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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5회 서울국제미디어아트비엔날레' 주제인 '전환과 확장' 표어가 붙은 서울시립미술관 전시장 입구. 아래는 '서울 국제미디어아트비엔날레 자료전'이 열리는 1층 자료실.
'제5회 서울국제미디어아트비엔날레' 주제인 '전환과 확장' 표어가 붙은 서울시립미술관 전시장 입구. 아래는 '서울 국제미디어아트비엔날레 자료전'이 열리는 1층 자료실. ⓒ 김형순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전환과 확장(Turn and Widen)'이란 주제로 '제5회 서울 국제미디어아트비엔날레(미디어_시티 서울 2008)'가 11월 5일까지 열린다. 5대륙 26개국 66팀 80명(국내 11팀, 해외 55팀) 작가들의 다채로운 미디어작품을 선보인다. 이 전시는 2000년에 처음 생겨 2년마다 열리고 있는데 올해가 5번째다.

이번 전은 공감각성이나 현실과 가상이 혼재되는 미디어아트를 엿볼 수 있었고 창조의 근원으로서 '빛'과 과학과 예술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소통'과 공간도 넘어서는 '시간' 등도 생각해보게 하는 전시였다.

미디어아트의 등장으로 이제 미술은 손이 아니라 인공두뇌를 가진 기계로 그린다. 이런 면에서 개념미술을 창시한 마르셀 뒤샹은 선각자이다. 기계의 기술과 인간의 솜씨 중 어느 것이 나은가 경쟁할 판이다. 이렇게 이미지의 가변성과 유동성이 가시화되고 있다.

이번 전을 둘러보니 현대미술은 급속하게 달라지는데 사람들은 이를 좇아가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미디어아트는 연인들을 닮아 가는지 작품 앞에 다가가 다정하게 말을 걸고 반가운 표정을 지어주고 만지면 좋아한다.

미디어는 메시지이자 마사지이다

 카를로스 아모랄레스 I '헛된 의문' 애니메이션 8분 2006. 여기서는 그림을  무한대로 확장시키고 다채롭게 변주된다. 미디어아트는 이렇게 미술의 영역과 미적 경험을 확대시킨다
카를로스 아모랄레스 I '헛된 의문' 애니메이션 8분 2006. 여기서는 그림을 무한대로 확장시키고 다채롭게 변주된다. 미디어아트는 이렇게 미술의 영역과 미적 경험을 확대시킨다 ⓒ 김형순

캐나다 미디어학자 마셜 맥루언(1911~1980)은 미디어를 '메시지이자 마사지'로 보았다. 우리의 몸을 마사지하는 것 같은 메시지가 담긴 것이라니 참으로 흥미롭다. 그만큼 우리 삶과 밀착되어있고 또한 삶을 확장시켜준다는 뜻이리라. 예술도 디지털화되면서 요즘 작가들은 미술 프로그래머로 진화하고 있지 않은가.

미디어아트가 요즘 시들하다는 의견도 없지 않으나 이제 평면, 입면, 사진 등과 함께 확실한 미술장르로 자리 잡았다. 이 모든 것의 창시자는 물론 백남준이다. 그런 면에서 그는 21세기를 내다본 예언자이다. 우리에게 고정관념을 깨는 사고의 대전환이 요구된다. 이번 전의 주제가 '전환과 확장'인 것은 그런 면에서 뜻 깊다.

그림을 화폭이 아니라 모니터에 그리기

 C.E.B. 리즈 I 'T1(에디션 5)' 비디오영상설치 2004
C.E.B. 리즈 I 'T1(에디션 5)' 비디오영상설치 2004 ⓒ 김형순

여기 5대륙 작품 중 일부나마 감상해보자. 먼저 C.E.B. 리즈(1972~)의 'T1'의 작품, 접근하기 쉬워 좋다. 하지만 작가는 작품을 프로그램화하여 이미지로 변형하고 생성하는 과정은 결코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림을 정지된 화폭에 그린 것이 아니라 움직이는 모니터로 보여주고 있다.

이 작품은 화면이 주는 화려한 색채보다 더 큰 시각적 쾌감을 준다. 기계언어로 만드는 것이지만 색채의 체온을 느낄 수 있어 뜻밖이다. 마치 연못 속에 핀 연꽃을 떠올린다. 그리고 둥근 원형은 이 땅에 생명을 키우는 에너지덩어리 같다. 그리고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는다는 데서 이미 성공적이다.

침대로 삶과 죽음, 환생(윤회)을 말하다

 리 후이 I '환생(윤회)' 레이저설치 2007
리 후이 I '환생(윤회)' 레이저설치 2007 ⓒ 김형순

리 후이(1977~)의 '환생'은 스케일이 크고 소나기처럼 쏟아지는 강한 조명이 주변을 압도한다. 몽롱하게 반짝이는 불빛은 온통 주변을 환상적으로 물들인다. 실물인 침대가 놓여 있어 구체적이다. 만질 수가 있고 누울 수 있고 피부접촉(접촉성, 촉각성)도 가능하니 얼마나 좋은가.

작가는 침대를 매개로 평상시에 다르기 힘든 삶과 죽음과 환생(윤회)의 문제 등을 다룬다. 죽음에 대해 어쩌지 못하는 무기력한 인간, 그들에게 일어나는 현상을 침대로 대치시킨 것인가. 검붉은 연무 속에서 뜻밖의 환영이 보이고 신비한 환생이 이뤄지는 것 같다.

인공자연 속에 와 있는 듯 마음이 편하다

 마이클 모리스·요시코 사토 I '빛의 샤워(Light Shower) 2번' 인터랙티브 설치 2008. 여기서 미디어미학자 진중권을 우연히 만났다.
마이클 모리스·요시코 사토 I '빛의 샤워(Light Shower) 2번' 인터랙티브 설치 2008. 여기서 미디어미학자 진중권을 우연히 만났다. ⓒ 김형순

이번엔 인기가 높은 마이클 모리스와 요시코 사토의 '빛의 샤워(Light Shower) II'에 눈길이 많이 간다. 가운데 탄생신화에 본 듯한 알 모양의 의자가 있다. 정말 앉고 싶고, 빛의 샤워도 받고 싶다. 여기서도 관객이 작품에 끼어들면 좋아한다. 애인의 얼굴을 만지듯 작품도 그렇게 만져주면 행복해 한다.

여기에 오면 인공자연 속으로 들어온 기분이다. 얼굴을 찌푸리는 사람을 없다. 하늘에 피어나는 뭉게구름도 보이고 시냇물소리도 들리는 그래서 몸과 마음을 내려놓고 쉴 수 있는 간이역 플랫폼 같다. 빛이 사람 피부에 센서처럼 작동한다. 그리고 빛의 샤워가 내는 영상과 음악이 관객을 마냥 홀린다.

물질만능과 정신소멸을 대조적으로 풍자

 홍동루 I '회전' 애니메이션. '정신적인 것' 복합매체설치 2007
홍동루 I '회전' 애니메이션. '정신적인 것' 복합매체설치 2007 ⓒ 김형순

타이완 작가 홍동루(1968~)의 앞면의 '회전'이라는 작품은 종이안경을 써야 작가가 의도대로 입체적인 맛을 본다. 뒷면의 '정신적인 것'이라는 작품은 베르사유 궁의 '거울의 방'을 연상시킨다. 이런 제목을 붙인 걸 보면 틀림없이 어떤 메시지가 담겨 있다.

전시자료에 이 작품은 대량소비사회에서 정신적 가치의 소멸을 풍자한 것이라는 적혀있다. 이를 보니 갑자기 화려한 플라스틱 꽃이나 인공식물이 우리생활과는 동떨어져 보인다. 우리가 이런 현란함에 쉽게 길들여지고 눈과 귀가 먹는 모양이다. 하여간 이 공간은 매혹적이라 관객을 오래 잡아둔다.

인공날씨를 조절케 하여 관객에게 즐거움 선물

 이준 I '한 병의 일기(日氣)' 인터랙티브 설치 2008
이준 I '한 병의 일기(日氣)' 인터랙티브 설치 2008 ⓒ 김형순

이준(1900~)의 '한 병의 일기(日氣)'는 관객이 참여로 가상날씨가 그려지는 인터렉티브 아트다. 오른쪽에 병 같은 것은 하나의 인터페이스(접촉장치)로 관객이 왼쪽 날씨판에 올려놓고 흔들면 그것이 요술방망이처럼 작동하여 우주도 같은 기상도를 볼 수 있다. 반응이 바로바로 오기에 관객들은 소외감이나 지루함을 느낄 틈이 없다.

인간의 감정이나 기분을 은유한다고 볼 수 있는 가상날씨는 이렇게 병 속의 연산자와 첨단기술의 도움으로 작동된다. 여기서도 작품과 관객은 연인관계처럼 밀착되어 있다.

나와 또 다른 나(남)의 소통과 유대를 시각화

 마르쿠스 한센 I '타인의 감정 느끼다 3번' 2채널 비디오영상 5분 2006. 왼쪽이 작가다. 오른쪽 여자와 많이 닮아 보인다
마르쿠스 한센 I '타인의 감정 느끼다 3번' 2채널 비디오영상 5분 2006. 왼쪽이 작가다. 오른쪽 여자와 많이 닮아 보인다 ⓒ 김형순

이번에는 독일의 사진작가 마르쿠스 한센(1963~)의 '타인의 감정을 느끼다'를 감상해 볼까. 그의 비디오영상에는 작가의 사진과 함께 친구, 동료, 이웃사람들 심지어 가족까지 동원된다. 놀랍게도 서로 닮았는데 작가가 옆 모델과 비슷해지려고 부단히 애쓴 결과다. 작가는 이를 통해 다른 나를 보고 타인과 교감을 추구하고 있는지 모른다.

이런 감정이입은 한 인간이 이 세상에서 이웃과 어떻게 공존하며 또한 나의 존재를 확인하며 우리가 이 세상에 어떻게 살며 무엇을 남길 것인가를 묻게 한다.

사람이라면 친절, 배려, 존중을 좋아하지만 무시, 경멸, 면박은 싫어한다. 이렇듯 비슷한 점이 많지만 또한 다른 점도 그에 못지않게 많다. 다른 건 틀린 것이 아니고 아름다운 것이다. 작가는 이런 사람들의 같고 다른 점을 대비시키며 인간의 본질을 파헤친다.

관객이 작품 속 주인공으로 재탄생

 알렉세이 슐긴·아리스타크 체르니셰프 I '일렉트로부티크 수퍼-1' 고글(goggles) 2003-2008. 라파엘 로사노-헤머 I '폭발:그림자 상자4번' 80×104×12cm 2007
알렉세이 슐긴·아리스타크 체르니셰프 I '일렉트로부티크 수퍼-1' 고글(goggles) 2003-2008. 라파엘 로사노-헤머 I '폭발:그림자 상자4번' 80×104×12cm 2007 ⓒ 김형순

줄무늬 같이 보이는 알렉세이 슐긴·아리스타크 체르니셰프의 작품은 제목이 '수퍼-1'이다. 현실이 어떻게 가상으로 변환되는가를 한눈에 보여준다. 마이크로 칩이 탑재된 특수 안경인 '고글'을 착용하면 컴퓨터 없이도 관객의 모습이 어떤 색채와 윤곽으로 바뀌는지 볼 수 있다.

아래 '폭발'은 멕시코 출신으로 캐나다에서 작업하는 라파엘 로사노-헤머(1967~)의 작품으로 가상을 통해 현실을 더 현실처럼 보게 하는 것이 특징이다. 주변의 모든 것이 작가의 삶과 무관할 수 없듯이 불법이민의 문제도 작품에 반영된다. 이는 아마도 인간이 뭔가에 의해서 감시받고 있다는 강박증을 암시하는지 모른다.

다가가 안아주면 좋아하는 미디어아트

 뮌 I '인산인해' 비디오영상설치 51분 2005.'AES+F그룹' I '최후의 반란' 3채널 HD디지털애니메이션설치 19분 25초 2007(아래 오른쪽). 카를로스 코로나스 I '어디에도 없는' 장소특정적 네온설치 2007
뮌 I '인산인해' 비디오영상설치 51분 2005.'AES+F그룹' I '최후의 반란' 3채널 HD디지털애니메이션설치 19분 25초 2007(아래 오른쪽). 카를로스 코로나스 I '어디에도 없는' 장소특정적 네온설치 2007 ⓒ 김형순

이번엔 뮌(1972~)의 '인산인해'를 살펴보자. 제목과 달리 깃털 달린 웅장한 두 흉상만 보인다. 많은 사람을 쌓아올린 것인가. 군중 속 소외감도 느껴진다. 또 옛 동구권의 동상도 연상된다. 겉으론 그럴듯하게 보여도 속은 텅 빈 것 같다. 현대인의 우상화 부추기기 속성을 비꼬고 있는 것인가.

아래 오른쪽은 러시아 건축가, 디자이너, 패션사진가로 구성된 'AES+F 그룹'의 것이다. 물질만능주의가 만들어낸 현대사회의 일면을 가상화면으로 우습게 무찌르고 있다.

그리고 왼쪽은 카를로스 코로나스(1964~)의 '어디에도 없는'이라는 작품으로 성취여부에 관계없이 유토피아를 동경하며 그린다. 이를 이루어 보려는 작가의 열망은 휘황찬란한 네온 빛으로 빛난다. 우린 꿈 없이 현실만으로는 살 수 없지 않은가.

끝으로 화려한 색채, 우아한 동작, 현란한 음향의 복합체인 미디어아트를 무엇에 비유할 수 있을까. 다가가 다정히 안아주면 좋아하는 연인 같다고 하면 어떨까. 하여간 이런 멋진 미술과의 데이트를 한번 해볼 만하다. 입장료도 없고 사진도 실컷 찍을 수 있고 혹시나 이를 통해 자신의 꿈을 이룰 멋진 아이디어나 인연이 생길지 누가 알랴.

▲ 치우 안시옹의 애니메이션 작품 2006 치우 안시옹의 애니메이션 작품 2006 중국작가 치우 안시옹의 '남쪽으로의 비행'이라는 작품으로 기계 붓이 그림을 그리는 것 같다. 계절의 변화를 그리고 있으나 실제로는 중국역사의 격변기를 말하고 있다.
ⓒ 김형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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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서울시립미술관 http://www.mediacityseoul.or.kr. 이 사이트에 들어가면 작품해설이 상세하고 제1회부터 제5회까지 작품을 다 볼 수 있다. 입장 무료. 사진촬영 가능. 평일 9시까지. 주말 7시까지. 월요일 휴관.



#서울국제미디어아트비에날레#마샬 맥루언#인터렉티브 아트#미디어아트#백남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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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중 현대미술을 대중과 다양하게 접촉시키려는 매치메이커. 현대미술과 관련된 전시나 뉴스 취재. 최근에는 백남준 작품세계를 주로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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