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들은 동물적인 감각으로 디카시(詩)에 적응했다."
전국에서 처음으로 열렸던 "고교생 디카시 백일장"을 지켜본 한 문인이 한 말이다. 청소년들은 원고지가 아닌 휴대전화로 사진을 찍고 시를 써서 전송했다. 디카시는 자연이나 사물(모든 피사체)에서 포착한 시적 형상(날시)을 디지털 카메라(디카)로 찍어 문자로 재현하는 방식으로 생산된 시를 말한다.
고성예총(회장 김춘랑)과 <디카시>(주간 이상옥)는 지난 9월 27일 고성 남산공원에서 "제1회 고교생 디카시 백일장"을 열고, 심사결과를 30일 발표했다. 이날 백일장에는 원고지 대신에, 학교에서는 사용이 자유롭지 않는 휴대전화를 든 고교생 100여명이 참석했다.
문학청년 시절 원고지로 실력을 뽐냈던 기성문인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청소년들은 휴대전화로 사진을 찍고 쓰고 한 뒤 지정된 메일로 작품을 전송했다.
이상옥 주간은 "디카시 백일장이 압권이었다"면서 "100여명의 고등학생들이 휴대폰으로 찍고 쓰는 디카시는, 정말 이것이 디지털 세대인 그들의 것임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그는 "수상 작품들에서 보듯 디카시는 디카세대인 그들에게 꼭 맞는 새로운 시의 양식이었다"고 덧붙였다.
이날 고성에서 열린 백일장과 '디카시의 밤' 행사에는 강희근 경상대 명예교수와 김열규 전 서강대 교수, 김복근 경남문인협회장, 오하룡·김연동·강호인·박노정·배한봉·박서영 시인 등이 참석했다. 또 서울에서 온 김영탁 시인과 대전에서 온 최광임 시인도 전국에서 처음으로 열리는 디카시 백일장을 지켜보았다.
최우수상은 "그림자 사랑"을 출품한 석류(선명여고 3년)양, 우수상은 전혜민(무학여고 2년)·김현정(고성고 2년)양이 받았다. 이밖에 장려상 3명과 입선 7명이 뽑혔다.
석류양은 길바닥에 비친 자신의 그림자를 사진으로 찍어 "그림자 사랑"이란 제목의 시를 썼다. 시는 "그림자와 같이 항상 네 뒤를 지키고 서 있던 나를 너는 기억할지/귓가에 속삭여야만 사랑이 아니다"라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우수상을 받은 김현정양은 도로에 새겨진 양방향 표시를 사진으로 찍어 "님에게 묻노라니"라는 제목을 붙였다. 시는 "가시렵니까 오시렵니까/깊고 머나먼 그 길/돌고 돌아오신 내 님"이라는 내용이다.
강희근 명예교수 "여러가지 의미에서 역사적"
강희근 명예교수는 이날 열린 디카시 백일장에 대해, "여러 가지 의미에서 역사적이라는 생각을 할 수 있다"고 평가하면서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문화나 문화운동은 늘상 서울에서 이루어지는 것이고, 새로운 것이라면 늘상 중앙 내지 중앙권력으로부터 나온다는 것이 통념으로 되어 있는데 변방 언저리 고성에서 개최되었다는 것은 하나의 반역일 수 있다. 그러나 엄연히 페스티벌이 고성에서 열렸다. 독립이고, 자생이고, 자존의 선언 이상의 깃발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어 그는 "고성에서 디카시의 본고장으로 횃불을 든 것은 참으로 의연한 일이고 거룩한 일이고 독립의 한 줄 선언적 의미가 있다 할 것"이라며 "고성은 1950년대 이래 소가야 문화제를 성심으로 개최해온 문화적 열망이 지역 문화의 독자성을 부양해 왔는데, 거기 디카시가 가장 신선한 감성으로 접목해 들어오고 있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또 강희근 명예교수는 "멈추어서 신호등을 디카로 찍어 그것이 제 직관에 닿았다면 거기 직관이 일러주는 대로 받아 적어 보면 어떨까 한다"면서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디카 영상시가 무겁고 긴 심리적 분열의 물줄기를 차단하는 역할을 해 주었으면 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하나의 빛깔, 하나의 심각한 분열현상으로 일색 천리를 이루고 있는 시단이 그 역으로 개벽이 되었으면 한다. 그 개벽은 변방이고도 역사의 고장인 고성에서 시작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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