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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풀뿌리여성조직가대회
풀뿌리여성조직가대회 ⓒ 신하영옥

달리는 차창 밖의 풍경은 아름다웠다. 연두색과 노란색으로 얼룩진 들판과 푸른빛 그 안에 색색의 옷으로 단장할 준비를 마친 나무들이며, 강렬히 내리쬐고는 있으나 나른한 햇살은 푸짐한 가을을 느끼게 했다.

 

'오늘 하루, 아니 이틀간은 모든 시름과 상실감과 허망함을 내려놓고 사람들 속에서 힘을 얻어 오리라…. 실타래처럼 얽혀 있는 고민들을 조금은 해결할 실마리를 얻어 오리라….'

풀뿌리여성조직가 대회를 가면서 든 기대감이다.

 

한 곳, 한 가지 일에 오래 천착하지 못하는 나로서는 다행이게도 내가 일하는 단체는 전국에 지부를 두고 있다. 단 며칠이건만 사무실로만 출퇴근할 때 오는 그 권태와 관념을 나는 지부를 돌아다니면서, 지부의 활동가들을 만나면서 활기와 현장으로 대체할 기회를 갖는다. 때로는 답답하기도 하고, 때로는 울컥 눈물이 날만큼 감동으로 다가오기도 하는 활동가들은 연합조직에서 활동하는 내게는 현장이고 풀뿌리이다.

 

지역여성운동의 활성화를 목표로 하는 나의 과제에서 때로는 지부활동가들에게 조언도 하고, 지원도 하지만, 실은 힘을 얻고 배우는 것은 정작 나 자신이다. 지역의 여성들을 만나고, 대화하고 지역의 문제해결을 위한 여성들의 힘을 모아내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그들을 보면서, 운동이 관념이 아니라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실체로 다가오는 것이다.

 

그리고 사람의 아름다움 (가끔은 사람에 대한 실망도 하지만) 사람의 선함과 선함을 위해 자신을 성찰하고 채찍질하는 모습에서 사람에 대한 신뢰를 확인하곤 한다. 결국 그 안에서 운동의 미래와 대안을 확신하게 되기 때문이다.

 

가히 경찰국가라 칭할 만한 일들 벌어지고 있다

 

세상은 여전히 정신없이 보수회귀를 위해 휘돌아 치고 있다. 촛불시민들에 대한 표적수사와 구속, 시민사회단체들에 대한 먼지 털기 식 수사와 활동가들의 구속, 심지어는 유모차부대에 대한 협박과 수사까지…. 가히 경찰국가라 칭할 만한 일들이 버젓이 벌어지고 있다. 정말로 물 만난 고기다.

 

논리 또한 기가 막히다. 다른 건 몰라도 유모차에 아이를 태우고 나와 물대포 앞에 분연히 저항했던 여성들에게 '아이를 시위의 도구로, 물대포의 방패막이로 사용!'하는 '아동학대' 행위를 했다는 것이다. 또한 '일반교통방해', '공무집행방해'로 불법행위를 했다고 사전 통보나 영장도 없이 집 앞에 찾아와 협박으로 공포분위기를 조성했다고 한다.

 

아이를 낳아서 길러 본 사람들은 다 안다. 첫째, 아이를 데리고 나들이를 한다는 자체가 얼마나 힘든 노동인지. 둘째, 누구도 자신의 아이를 위험 속으로 던져 넣고 싶은 마음은 털끝만치도 없다는 것을. 그럼에도 아이를 데리고 촛불집회에 참석할 수밖에 없었고 물대포 앞에 설 수밖에 없었던 심정을 한 치라도 헤아려 봤다면, 그런 얼토당토않은 '아동학대' 운운은 가당치도 않은 논리다.

 

당장의 물대포와 소화기보다도 더 두렵고 저항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안전하지 않은 먹을거리를 먹여야 한다는 불안이고, 부모의 경제력에 의해 등급이 나눠질 수밖에 없는 교육제도에 대한 불안 때문이었다. 아이의 생물학적, 사회적 생명권에 관한 문제였던 것이다. 국가가 기본적인 생명권 보장이라는 국가책임을 지지 못하면서 국민으로서의 책임을 '법'이라는 이름으로 강요하고만 있다.

 

포털사이트에서 자신의 논리를 당당히 펴던 시민들이 구속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암담했다. 그리고 죄송했다. 시민단체와 활동가들에 대한 표적수사 소식을 들었을 때, 올 것이 왔구나! 했다. 그리고 유모차 부대에 대한 탄압소식을 들었을 때 '이건 전쟁이야, 국가가 국민을 상대로 전쟁을 벌이고 있는 거야'라는 탄식이 절로 나왔다.

 

도대체 뭐가 그리 무서워서 젖먹이 애 엄마들까지 '적'으로 만들고 위협하는 건지, 경찰이 그리도 한가했던가 하는 생각.

 

여성폭력 문제가 발생했을 때 경찰은 사건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인력을 들먹이며 수사를 질질 끌고 가해자 수사나 처벌을 미루곤 했었다. 그러데 왜 이리 발 빠르게 움직이는 건가? 민생이나 치안관련해서는 한계를 들먹이더니 공안 관련해서는 참 빨라도 너무 빠르고 한나라당 내부에서조차 유치하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너무도 잘 알아서 기고' 있다. 누구의 경찰인가?

 

여성단체들은 지난 24일 촛불시민 및 유모차 부대 탄압에 대한 책임을 물어 어청수 경찰청장을 해임할 것을 요구하는 성명을 발표하였다. 이제 제발 그만 떠나시라!

 

그리고 시민사회단체들은 단체탄압에 맞서기 위한 기구를 구성할 것과 지속적으로 '강부자' 편향의 정책에 반대하고 내부적으로는 자정활동을 강화하고, 성찰을 통한 운동프레임을 다시 짜는 것을 결정하였다.

 

우리는 어디에 서 있었는지 어디로 가야 하는가

 

 풀뿌리여성조직가대회
풀뿌리여성조직가대회 ⓒ 신하영옥

그동안 촛불을 통해 시민들의 활동과 관련한 평가와 분석은 많이 토의되었다. 그리고 한편 시민운동단체들의 향방에 대해서도 논의가 되었다. 그러나 그동안 시민사회단체들, 진보세력들이 구축해 놓은 제도나 정책이 하루아침에 물거품이 되거나 될 위기에 처해있고, 그 당사자인 단체와 활동가에 대한, 촛불시민에 대한 탄압에 무기력한 모습 속에서 우리는 다시 한 번 진지하게 질문을 하여야 한다. 시민을 보호할 수 없는 시민단체, 시민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시민단체, 우리는 어디에 서 있었는지 어디로 가야 하는지?

 

이러한 일련의 과정 속에 개최된 '풀뿌리여성조직가대회'는 의미와 시사점을 던져준다. 전국 각지에서 지역의 여성들, 주민들과 가장 밀착되어 활동하는 여성조직가들과 그 아이들까지 200여 명이 모인 대회는 처음부터 활기와 기대로 넘쳐났다. 어떻게 하면 지역의 여성들, 주민들과 더 가까이 할 수 있는지? 마음을 모아내고 실천으로 이어질 수 있게 할지? 어떤 과제와 내용으로 지역을 변화시킬 수 있을지? 그 과정에 지역민들이 주인으로 참여하게 할 방법은 무엇인지? 지역민들의 지속적인 참여와 성장을 위한 전략은 무엇인지?

 

1박 2일의 빼곡한 일정 속에서 열띠게 논의하고, 또 노고를 서로 위로하고 연대감을 나누었다. 그야말로 '싱싱함!', '살아 펄떡거림!'의 현장이었다. 세상이 미쳐 돌아가고 있다고 탄식하고 절망하고 답답해하는 서울, 중앙의 운동판과는 다른 분위기였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그들도 정권의 변화를 실감하고 있고, 문제를 느끼고 있음에도 희망과 에너지가 넘치는 이유가….

 

그것은 아마도 최일선에서 사람들을 만나면서 사람들의 '선(善)'에 대한 지향과 실현을 위한 노력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때문에 그 사람들이 모여서 언젠가는 거대한 흐름으로 거꾸로 된 세상을 제자리로 돌려놓을 것을 확신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 운동의 새 프레임은 결국 '시민 속'으로가 아닐까? 그것도 구체적인 개인들 속으로.

 

그래서 시민들과 시민단체들이 서로 보호해주고 위로받으며, 그렇게 이 엄혹한 시절을 견뎌내고 새로운 미래를 설계하고 만들어내야 한다.

 

캄캄한 밤에 돌아오는 차 안에서 보이는 것이라곤 자동차들의 불빛뿐이었다. 낮에 보았던 그 아름답던 들녘은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인가? 낮에는 주변을 둘러보며 경치에 감탄하고 이런저런 상념도 하던 여유가 페달만 죽도록 밟아대는 초조함으로 변해 있었다. 보이지 않으면 초조해진다.

 

그러나 우리는 안다. 보이지 않는다고 없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문제는 보이지 않는다고 초조해 하는 내 마음, 나의 관습과 태도일 뿐. 그저 거기엔 그것이 그대로 존재하고 있을 뿐이다. 어둠이 걷히면 선명히 드러나는 것들…. 어쩌면 지금은 존재함에 대한 확고한 믿음을 놓치지 않고 믿음을 나누며 어둠이 걷히길 기다리는 것이 필요한지도 모른다.

 

지각변동은 표면에서부터 일어나지 않는다. 그 밑에서 조금씩 느리게 변동이 진행되다가 표면으로 터지는 것이다. 보이지 않으나 풀뿌리운동은 주민들 속에서 변화의 움직임을 만들어 내고 있다.

 

그리고 하나 더, 밤이 되니 후각과 청각, 촉각이 예민해졌다. 시각에만 의존하던 인지경로가 다양해지면서 어둠에 둘러싸인 대지와 공간이 다른 각도에서 다가왔다. 시민의 감각으로 세상을 보는 법, 보여줌으로서 따라오게 하는 것이 아닌, 성장을 통한 각성을 통해 스스로 변화하고 변화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것. 그것이 풀뿌리의 방식과 관점이 아닐까? 시민단체는 리더가 아닌 조직가의 자세와 역할이 요구되는 것이 아닐까?

 

대중/시민/주민 속에서 치열하게 실천하는 여성 활동가들을 보면서, 이 어둠이 너무 길지는 않을 거라는 느낌을 갖는다. 유모차부대는 결코 그냥 만들어진 것이 아님을, 그래서 이런 유치한 탄압에 쉽사리 수그러들지 않을 거라는 걸, 앞으로도 계속 제2, 제3의 유모차부대는 변태를 할망정 지속되리라는 것을…. 선선한 가을 밤, 허한 가슴을 코끝 찡함으로 채우면서 분발해본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를 쓴 신하영옥씨는 현재 한국여성의전화연합 정책팀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기사는 인권연대 웹진 주간 <사람소리>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풀뿌리여성조직가대회#여성운동#경찰#이명박#촛불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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