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대원사 들어가는 왕벗나무 길
대원사 들어가는 왕벗나무 길 ⓒ 전용호

벚꽃 없는 벚나무 길도 아름답다

순천에서 58번 지방도를 타고 간다. 낙안을 지나 구불구불한 재를 넘으면 국도 15호선과 만나고 메타세콰이어 길이 아름다운 외서를 지난다. 초등학교 때 그림 그리던 생각이 난다. 삼각형으로 쭉쭉 솟은 가로수 길은 잠깐 지나가지만 상쾌한 기분을 느낀다.

오늘 찾아갈 곳은 보성 천봉산 대원사다. 순천에서 40㎞ 정도 달렸을까? 주암호를 건너 대원사라는 표지판이 보인다. 입구에는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 왕벗나무 터널>이라는 커다란 표지석이 반긴다. 차 두 대 겨우 지나다닐 정도의 길은 벚나무가 양편으로 심어져 있다.

벚나무는 이른 봄에 화려하게 꽃이 피지만 꽃이 지면 볼품없는 나무로 관심을 받지 못한다. 하지만 대원사를 들어가는 6㎞ 남짓한 벚나무 터널은 아침햇살을 받아 너무나 아름답게 다가온다. 벚꽃이 없어도 벚나무가 아름다울 수 있다는 걸 느낀다.

 천봉산은 산앙정 뒤로 숲길을 올라선다.
천봉산은 산앙정 뒤로 숲길을 올라선다. ⓒ 전용호

천개의 봉우리가 있다는 천봉산

벚나무길 끝에는 대원사가 있다. 우선 산에 올라갔다 와서 절구경하기로 하고 등산로를 찾았다. 작은 개울 건너 산앙정(山仰亭)이 있고 옆으로 등산로가 보인다. 천봉산 1.6㎞를 알려주고 있다. 초입부터 가파르게 올라간다. 낮은 산이라 쉽게 올라가리란 예상을 깨고 숲은 깊고 울창하다.

하늘을 덮고 있는 나무들은 수령이 오래되지는 않았지만 빽빽하게 자랐 탓에 키들이 엄청 크다. 나무껍질을 스스로 벗겨내는 노각나무를 비롯한 서어나무 굴피나무, 상수리나무 들이 주종을 이루고 있다. 그래서인지 숲속은 싱그러움이 넘쳐 난다.

산길은 바위 하나 없는 흙길이다. 등산객들이 많이 다니지 않았는지 길에는 도토리가 그대로 있다. 가끔 밟히는 도토리는 톡톡 터지기도 하고 발길을 미끄러지게 하기도 한다. 봉우리가 천개라더니 넘어서면 다시 올라야 하는 봉우리가 기다리고 있다. 천봉산은 봉황이 내려앉은 산이라고 하지만 이 지역 사람들은 봉우리가 천개라서 천봉산이라고 한다.

1시간 반 정도 올라서니 정상(609m)이 나온다. 정상은 표지석도 없을 뿐더러 터도 좁아 시원한 맛이 덜하다. 아래로 주암호가 내려다보인다. 힘들게 올라왔는데 주변에 산들이 너무 많아서인지 울안에 갇힌 듯 답답하다.

 천봉산 정상에서 내려다 본 주암호
천봉산 정상에서 내려다 본 주암호 ⓒ 전용호

 햇살에 빛나는 노각나무, 내려오는 길에 만난 으름과 살모사. 뱀이 따스한 햇살을 받으려고 등산로에 나와 있다. 산행중 3마리나 만났다.
햇살에 빛나는 노각나무, 내려오는 길에 만난 으름과 살모사. 뱀이 따스한 햇살을 받으려고 등산로에 나와 있다. 산행중 3마리나 만났다. ⓒ 전용호

나의 원수 잘 되거라

산을 내려와 대원사(大原寺)에 들렀다. 뜨거운 여름 싱싱함을 자랑하던 연잎은 가장자리부터 생기를 잃어가고 있다. 방문객을 반겨주는 찻집 이름이 재미있다. 다락방(茶樂房). 돌집 속에 앞뒤로 모셔놓은 부모공덕불은 무척 슬픈 모습이다. 집이 너무 좁아서 그럴까?

절집으로 들어가는 계단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나이가 많다는 사철나무에 커다란 왕목탁을 걸어 놓았다. 근데 머리로 목탁을 치란다. 남이 나에게 했던 나쁜 말이나 행위들을 기억 속에 간직하고 있으면 삶이 고통스럽고 불행이 따라다닌다며, 모든 걸 용서하는 마음으로 머리로 세 번 치란다. 남을 용서하는 사람이 용서받을 자격이 있다면서….

나쁜 기억 사라져라. 탁! 나의 지혜 밝아져라. 탁! 하지만 이렇게 까지 해야 하나. 나의 원수 잘 되거라. 탁! 성인군자는 못 되겠다. 머리만 아프다.

 머리로 치는 왕목탁
머리로 치는 왕목탁 ⓒ 전용호

 대원사 극락전 풍경
대원사 극락전 풍경 ⓒ 전용호

아름다운 벽화가 있는 극락전

연못을 지나 연지문(蓮池門)을 들어서면 극락전이 자리 잡고 있다. 대원사는 백제 무녕왕 3년(503) 아도화상(阿道和尙)이 세웠다고 전해지며, 조선 영조 7년(1731)에 큰 불로 모두 불타버려, 4년간에 걸쳐 극락전을 비롯하여 16동의 건물을 세웠다고 한다. 그러나 1950년 한국전쟁으로 또 다시 불타버리고 극락전만 남았다고 한다.

극락전으로 들어서니 양쪽으로 벽화가 있다. 왼쪽에는 선재동자의 방문을 받고 있는 수월관음도(水月觀音圖), 오른쪽에는 신광선사단비(禪光禪師斷臂)라는 명문이 새겨져 있는 달마도가 그려져 있다. 이 달마도는 선종 제이조인 혜가(慧可)의 설중단비(雪中斷臂) 설화를 표현했다는데 어찌 섬뜩한 느낌이 든다.

극락전 왼쪽으로 올라서니 자진국사(慈眞國師) 부도가 있다. 고려 원종 때 대원사를 중창한 송광사의 제5대 국사인 자진국사 원오(圓梧)의 부도라고 한다. 팔각형의 날씬한 부도는 기단석에 연꽃을 새겼으며, 각 면에는 범어, 신장상 등이 새겨져 아름다움을 더하고 있다.

 극락전 양쪽 벽에 그려진 벽화
극락전 양쪽 벽에 그려진 벽화 ⓒ 전용호

 천진난만한 애기부처 상
천진난만한 애기부처 상 ⓒ 전용호

태어나지 못한 영혼을 위하여

극락전 오른쪽으로는 커다란 태안 지장보살상(胎安 地藏菩薩像)이 서있다. 낙태된 어린 영혼을 천도하기 위해 조성된 야외 지장전이란다. 주변으로 작은 동자승들이 빨간 모자를 쓰고 있다. 그리 유쾌한 기분이 들지 않는다. 낙태. 부득이한 경우도 있겠지만 어쨌거나 마음이 아픈 일이다.

작은 동자승들은 각자 표정을 달리하며 나와 눈길을 건넨다. 잠자리가 사뿐히 내려앉아 깊어가는 가을을 즐기고 있다. 슬픈 영혼이 잠자리로 환생한 것일까?

 빨간모자를 쓴 동자승
빨간모자를 쓴 동자승 ⓒ 전용호

ⓒ 전용호

덧붙이는 글 | 천봉산 올라갔다 돌아오는데 4시간 정도 걸립니다. 대원사에 가면 아름다운 글귀들이 나무마다 걸려 있습니다. 시간을 가지고 읽어가면서 천천히 구경하다보면 어느새 마음이 편안해 지는 걸 느낍니다.



#천봉산#대원사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