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의 여름이 지나갔네요. 날짜로 봤을 때는 벌써 가을이지만 늦더위가 식을 줄 모르던 이번 여름(7~9월)은 저에게 아주 특별한 시간이었지요.
"6월 30일부로 전역을 명받았습니다. 이에 신고합니다!"
즐겁게, 또는 아쉬운 마음으로 전역신고를 한 저는 바로 용산으로 달려갔어요. 기꺼이 하루를 내어준 '컴퓨터도사' 친구가 견적서를 들고 기다리고 있었지요. 버스에 컴퓨터 부품을 싣고 낑낑대며 집에 도착, 조립을 하고 그날 인터넷 개통을 하였지요. 이제 제대로 온라인 세상으로 들어가게 되었죠.
같이 전역한 동기들은 저마다 취직한 회사로 아침 일찍 출근했던 7월 1일, 저는 블로그를 만들었지요. 오연호 <오마이뉴스> 대표의 말이 떠올랐기 때문이죠.
"기자 지망생들 가운데 블로그를 운영 안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건 이상한 일입니다. 새롭게 바뀌는 언론환경에서 글을 쓴다는 사람은 그 흐름을 놓치지 않아야 합니다. 애를 쓰면 얼마든지 블로그로 자신의 능력을 인정받을 수 있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속으로 뜨끔하더군요. 싸이월드의 미니홈피 열풍이 한창 불어서야 뒤늦게 미니홈피도 꾸몄던 기억이 나면서 늘 한 발씩 더디는 제 게으름을 새삼 느꼈어요. 아직 블로그 개념과 트랙백 이런 게 무슨 말인지 몰라 하나하나 검색해서 공부를 하며 '자유로운 첫날'을 보냈지요.
저는 <오마이뉴스>에 올해부터 책 내용에 대해 가끔 기사를 썼지요. 아무래도 정치사회 발언은 신분상 조심스러워야 했고 그럴만한 재주도 없었지요. 이번 여름을 공부하는 시간으로 잡고 여름 내내 책을 읽은 뒤 서평을 쓰고 영화를 보고 리뷰를 썼지요. 뜨거운 여름이었던 만큼 외출도 삼가고 온종일 글을 썼어요. 친구들은 넥타이를 맨 '양복맨'으로 변신하였을 때 저는 '<오마이뉴스> 시민기자'가 되었지요.
툭하면 밤늦게 들어오는 제가 집에만 있으니 집의 어른들은 걱정이 되었나 보네요. 청년실업이 심각하다는 뉴스를 보신 뒤면 무거운 눈빛으로 저를 쳐다보시곤 하시죠. 그러던 어느 날은 진지한 목소리로 물으시네요.
"무슨 일 있니? 왜 밖에 안 나가니? 혹시 돈이 없니?"
은둔형 외톨이가 되는 건 아닌지 조심스럽게 살펴보시는 눈치시더군요. 집값이 너무 비싸 아직 독립을 하지 못하였지만 몇 년 전부터 제 돈은 제가 벌어서 쓰고 있지요. 제 경제상황을 모르시는 어머니는 얘가 돈이 없어서 외출을 못하는 건 아닌지 걱정하시며 남들처럼 '좋은 직장'에 들어가는 걸 은근히 바라시더군요.
지금까지 사회 요구에 맞는 생활을 하다가 벗어나는 모습을 보니 못내 불안하셨나 보네요. 이리저리 '엄친아' 얘기를 하시는 모습이 조금은 부담스럽더군요. '입시에 맞춰진 교육 - 대학 학점 따기, 영어공부 - 취직경쟁 - 결혼과 승진 - 아이들 입시교육' 이렇게 헐겁지만 갖추어져 있는 사회 흐름에서 '일탈' 하는 모습을 이해시키느라 오래시간 비지땀을 흘렸지요. 그리고 제가 쓴 글들을 보여주며 제 앞날을 '브리핑' 하는데 참 묘한 기분이더군요.
그렇게 집을 진정시키고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만 3개월 살자고 다짐했지요. 젊고 아직 배울 게 많기에 공부하면서 여유를 가졌지요. 어차피 공부는 평생 하는 것이고 이번 여름은 조금 더 몰입해서 공부하는 기간이라고 생각했지요. 이 상황을 '<오마이뉴스>로 유학갔다'고 여겼어요. 글을 쓰면서 생각을 정리하고 세상을 바라보는 눈의 깊이를 키우고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는 소중한 '유학기간'이었지요.
7~9월 3개월 동안 70여 개의 기사를 작성했지요. 열흘 동안 인도 여행한 시간을 빼면 하루에 하나 꼴로 기사를 작성한 셈이지요. 컴퓨터 앞에 종일 앉아 있으려니 눈이 아프기도 했지만 제가 즐거워서 한 일이라 재미있게 할 수 있었어요. 무슨 내용을 어떤 식으로 기사를 쓸지 '신나는 고민'에 빠져 여름을 보냈답니다.
3달 동안 열심히 썼더니 무려 '50만원'의 원고료가 생겼어요. 그 가운데 30만원을 찾아서 디지털 카메라를 샀지요. 늘 필요할 때마다 친구들에게 빌리고 카메라 잘 찍는 친구들을 불렀는데 이제 제가 원할 때 찍을 수 있게 되었네요. '월수입 17만원'이라 생활은 빠듯해졌지만 헤프게 쓸 수 있었던 돈도 아끼고 물건의 소중함을 다시 몸으로 느꼈지요.
그리고 돈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는 걸 다시 배웠지요. 얼마 되지 않는 원고료에도 많은 시민기자들이 열렬하게 글을 쓰는 이유이기도 하겠지요. 기사를 쓰고 나서 '좋은 기사'라고 '잘 읽었다'고 하는 한 마디 격려 때문에 오늘도 몇 시간씩 의자에 앉아있게 하네요. 때로는 지적도 당하고 비판을 받으면서 모자란 점을 느끼고 다른 여러 시각에 대해 배울 수 있었답니다.
이제 10월이네요.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서만 살기'도 3개월 해보니 글도 늘고 재미있는 경험도 많이 했어요.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라고 적힌 명함을 건네면서 인터뷰도 해보고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도 수집하였지요.
이제 <오마이뉴스> 시민기자이면서 저만의 영역을 넓혀가야겠지요. 그리고 양보다는 질에 집중해야겠지요. 지금까지 짧은 3개월 동안 부족한 제 글을 실어준 <오마이뉴스> 편집부와 읽어준 시민들에게 고마움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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