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인천에서 부산으로 나들이를 다녀왔습니다. 처음 부산에 닿던 날, 그제 일산에 있는 친정댁으로 가던 날, 어제 새벽 인천으로 오던 날, 어제 낮부터 저녁 늦게까지 서울 홍대 둘레를 부지런히 걸어서 밤 늦게 돌아오던 날, 그리고 오늘 아침, 무릎이 몹시 시립니다.

 

 서른네 해 제 삶에서, 책하고 가까이 살아온 세월은 열일곱 살부터이니 꼭 반토막입니다. 반토막 굴린 무릎이 제 몸과 마음한테 말을 거는구나 싶습니다. ‘이제 좀 작작 하시지?’ 또는 ‘앞으로도 네 마음을 파고드는 책을 오래오래 읽고 싶으면 가방을 좀 가볍게 하시지?’ 하고.

 

 인천에서 부산으로 가는 길, 부산에서 열 사진잔치에 쓸 사진꾸러미에다가 안내종이를 한 바리 쌌습니다. 24일까지 인천에서 사진잔치를 한 다음 곧바로 부산으로 옮겨서 해야 했기에, 손수 벽에서 사진을 떼어서 챙기고 손수 가방에 바리바리 넣었습니다. 그동안 제가 만든 책을 부산에 계신 벗님들한테 나누어 주려고 또 몇 꾸러미 꾸역꾸역 묶었습니다. 작은 노트북 하나와 반바지와 민소매옷 하나, 그리고 도시락 하나. 이렇게 짐을 챙기는데, 아기 돌보며 65∼66kg이 된 제 몸무게보다(아기 낳기 앞서는 71∼72kg) 조금 덜 나가는 50킬로그램이 훌쩍 넘는 책짐을 가방에 메고 어깨에 걸치고 두 손에 들고 했습니다. 그리고 가슴팍에는 사진기 두 대와 필름 스물다섯 통.

 

 집에서 전철역으로 걸어가는 길, 전철역에서 내려 영등포역에서 기차로 갈아타는 길, 무릎이 덜덜 떨리긴 떨립디다. 다섯 시간 반 남짓 달릴 무궁화 열차에서 읽을 책을 미처 못 챙기고 나온 터라, 영등포역에 마련되어 있는 ‘재고책 싸게 파는 곳’에서 책 대여섯 권 삽니다. 이 가운데 두 권은 부산에서 잠을 재워 줄 분한테 드리려고 고른 책. 무거운 역기에 파리 한 마리만 앉아도 후들후들 떨다가 떨어뜨린다는데, 파리 한 마리가 아니라 가볍지 않은 책을 또 얹었습니다.

 

 호두과자 작은 봉지 하나와 깡통맥주 하나를 사서 가방에 넣습니다. 한참 기다린 끝에 무궁화 열차에 오릅니다. 케이티엑스는 ‘돌아가는 기차’를 자꾸만 줄이거나 없애 주어 기차역에 닿았을 때 코앞에서 기차 놓치는 일은 줄어들게 하지만, 그만큼 오는 기차 기다리는 시간도 하염없이 늘여 놓습니다.

 

 짐칸에 올리고 다리 옆에 쌓고 한 책짐과 가방꾸러미. 이번 부산 나들이에는 큰 가방 하나와 가슴에 메는 가방 셋에다가 어깨에 걸치는 가방 하나, 손에 든 큰 책꾸러미 하나, 이렇게 들었습니다.

 

 이러구러 부산에 닿아 사람 만나고 볼일을 본 다음, 하루 나들이를 마친 뒤 저녁나절 잠자리에 들려고 언덕받이 집으로 찾아가는데, 계단 많고 가파른 언덕길에서 길을 헤매느라 무거운 짐을 잔뜩 이고 지고 든 채로 오르락내리락 하면서 기운이 다 빠지기도 합니다. 겨우 집을 찾아서 들어가니, 가방과 짐을 내려놓으니, 무릎이 무릎 같지 않습니다. 내 무릎이 맞나 싶더군요. 씻고 다리와 무릎과 허리 주무르고, 고맙게 차려 주신 밥을 맛나게 먹고 나서, 허전한 속을 달래려고 보리술 한두 병 사려고 장바구니 들고 나오는데, 빈몸에 장바구니 하나만 들었음에도 한 걸음 두 걸음 내딛는 다리가 아픕니다. 끙끙 낑낑 혼자서 아이고 네이고 읊으면서 언덕받이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부산 나들이를 마치면서 큼지막한 책꾸러미 둘은 택배로 맡겼는데, 맡기고 나서도 짐은 영 줄지 않습니다. 일산 친정댁에서 쉬는 옆지기한테도 구경시키고픈 책이 제법 있어서 그예 가방에 되는 대로 집어넣고 가다 보니까, 또 부산역에서 선물과자를 한 보따리 사들다 보니까, 처음 부산으로 길을 나서던 때하고 얼추 비슷한 무게, 그러나 들고 내려온 짐과 견주면 꼭 반 만한 짐이 되었는데, 반 만한 집이라 해도 딱 30kg이었고, 여러 날 부산에서 후들거리던 무릎은 반으로 줄어든 짐조차 벅차 합니다.

 

 낮 두 시에 부산에서 떠난 무궁화 열차가 영등포역에 닿으니 저녁 7시이고, 김밥 두 줄과 깡통맥주 한 잔을 마시며 숨을 돌리고 전철을 갈아타고 3호선 대화역에서 내리니 전철 탄 시간만으로도 두 시간. 버스를 기다려서 타고 걸어 들어가니 밤 10시가 넘고. 아기를 보기 앞서 머리 감고 몸 씻고 아기 안고 어르다가 장모님이 차려 준 밥상을 비우고 보리술 한 잔으로 속을 달래고 시계를 보니 어느덧 11시.

 

 새벽 2시가 되어서야 아기가 잠이 들어서 비로소 눈을 붙입니다만, 밤새 깨다 자다 되풀이하다가 새벽 6시에 부시시 일어나서 인천으로 갈 짐을 챙깁니다. 오전 9시에 인천 송림동성당에서 견진 공부를 해야 하기에. 일산으로 들고 온 짐에서 선물과자 보따리만 내려놓고 고스란히 짊어진 채로 시외버스를 타고 경인교대역에 내려서 인천지하철을 탄 다음 부평역에서 전철로 갈아타고 동인천역에 내려서 터덜터덜 집. 뒷간에서 볼일 보고 나오니 8시 58분. 부랴부랴 성경책 챙기고 성당에 달려가니 9시 10분. 꾸벅꾸벅 졸고프지만 졸 수 없는 곳에서 겨우 한 시간 남짓 버티고 공부를 마칩니다. 골목을 돌며 사진 몇 장 찍고픈 마음은 굴뚝같았으나, 어여 집으로 돌아가 밥먹고픈 마음, 아니 자고픈 마음이 더 큽니다.

 

 그런데 집으로 돌아와서 쌀과 콩 씻어 안치고 찌개 끓이고 있는 때에, 동네 헌책방 아주머니한테 연락. 낮에 서울 홍대에서 ‘와우북페스티벌’이라는 책잔치에서 하는 ‘한국적 책마을을 꿈꾼다’는 어떤 대담 자리에 가야 하는데, 어떤 이야기를 하면 좋을까 갈무리를 해야 한다면서 함께 이야기를 해 보자고 하십니다. 그렇구나, 그 일이 있었지. 잊고 있었네. 밥은 나중에 먹기로 하고, 찌개는 불어버린 채로 가스렌지에 놓아 두고 아래층 도서관으로 내려가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눕니다. 고픈 배이지만, 헌책방 아주머니하고 나누는 이야기는 고마운 마음밥이 되어서 마음을 푸근하게 채워 줍니다.

 

 문득문득, 지난 열일곱 해 동안 헌책방 나들이를 즐겨 오는 동안, 어느 한때라도 밥때를 제때 챙긴 적이 없었음을 떠올립니다. 몸에서 찾는 밥을 잊게 해 주는 책을 만나 왔고, 몸은 고프고 가난했어도 마음은 부르고 넉넉했던 발자국을 하나둘 되돌아봅니다.

 

 아주머니는 당신 일터로 돌아가시고, 저는 위층으로 후다닥 올라와서 불어터진 찌개에 밥을 푹푹 퍼 담아서 배속으로 냠냠짭짭 집어넣습니다. 인터넷신문에 기사 하나 얼른 올리고, 서울 나들이 갈 짐, 노트북과 녹음기와 이것저것 챙깁니다. 그예 집에 와서도 허리 한 번 피지 못하고 다시 길을 나서고야 맙니다.

 

 서울 가는 급행전철은 일요일에는 드문드문. 여느 날에는 출퇴근할 사람 때문에 자주 있는 급행이지만, 일요일에는 멀뚱멀뚱 오래도록 기다려야 해서, 그냥 여느 전철을 타기로. 쉰아홉 헌책방 아주머니는 앉고 저는 섭니다. 서서 가며 이야기를 나누다가, 새벽 5시 반에 일어나서 시청 앞에 일인시위를 가고 또 내내 책을 만지며 쉴 틈이 없던 아주머니는 사르르 잠듭니다. 저도 잠들고 싶습니다만, 잠들 수 없기에 가방에서 책을 꺼내어 읽습니다. 그야말로 눈을 부릅뜨며 읽습니다. 억지로 버티고 버틴 끝에 신도림역에 닿고, 미어터지는 사람 사이에서 갤갤거리다가 홍대역에서 내립니다. 동교동 모퉁이에 있는 헌책방에 들르고 건너편 짬 버스정류장 둘레에 있는 헌책방에 인사한 다음, '공씨책방'에 들러 공진석 씨 처제 분하고 인사를 나눕니다. 저와 함께 걷고 있는 인천 '아벨서점' 아주머니는 지난날 공진석씨한테 책을 많이 배우고 도움을 받았다면서, ‘헌책방 일 수십 해 만에 처음으로 얼굴을 보게 된 두 분’은 활짝활짝 웃습니다. 두 분이 저마다 헌책방 일손을 처음 잡던 때에는 풋풋한 아가씨이셨을 텐데. 어느덧 두 분 모두 머리에는 하얀 눈송이가 솜처럼 얹혔고 얼굴마다 잔주름이 아닌 굵은주름 한가득. 시간이 바빠 짧게 인사만 하고 노고산동 헌책방에 들러 책방 아저씨 안부를 여쭌 다음, 부랴부랴 걸어서 홍대 주차장 골목.

 

 먹고 마시고 쓰고 버리고 하는 가게만 잔뜩 몰린 사이사이, 출판사에서는 도떼기시장 저리 가라 할 만큼 ‘싸게 팔아치우기’ 장터가 벌어진 틈바구니에서 숨이 막히면서 행사장이 어디인가를 두 번씩 전화를 하고 와우북페스티벨 안내 자원봉사자한테 여러 번 묻고 다시 걷고 헤맨 끝에 온몸이 땀에 젖어서 겨우 찾아갑니다.

 

 1시간 40분. 책을 모르고 책방을 모르고 헌책과 헌책방을 모르는 사람들 사이에서 무엇을 말할 수 있었을까 궁금하지만, 헌책방 아주머니는 한 가닥 실마리를 보았다고 말씀합니다. 백 가지에서 아흔 가지가 못났어도 열 가지 좋은 대목이 있으면 그 열 가지를 칭찬하고 북돋우고 받아들여야 한다고.

 

 밤을 잊은 채 정신없이 술판이 벌어지는 신촌 골목길에서 조금 허름한 밥집 하나 겨우 찾아서 맵기만 한 순두부찌개를 억지로 집어넣습니다. 언제부터 순두부에 고추와 고추가루를 시뻘겋도록 범벅을 해대었는지. 하이얀 순두부는 이제 두 번 다시 구경할 수 없는 노릇인지.

 

 밥을 먹었어도 먹은 듯하지 않고 속만 쓰린 가운데, 다시금 전철에 시달리면서 부평역을 지나고 주안쯤 되어서야 자리에 앉게 됩니다. 삐걱거리는 무릎을 느끼며 엉거주춤 앉아서 무릎을 만지니, ‘이놈아, 네가 아무리 내(무릎) 임자라고 하지만, 이렇게 돌아치고 다녀도 되나?’ 하는 소리가 끊이지 않습니다.

 

 동인천역에서 내려 털레털레 집으로. 오는 길에 송현시장에 들러 보리술 석 병. 그러나 집에 닿아 한 병 겨우 힘겹게 비우고 그대로 마룻바닥에 쓰러져서 넋잃고 잠들기. 새벽 두 시 반에 퍼뜩 잠에서 깨어 주섬주섬 이불자락 챙겨서 방으로 들어가 다시 자리에 눕기. 그리고 여덟 시 십육 분. 모처럼 여섯 시간 가까이 내처 잠들 수 있었나. 그러나 하나도 개운하지가 않네.

 

 며칠 동안 찍은 스무 통 가까운 필름은 어느 세월에 찾고, 어느 세월에 스캐너로 긁나 하는 걱정에다가 택배로 날아올 책은 또 어느 세월에 읽고 갈무리하느냐는 근심. 그래도 이제는 우리 집이다. 미우나 고우나 우리 집이다. 새벽부터 밤까지 시끄럽게 전철과 기차가 지나가며 귀청을 때리지만 우리 집이다. 아기 낳고 뭐 하느라 방이고 집이고 온통 어질러져 있어도 우리집이다.

 

 따르릉. 부산 보수동 헌책방골목 '고서점' 아저씨한테 전화. '고서점' 아저씨는 칠월에 딸아이를 낳았다. 그러니 우리 집 사름벼리하고 동갑내기 동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어제 (책방골목잔치 마치고) 막걸리잔치 하셨어요?" "아뇨, 힘들어서 못했어요." 아무렴. 참말 힘드셨겠지.

 

 밥보다 잠이 더 고프다. 좀 드러누웠다가 일어나서 밥해 먹고 방바닥 훔치고, 친정댁에서 올 옆지기와 아기 맞을 준비를 하자.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hbooks.cyworld.com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책읽기#보수동#헌책방골목 잔치#와우북페스티벌#헌책방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이 기자의 최신기사작은책집으로 걸어간 서른해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