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면 우리의 가슴을 설레게 하는 이미지가 많다. 그중에서 '가을 여행'이라는 말에는 듣는 이의 마음까지 아련하게 만드는 무언가가 있다. 그래서 가을 여행을 떠났다. 설악을 뒷산으로 푸른 동해바다를 앞마당으로 여기며 도시를 형성한 강원도 속초였다.
그대, 혹시 이 가을 청호동에 가본 적이 있는지...지난 추석 연휴가 시작될 즈음 나는 속초에 있었다. 어딘가를 향해 가을 소식을 전하고픈 청명한 가을날이었다. 그로부터 일주일이 지난 9월 21일(일)에도 속초에 있었다. 나는 속초 하늘의 청명함과 푸른 바다를 뒤로 하지 못하고 다음 날인 월요일까지 속초에 머물렀다.
오래 전 나는 속초에 오면 중앙로에 있는 생선구이집에서 꽁치와 도루묵구이로 소주를 마셨으며, 어느 날은 동명항으로 가서 자연산 회를 먹으며 어둠이 내릴 때까지 출렁이는 바다를 바라보곤 했다.
바다를 지켜 보는 일도 심드렁해지면 버스를 타고 설악으로 갔다. 설악의 정상인 대청봉을 밟아 보는 것 또한 애초 목적이 아니었으니 비룡폭포 계곡에 발을 담그고 싸구려 포도주를 병째 홀짝거리거나 좀 더 다리 걸음을 한다면 계조암에서 땀을 식히고 하산하는 것이 전부였다.
속초와 인연이 있는 시인이 많다. 설악산 시인인 고 이성선 시인이 있고, 이상국, 함성호, 고형렬, 최영미, 박설희, 김창균 시인 등등. 많은 시인, 소설가들이 속초와 인연을 맺고 있지만 속초는 아직 문향이 풍기는 도시가 아니었다.
문향보다는 뱃사람들의 땀 냄새와 생선을 손질할 때 나는 비릿함이 더 친근하게 다가오는 속초는 산보다 바다를 삶의 터전으로 살아가는 도시였다. 산과 바다를 함께 품고 있는 땅인 속초에서 나는 내 삶의 근원을 찾지 못해 자주 혼란스러워 했다.
이번 여행에서 내 더딘 발길을 이끈 것은 '갯배'와 실향민촌인 '아바이 마을'이었다. 속초에서 사람 사는 냄새가 가장 짙게 나는 청호동으로 가면 내 여행의 종점인 '갯배'와 '아바이 마을'이 있었다.
한국전쟁 전까지만 해도 속초는 북한 땅이었다. 전쟁이 벌어진 후 남한엔 설악산만큼은 반드시 되찾아야 하는 절박감이 있었다. 치열한 전투 끝에 설악산은 남한이 차지했고, 비로소 속초는 남한 땅이 될 수 있었다.
해방 후엔 북한 땅, 한국전쟁 후엔 남한 땅이 된 속초연합군은 내친김에 금강산까지 밀어붙였다. 그러나 북한도 명산인 금강산만큼은 반드시 지켜야 했기에 필사적으로 막았고, 결국 그 일은 성사되지 못했다.
해방과 함께 느닷없이 그어진 38선으로 인해 속초는 5년간을 북조선인민민주주의공화국 백성으로 살았다. 그러다 한국전쟁으로 그들은 대한민국 백성이 되었다. 속초에 터를 잡고 살던 이들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진행된 일이었다.
그래서였을까. 속초는 군사정권 시절까지만 해도 불온의 땅이었다. 그중에서도 '아바이 마을'은 감시의 대상이기도 했다. 역사가 만들어낸 아픔은 그렇게 시작되었고, 그 비극은 지금까지 진행형이다.
속초 앞바다에 섬처럼 떠있는 아바이 마을은 전쟁이 나자 함경도 사람들이 내려와 정착한 땅이었다. 곧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으리라 생각했지만 그 뜻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들은 모래밖에 없는 청초호 사구에 비가림막을 치고 보따리를 풀었다.
아바이 마을은 그렇게 탄생했다. 함경도 말로 아버지라는 뜻의 방언인 '아바이'는 정겹다 싶지만 어쩐지 고향을 그리는 간절한 소망이 들어있는 말이 되어 버렸다.
속초 도심은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있지만 아바이 마을은 예전 그대로이다. 지붕 낮은 집들이 올망졸망 어깨를 나란히 하고 모여 있는 아바이 마을은 아직 1970년대 풍경을 간직하고 있다. 그곳에 사는 이들이야 불편함이 크겠지만 모든 것이 변했을 때 변하지 않은 것을 만나면 여행자는 추억의 끝자락을 만난 듯 반갑다.
어릴 적 뜻하지 않게 생긴 10원짜리 동전을 들고 뛰어가던 구멍가게도 여전했다. 지금 그 집은 몇 해 전 방영된 드라마 <가을동화>의 은서네 집이 되었다. <가을동화> 촬영지로 유명세를 탓던 아바이 마을이지만 한 시절의 유명세는 그저 추억의 한페이지가 되어 아련한 사랑이야기로 남았다.
아바이마을엔 한반도처럼 납작한 오징어가 있다은서네 집을 보기 위해 몰려들던 일본인 관광객도 발길을 끓은 지 오래되었다. 이제 아바이 마을을 지탱해주는 것은 '아바이 순대'와 '갯배'뿐이다. 아바이 마을 사람들이 그야말로 먹고 살기 위해 만들기 시작한 아바이 순대와 속초 중심가로 갈 수 있는 갯배는 이 지역의 역사이다.
아바이 마을에 가면 함경도식으로 만든 '아바이순대'를 파는 집이 아직 여럿 있다. 가자미 식혜와 함께 먹어야 제 맛을 느낄 수 있는 아바이 순대에는 아바이마을 사람들이 간직한 아픔이 다 들어있다. 그 뜻을 알았을까. 은서네 집 앞에 있는 순대집 벽엔 <가을동화> 촬영지를 왔다가 들렀던 사람들이 남긴 사연들로 빼곡하다.
혹시 청호동에 가본 적이 있는지집집마다 걸려 있는 오징어를 본 적이 있는지오징어 배를 가르면원산이나 청진의 아침 햇살이퍼들쩍거리며 튀어 오르는 걸 본 적이 있는지그 납작한 몸뚱이속의 춤추는 동해를 떠올리거나통통배 연기 자욱하던 갯배머리를 생각할 수 있는지눈 내리는 함경도를 상상할 수 있는지우리나라 오징어 속에는 소줏집이 들앉았고우리들 삶이 그 보편적인 안주라는 건 다 아시겠지만마흔 해가 넘도록오징어 배를 가르는 사람들의 고향을 아는지그 청호동이라는 떠도는 섬 깊이 수장당한 어부들을 보았거나신포 과부들의 울음소리를 들어본 적은 없는지누가 청호동에 와새끼줄에 거꾸로 매달린 오징어를 보면서납작할 대로 납작해진 한반도를 상상한 적은 없는지혹시 청호동을 아는지- 이상국 시 '청호동에 가본 적이 있는지' 전문속초를 시밭으로 하여 시를 일구고 있는 이상국 시인은 '새끼줄에 매달린 오징어를 보면서 납작해진 한반도'를 보았다. 분단의 원인을 제공한 강대국이 여전히 대한민국을 흘금흘금 바라보는 요즘인지라 시인이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금방 알아차리겠다.
거리를 누비며 오징어를 팔고있는 트럭행상에서는 전혀 짐작할 수 없는 '납작해진 한반도'의 출발과 끝은 '청호동 아바이마을'이다. 남과 북이 첨예하게 대립할 때마다 도끼눈을 뜨고 지켜봤던 아바이마을. 지난 세월 그 마을에 사는 사람들이 겪었던 일상사는 집채 만한 파도보다도 무서운 일이었다.
은서네 집을 지나면 갯배를 타는 곳이 나온다. 무동력선인 갯배는 일종의 멍텅구리배다. 속초 사람들은 청초호를 오가는 갯배를 타고 바다 구경을 나갔다 도심으로 들어오지만, 아바이마을 사람들은 순대나 돈이 될만한 것들을 갯배에 싣고 속초로 나갔다 돌아왔다.
<가을동화>로 유명세 탄 아바이마을의 명물은 '갯배'와 '아바이순대'철없는 어린 것들은 속초로 나간 어미를 기다리다 '갯배 아이들'이 되었고, 그 아이의 아이들은 이제 함경도 사투리를 쓰지 않는다. 모든 게 추억이 되어 버린 세상이지만 북쪽에 가족과 고향을 둔 어르신들만큼은 지난 세월을 추억하지 않는다.
아바이 마을 사람들에게 속초 시내로 갈 수 있는 지름길인 갯배의 승선료는 200원이다. 하지만 하루 몇 차례나 갯배를 이용하는 지역 주민들은 1년에 한 번씩 셈을 치른다.
드라마 <가을동화>에 나왔던 갯배는 아바이순대에 이어 속초의 명물이 되었다. 동력이 없는 갯배는 배를 이용하는 사람이 쇠줄에 걸려있는 갈고리를 끌어 당겨 배를 건너야 한다. 혼자 힘으로는 배를 끌기에 어림도 없다.
떠나는 시간이 따로 없는 갯배는 바쁘면 혼자라도 건널 수 있는 무정기 노선이다. 청초호를 오가는 갯배는 모두 2대. 갯배는 쇠줄로 연결되어 있으며 두 대가 왕복 교차를 하며 다닌다. 35명이 정원이라지만 관광객들이 몰려 오기 전에는 두어 사람을 실어 나를 때도 많다.
갯배는 청호동과 중앙동을 이어주는 교통 수단으로 우리나라에선 보기 드문 장면이라 연인들의 걸음이 꾸준히 이어진다. 100여 미터 남짓한 갯배 나들이는 여행자에겐 색다른 체험으로 다가온다. 비가 오는 날이면 주변의 풍경과 어우러져 퍽 이국적인 풍경이 연출된다.
지금도 "아바이, 갯배 타고 으디 다녀옴메?"라는 구수한 함경도 사투리를 들을 수 있는 속초의 청호동 갯배 부둣가에 가면 굴곡진 현대사의 아픔을 수레에 싣고 다니는 우리의 '아바이'들을 만날 수 있다.
음악을 실은 유람선이 꼭 고향으로 가는 배처럼 보인다는 이바이마을 사람들. 갈매기들은 먹이를 던져주는 유람선을 따라 날고 갯배엔 힘겹게 살아온 아바이들의 시름만 파도되어 출렁거렸다.
청초호를 가로 질러 바다로 빠져 나가는 유람선이 보이지 않을 즈음에야 출발하는 갯배. 그 갯배에 실린 우리네 상처가 가을빛으로 물들어 가는 현장엔 '가을동화'는 없고 오징어처럼 납작해진 한반도와 그 사이에 섬처럼 떠 있는 아바이마을의 '아바이'들만이 있을 뿐이었다.
혹시, 어느 해 가을이라도 아바이마을이 있는 청호동에 가본 적이 있는지. 그리하여 집집마다 걸려 있는 한반도 같이 납작한 오징어를 본 적이 있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