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오후, 창녕 오일장에 나가 봤다. 포근한 날씨 때문인지 사뭇 붐볐다. 팍팍한 가을가뭄에도 싱싱하게 잘 자란 푸성귀들이 속속 고갤 내밀고 반긴다. 시골 오일장에서 가장 친근하게 만나는 풍경들이다. 하지만 오늘은 평소와는 유다른 모습들이 눈에 선하다. 과일 행상들이 줄을 이었다. 시장바닥 한쪽을 차지하고 있는 사과 배는 색깔도 좋을 뿐만 아니라 알맹이도 굵다. 근데도 한 봉지 3천원, 한 상자에 만원이다. 지난 추석무렵에는 한 상자에 4,5만원 이상이었다.
시장 초입에 사과를 맛보기로 내놓아 그것을 한 점을 집어 드는데, 때뜸 상인이 말문을 열었다. 하루 종일 팔아봤자 남는 게 없다는 볼멘소리가 크다.
"올해 과일은 졌어. 사과든 배든 가격이 너무 싸서 재미가 없어.""왜 그런지 알아요? 추석이 너무 빨리 들어서 그래요." "이까짓것 한 차 다 팔아봐야 기름값 제하고 나면 남는 거 없어, 헛장사야."과일행상을 하는 자기네들도 별 이윤을 남기지 못한다고 했다. 그 이유는 추석이 빠르게 지났고, 이제 출하가 시작되는 과일량이 너무 많기 때문이라고 했다.
풍작이지만 애물단지가 되어버린 과일들"더구나 올해는 아직까지 태풍이 안 오고, 수확기에 비도 안 와서 과일이 풍작이지. 그렇지만 다 좋은 것만은 아니야. 추석을 즈음해서 대부분 소비가 됐어야 했던 과일이 이제 출하되니 올해 수확량 모두가 처치 곤란할 지경이야."옆자리에서 배를 팔고 있는 상인이 말을 거들었다. 그는 나주에서 배를 떼다 파는데 너무 헐겂이라 기름값에도 미치지 못한다며 마른담배를 연거푸 빨아댔다.
"우리 같은 과일행상들도 이런 형편인데, 정작 과수농민들은 울상이지. 잘 익은 과일을 그대로 매달아 놓은 형편은 못되고 울며 겨자 먹기로 일손을 사서 애써 따지만 정작 과수농민들은 손에 쥐는 돈이 없어. 과일 풍작인데도 도리어 애물단지가 돼버린 거지." 신세타령을 하는 것은 그뿐만이 아니다. 채소도 마찬가지다. 한 아름의 총각무가 천원, 장딴지만한 무 한 개, 대파, 쪽파 한 단이 역시 천원이다. 단돈 만원으로 시장바구니 가득 채우고도 남았다. 이와같은 현상은 농투성이들한테는 최악이다. 시장바닥에서 천원 정도의 구실밖에 못하는 생물이라면 산지 논밭에서는 거의 '똥값'이었을 따름이다.
햇곡식이 나왔다. 잘 여문 올해 벼로 찧은 '햅쌀', 알맹이 굵은 '햇콩', 조며 수수, 고구마도 자리를 잡고 앉았다. 싸전에는 아직은 묵은 쌀이 대종을 이루고 있는데, 묵은쌀 한 되는 3500원, 햅쌀은 4000원에 거래되었다. 또 햇찹쌀은 6000원, 햇콩은 한 되 6500원으로 제값을 받고 있다고 한다.
쌀과 콩, 고추마늘은 제값 받아시장을 한 바퀴 휘돌아보면서 갖가지 먹을거리들을 챙겨보니 유독이면 과일만 푸대접이었다. 그나마 햇고추와 마늘은 겨우 제값을 받는 형국이었다. 안타까운 것은 죽자고 일만했던 농민들이다. 결과를 보아도 정작 종자값에다 비료값, 농약 품삯을 제하고 나면 손에 남는 게 없기 때문이다.
이제 시골 오일장에도 먹을거리에 대한 생산지 표시가 정착되어 있다. 채 쌀 한 말, 비닐봉지에 담긴 콩이 두어 되 돨까말가 한데도 원산지 표시를 해 두고 있다. '멜라민' 우려 때문에 그만큼 수입식품에 꺼리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리라.
오일장에도 생산지 표시가 정착 돼시장 곳곳마다 농산물은 당연하고 생선들도 모두 원산지를 이름표처럼 달고 있다.
"이거 국산 맞아요?"이렇게 물었다가는 호통을 당한다. 눈뜬 당달봉사 취급받기 십상이다. 상인들 제각각 국산을 팔고 있다는 '자긍심'이 대단했다. 예전 같으면 뻔히 눈 뜨고 만져 보면서도 국산인지 수입산인지 가늠을 못해 꺼림칙했는데 이제는 그런 의구심은 아예 붙들어 매두어라는 지청구다.
"우리 가게에는 국산 아니면 안 팔아요."당연한 얘기지만, 그만은 물건들이 죄다 국산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이제껏 안전 먹을거리라 생각했던 것들에 너무나 많이 속아본 경험 탓이다. 그렇지만 언제나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상인들의 결의에 찬 말을 믿을 수밖에는 별도로 없는 까닭에 어머님과 함께 시장가서 총각무 한 단과 콩나물, 고등어 네 마리를 끊었다. 톳과 바지락 3천어치도 샀다. 모처럼 시장구경, 그러나 별달리 살 게 없었다.
살이 통통하게 오른 고등어가 두 마리 천원, 네 마리를 샀다. 굵은 소금에 절였다가 '고갈비'를 해 놓으면 그맛이 먹어보지 않은 사람을 모르리라.
굵은 소금으로 충분하게 간절인 갈치꾸러미, 볏짚으로 단을 묶듯 묶어놓았다. 이런 풍경은 창녕 오일장이 아니면 쉽게 볼 수 없는 풍경이리라.
오후 5시, 어스름이 든다. 그런데도 좌판에 펼쳐놓은 물건들은 이가 덜 빠졌다.
"많이 팔았어요?""아니, 툴툴 털어봐도 6만원어치 밖에 못 팔았어."그는 지난 칠년 동안 면식을 트고 지내는 창녕 장마당 터줏대감이다. 아직 자기 가게를 얻지 못해 그날그날 시세에 따라 각종 푸성귀를 떼다 팔고 있다. 하루 종일 애를 써도 2만원 벌이가 힘든단다. 그렇게 장마당은 걷히고 있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다음미디어 블로거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