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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양 북릉에 있는 홍타이지 무덤. 여진족의 풍습에 따라 봉분위에 나무 한그루가 심어져 있다.
▲ 북릉. 심양 북릉에 있는 홍타이지 무덤. 여진족의 풍습에 따라 봉분위에 나무 한그루가 심어져 있다.
ⓒ 이정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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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치제 즉위식과 홍타이지 장례식을 마치고 범문정이 세자관을 찾아왔다.

"호의에 감사하오. 특히 많은 종이를 보내주어 장례식에 유용하게 쓸 수 있도록 도와주어 고맙소."
"부의가 약소하여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현재 고애사가 조선에 나가 있소. 며칠 후면 조선에 큰 선물을 가지고 또 사신이 나갈 것이오."

어사개와 할사개가 이끄는 고애사(告哀使)가 한성에 머물고 있었다. 조선의 황제에 대한 조의와 조문 상태를 점검하기 위한 시찰단이다.

"선물이라니요?"
"황제 즉위를 기념하는 큰 선물입니다."
범문정이 돌아갔다. 소현은 곰곰이 생각해봐도 무슨 선물인지 알 수가 없었다.

세폐를 줄이고 김상헌과 최명길을 석방 한다

천타마와 갈림박씨가 정명수를 대동하고 한성에 들어왔다. 황제즉위축하 사절이다. 천타마가 편전(便殿)에서 인조를 접견하고 조칙을 전달하였다.

"황제의 자리는 오랫동안 비워둘 수 없다 하여 짐을 추대하므로 부득이 황제에 즉위하고 연호를 순치(順治)로 하며 대사면을 내리고 새로운 정사를 펴노라."
즉위교서는 의외로 간단하고 짧았다. 이어 칙서를 발표했다.

"연례로 바치는 예물은 다 민간에게서 나오는 것이므로 그 괴로움을 염려하여 특별히 헤아려 그 양을 줄인다. 또한 짐이 듣건대 사신이 얻은 예물이 너무 많아 백성이 견뎌내지 못한다고 하니 이는 선정이 아니다. 모두 명나라의 전례로 인한 악습이다. 그러므로 특별히 그 수량을 감하여 이를 정례로 삼도록 한다. 방기(房妓)와 응견(鷹犬)은 혁파한다."

그동안 조선 사신으로 나가려고 계파 간 암투를 벌였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만주벌판을 말 달리던 여진족은 세계의 상품이 모이는 명나라의 명품을 접할 기회가 전무했다. 하지만 조선에 나가면 진귀한 물건들을 바리바리 내놓으며 머리를 조아린다. 그러니 서로 사신 길에 나서려고 했던 것이다.  

"너희 조선은 동쪽의 번진(藩鎭)으로 황제를 극진히 모시는 나라다. 왕은 대국을 예로써 섬기어 항상 충성을 바치니 짐은 소국을 인애로써 사랑하여 또한 진심으로 고맙게 여긴다. 왕은 직책을 수시로 닦아 한강의 지주(砥柱)로 바로 설 수 있도록 하고 충성을 날로 쌓아 길이 기전(箕甸)의 장성이 되도록 하라."
청나라에 충성하여 한강의 주인노릇 하라는 것이다.

"경중(京中)에 구금된 조선 사람들은 이미 사면하였고 최명길과 김상헌의 죄는 용서할 수 없으나 모두 관대하게 석방하도록 허락하였다. 의주에 감금되었던 신득연· 조한영· 채이항· 박황을 사면하며 도망갔던 임경업의 족속도 다 석방하여 고향으로 돌아가게 하노라."

홍타이지의 죽음이 최명길과 김상헌에게 행운으로 돌아온 것이다. 북관에 갇혀 있던 최명길과 김상헌은 석방되었으나 집에는 돌아가지 못하고 관소에 유치되었다.

세자와 세자빈의 일시귀국을 허락 한다

섭정왕 도르곤이 소현을 황궁으로 초치했다.

"세자의 일시 귀국을 허락하오."
"황공하오나 빈궁이 수년 동안 타향에서 임금의 안부를 살피지 못한 지가 오래 되었고 부친의 상을 당하였는데도 달려가 곡하지 못하고 있으니 인정이나 사리로 보아 뭐라고 형용할 수 없습니다."

"빈궁의 부친상에 대한 얘기는 들었는데 번잡한 일이 한꺼번에 터져 내가 깜빡했소. 함께 다녀오도록 특별히 허락하오."

소현은 뛸 듯이 기뻤다. 압록강을 건너 고국으로 돌아간다. 그것도 사랑하는 빈궁과 함께, 너무 좋은 일이다. 세자 일시귀국이 허락되었다는 심양장계를 받은 인조는 대소신료와 비국당상을 불러 들였다.

"섭정왕이 세자를 귀국시키겠다고 하는데 진의가 무엇인가?"
"특별한 뜻이 없을 듯 합니다. 저들이 말을 꺼냈으니 우리 쪽에서 그에 응답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영의정 심열이 적극성을 보이자고 주장했다.

"대신들도 다 그렇게 생각하는가?"
"섭정왕이 생색을 내려고 한 듯합니다."
좌의정 심기원은 도르곤의 속이 보이지만 환영할만한 일이라고 말했다.

"섭정왕이 성의를 보이는데 이는 우리에게 은혜를 심어주기 위한 것으로 별다른 문제가 없을 것입니다."
우의정 김자점이 머리를 조아렸다.

"여러 경들의 생각도 그러한가?"
"저쪽에서 먼저 말을 꺼냈는데도 우리 측에서 청하지 않으면 저들은 우리를 의아하게 생각할 것 입니다."
이경증과 정태화가 아뢰었으나 인조는 반기는 기색이 아니었다.

세자를 내보내고 나를 들어오라 할까봐 걱정이다

"청나라 사람이 나에게 청나라에 들어오라고 요구한 것은 홍타이지 때부터 있어왔다. 내가 병이 들었다는 것으로 저들을 이해시켰기 때문에 강요하지 않았다. 그런데 섭정왕은 나이가 젊고 강퍅하다고 하니 그 뜻을 어찌 헤아릴 수 있겠는가? 예전에는 세자에 대한 대우를 박하게 하다가 이제는 오히려 지나치게 후하게 한다 하니 나는 의심이 없을 수 없다."
물을 끼얹는 말이다. 대소신료들의 숨소리마저 잦아들었다.

"성상의 분부가 이러하시니 신하가 어찌 감히 청하겠습니까."
영의정 심열이 한 발 물러섰다. 다 같이 경사스럽게 받아들여야 할 세자 귀국을 임금이 저렇게 생각하고 있을 줄을 미처 몰랐다.

"저들이 좋은 뜻으로 내보낸다면 세자와 대군을 다 돌려보낼 것인데 중한 것을 포기하고 가벼운 것을 취하는 것은 무슨 뜻인가?"
세자를 내보내면서 원손과 인평대군을 들여보내라 하는 것은 세자에게 막중한 역할을 맡기려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섭정왕은 아직도 우리나라를 의심하여 반드시 이런 조치를 취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김자점이 나름대로의 분석을 내놓았다.

"만약 그렇다면 저쪽에서 내보내면 그만인데 우리의 말을 기다릴 게 뭐가 있겠는가? 이와 같이 변수가 많으니 아무리 좋은 말을 들어도 도리어 의혹이 생긴다. 활에 한번 상처를 받은 새는 으레 이런 법이다."

"이제까지 성상의 분부는 항상 이것을 가지고 염려하시는데 신은 그렇지 않다고 봅니다. 세자께서 나온 뒤에 만약 뜻밖의 변이 있다면 군신 상하가 어찌 손을 묶어두고 그들이 하는 대로 놓아둘 수 있겠습니까."
김자점이 말했다.

"세자가 나온다면 혹시 원손(元孫)이 대신 들어갈 우려가 없지 않다고 하니 매우 걱정스럽다."

세자의 영구 귀국은 청하지 말라

"세자께서 돌아오는 것은 우리나라의 막대한 경사입니다. 신이 이제 곧 심양에 갈 예정인데 정명수가 만약 신으로 하여금 섭정왕에게 영원히 귀국하게 해달라고 청하게 한다면 신자의 분의(分義)상 감히 청하지 않을 수 없는데 어떻게 조처해야겠습니까?"
김자점이 자신의 운신의 폭을 타진했다.

"정축년에 산성에서 맺은 조약 가운데 국왕이 유고한 뒤에 세자를 보낸다는 말이 있다. 아직 유고라는 사태발전이 없지를 않은가? 결코 청할 수 없다."

인조는 청나라에 대한 의심과 두려움이 있었다. 칼바람이 부는 삼전도 들녘에서 삼배구고두를 행한 이후 마음에 자리 잡은 병이다. 청나라가 세자를 내보내고 자신을 불러들이지나 않을까? 전전긍긍했다. 심양 입조(入朝)는 상상만 해도 경기(驚氣)가 날 지경이었다.


태그:#소현세자, #도르곤, #김상헌, #최명길, #심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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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事實)과 사실(史實)의 행간에서 진실(眞實)을 캐는 광원. 그동안 <이방원전> <수양대군> <신들의 정원 조선왕릉> <소현세자> <조선 건국지> <뜻밖의 조선역사> <간신의 민낯> <진령군> <하루> 대하역사소설<압록강>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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