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이자 한학자로 활동한 월하 김달진 시인의 문학적 업적을 기리기 위해 '제13회 김달진 문학제'가 진해에서 4~5일 양일간 열렸는데 성선경 시인이 시집 ‘모란으로 가는 길’로 월하지역문학상에 선정되었다.
심사위원들은 심사평에서 “삶과 자아에 대한 깊은 성찰을 이미지로 감각화 하는 성선경 시인의 시적 역량은 앞으로 이 지역의 시단을 풍성하게 할 수 있는 충분한 역량을 내보이고 있다”며 그의 시적 완성도를 높게 평가했다.
문학평론가 유성호 한양대 교수도 “성선경 시인이 등단 20년을 지나면서 기왓장을 한 천년쯤 갈아 거울을 만들어 자신의 얼굴과 마음을 비추고 싶어 한다. 그 거울 안쪽에서 ‘내 속에 너무 많은 칼’을 발견하고는, 그 날카로움이 스스로에게 ‘달초(撻楚)’가 되는 장면을 상상하기도 한다”며 시인의 준열한 자기 성찰의 자세에 대해 호평했다.
성선경 시인은 “참 많이도 걸어왔다 생각하고 주위를 돌아보니 이제 겨우 산중턱이군요. 참 목이 마른 시간이었는데 문득 좋은 옹달샘을 만났지 뭡니까. 시원히 목을 축이고 다시 길을 가야겠지요. 부족한 저에게 격려를 해주셔서 감사합니다”라며 자신의 수상소감을 밝혔다.
이제부터는 조금 소심한 자신의 품성을 뛰어넘어 주변도 둘러보고 여러 문우들과 함께 어깨를 걸고 가야겠다는 생각을 한다는 성선경 시인을 5일 마산 회원동 자택에서 만나 차 한잔을 들며 시와 인생에 대해 소탈하게 담소를 나누었다.
- 이번에 시집 ‘모란으로 가는 길’로 월하지역문학상을 수상하셨는데, 시에 담고 싶었던 정서나 생각은 무엇입니까.
이번 시집에서는 깨우침에 대해서 이야기 했습니다. 몇 달 후면 저도 50이 되는데 40대 후반의 깨우침 같은 걸 담으려고 했죠. 40대 초반의 깨우침이 담겨있는 시집 ‘몽유도원을 사다’에서는 자아가 아직도 막 들끓었는데 ‘모란으로 가는 길’에서는 세상과 화해를 하고 따뜻한 시선으로 사회를 바라보기 시작한 거죠. 몽유도원에서는 우울한 정서라면 모란에서는 ‘따뜻한 긍정’, 그런 정도의 차이가 있죠
-그럼 시집의 ‘모란’이 깨우침을 상징하는 건가요.
그렇죠. 모란이란 게 꽃 중에 왕이죠. 화왕(花王). 나는 그 모란을 어떤 한 깨달음의 순간으로 보죠. 그 깨달음이란 어디에 있느냐. ‘몰안’했을 때, 내 안에 완전히 ‘몰입’했을 때 얻을 수 있는 것. 그게 뭐 득도의 순간이 되든가 깨달음의 순간이 되든가 그런건데. ‘몰안’했을 때 얻어지는 깨달음의 순간, 그 세계가 ‘모란’이라는 거죠.
-그럼, ‘모란’이 ‘몰안’이란 말인가요.
그런 의미도 담고 있죠. 삶의 가장 큰 희열을 얻는 순간이 언제냐. 그건 깨달음을 얻는 순간이라는 거죠. 그게 순정한 거고 지고지순하고 아름다운 거죠. 그게 ‘화왕’이고 ‘모란’이라는 거죠.
-시와 깨달음이라… 이거 상당히 어렵게 느껴지고 기분이 묘한데요.
뭐, 어렵게 생각하실 것 없어요. 여기서 깨달음이란 인식의 변화, 자람을 말하는 거죠. 키도 어느 날 재어보니까 몇cm가 컸더라는 거지, 키가 크는 게 눈에 잘 보이지는 않잖아요. 몇 시 몇 분에 키가 얼마가 컸더라 그렇게 말하지 않잖아요. 인식의 자람(깨달음)도 그런거죠.
-그렇군요. 근데 어떤 깨달음이 있어야만 시를 쓸 수 있는 건가요?
시라는 세계가 궁극적으로 뭐냐. 그건 깨달음이죠. 시의 가장 큰 장점은 시 한편마다 한편의 깨우침이 있다는 거죠. 문학은 큰 틀로 인식과 형상이 있죠. 인식은 깨달음을 말하고, 형상은 그걸 어떤 구조로 풀어내느냐 하는 건데.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새로운 인식’이라는 거죠. 새로운 인식을 통해 시대에 적합한 시나 시대를 뛰어 넘는 시가 나오는 것 아니겠어요. 새로운 깨달음, 그게 새로운 시죠.
-재미있는데요. 그럼 시인도 많은 깨달음이나 인식의 자람, 변화가 있었겠는데, 체험하신 보따리를 함 풀어보시죠.
하하. 삶의 가장 큰 깨달음이 체험인데, 그게 말로 풀어내기가 힘들어요. 그걸 조리있게 이야기하려고 시도하면 문학이 아니고 과학의 세계로 흘러가 버리는데….
-그럼, 지금까지 시집 5권을 내셨는데, 그 시집속에 담겨 있는 작가의 인식변화에 대해 말씀해 주시면 어떤가요?
그게 좋겠네요. 제가 88년도 신춘문예를 통과했을 때 제가 가지고 있는 가장 큰 고갱이가 소위 민족의 문제였어요. 그 민족의 문제중에서도 통일문제가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죠. 그게 첫 번 째 시집 ‘널뛰는 직녀에게’ 속에 담겨있는 문제였어요. 그 다음 두번째 시집 ‘옛사랑을 읽다’에서는 ‘동물알레고리를 통한 깨우침’이었어요.
- ‘동물알레고리’라…이게 뭘 말하는 건가요?
동물에서 발견되는 도덕성과 인간에게서 발견되는 수성(獸性), 짐승같은 본성을 알레고리로 엮어서 질타하는, 그런 깨우침을 말하는거죠.
-그렇군요. 그렇게 시의 주제가 바뀌어 갔군요.
예. 그러다 세번째 시집은 ‘서른 살의 박봉씨’였는데, 이 시는 말 그대로 한 빈농의 아들이 태어나 자라서 도회지로 편입되어서 도시 소시민으로 살아가는 그런 모습을 드러내 보여주고자 했죠. 네번째 시집이 ‘몽유도원을 사다’였는데, 여기에서는 40대의 불혹이라는 것, 흔들림이라는 것, 40대의 꿈과 애환을 보여주고자 했죠. 우리나라 40대가 가장 위험한 시기잖아요.
-그렇지요. 40대가 과로사, 자살률도 가장 높다고 하지요.
저도 40대였고. 그래서 40대의 꿈과 흔들림을 이야기하려고 했어요. 다섯 번째 시집에 대해서는 아까 이야기 했고요.
-세월이 흘러가면서 시의 주제, 생각, 방향도 달라지고 변화해 갔네요.
하하, 그렇게 됐네요. 근데 단풍나무가 스스로 단풍이 들고 싶어서 들었겠어요. 때가 되면 다 단풍이 드는거죠. 은행나무가 예쁘게 보이려고 노란색으로 물들었겠어요. 다 때가 되면 그렇게 되는 거죠. 저도 마찬가지에요. 세월따라 그렇게 바뀌는 거죠.
-이런 것 물어보면 진부하다고 그럴지 모르지만 그래도 물어보지 않을 수 없네요. 처음 시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있었을텐데요.
제 고향이 창녕군 청학동인데 시골에서 학교를 다녔어요. 제가 어릴 적에 비사교적이었어요. 그래서 초등학교 때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내 동기들 중에서 이름을 기억하고 얼굴을 기억하는 사람이 몇 명이 안되요. 그만큼 내 속에 빠져 살았어요. 나만 생각하고 살았죠. 책 읽고 생각하고.
고 2때 같아요. 갓 대학을 졸업한 여자선생님이 교생실습으로 왔어요. 그 분이 일주일에 한 시간 칠판에 시를 적어 주었어요. 그 시를 노트에 받아 적게 했어요. 그 때가 5월 쯤이었어요. 처음 몇 달은 감흥이 있었겠어요, 선생님이 적으라니까 그냥 받아 적은 거죠. 근데 어느 날 하루는 윤동주 시인의 ‘참회록’을 적어주셨죠. 야! 그 시를 읽고 나서 충격에 빠졌어요. 아! 시란 이런 거구나. 나는 그 전에 김소월도 잘 몰랐어요. 윤동주 시인의 참회록을 받아 적는데, 받아 적고 충격이 너무 컸어요. 그래서 나도 시를 써야겠다, 그때부터 시를 썼어요.
고등학교 졸업할 때 쯤은 대학노트 1권 이상 분량이 됐던 것 같아요. 그 만큼 시를 많이 적었어요. 요즘 생각하면 웃기는 거죠. 고등학생이 뭘 알겠어요. 뭐 흉내내기겠죠. 그 뒤에 대학을 가게 되고, 91년도에 마산지역에 ‘살으리’라는 통신문학이 있었어요. 그 통신문학을 우연히 접하고 거기에 시를 보냈어요. 그쪽에서 연락이 왔어요. 같이 활동하자고. 그래서 ‘살으리’ 회원으로 들어가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시를 쓰기 시작했죠.
-시를 시작하게 된 동기가 드라마틱 하면서도 왠지 정석같은 느낌도 들고. 재미있네요. 시인도 현직 고등학교 국어교사인 걸로 알고 있는데, 그 때를 생각하면서 학생들에게 시를 적어주고 가르침을 주겠네요.
예. 저도 기말고사가 끝나고 학생들이 여름방학, 겨울방학을 앞두고 술렁거릴 때 늘 시를 칠판에 적어 읽혀줍니다.
-제자 중에 혹시 선생님처럼 좋은 시에 감동받아서 시인이 된 학생들은 없나요?
하하, 대학교에 국문학과로 간 제자들이 많아요. 근데 시인으로 등단하고 그런 것은 시간이 좀 걸릴 것 같네요. 저도 제자 중에 좋은 시인이 나오면 참 좋겠어요.
-'모란으로 가는 길' 시집 끝부분에 특이하게 고향집을 다룬 산문 ‘청학재로 가는 길’이 있던데, 특별히 시집 마무리 부분에 이런 고향 이야기를 쓴 이유가 있습니까?
제가 40을 넘기 전에는 그 고향이라는 게 아픔이었어요. 남들은 고향이 따뜻하고 그립고 그렇다는데 저에게는 그게 우스웠어요. 나는 고향이 아픔이고 힘들고 그랬는데. 근데 제가 나이 40을 넘기면서 고향의 진정한 의미를 알게 된 거죠. 고향과 화해를 하게 되고 고향을 좋아하게 되고, 내 삶의 모든 것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된 거죠.
-고향이 아픔이었는데, 그런 고향을 따뜻하게 바라보게 되고 수용하게 된 어떤 계기나 전환점이 있었던가요?
제가 40을 넘기면서 굉장히 아팠어요.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많이 아팠어요. 아프게 되니 시간이 많아져요. 아프니까 어디 돌아다닐 수도 없고. 하하. 그래서 사색을 많이 하게 되었어요. 그 사색을 통해 얻은 것도 많고. 그리고 제가 태어나 처음으로 믿음과 신앙생활을 했어요. 민족종교인 증산도에 입도를 한거죠. 도를 수양하게 됐어요. 그러면서 어떤 새로운 세계도 만나고 인생에, 영육간에 많은 변화가 있었어요. 이런 것들이 많은 작용을 한 것 같아요.
-그런 사정이 있었군요. 그래서 아픔의 고향이 따뜻한 고향으로 수용될 수 있었던 거군요.
세상에 이런 말이 있잖아요. 풍토병 생긴 그 지역에 그 풍토병을 낫게하는 약초도 반드시 함께 있다고. 이것처럼 사람 사이에서 생긴 상처는 사람 사는 세상에 들어가 함께 어울려야만 그 상처를 치유받을 수 있겠죠.
-그런 변화의 과정을 통해 시인의 마음의 고향에 대한 인식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싹을 틔우든가요?
내가 가고자 하는 길이 멀리 있는 게 아니라는거죠. 시집 뒤에 보면 뫼비우스의 띠에 대해 말한 것이 있는데, 뫼비우스의 띠가 안과 밖이 하나로 되어 있잖아요. 띠를 한번 비틀어서 붙이면 안이 바깥이 되고 바깥이 안이 되거든요. 내가 가고 싶었던 곳이 내가 뛰쳐나오고 싶어했던 그 곳이라는 거죠. 내가 가고자 했던 세계, 내가 지향했던 세계, 내가 갖고자 했던 세계가 '캬' 가보니까 다시 그 자리더라, 고향이란 그런 거다. 이상향이 어디 있느냐. 그 이상향이 바로 고향이고 그게 모태다, 이런 거죠.
-파랑새 이야기랑 조금 통하는 것 같은데요.
통하는게 있죠. 제가 젊을 때는 지리산 밑에서 살까, 어디 경치좋은 바닷가에서 살까, 이런 생각을 많이 했어요. 근데 그게 최근에 정리가 됐어요. 나는 내가 정말 집이 있어야 된다면 그건 바로 고향집이다. 나는 그리로 돌아갈 것이다. 나는 그 곳에서 장손이고, 내 할아버지 할머니 산소도 그 곳에 있고, 내 아버지 어머니도 그 곳에 계시고, 또 내가 죽어서 돌아갈 곳이고. 그런 큰 흐름들을 알게 된거죠.
-사모님께서 고향으로 가는 것을 반대하면 어쩌시게요?
처음에는 반대를 많이 하더니만 자꾸 이야기하니까 세뇌를 당하더군요. 하하. 나중에 고향으로 내려가면 마누라가 차를 몰고 시내로 나가면서 “여보, 라면 내 놨으니까 끓여 먹어요” 이러지 않을까 모르겠어요. 나는 라면 끓여 먹고, 마누라는 백화점에서 쇼핑하고 맛있는 거 먹고 오고. 하하~
옆에서 듣고 있던 아내 명성숙씨도 이 말이 우스웠는지 “여보, 라면이라도 맛있게 드세요”라며 추임새를 넣는다. 따뜻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시집 ‘모란으로 가는 길’에서 제일 애착이 가는 시를 꼽으라고 한다면 어떤 것인가요?
‘걸유’에요. 시로서는 시집 맨 마지막에 있어요. 그게 제 시집 전편에 흐르는 정서와 상당히 관계가 있어요. 사실 제가 불효도 하고 세상과 격렬하게 싸우기도 했는데…. 한번 읽어보세요. 그럼 알게돼요.
-이거… 좋습니다. 그럼, 제가 ‘걸유’를 함 읽어보겠습니다
용서하십시오…
어머니 마중가는 길가에서 한들거리는 강아지풀을 무엇보다 좋아했으나 난초를 곁에 두고 자주 물을 주었으며 내 고향의 불알친구를 깊이 사랑했으나 그보다 동료교사와 더 자주 술을 마셨습니다…
한 번도 괄호 밖으로 나와 보지 못한 이여
부디 용서하십시오.
-‘ 걸유’는 자신의 한계(괄호) 밖으로 뛰쳐 나오지 못한 자신에 대해 후회하고 참회하는 듯한 내용같은데요.
세상살이가 그렇잖아요. 세상은 거의 이익적인 관계잖아요. 이해관계가 관계의 가장 큰 줄기에요. 자기에게 이로우면 관계를 맺고, 자기에게 해로우면 그게 아무리 올바르다고 해도 멀리하고. 적어도 시인이라면 그런 것을 뛰어넘어 서야 되는데, 저도 세상속에 포함되어 살다보니까 그 관계를 뛰어넘지 못했어요. 사람이다 보니. 근데 그 다리를 건너야, 그것을 뛰어넘어야 되는데 못 뛰어넘었어요.
그래서 이제는 그것을 뛰어 넘고 살겠다. 이제는 뛰어 넘어야 되겠다. 이해관계, 어떤 그런 것에서 뛰어 넘고 살고 싶은. 그게 아마 이번 시집에서 보여주고자 했던 가장 큰 의도가 아니었던가 생각해요. 그래서 일부러 마지막 한 줄 ‘부디 용서하십시요’를 다음 페이지로 배치를 했어요. 원래 한 페이지에 시가 다 들어가는 것을 좋아해요.
-이해관계를 넘어 살아간다는 것이 참 힘든데요, 잘 될 것 같습니까?
어렵지만 지금은 어떤 본성을 숨기지 않고, 그냥 본성대로 살아가려고 노력해요. ‘솔성지위도’라고 하잖아요. 솔성하며 함 살아가려고요.
-요즘 젊은 시인들의 등단이 이전보다 많이 줄어들었지요. 어떻게 생각하나요?
시 쓰면 돈이 안되니까 영화로 빠지고 시나리오로 빠지고. 다들 돈 되는 곳으로 가버리죠. 그리고 세상에 재미있는 게 많잖아요. 프로게이머도 있고. 재미있는 게 많은데 굳이 힘들고 돈 안되는 문학을 붙들고 있겠어요. 투자에 비해서 소득이 적잖아요. 그러니 젊은이들이 안 하려고 그러죠. 이게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니고 세계적인 추세죠. 전 젊은이들을 이해해요.
-시인의 자질로서 필요한 것은 뭔가요?
옳은 것은 옳고 틀린 것은 틀리다고 할 수 있는 의분(義憤)과 사물의 이면을 헤아릴 줄 아는 통찰력을 가져야 된다고 생각해요. 단순히 글만 잘 쓰고 기교가 뛰어나다고 좋은 시인이라 말 할 수 없죠.
-시인으로서 바람이 있다면 뭔가요?
정말 좋은 시 한 편 쓰는거죠. 그만하면 족하죠.
국문학을 전공한 부인이 옆에서 훈수를 둔다.
“왜 있잖아요. 서정주 시인 하면 ‘국화 옆에서’, 김소월 시인 하면 ‘진달래꽃’, 윤동주 시인하면 ‘서시’처럼, 누구 시인하면 탁! 떠오르는 그런 시 한편 짓는 거라고 말했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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