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는 진보와 공존할 뜻이 없어 보인다. 독재정권도 민간인을 잡아가지는 않았다. 야비한 MB는 유모차를 끌던 엄마와 예비군 아저씨들도 잡아갔다. 반대하면 죽는다는 메시지다. 전 방위적인 진보 죽이기…, MB와 진보의 '동거불능 생존게임'이 시작됐다."
박원석 광우병국민대책회의 상황실장의 말이다. 그는 지난 7개월간 MB정권이 내놓은 정책을 보면, 모두 1% 특권층을 겨냥한 것들로 99% 국민의 생존과 안위를 무시한 것들이었다고 비판했다.
이명박 정부는 종합부동산세 완화, 재벌의 은행소유를 허용하는 금산분리 완화, 그린벨트 해제와 수도권 규제완화, 도심 재건축·재개발 본격화, 고교 서열화, 공기업 민영화 등 모두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부자들을 위한 정책만 쏟아냈다는 것이다. 이 가운데 서민복지와 민생경제, 중소기업 활성화 대책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찾을 수 없다는 게 그의 진단이다.
이뿐 아니라 대표적 시민단체에 대한 압수수색과 계좌추적, 출국금지, 기업 후원금 수사, 국가보안법을 통한 조직사건과 이념공세 등 진보진영과 '파트너십' 없는 일방적 매도 등은 더 이상 진보가 MB정권에게 물러설 수 없도록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부자들을 위한 정책만 쏟아내는 정권과 맞붙은 최전선에서 진보가 선택할 것은 범국민 투쟁전선뿐이라는 게 그의 판단이다. 1% 부자들을 위한 귀족정책만 연발하는데, 99% 국민은 넋 놓고 당하고만 있어야 하느냐는 푸념 섞인 성토도 이어졌다.
야당이 야당다운 구실을 전혀 못하고, 대표적 시민단체들은 압수수색과 계좌추적에 힘이 빠지고 있으며, 촛불집회에 주도적으로 참가했던 시민들은 연행과 구속의 대상이 되고, 죽었던 국가보안법이 되살아나는 판에 MB를 향한 유화적 대응? 의미 없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파트너십 상실한 MB정권... 진보의 선택은?
광우병국민대책회의 지도부는 이 같은 판단에 따라 1987년 6월 민주항쟁 이후 21년 만에 처음으로 시민사회단체와 정당 등 '이명박 정책'에 반대하는 모든 세력이 망라되는 '국민전선'을 만들기로 했다. 9일 출범하는 (가칭)민주주의와 민생을 위한 새로운 연대기구가 그것.
국내 대표적 시민단체와 민중단체, 노동조합과 누리꾼 모임, 정당 등이 총망라되는 이 기구는 '촛불운동 2.0'을 알리는 신호탄이기도 하다. 지금까지 광우병 문제에만 초점을 두고 활동해 왔던 반경을 대폭 늘려 '이명박 반대 국민전선'으로 조직을 확대하고 ▲ 민주주의 ▲ 민생 ▲ 사회공공성을 3대 의제로 삼아 전면적으로 한판 붙겠다는 뜻을 담고 있다.
박원석 실장은 1일 서울 종로구 견지동 조계사에서 <오마이뉴스>와 만나 "지난 7월 5일 마지막 대형촛불 이후 광우병 문제를 뛰어넘는 수준의 조직전환이 필요하다는 요구가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여러 논의를 종합하고 의제를 확장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며 "올 가을부터는 본격적인 국민운동체를 기반으로 한판 싸움이 시작될 것 같다"고 밝혔다.
이명박 정부 7개월간 벌어진 총체적 양상 속에서 더 이상은 국민의 기본권과 절차적 민주주의의 정당성을 빼앗길 수 없기 때문에, 앞으로 최대한 넓고 깊은 조직을 만들어 정권에 맞선 대응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 됐다고 강조했다.
무엇보다 MB시대의 시민사회운동은 지난 민주정부 10년의 시민운동과 양태가 달라질 수밖에 없다고 진단했다. 지난 10년간 민주 정부들은 진보와 보수 양자의 존재를 인정하고 최대한 수용하는 차원에서 예산도 지원하는 등 활동을 보장해 왔다. 하지만, MB정부는 치졸한 방법으로 뉴라이트는 살리고, 진보운동은 아예 씨를 말리려 들기 때문에 과거와 같은 방식으로는 도저히 대응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과거에는 '백화점식 운동'을 지양하고 의제별로 전문화한 운동을 펼쳐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18대 국회 전체 의석의 2/3를 보수정당이 차지하고 있고 정부도 국민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고 있어서 개별 단체들이 각개전투해 봐야 힘을 받지 못한다는 게다.
따라서 최대한 큰 폭으로 조직을 꾸려 매 사안별로 공동 대응하는 방식이 훨씬 유리해졌다고 진단했다. 사실상 지금은 국민이 'MB에 대한 전면전'을 선포하고 큰 틀에서는 사회적 발언을 이어가면서, 예각적인 사업을 통해 집요하게 돌파구를 만들어가는 편이 중요해진 것 같다고 했다. 날카로운 잽과 펀치를 날리며 MB정권이 국민 앞에 녹다운 될 때까지 해보자는 것.
"진보에 대한 준비된 공격... 지켜만 보는 것도 직무유기"
박원석 실장은 "진보진영에 대한 준비된 공격 속에서 끊임없이 축소될 수만은 없다"며 "노골적으로 부동산 자산가와 강남 지지층만을 기반으로 하는 MB의 1% 특권층 정책에 반대하는 깃발을 들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비정규직 노동자와 영세자영업자, 소시민 화이트 칼라들이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정치적 대안체'가 부재한 상황에서 진보가 한국사회 전체가 후진하는 양상을 지켜보고만 있는 것도 사실은 '직무유기' 아니냐고 반문하기도 했다.
이 같은 흐름에 정치권이 상당한 동조의식을 나타내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민주당 내부의 진보개혁 인사들은 30일 발기인대회를 열고 '민주연대'를 출범했다. 김근태 전 보건복지부 장관과 이미경 사무총장, 천정배 의원 등 전현직 의원 51명이 이 모임에 참여한 상태다.
이들은 이명박 정권을 '사실상의 민간독재'로 규정하고 앞으로 앞서서 민간독재와 맞서 싸우겠다고 결의했다. 민주연대의 창립 이후 김근태 전 장관 등 일행은 서울 종로 견지동 조계사 '촛불 농성장'을 방문해 새롭게 만들어질 연대 기구에 함께 하겠다는 뜻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전 장관은 30일 조계사 방문에서 "우리에게 할 일이라고는 싸우는 것밖에 없다"며 적극적인 동참의사를 밝힌 것으로 전해진다. 원혜영 민주당 원내대표도 조계사를 방문해 민생현안에 대해 더욱 적극적으로 대처하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밖에 진보신당과 민주노동당도 적극적인 참여의사를 밝히고 있다.
따라서 '촛불운동 2.0'을 알리는 새로운 연대기구가 진보운동 전체의 지각변동을 가져오는 게 아니냐는 전망도 나돌고 있다. 1987년 6월항쟁 이후 처음으로 대규모 '연대기구'를 통해 리더십과 정책적 대안 만들기를 본격화 하고, 이를 통해 정치적 대안도 모색해하는 계기가 될 수 있는 게 아니냐는 전망인 것이다.
다시 '민주주의 축제'의 촛불을 든다
새로운 연대기구는 몇 가지 상징적인 행사와 의정감시 프로그램 등으로 활동을 본격화하겠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우선 25일 '민주주의 Festival'을 열겠다는 것이다. 이 축제는 '촛불운동 1.0'의 뒤풀이 개념으로 그간 촛불운동의 의미를 돌아보고, 앞으로의 과제를 검토해보는 계기로 삼겠다고 전했다.
또한 11월 9일 노동자대회 이후 민생대회를 열고 MB정책에 반대하는 99%의 목소리를 전하겠다고 밝혔다. 12월 인권주간에는 국민 기본권을 위협하는 문제에 대해 다양한 심포지엄과 전시회 등을 계획하고 있다고 전달했다.
기본적으로는 지속적인 기자회견과 논평을 통해 국민과 소통을 외면하는 MB정권에 대한 비판적 대변기능을 하겠다고 밝혔다. 정기국회와 국정감사에 대한 공동대응도 한다. 권력감시운동은 기본이다.
박원석 실장은 "지난 10년간 권력을 상대로 한 저항전선은 없었다"며 "의제별 기구로는 돌파할 수 없는 의제들을 정치적 대표성을 가진 연대기구가 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국민적 분노가 들끓는 상황에서 기죽지 않은 시민들이 '촛불운동 2.0'을 맞아 또 한번 거리로 쏟아져 나올지 귀추가 주목되는 상황이다. 김민영 참여연대 사무처장의 말을 들어보자.
"촛불을 든 우리는 누구나 발랄하고 유쾌했다. 자유로운 시민참여의 장이 마련됐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느덧 상황은 엄혹해지고 주눅 들기 시작했다. 다시 한 번 합법적인 방법으로 민주주의 축제를 열고 흩어졌던 촛불이 모이는 계기를 만들어보자."
그의 말은 촛불이 죽지 않았다는 것을 다시 보여주자는 결연한 의지의 다른 표현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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