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구제금융 법안 부결 후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는 헨리 폴슨 미국 재무장관.
구제금융 법안 부결 후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는 헨리 폴슨 미국 재무장관. ⓒ EPA/연합뉴스

미국 시간 29일 상정된 7000억달러 미 정부의 구제금융안이 미 하원에서 부결됐다. 

 

이번 법안에 복잡한 정치적 이해관계가 얽혀있지만, 최근 금융위기 사태의 심각성에 대해서는 민주당과 공화당이 모두 동의하는 상황이었다. 지난 주말에는 민주·공화 양당 지도부 협의 결과 구제금융의 열매가 월가 경영자들에게만 집중되는 것을 막기로 하는 등 오전 분위기만 해도 구제안이 통과될 것 같은 분위기였다. 

 

하지만  미 하원 공화당 보수파들의 반발에 의해 공화당 의원의 2/3가 반대표를 던짐에 따라 이번 구제금융안이 부결됐다. 당론이라는 게 없는 미국 정치에서도 이러한 투표 형태는 상당히 이례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CNN 등 미국의 주요 언론들은 이번 뉴스를 속보로 전하며 앞으로 미국 경제에 미칠 영향에 대해 보도하고 있다. 뉴욕 주식시장도 크게 위축됐다. 다우존스산업지수는 800 포인트 가까이 급락했으며, 미 역사상 지수 자체로는 최대 낙폭을 보이며 장을 마감했다.

 

공화당 의원들에 의한 부시정부 구제안 부결

 

이번 법안 부결의 특징은 공화당 출신 부시 대통령이 지난 24일 대국민성명까지 하며 전력을 다했던 법안이 공화당 의원들에 의해 부결되었다는 것이다. 

 

공화당 지도부는 민주당 하원대표인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에게 이번 부결의 책임이 있다고 주장하지만, 미국 언론들은 "금융구제안이 시장의 자율성을 해칠 수 있다는 공화당 보수파의 이념적인 이유가 가장 크다"고 부결 이유를 분석하고 있다. 

 

사실 이번 계획은 대공황 이후 최대규모의 시장개입 정책이며, 평소 시장주의를 천명하는 공화당 이념에는 배치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시장의 안정화를 위한 이번 계획은 많은 시장 참여자들의 지지를 받았다. 

 

그러나 많은 공화당 보수파 의원들이 이번 계획을 구 소련에까지 비유하며 이번 정책을 반대해왔다. 민주당에서 제기했던 주택소유자·납세자 보호 문제가 해결되었지만, 많은 수의 공화당 의원들이 반대표를 행사한 것이다.

 

 구제금융 법안이 부결되자, 미국 증시는 폭락하고 월스트리트는 충격에 휩싸였다. 사진은 한 트레이더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앉아 있는 모습.
구제금융 법안이 부결되자, 미국 증시는 폭락하고 월스트리트는 충격에 휩싸였다. 사진은 한 트레이더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앉아 있는 모습. ⓒ AP/연합뉴스

매케인 후보의 지도력에 의구심 더해

 

이번 법안 부결은 한달 남짓 남은 미 대선에 상당한 영향을 주게 될 것으로 보인다. 매케인 후보에게는 또다른 악재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매케인 후보는 지난주 금요일 열린 텔레비전 토론회의 연기를 요청할 만큼 법안 통과에 전력을 다해왔다. 메케인 진영은 '페일린 효과'로 전세를 뒤집었지만 금융위기가 시작된 이후 하락세를 지속했고, 5%포인트 가까운 차로 오바마 진영에 뒤지고 있다. 

 

이 때문에 사태 조기 수습이 절실한 상황이었는데도 공화당 의원들에 의해 법안 통과가 좌절된 것이다. 매케인 후보의 지도력에 의구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11월에 펼쳐질 미국 선거는 대통령 뿐 아니라 하원의원(2년 임기)을 선출하는 선거이기도 하다. 공화당 의원들에게는 매케인의 당선보다 자신들의 당선이 훨씬 중요하다. 지지층인 보수주의자들 의견에 귀를 기울이지 않을 수 없다.

 

이번 금융위기는 시장의 실패에서 시작됐으며, 원만히 해결되지 않으면 실물 부문으로 위기가 확산될 수 있다. 그러나 미국의 보수주의는 경제정책에 있어서 국가의 개입을 극도로 경계한다. 아무리 이번 계획이 시장 안정에 필요하더라도, 시장이 해결할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게 보수주의자들의 생각이다. 

 

복잡한 이해관계... 한치 앞도 안보여

 

법안 부결에 대한 여론은 일단은 부정적이다. 미국인들이 금융기관에 예치된 재산도 걱정될 뿐만 아니라 펀드나 퇴직연금의 수익률 역시 급락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미국경제가 장기 침체로 들어갈 경우, 세계경제 역시 장기 침체로 들어가는 악순환이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일단 백악관이나 미국의회는 법안 표결을 다시 시도하겠지만 법안이 그대로 유지될지 대폭 수정될지 알 수 없다. 

 

단시일 내에 이번 법안이 통과되지 않으면 금융기관의 도산을 막을 수 없다. 그러나 30일이 유태인의 신년 명절이어서, 수요일에 돼야 양당간 재논의가 가능하다. 법안이 통과되기 위해서는 상하 양원을 모두 통과하여야 한다.

 

또한 선거를 앞두고 이번 부결에 대한 양당간 상호 비난이 거세고 목요일 저녁(미국시간)에 부통령 후보들의 텔레비전 토론회가 열리기 때문에 이번 주내 초당적 결단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미국의 정치일정에 따른 복잡한 이해관계 때문에 한치 앞을 바라볼 수 없는 상황이다.


#구제금융#금융 위기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현재 미국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 소재 Augsburg University 경영학과 재무전공 교수로 재직중입니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