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정청래입니다. 여기는 중국 베이징입니다. 오늘은 일요일이지만 평일과 같이 정상적인 근무를 합니다. 어제 토요일도 관공서의 공무원들도 학교의 교수와 학생들도 정상적인 업무를 했습니다. 13억이 넘는 인구가 토요일 일요일을 국가의 명령대로 일사불란하게 움직였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감히 상상할 수도 없는 일입니다. 인격의 주체인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알아서 하면 그만이지 국가에서 휴일을 당기고 밀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중국의 국가(공산당)는 왜 중국의 인민들에게 토요일 일요일 정상적인 업무를 하라는 지침을 내렸을까요? 그것은 바로 중국(모택동의 중화인민공화국)의 건국일인 10월 1일을 기념하는 중국 최대의 명절 국경절 휴일 때문에 그렇습니다. 원래는 10월 1일부터 3일간(월, 화, 수) 휴일인데 토요일 일요일에 앞당겨 대체근무를 했기 때문에 목요일, 금요일 토요일, 일요일을 합쳐 1주일간 휴일을 즐기라는 것입니다.
중국 공산당의 취지가 그리 잘 못 된 것은 아니지만 중국의 국민들은 별 군소리 없이 그 명령에 순응합니다. 그런데 만약 이런 명령을 한국의 청와대가 한국의 국민들을 향해 내렸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공무원들이야 투덜대든 쌍수를 들어 반기든 하겠지만 공무원 이외의 작업장은 과연 국가의 명령과 상관없이 콧방귀를 뀔 것입니다.(다음구절부터 평어체로 전환)
그러면 중국은 공산당 말 한마디에 13억도 넘는 국민들이 군대처럼 착착 움직일까? 그 비밀의 열쇠는 바로 <중국은 공산당 일당 독재 국가>라는 점이다. 중국의 정권에 대한 전권이 공산당에 있다. 중국을 지배하고 있는 집단 세력은 바로 중국 공산당이다. 중국의 전 분야를 철저히 지배하고 있는 공산당은 어느 곳에서나 항상 "판단과 결정"을 하는 지배 집단이다. 공산당에서 결정된 사항은 행정부의 체계를 타고 집행이 된다.
내가 속해있는 인민대학교의 경우도 총장(여기서는 교장)이 있지만 실질적인 권한은 공산당에서 파견된 인민대학교 당서기가 갖고 있다. 중국은 행정 조직의 장이 있고 그 위에 항상 당의 조직의 장인 당서기가 있다. 이것은 조직 단위별로도 마찬가지 이다. 우리나라로 치면 대학 이사장의 역할을 당서기가 하고 있다고 보면 무방할 것이다. 굳이 따지자면 대학의 실질적 오너는 당서기가 담당하고 있다.
중국은 이처럼 공산당이 정부이고 공산당이 국가이다. 따라서 당내에서 의견조율만하면 그것이 곧 국가의 시책이 된다. 1당이기에 가능한 것이다. 중국은 국회의원도 지방자치단체장도 선거를 할 필요가 없다. 당에서 하향식으로 지명하고 임명하면 되는 것이다. 칭따오시 당서기는 김아무개, 시장은 이아무개 이렇게 정하고 임명해서 파견하면 된다.
그러나 한국은 사정이 다르다. 우리는 헌법에서 보장한 보통 평등 직접 비밀선거를 통해 정치권력이 형성된다. 대한민국 헌법 제1조 1항과 2항에서 대한민국의 정치권력 생성의 주체를 명확히 하고 있다. 헌법 1조 2항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따라서 대한민국은 정치권력을 잡고 싶으면 국민투표라는 형태로 이끌어 내야 한다. 총칼로 쿠데타를 하지 않은 바에야 다른 방법이 없다.
국민들의 선택을 받기 위해 후보를 내고 선거에서 심판을 받기 위해 정책을 개발하고 공약을 발표하는 등의 업무를 하는 집단과 세력이 정당이라고 보면 될 것이다. 정당은 흔히 정치권력의 획득을 목표로 정견을 같이하는 사람들이 공통된 정책에 입각하여 일반적 이익을 증진시키고자 결합한 정치결사체라고 설명하면 틀리지 않을 것이다. 당은 정권의 획득을 위해 존재한다. 정당은 정치권력의 획득이라는 목표를 세우는 것이 존재이유이고 이것의 실현을 위해 실제로 뛰어야 한다.
우리나라의 정당 정치사를 보면 대개의 경우 양당제를 선택해 시행해 오고 있다. 양당제의 폐해가 있다면 다당제를 한 때 시행해 보기도 하지만 큰 효율성이 없었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은 대통령을 배출해 정권을 획득한 여당<與黨, Ruling(government) party>과 대통령을 배출하지 못한 정권을 획득할 목표를 갖고 있는 야당<野黨, opposition party>이 존재한다. 다 아시는 것처럼 한나라당이 여당이고 민주당이 야당이다.
말 그대로 여당은 정부와 같은 편이다. 대한민국은 대통령제 국가이다. 대통령이 국가를 대표하는 국가의 원수(주석)이고 행정부의 수반이다. 대통령이 행정의 업무를 원활하게 하기 위해 필요한 법이 있다면 입법부인 여당(같은 편의 당)이 당연히 그것을 뒷받침하는 것이다. 입법권은 법률안 제출권과 의결권으로 나뉘는데 행정부는 의결권은 없어도 제출권은 가지고 있다. 행정부는 자신들이 필요한 법률안을 제출해 놓고 국회에 의결을 강요하기도 한다.
대통령은 자신이 선출되면서 행정부의 수장이 되고 자신이 속한 당의 추천으로 입법부 수장인 국회의장의 실질적 임명권을 행사한다. 또한 대통령은 국회의 동의를 얻기는 하지만 사법부의 수장인 대법원장을 임명한다. 이처럼 대통령은 실질적으로 입법 사법 행정의 3권을 장악하고 국정을 이끌어 가는 유일무이의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게 된다.
더욱이 지금처럼 한나라당이 국회 절대의석(과반을 넘어 실질적으로 개헌 가능선인 200석)을 보유한 상태에서 대통령의 배는 먹지 않아도 터지도록 부를 것이다. 사뭇 천상천하 유아독존의 정을 느끼기에 충분한 상황이다. 여기에(입법 사법 행정) 권력의 제 4부라 칭해지는 언론권력까지 이제 송두리째 장악해 가고 있는 상황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무엇인들 못할쏘냐?
그러나 이것이 대통령과 여당에게는 무한질주의 쾌감을 느낄 수 있을지언정 그것이 곧 국가의 발전과 국민의 행복과 직결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 불행이라면 불행이다. 독일의 철학자 헤겔은 변증법(辨證法)을 통해 모든 사물의 전개(展開)는 정(正) ·반(反) ·합(合)의 3단계로 진화한다고 하지 않았던가?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대통령의 막강한 권력으로 발전하는 것이 능사라면 아예 중국처럼 이명박 일당독재를 하면 차라리 뱃속이라도 편할 것이다.
헤겔은 첫 번째 사물의 합법칙성은 '모든 사물은 정(正)이 있으면 반(反)이 있고 이것이 합(合)의 과정을 통해 진화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것은 불변의 진리로 입증되었다고 주장한다면 나의 무지의 소치인가? 두 번째 합법칙성은 '부정의 부정'이다. 사물의 현상과 본질을 꿰뚫어 보며 수동적이고 피동적인 고정관념을 깨는 것은 창조와 발전의 전제 조건이지 않을까?
헤겔의 세 번째 법칙인 양질전환은 바로 현정국의 촛불집회와 그 명제가 맞닿아 있다. 현 정부의 시책이 잘 못되었음을 수백만의 국민들이 반대하며 촛불을 들었다. 생각해 보라. 시청광장에 100명이 1주일 촛불 시위를 한 것과 수백만의 국민이 수백일 동안 촛불을 들은 것이 과연 얼마나 큰 차이를 내포하고 있는지? 문제는 그 수많은 국민들(양)의 요구가 정부의 정책(질)로 전환되지 않은 것이 가장 큰 문제이고 불행이다.
대한민국은 불과 몇 개월 동안 정(正)이 반(反)이 되고 반(反)이 정(正)이 되었다. 부정(否定)의 부정(否定) 과정도 거쳤다. 그리고 수많은 양이 쏟아져 나왔다. 그러나 질로 전환되지 않았다. 대한민국은 법치국의 국가이고 의회주의 국가이다. 이럴 때 폭력혁명을 하자고 주장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합법적 공간에서의 대의 이러한 정부정책에 반대하는 국민들의 요구를 받아 안을 대의 민주주의의 본연의 임무를 충실하게 할 세력은 누구인가? 바로 야당이다.
용어의 의미는 존재를 규정한다. 야당은 ‘재야정당(在野政黨)’의 준말로 그야말로 여당(與黨)에 대비되는 들판에 있는 정당이다. 영어로 야당<Opposition Party>반대하는 정당이다. <반대>라는 말을 <부정적 이미지>로 치환하지 말라. 일제시절 일본의 식민통치에 <찬성>하면 그것이 매국이고 <부정적 이미지>의 극치이다. 일제 반대해 독립운동을 했던 것이 얼마나 의로운 반대인가? <반대>가 정의요 선의 경우라면 치열하게 반대하는 것이 마땅하지 않겠는가? 나는 전두환의 군가독재에 반대했고 2년 감옥살이까지 했지만 그것이 티끌만큼도 부끄럽지 않다. 반대가 애국이고 국리민복이라면 반대하고 또 반대하라.
지금 내가 속해 있는 민주당은 대단히 야속하게도 위치선정이 잘 못 되었다. 정부 여당이 실책을 내놓으면 반대본능이 있어야 하고 왜 이렇게 민감하고 중요한 정책을 국민들이 반대하지 않는가? 고민하고 반대를 확산하고 반대를 조직화하는 것이 야당의 생존의 법칙이다. 그런데 민주당은 이것이 어찌 된 일인가? 반대의 물결에 바짓가랭이 물 젖는 걱정만 하고 있지 않았는가?
미국산 쇠고기, 경부대운하, 건강보험 민영화, 방송탄압 등등 정부 여당의 야심찬 음모를 국민들이 그렇게 기를 쓰고 반대하면 민주당도 불같이 일어나 몸을 던져 반대해야 하지 않는가? 그런데 그것을 조직화하기는커녕 오히려 그 반대의 불길에 찬물을 끼얹고 있다. 그 대표적 사례가 궁지에 몰린 정부 여당에 삶의 활로를 뚫어준 아무것도 얻은 것이 없는 국회개원 협상이었고 그 클라이맥스가 영수회담이었다.
이제 정부 여당은 두려움이 없어졌다. 영수회담 후 얼마나 해피하면 청와대 대변인이 "이 보다 더 좋을 수는 없다."라고 논평을 했겠는가? 한국 야당사에 "이 보다 더 수치스런 일이 있었던가?" 통탄 할 일이다. 말을 때려야 할 채찍을 말에게 맡기면 그 채찍이 고스란히 누구의 등짝을 때리겠는가? 청와대 대변인의 독약 바른 논평을 듣고도 밥이 넘어 가는가?
국민의 신뢰를 상실한 정권에게는 반성과 성찰의 기회를 주는 것이 진정한 야당의 몫이다. 반대가 약이고 협력이 독일 때가 있다. 정부 여당이든 야당이든 마찬가지이다. 지금이 그 시기이다. 최문순의원의 지적처럼 언제 민주당이 반대해서 정부 여당이 위기가 왔는가? 민주당이 반대할 의지와 실천과 힘이 있었는가? 정부 여당이 싸질러 놓은 똥물을 왜 이제 와서 같이 뒤집어쓰려고 그다지도 열심인가?
민주당은 여당이 아니고 야당이다. 국정은 어차피 정부 여당이 이끌어 간다. 잘 하는 것은 그냥 발목만 안 잡으면 되고 잘 못된 것이 있으면 철저하게 반대하면 된다. 힘도 없고 국민 지지도 낮은데 야당의 주제를 벗어나 공연히 여당 흉내 내지 말라. 야당이 협력해서 경제가 잘 풀려도 그것은 여당의 공이 된다. 반대하는 것도 공부 열심히 해야 하고 용감해야 할 수 있는 영역이다. 야당은 헛발질 않고 제대로 된 반대만 열심히 해도 충분히 국가와 민족 앞에 떳떳이 그 몫을 다 하는 것이다.
민주당은 제대로 된 반대를 위해 열심히 공부하고 토론하고 현장에 나와서 국민의 목소리를 듣고 배우고 실천해야 한다. 민주당의 목표도 정권 장악이어야 하지 않겠는가? 청와대에 가서 골백번 밥 먹어도 이명박 대통령과 한나라당이 민주당 예뻐하지 않는다. 권력은 청와대에서 나오지 않는다. 국민들로부터 나온다.
야당은 정부 여당의 실책을 반대하고 그 반대 세력을 규합하는 것으로 승부를 걸어야 산다. 찬성이 최선의 정책일 때도 있지만 반대가 최선의 정책일 때도 있는 것이다. 찬성의 몫은 여당이 반대의 몫은 야당이 나눠 갖고 그것으로 다음 대선에서 결판을 내자. 제대로 된 정책을 추진하지 못한 책임은 여당이 잘 못된 정책을 제대로 반대하지 못한 책임은 야당이 지는 것이다.
대한민국은 중국처럼 일당독재 국가가 아니다. 전체 국민들의 휴일 날짜를 마음대로 조정하는 국가가 아니다. 야당인 민주당이 집권하고 싶으면 열심히 공부해서 정부의 잘못 된 정책을 핀셋으로 찍어내 반대하고 또 반대하라.
놀라지 말라. 반대를 두려워하지 말라. 반대를 악으로 규정하지 말라. 될 때까지 반대하라. 정치학 성경 1장 1절의 말씀이다.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처럼,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진흙에 더럽히지 않는 연꽃처럼, 무소의 뿔처럼 국민과 함께 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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