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감사는 기본적으로 입법부와 행정부 간의 전쟁이다. 즉, 행정부와, 행정부의 실정과 예산 낭비를 파헤치려는 입법부 간의 '총성 없는 전쟁'이다. 그 전쟁의 무기는 '자료'와 '증인'이다
그런데 행정부를 감시·견제하는 입법부 본연의 업무인 국정감사가 현 정부의 실정보다는 지난 정부의 실정을 겨냥한 정쟁·이념국감으로 치우치고 있다. 해마다 하는 국감의 감사대상 기한도 '지난 1년'이 아니라 '잃어버린 10년' 혹은 '좌파 정권 10년'에 맞춰져 있다.
국회 운영을 좌우하는 원내 다수당인 한나라당의 국감 전략이 그렇다. 한나라당 의원들은 국회의원 본연의 업무와는 동떨어져 상대적으로 정부를 감싸는 듯한 인상마저 준다.
'좌파정권 10년'을 조준한 정쟁·이념 국감홍준표 한나라당 원내대표는 5일 기자간담회에서 "과거 국감은 (국회의원 임기중에) 대통령 선거가 걸려 있었기 때문에 거의 '정책국감'이 아니고 '정쟁국감'이 되었으나 18대 국회만이 최근 유일하게 임기 중에 대선이 없어 여야가 격렬한 투쟁을 할 이유가 없다"면서 "이번 국정감사는 과거 국감과는 달리 정책국감이 되었으면 한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한나라당이 솔선수범해서 가능하면 정쟁국감을 지양하도록 상임위에 지시를 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이 말에 대해 국감을 앞둔 '립 서비스' 차원 이상의 의미를 부여하는 이는 많지 않다. 홍 대표의 본심은 어떨지 모르지만 의원들의 행태는 다르기 때문이다.
홍 대표의 말대로 17대 국회의 마지막 국감이었던 지난해 국감도 '정쟁국감'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ALL OR NOTHING'(전부 아니면 전무)이라는 대통령 선거를 앞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여당인 대통합민주신당은 이명박 한나라당 대통령후보를 흠집 내기 위해 국감장에 '화력'을 최대한 집중했다. 야당인 한나라당은 이 후보를 방어하는 데 급급했다. 당시 신당은 'MB 의혹'이 너무 많기 때문에 국감을 통해 진상을 규명하는 차원이라고 해명했지만 실제로는 지지도가 높은 이명박 후보를 흠집 내기 위한 치밀한 국감 전략의 일환이었다.
18대 국회의 첫 국감인 올해 국감에서는 국회가 현 정부보다는 과거 정부의 실정을 조직적이고 체계적으로 따지는 '기이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이는 그만큼 이명박 대통령의 지지율이 낮기 때문에 벌어진 양상이다. 즉, 과거 정부의 실정을 들춰내 현 정부의 실정을 감추거나, 현 정부의 실정이 누적된 과거 정부의 실책 때문이라는 인상을 주려는 것이다.
노무현 정부에 초점을 맞춘 '과거 지향형' 이념국감개천절 연휴를 앞둔 2일에도 국회 기자실에는 수십 건의 국감자료가 보도자료 형식으로 배포되었다. 그러나 한나라당 의원들이 배포한 국감자료는 대부분 노무현 정부에 초점을 맞춘 '과거 지향형'이다.
이를테면 한선교 의원(경기 용인 수지)은 "노무현 정부 시절 방송·문화·언론·관광·체육 부문의 교류사업비로 207억원이 투입되었음에도 일부 장비시설 지원의 경우 해당 부처에서는 그런 장비가 북한에 지원되었는지조차 알지 못하는 등 사후관리가 부실하다"고 비판했다. 한 의원은 심지어 "북한이 마음만 먹으면 (방송장비를) 얼마든지 팔 수 있고, 어쩌면 벌써 전용했을 가능성도 크다"고 과거 정부에 대한 이념 공세를 가했다.
그는 구체적으로 "2005년에 현 이명박 정부의 문화정책에 반대하는 성명을 낸 '민족미술인협회'에 총사업비 3300만원이 지원되기도 했다, 이 단체는 북측의 공훈 및 인민예술가급의 대표작가 16인의 작품 30여점을 전시했다"면서 단체의 친북성향을 강조했다.
그는 또 민족작가대회 개최, 통일문학 발행 등으로 8억5700만원이 지원된 민족문학작가회의에 대해서도 "최근 광우병과 관련해 촛불집회 참여를 독려하는 내용의 글을 홈페이지에 공지하고 협회 작가들이 촛불집회 관련 글을 릴레이 기고를 했다"고 지적했다. 사실상 이런 단체들에 대한 정부 지원을 중단해라는 주문이다.
그러나 이같은 지적은, 정부에 대한 감시와 비판이 본분인 비정부기구(NGO)의 존재 이유를 외면한 것이다. 이들은 또한 참여정부 시절에 '반정부 시위'에 가담한 재향군인회 등에 막대한 국고보조금을 지원한 사실은 애써 외면함으로써 형평성에서도 어긋났다.
최근 <오마이뉴스>가 입수한 국가보훈처 자료에 따르면, 재향군인회는 해마다 50~100억원의 국고보조금을 받아 이른바 '좌파 정권 10년' 동안 무려 총 1000억원에 이르는 돈을 지원받았다. 또 고엽제전우회는 지난 3년간 총 3억8500만원, HID는 지난 2년간 1억1900만원을 받았다.
알맹이 없는 자료까지 들춰 '좌파정권 10년' 공세정해걸 의원(경북 군위·의성·청송)은 '대북 비료지원 현황' 자료를 인용해 "김대중·노무현 정부는 지난 99년부터 2007년까지 9년간 남북협력기금을 통해 북한에 비료 250만톤, 금액으로는 8천억원을 지원했다"면서 "이는 우리 농가 전체에 2년간 무료 제공할 수 있는 물량이다"고 역시 지난 정부에 대한 색깔공세를 펼쳤다.
그러나 남북협력기금은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원들에게 보고하고 집행하도록 돼 있으며 특히 전략물자인 비료 지원은 정형근 전 의원 등 당시 한나라당 의원들도 동의한 것이다.
또 정 의원도 지적했듯이, 이명박 정부 들어 북한 핵문제로 대북지원이 중단되었지만, 통일부 2009년 예산안에 따르면 이명박 정부도 내년에 비료 30만톤(2천917억원어치)을 무상지원할 계획이다. 정 의원이 그때 가서도 "우리 농가 전체에 1년간 무료 제공할 수 있는 물량이다"고 같은 비판의 잣대를 들이댈지 궁금하다.
일부 의원들은 국민이면 누구나 아는 알맹이 없는 국감자료까지 동원해 노무현 정부에 대한 정치·이념공세에 활용해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정양석 의원(서울 강북갑)은 2일 보도자료에서 "기획재정부 자료를 분석한 결과, 노 전 대통령과 참여정부가 대선 패배가 확실히 예상되는 지난해 12월 18일과 대선 패배 이후에도 공기업 감사 10명을 임명한 것으로 집계됐다"면서 "노무현 정부가 대선 패배 전후에도 공기업 감사에 대한 인사를 단행한 것으로 드러났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공기업 감사 임명 사실은 언론 보도만 취합해도 알 수 있는 것이다. 오히려 그보다는 관련 부처에 '이들이 왜 사퇴를 하지 않고 있는지'를 따지려는 의도로 읽힌다. 실제로 정 의원은 "이 기간에 임명된 감사 중 한국관광공사 감사만 사퇴했을 뿐 나머지 9명은 현재까지 감사직을 수행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고 지적했다.
한나라당 이념 공세의 대표적인 표적은 '전교조'이번 국감에서 한나라당 이념 공세의 대표적인 표적은 '전교조'이다.
조전혁 의원(인천 남동을)은 지난 30일 "전교조가 주경복 서울시교육감 후보의 선거자금 70%를 부당 지원했다는 증언이 있다"며 서울중앙지검에 수사를 의뢰했다. 검찰은 수사의뢰를 접수하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 하룻만에 신속하게 수사에 착수했다.
조 의원은 또 각 시·도교육청에 학교운영위원 중 전교조 교원위원 현황 등을 제출할 것을 요구하고, 한만중 정책실장 등 전교조 간부 4명을 국감 증인으로 신청해 놓은 상태다. '전교조 저격수'를 자임하는 조 의원은 뉴라이트 계열인 자유주의교육운동연합 대표 출신이다.
역시 뉴라이트 출신인 신지호 의원도 지난 8월 "전교조가 정부·지자체에서 모두 42억8240만원을 지원받았다"며 "불법시위에 가담해 법질서를 문란하게 한 단체에 혈세를 퍼주는 행위를 중단하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신 의원 또한 '좌파 정권 10년' 동안 무려 총 1000억원에 이르는 국고보조금을 지원받으면서도 '반정부 시위'에 참여한 재향군인회 등에 대해서는 언급을 피했다.
또 국토해양위 소속 신영수 의원(성남 수정)은 5일 미리 배포한 국감 질의자료에서 "노무현 정권이 야심차게 추진했던 기업도시는 분양률이 갈수록 낮아지는 등 여러 가지 문제를 노출하고 있다"면서 "기업도시라는 사업이 노무현 정권의 전시행정의 표본이라고 생각되는데 장관은 앞으로 이런 기업도시를 계속할 추진할 계획인지 밝혀라"고 묻고 있다. 노무현 정부가 자부심을 갖고 대표적인 국가균형발전정책의 일환으로 추진한 기업도시정책을 지방 부동산 투기정책으로 폄훼한 것이다.
그러나 신 의원은 이명박 정부 들어서 지방의 미분양 주택 물량이 늘어나는 등 분양률이 더 낮아진 점은 외면하고 있다. 또 그가 지방과는 이해관계가 엇갈리는 수도권에 지역구를 둔 의원이라는 점에서 일방적인 주장이라는 지적도 제기된다.
원내대표는 '정쟁국감 지양', 의원들은 '정쟁국감 지향'의원들의 이와 같은 행태는 '여야 국감전쟁'의 '야전사령관'인 홍준표 원내대표의 '정쟁국감 지양 지시'와 상반되게 '정쟁국감 지향' 쪽이다.
그 까닭은 셋 중의 하나다. 즉, 의원들이 원내대표 지시를 안 따르거나, 의원들이 '지양'을 '지향'으로 잘못 이해했거나, 의원들이 '정쟁국감 지양'은 립 서비스이고 그의 본심은 다르다고 판단했을 가능성이 그것이다.
홍 대표는 지난달 29일 라디오에 출연해 "이번 국정감사는 노무현 정부 마지막 1년과 이명박 정부 6개월에 대한 감사다"면서 "노무현 정부의 실책을 덮어 두고 가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어쩌면 이것이 솔직한 홍 대표의 '본심'일 것이다. 그러니 해당 의원들로서는 원내대표의 국감전략을 충실히 따르는 셈이다.
그러나 국정감사는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가 국가예산을 사용하는 모든 기관을 대상으로 지난 1년간의 정책과 사업, 예산 집행 등 업무전반에 대해 잘잘못을 가리는 자리다. 국회가 1년간의 정부 업무전반에 대해 잘잘못을 가리는 것도 벅찬데 그 대상기한을 5년, 10년으로 늘리는 것은 현 정부의 실정과 이 대통령의 낮은 지지율을 물타기 위한 '꼼수'로 읽힐 수 있다.
그것은 이명박 정부가 표방해온 실용주의 노선과도 동떨어진 '일탈행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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