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순 KBS 사장이 취임한 지 30일이 조금 넘었다. '사장 반대운동' '보복인사' '개편 논란' 등으로 KBS는 9월 내내 바람 잘 날 없었다. 그렇다면 외부에서 지켜본 지난 한 달간의 KBS 보도는 어땠을까.
9월 30일 오후 7시 여의도 KBS 본관 앞에서 열린 '이병순 체제 1개월, KBS 보도 긴급진단'에서 내려진 평가는 혹독했다.
지난 한 달간 KBS 보도에 청진기를 대고 있었던 이송지혜 민주언론시민연합 모니터부장은 "사회적 이슈에 대한 무비판적 단순보도가 늘어나기 시작했으며, 민감힌 사안에 대해서는 아예 침묵하는 행태마저 보이고 있다"고 주장했다. 토론이 시작되기 전 이미 촛불시민들은 초컵을 이용해 'K. B. S. 여. 깨 어. 나. 라'는 문구를 만들었다.
지난 9월 6일부터 26일까지 방송 3사 저녁종합뉴스를 모니터한 후 이송 부장이 짚어낸 KBS 보도의 이상기류는 크게 네 가지다. ▲ 심층성 저하 ▲ 민감한 사안에 대한 침묵 ▲ 연성화 ▲ 대통령 띄우기가 바로 그것이다.(발제문 전문 보기)
"보도 심층성 ↓, 무비판적 단순보도 ↑"
우선 보도의 심층성 저하. 이송 부장은 "이번 모니터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은 KBS 보도의 심층성이 현저하게 저하됐다는 점"이라며 "사회적으로 논란이 된 사안에 있어 무비판적 보도 행태가 두드러졌으며 타사 방송보도에 비해 심층성이 떨어지는 보도들도 눈에 띄었다"고 밝혔다.
이송 부장은 몇 가지 사례를 들었다. '외자유치 관련보도'와 '국제중학교 허용 관련 보도' 등이다. 9월 8일 KBS는 '위기설 해소국면'이라는 기사를 통해 전광우 금융위원장의 발언을 무비판적으로 전달하는 데 그친 반면 MBC는 전 위원장 발언에 대해 다양한 취재를 통한 반론을 첨가했다는 것이다.
또한 지난 9월 18일 KBS '국제중 사실상 확정' 기사는 "사교육 유발을 줄이기 위해 전형 절차도 일부 보완됐다" "저소득층 위한 사회적 배려 대상자 전형은 모집정원의 20%로 확대됐다"며 서울시 교육청의 선발방식 변화를 단순전달했다. "연간 700만원 안팎의 과중한 학비 부담으로 부유층만의 학교가 될 것"이라고 비판한 SBS 보도 태도와 대조된다는 게 이송 부장의 지적이다.
"대통령 정책발표를 무비판적으로 단순전달하고 있다"는 지적도 매서웠다.
지난 9월 23일 이명박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학원비가 올라 서민 가계에 큰 부담이 되고 있다"며 "실태조사와 종합대책을 마련하라"고 지시한 바 있다. 당시 이를 전한 KBS 뉴스와 MBC 뉴스의 비교다.
KBS - "학원들의 담합인상과 세금 탈루에 대한 대대적인 조사를 예고" "이 대통령의 직접 지시에 따라 정부가 학원비 잡기에 본격적으로 나설 태세여서 사교육 시장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
MBC - (이 대통령의 국무회의 발언에 대해)"현장의 학부모들은 대체로 시큰둥한 반응" "영어 몰입교육과 국제중 신설 등 새 정부의 정책 자체가 경쟁을 강조하는데 학원 안 보낼 도리가 있느냐" "정부의 학원비 대책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먼저 현장의 신뢰를 회복하는 일이 시급."
KBS는 단순 전달에 그치고 있는 반면 MBC는 이슈에 대한 현장의 목소리를 충실히 담고 있다는 게 발제의 요지다.
이송 부장은 지난 7월과 비교해 봤을 때 '연속기획 보도' 역시 크게 줄었다고 주장했다. 9월에는 연속기획 보도가 '치매' 한 주제에 그쳤다. 'BK21' '흔들리는 세계경제' '베이징 올림픽' '개헌' 등 네 가지 주제를 연속보도했던 지난 7월과는 비교된다. 9월 기획의 꼭짓수는 2꼭지인 반면 7월에는 24꼭지였다.
이미 시민사회에서 언급된 적이 있는 ▲조계사 회칼 테러 사건 보도 누락 ▲대통령 사위 조현범씨 주가조작 검찰 조사 관련 보도 누락 ▲국민연금 운용 관련 손실 보도 부족 사례 등도 다시금 제시됐다.
"KBS, 미 구제금융 승인 요청보다 이승엽 홈런이 먼저"
보도가 '말랑해지고 있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보도 연성화 지적이다.
"추석을 앞두고 KBS는 추석을 앞둔 활기찬 모습을 전하는데 그친 반면 SBS는 경기 침체로 힘든 추석을 맞는 서민들의 모습도 다뤘으며 MBC는 연속기획보도로 서민들의 어려움을 함께 짚었다."
"지난 21일 보도에서 MBC와 SBS는 미국 구제금융 승인 요청을 주요하게 보도했다. 그러나 KBS는 이 소식을 아홉 번째 꼭지로, 그것도 단 한 건 보도하는데 그쳤다. 반면 주말 풍경 스케치 기사를 첫번째 꼭지로 보도했으며 각종 사건사기 보도와 이승엽 선수 홈런소식을 더 앞서 다뤘다. 보도 내용에서도 KBS는 미국의 구제금융 승인 요청 사실만 단순 보도했으나 MBC와 SBS는 이 같은 조처가 향후 한국 경제에 미칠 영향까지 함께 다뤄 차이를 보였다."
"람사르 총회를 앞두고 세계적 습지인 우포늪이 몸살을 앓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SBS는 지난 9일 이같은 사실을 8시 뉴스에서 지적한 바 있다. 그러나 KBS는 이같은 습지 훼손 실태는 제대로 보도하지 않은 채, 19일 '가시연꽃 만발'에서 우포늪의 대표식물인 가시연꽃의 아름다운 모습만을 보도했다."
이송 부장은 "KBS가 신뢰도와 영향력에서 1위 언론사로 성장할 수 있게 된 밑바탕에는 보도 분야에서 보여준 변화의 노력을 꼽지 않을 수 없다"면서 "그러나 이병순 사장 취임 이후 KBS 보도는 이런 성취를 발전시키기는커녕 과거로 회귀하는 것으로 보여 답답하다"고 말했다.
이어 토론에 나선 김민영 참여연대 사무처장은 "1% 특권층만을 위하는 이 정권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방송에서 점차 사라져 가고 있다"면서 "조직적인 시민단체 죽이기, 누리꾼에 대한 반인권적인 탄압 등에 대해 KBS 보도가 소상히 이뤄지고 있지 않다"고 주장했다.
김 처장은 이어 "탐사보도팀의 사실상 무력화로 정부 정책, 권력 집단 문제에 대한 심층적인 취재가 가능할지 의문"이라면서 "KBS 보도가 살아있기를 바라며 내부 구성원에게 다시 한번 헌신적인 노력을 주문한다"고 말했다.
우문숙 민주노총 대변인은 "물가 폭등으로 민생이 어려운 시기에 민생 관련 보도보다는 실효성 없는 정부 정책이 나열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지난 2년 동안 KBS 시청자위원으로 활동했던 우 대변인은 "전기 가스요금 인상 등에 대해서도 단신보도에만 머무르고 공기업 선진화 방안이나 방송법 개악 등에 대해서도 제대로 다루지 않는 등 지난 9월 보도는 (시청자 위원으로 있던) 2년 동안 단 한 번도 느끼지 못했던 보도였다"고 혹평했다.
우 대변인은 "KBS가 오히려 공정한 여론 형성에 방해가 되는 한편으로 국정 홍보 방송으로 전락할 수 있는 위험한 순간을 맞이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김현석 KBS 기자협회장은 한 사례를 들며 회사 분위기를 전했다.
"9월 16일에 <시사기획 쌈> 방송이 예정되어 있었다. 보통 <쌈> 내용에 대해 미리 9시 뉴스에서 비중있게 다룬다. 그런데 (간부들 사이에서) 16일 방송분에 대해서는 '그냥 당일 9시 뉴스에 1꼭지 정도로 하자'는 반응이 나왔다. 탐사보도팀 힘이 빠져 있다. 하지만 아직 밖에서 우려하는 것만큼은 아니다. 열심히 만들고 있고 10월에도 '센 거' 몇 개 나갈 것이다. 문제는 내년이다. 내년 초부터 상황이 심각해질 수 있다."
김 회장은 '9월 위기설 보도' 비판에만 이견을 표출했을 뿐 대부분 발제자와 토론자들의 의견을 존중하며 KBS 보도 문제점에 대한 원인을 이렇게 말했다.
"뉴스에 힘이 없다. 기자들이 재미를 못 느껴서 그렇다. 그냥 무난하게 가자는 분위기도 느껴진다. 물론 노골적인 정권 찬양방송을 하지는 못할 것이다. 하지만 젊은 기자들이 힘이 빠져있는 게 문제다. 많이 상처받았다. 그것들이 보도에서 반영되는 것이라고 본다."
이송 부장은 이날 발제문을 통해 KBS에 이런 충고를 했다. 우 대변인 등 다른 토론자도 유사한 주장을 폈다.
"KBS가 이런 식의 보도 행태를 계속 보인다면 '신뢰도 1위, 영향력 1위'라는 영광 대신, 지난 십수 년간 KBS를 조롱해 왔던 '정권의 나팔수'라는 오명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
한편 이날 토론회에는 신경림 시인이 참석해 촛불시민들의 큰 박수를 받았다. 신경림 시인은 짤막한 인사말을 통해 "언론과 문학은 따로 있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 자리가 남의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면서 "고맙다, 여러분께 그저 고맙다는 말밖에 할 말이 없다"고 말했다. 신 선생은 발제자와 토론자의 주장을 경청하며 때로는 고개를 끄덕이기도 하면서 끝까지 자리를 지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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