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플근절, 초딩과 성인사회의 전면전? 최진실 사망 이후 인터넷 기사를 보자면 '선플'이라는 말이 유독 눈에 띈다. 그런데 최근 선플이라는 제목으로 달린 리플 중 상당수가 '착한 리플'이라기보다는 선플 운동에 대한 반감이며 우리 사회가 악플러와 전면전이라도 치르려는 듯한 세태에 대한 비아냥인 듯 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사회 각계에서 전개되고 있는 '선풀달기운동'이란 것이 군사정권이 '바르게살기운동본부'를 중심으로 전개한 사회정화운동만큼이나 작위적이며 위선적이다.
최근 가수 하리수씨가 자신의 미니홈피를 통해 악플에 대한 비판글을 올리자 그 글에 다시 "주목 받고 싶어서 이러시는 거죠?" 등의 악플을 단 사례를 전하는 기사는 가히 우화(遇話)같다.
기사에 의하면 하리수씨가 악플러에게 일침을 가하기 위해 당사자와 통화를 시도해 보니 대부분 악플러들이 초등학교 4~6년생이었고 간혹 중학생이나 대학생도 있었다고 한다. 악플을 발본색원하겠다는 이유로 인터넷 모욕죄를 신설하는 등 법안 수정까지 들먹이는 등 소란을 부풀리고 있는 우리 사회는 초등학생들을 주적으로 삼아 전면전을 선포한 것이나 다름없으니, 늘 본질을 버려둔 채 표피적 현상에만 집착해 우왕좌왕하는 우리 사회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움에 자조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악플근절운동의 심연 악플의 폐해가 문제가 된 것은 비단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그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악플로 인해 고통받거나 상처를 받아왔고 최근 연예인들의 잇단 자살 사건에는 악플이 중요한 원인으로 작용했던 것도 사실이다.
따라서 악플을 근원적으로 해소할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이 있다면 악플로 인해 야기되는 많은 고통과 갈등이 사라지게 될 것이니 악플에 대한 규제나 선플 달기 운동 등에 대해 정말 효과만 볼 수 있다면 반대해야 할 이유가 전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진실씨 사망 이후 악플에 대한 대응에 대해 냉소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는 현재 추진되고 있는 악플 근절책들이 지극히 보복적이며 징계적이며 표피적으로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대부분 사이트가 실명 확인을 통해 회원 가입을 받고 있고, 현행법으로도 명예훼손이나 허위사실유포, 스토킹, 모욕 등에 대한 실질적 처벌이 가능하다는 점을 감안했을 때, 인터넷 실명제나 인터넷 모욕제 신설 등을 추진하는 것은 본래 목적인 악플 근절보다는 물리적으로 볼 때 온라인 상에서 비판의 대상이 될 수 밖에 없는 정치인이 자신들에게 가해지는 비판을 손쉽게 제압할 수 있는 여론 제압용이나 보복 수단으로 악용할 가능성이 훨씬 크다.
특히 피해 당사자의 고소 고발 없이도 게시글 삭제 및 수사가 가능하게 하는 법안 개정 시도는 언론과 표현의 자유를 크게 위축시킬 수밖에 없다. 더욱이 위의 하리수씨 관련 기사에서 보여주듯 대부분 악플러들이 초등학생이나 미성년자인 점을 감안한다면 사법 처벌이 악플 근절에 그다지 효과도 없을 뿐 아니라 처벌 위주로 전개되는 악플근절책이 조준하는 목표가 악플러가 아닌 정당한 누리꾼들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사기에 충분하다.
초등학생 등 미년자들이 주종을 이루는 대부분 악플러들은 기사를 제대로 읽지 않는다. 기사에서 자신이 보고자 하는 부분만을 자신의 시각에서 본 다음 하고픈 말을 툭 내던지는 것이 대부분이다. 이런 악플의 공통적인 특징은 사려깊지 못하며 상대방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다는 것인데 이런 특성은 단지 온라인상의 특성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모든 분야에서 표출되는 특징이기도 하다.
공공장소에서 괴성을 지르며 뛰어다니는 아이에게 주의를 주면 "왜 남의 아이 기를 죽이냐?"며 시비를 거는 부모 아래서 자란 아이가 오로지 인터넷에서만큼은 선플을 다는 예의바른 어린이가 되기를 기대한다면 강하게 규제하거나 처벌 위주로 나가는 지금 방법이 옳다.
비좁은 주차공간에서 일어나는 주차시비나 병목 도로에서 하는 얌체운전 같은 것이 마치 대단한 운전기술이라도 되는 듯 뻐기거나,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기는 세상'이라며 모든 시비를 완력으로 해결하려는 부모를 보며 자란 아이가 악플을 달았다고 해서 그게 어디 아이만 탓할 일이던가?
재산을 부풀리기 위해 위장전입 하거나 투기 또는 탈세를 일삼는 행위조차도 '능력'이라고 인정받는 사회, 그것도 부족해 지킬 법을 마땅히 지키고 순서를 지키면 오히려 바보 취급을 받는 성인 문화가 형성된 우리 사회에서 선풀달기운동만 잘 된다면 정말 좋은 세상이 올 것이라고 믿지는 않을 것이다.
결국 최진실씨 자살로 이어지는 논란이 악플근절이란 본질 측면에서 본다면 이제까지의 여타 사건들과 마찬가지로 사태의 본질은 버려둔 채 표피적 현상에만 집착한 오진(誤診)이 되고 있는 한편, 이 논란의 깊은 심연에서는 사건과 무관한 애먼 네티즌들을 탄압하여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키고 사회의 갈등과 대립을 증폭하기 위한 살풀이 굿판으로 활용하려는 아주 음험한 음모가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한겨레와 다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