어 있다. 가정을 지키기 위해 힘든 노동을 감내하는 아빠들의 애환이 담겨 있다. 나는 그 향기와 애환을 먹는 것이다.
종부세도 뭐다 해서 말이 많은 지금. 대도시에 사는 고관대작들은 21년 산 양주에 고급 안주를 먹으며 자신 소유의 부동산세를 걱정한다. 그러나 대도시에 사는 서민들은 닭발과 돼지껍데기에 소주를 마시며 내일의 일거리를 걱정한다. 8대 2의 사회. 상위 20퍼센트가 80퍼센트의 부를 소유한 나라, 대한민국. 이제는 9대 1, 9.5대 0.5의 사회로 진입하고 있다고 혹자가 말했던가.
을씨년스럽다. 빈부격차가 날로 격화되는 요즘의 세태가 무척 신산하다. 그러나 오늘도 민초들은 닭발에 소주를 먹으며 건강한 노동을 준비한다. 힘든 오늘이지만 내일은 밝을 것이라는 희망을 가진 채 그들은 따뜻한 가정으로 돌아갈 것이다.
다시 닭발을 먹는다. 닭발에 스민 민초의 향기를 오래도록 음미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