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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대학교를 휴학한 지 한 달이 훌쩍 넘어버렸다. 처음 휴학을 결정할 때는 내 결심이 퍽이나 특별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 9월의 대단한(?) 결심은 온데간데없고 10월의 썰렁함만이 남아버렸다. 졸업을 한 학기 앞두고 했던 휴학 결정이니만큼 하루도 빠짐없이 알차게 보내겠다고 다짐을 했지만, 역시나 작심 한 달인 모양이었다. 초심은 생각만큼 잘 유지되고 있지 않았다. 

'아아, 도대체 26살. 가을에 이렇게 공부만 하고 있어야 하는 거야?'

휴학 남(男)의 비애라는 게 바로 이런 것인 모양이다. 시간에 쫓기고, 현실에 치이고, 그러다 꿈조차 잃어버리고 말 것 같아 불안한 시간의 연속들. 머릿속은 빙빙거린다. 정확히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명확한 기준을 잡지 못한 방황하는 내 모습을 본다. '내 나이 26살. 나는 지금 뭐 하고 있지?'라는 푸념. 26살의 소중한 시간은 급류처럼, 숨 쉴 틈을 주지 않고 흘러간다.

내 인생도 CF처럼 빛났으면 좋겠다

 나의 26살이 항상 빛났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말처럼 쉬운게 아닌것 같다.
나의 26살이 항상 빛났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말처럼 쉬운게 아닌것 같다. ⓒ 곽진성

문득 여느 커피 CF 광고가 생각난다. 멋진 남자 배우가 나와 빛나는 20대의 인생 스토리를 줄줄 말하는 내용이 머릿속을 훑고 지나간다. 그 광고에 의하면 남자 나이 27세에는 20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28세 때에는 세 번째 이별을 경험한단다. 게다가 29세 때는 화려하게 아듀 20대를 외친다나, 뭐라나. 하여튼 그 광고처럼 내 인생도 그렇게 빛났으면 좋겠다는 소박한 바람이 든다.

그런데 불현듯 스친 생각 하나. 그렇게 성공하려면! 도대체 26살에는 무엇을 해야 한단 말인가? 20대의 스토리를 쭉 나열하는 그 광고에서조차 26살의 이야기는 실종되어 있다. 그렇기에 힌트라도 주면 좋으련만…, 뉘앙스조차 엿보이질 않으니 안타까운 일이다. 왜일까? 나는 혼자 뾰로통하게 생각하다 결국 나만의 결론을 이끌어 냈다.

'흥, 보나 마나 휴학하고 죽어라 공부나 하고 있었겠지!'

그리고선 실없이 웃어버렸다. 뭐, 비단 휴학이 아니더라도 우리 나이대에 취업을 위해 도서관이든, 집에서든, 아니면 유학을 해서든 공부를 하는 젊은이들이 많은 것이 사실이니깐, 그렇기에 남자 나이 26살의 화두는 역시 공부와 취직이 맞는 것 같다. 다른 것을 생각했다간 26살의 남자에겐 분명히 시간도, 열정도, 꿈도 남아나질 않을 것이다.

휴학男 VS 부케女 달라도 너무 달라!

 20대 중반을 달리는 남녀의 자세
20대 중반을 달리는 남녀의 자세 ⓒ 곽진성
그런데 주목하시라. 얼마 전 재밌는 사실 하나를 발견했다. 20대 중반을 달리는 남자, 여자의 가치관은 많이 다른 모양이다.
27살의 친누나와 대화를 하면서 서로 관심사가 참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다.

남자들이 주로 휴학, 취업에 몰입하고 있는 반면, 누나와 누나 친구들의 관심은 전혀 다른 데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결혼'이었다(물론 안 그런 사람들도 있겠지만;;).

그러고 보니 요즘 누나 친구들의 결혼식이 부쩍 늘었다. 결혼한다면서 청첩장을 보내온 경우도 여러 번이었다. 그래서일까? 요즘 누나가 친구들 결혼식에 다녀오는 횟수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 얼마 전에는 결혼식장에 참여했다가 신기한 선물(?)을 받아오기까지 했다. 바로 인생에서 한 번 받는다는 '부케'였다.

그런 모습을 보며 20대 중반의 남녀 차이를 깨닫게 된다. 남자는 휴학과 취업에 바쁜 시기지만, 여자는 부케와 결혼 준비에 여념 없다. 물론 모든 이들이 그렇지는 않겠지만, 분명히 내 주변에는 결혼준비에 바쁜 사람들이 넘쳐나고 있었다.

 부케받은 누나
부케받은 누나 ⓒ 곽진성

그래서일까? 26살의 휴학 남(男)과 27살의 부케 여(女)가 달라도 너무 다르다는 것을 실감한다. 부케를 받고 즐거워하는 누나를 보며 내가 뾰로통하게 물었다.

"누나 친구들은 왜 벌써부터 결혼을 하고 그래? 취직해야 할 시기 아니야?"
"애가, 뭔소리 하는 거야. 내 친구들 20대 중반이잖아. 취직은 옛날에 다 했고, 요즘은 다 결혼 준비하고 있단다."

나는 그 말이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아니 겨우 20대 중반이잖아(>_<+)"

그랬더니 누나 하는 말.

"야! 벌써 20대 중반인 거야!(ㅡ_ㅡ;)"

역시 남녀의 차이란 무서운 모양이다. 20대 중반을 달리는 남녀의 자세가 이토록 다르니까 말이다. 어찌 됐건 20대 중반 남자 휴학생에게, 20대 중반 여자들이 당연하게 느끼는 결혼이란 것은 너무나 멀게 느껴진다. 나는 아직 취업 공부에도 벅찬 어린 애인데, 누나는 이미 어른이 다 된 것 같으니 말이다.

휴학 男 VS 부케 女의 썰렁한 일상

 누나 책상 위에 놓여져 있는 부케, 100일 동안 가지고 있어야 한단다.
누나 책상 위에 놓여져 있는 부케, 100일 동안 가지고 있어야 한단다. ⓒ 곽진성

시간은 흘러 흘러 10월의 어느 평일 아침.  가족들은 일터에 나갔다. 난 혼자 남은 방안에서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러다 문득 옆의 누나 책상을 보았다. 그런데 별안간 눈앞에는 반짝반짝 빛나는 것이 하나 등장했다. 바로 낯설기 짝이 없는 그 부케다.

부케란 녀석과는 안 좋은 추억이 있다. 얼마 전, 방 분위기와 맞지 않아서 그 부케 꽃(?)을 버리려다가 엄마랑 누나한테 된통 혼난 적이 있는 것이다. 글쎄 부케는 100일 동안 방에 두었다가 태우는 거라나 뭐라나? 하여튼 내가 그런 것을 알 리 없지 않은가?

그런데 나와는 달리 엄마와 누나는 결혼과 관련된 일에 있어서 척척박사다. 20대 중반의 여자에게 결혼이란 것은 결코 어색하지 않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실감하게 된다.

엄마는 요즘 누나에게 결혼과 관련한 이야기를 많이 한다. 누나한테, 월급을 좀 아껴서 나중에 결혼 때 쓰라고 핀잔을 주는 것이다. 그런데 나 같으면 괜한 잔소리라고 싫어할 텐데, 누나는 엄마의 조언의 꼭 필요한 것인 양. 군말 없이 받아들인다. 하긴 나도 공부 좀 열심히 엄마의 말에 달리 할 말은 없다.

엄마는 누나에게는 결혼 잔소리, 내게는 공부 잔소리를 하시곤 한다. 이렇게 우리 집. 휴학 남(男)과 부케 여(女)의 썰렁한 일상은 휴학 공부와 결혼 준비 사이를 오가고 있다. 나는 누나의 결혼이야기가 어색하고, 누나는 내 공부이야기가 낯선 모양이다. 서로에게 그 차이를 이해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극복할 수 없는 생각의 다름이 있기 때문이다.

"나 같으면 20대 중반에 결혼 안 해!"
"야! 나도 절대, 휴학하고 공부 같은 것 안 할 거야"

그래도 누나와의 대화를 통해 한 가지 깨달은 사실. 20대 중반의 휴학생의 내겐 다른 무엇보다 공부가 정말 더 필요하다는 것을 안 것이다. 왜냐하면 지금 당장 내게 결혼을, 연예를, 그렇다고 다른 무엇을 하라면 정말 어색할 것 같지만 공부 하나 만큼은 그래도 익숙한 일이기 때문이다. 뭐 어쨌든 누나가 부케 100일째를 기록해 놓을 때 나도 슬며시 기념일이나 하나 적어 놔야겠다. 휴학 100일째를 기념하는 기록 말이다.


#부케#휴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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