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 밖에서 들려오는 음악 소리에 눈을 떴다. 유럽대륙에 맞먹는 크고 다양한 중국이지만 어딜 가나 한결같은 모습이 있는데 바로 태극권이나 체조 등으로 아침을 맞이하는 풍경이다. 호텔 앞 좁은 공터에 꽤 많은 중국인들이 음악에 맞춰 태극권을 연마하고 있었다.
이른 아침을 먹고 8시경 호텔주차장을 빠져나오는 버스는 꽤 긴 거리를 역주행하며 선생님들을 긴장시켰다. 길가에 튀김이며 야채, 과일을 파는 노점상들이 유난히 정겹게 느껴지며 "그래 이래야 중국이지!" 싶었다. 4주간 연수를 했던 베이징은 올림픽을 앞두고 길거리의 모든 노점상이 사라져 삭막한 느낌마저 들었기 때문이다.
중국의 역동적인 발전이 느껴지는 거대한 물류의 흐름!뤄양(洛陽)을 벗어나 시안(西安)으로 가는 고속도로에 들어서는데 꽤 많은 소나기가 내리기 시작했다. 빗길에 안개까지 낀 고속도로를 6시간 정도 갈 것을 생각하니 조금은 걱정이 되었다. 아니나 다를까 집채만한 화물차들이 하나둘 밀리기 시작하더니 아예 꼼짝도 하지 않고 도로 중간에 뚝 서버리는 것이었다. 내려서 보니 정말 고속도로가 거대한 화물차 주차장으로 바뀌어 있다. 중앙분리대가 있어 되돌아갈 수도 없고, 오도 가도 못하는 신세로 마냥 기다려야만 했다. 사고가 난 것 같은데 화물차들이 워낙 크고 또 짐도 많아 처리가 금방 될 것 같지가 않았다. 다행히 한 시간 반 정도를 기다리자 도로는 정상화되었지만, 밀려 있던 화물차들로 속도를 제대로 낼 수는 없었다.
사고처리현장 주변으로 수많은 화물차들이 양방향 모두 꽉꽉 밀려 있는데 그 모습이 가히 장관이다. 채소, 과일을 실은 작은 화물차에서부터 닭, 돼지를 실은 중형차, 목재, 자갈, 철골, 자동차, 기계류 등을 실은 대형 컨테이너까지 다양하면서도 거대한 물류의 흐름이 한눈에 읽힌다. 그리고 이 거대한 물류의 흐름을 가능하게 하는, 무서운 기세로 급성장하는 중국의 힘이 느껴지기도 하였다. 역동적인 물류의 이동을 통해 중국은 낙후된 지역에 성장 동력을 공급하고, 또 발전에 필요한 에너지를 조달받으며 서서히 꿈틀거리면서 일어서고 있는 것만 같다.
중국에서 장거리 이동은 꼭 기차로!
화물차들을 요리조리 헤치며 속도를 좀 내는 듯하더니 버스는 이내 또 고속도로 길가에 멈춰 섰다. 두 대의 버스가 움직이고 있었는데 다른 선생님들이 탄 버스 한 대가 갑자기 고장이 난 것이다. 35도가 넘는 날씨에 고속도로 한복판에 고장 나 멈춰선 버스! 정말 막막한 상황이다.
우리나라에선 긴급출동서비스에 전화를 걸면 금방 달려와 해결해 주련만 이 드넓은 중국에서 긴급출동서비스가 신속히 이뤄질 리가 없다. '메이여우빤파(沒有辦法, 방법이 업다)'만 연발하는 여행사 경리와 위이엔(語言) 대학교수가 얄밉지만 정말 방법이 없다. 50명의 선생님들은 에어컨이 시원찮은 중형급 버스 한 대에서 두 시간여를 폭염과 싸우며 힘겹게 기다려야 했다. '궁하면 변하고 변하면 통한다(窮卽變, 變卽通)'고 주변을 찾아보니 다행히 근처에 주유소가 있었고 그곳에서 일하는 한 정비공이 와서 벨트를 연결해주는 부속품 하나를 힘겹게 갈고서야 차는 다시 운행을 계속할 수 있었다.
두 번이나 꼼짝없이 고속도로에서 기다리면서 "중국에서 장거리를 이동할 때는 반드시 기차를 이용해야겠다"는 다짐이 절로 생겨난다. 중국인을 흔히 '만만디(慢慢的)'로 표현하지만 도로 위에서만큼 만만디는 없다. 물질문명과 정신문명의 성숙도 차이로 인한 문화지체현상이 가장 적나라하게 펼쳐지는 곳이 바로 중국의 고속도로다. 아무래도 위험한 상황이 자주 연출된다. 게다가 노후한 차들이 많아 도로에 우뚝 서는 경우도 다반사인데, 그렇게 멈춰선 차는 드넓은 중국대륙 안에 갇히는, 고립무원의 신세가 되기 십상이다.
'친환경 황토 웰빙주거지', 야오동(窯洞)
한참 고속도로를 달리는데 차도 옆으로 무언가를 줍고 다니는 사람이 주기적으로 눈에 띤다. 자세히 보니 플라스틱 물병이나 음료수캔 등 재활용품을 수거하는 사람이다. 사방을 둘러봐도 황토 흙에 자라는 옥수수와 해바라기뿐인 그 가난한 농촌에서 도로변의 재활용품 수거는 괜찮은 부업거리가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창문을 열고 마시던 물병을 던져줄까 망설여진다.
창 밖에 펼쳐지는 중국농촌의 풍경은 그야말로 '외진(偏僻) 가난(貧困)' 그 자체다. 황토덩어리를 일궈 계단식 밭을 만들고 또 그 진흙을 파고 들어가 집을 짓고 산다. '저런 혈거(穴居)에서 무슨 사람이 살까' 하는 내 생각을 비웃기라도 하듯 그 진흙집 앞에는 버젓이 빨래가 널려져 있다. 이 진흙집을 '야오동(窯洞)'이라고 하는데 나무와 돌이 없는 환경에서 황토덩어리를 파고 들어가 입구만 벽돌 등으로 장식하고 사는 것이다.
초라하고 원시적으로 보이지만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엔 따뜻한, 습도가 자동으로 조절된다고 하니 어찌 보면 그야말로 '친환경 황토 웰빙주거지'라도 해야 할 것도 같다. 이런 야오동에서 사는 사람이 4천만 명이나 된다고 하니 인간과 진흙이 서로 몸을 의지하고 하나가 되어 살아가고 있는 셈이다.
'물 반 흙 반'인 황허와의 짧은 만남
링바오(靈寶)휴게소에 잠깐 들러 과자와 빵으로 점심밥을 대신하며 중국의 고속도로 휴게소 풍경을 잠시 둘러보는데 화장실도 깨끗해지고 식당과 아동용놀이터도 갖추고 있는 등 과거에 비해 많이 업그레이드된 모습이다.
싼먼샤(三門峽)휴게소를 지나자 오른편으로 황허(黃河)가 우리 버스를 따라 함께 달리기 시작한다. 싼먼샤는 두 개의 큰 바위가 황허의 물줄기를 귀문(鬼門), 신문(神門), 인문(人門) 세 갈래로 나눠놓아 물길이 세차고 험난하기로 유명한 곳이다. 그 옆으로 넓은 황토고원이 펼쳐져 있는데 황허가 운반한 퇴적층과 고비사막에서 바람을 타고 날아온 황색 흙먼지인 뢰스가 쌓여 약 600만 년 전에 생성된 것이라고 한다.
이백(李白)은 시 장진주(將進酒)에서 "그대는 보지 못 하였는가? 황허의 강물이 하늘에서 내려와 바다로 흘러 다시는 돌아오지 못함을!(君不見黃河之水天上來, 奔流到海不復廻)"이라고 노래하고 있는데 하늘은 티베트 동부고원 바이엔카라(巴顔喀喇) 산맥이고 바다는 곧 발해만을 이른다. 황허는 남북으로 흐르다가 싼먼샤 부근에서 그 흐름을 동쪽으로 바꾸는데 총길이가 5464km나 된다.
"물 한 말에 진흙 여섯 되(一石水,六斗泥)"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물은 완전 진흙투성이다. 흐르면서 강바닥에 침전물이 쌓여 어떤 구간은 수위가 주변 도시보다 높아져 있고 그러다 보니 쉽게 범람한다. 20세기 초까지 총 1621차례나 범람했다는 황허는 그래서 문명을 태생시킨 '어머니의 강'이면서, 동시에 한 번 성나면 무서운 '해룡(害龍)'으로 돌변하는, 두 얼굴의 강이다.
2000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중국인 출신 작가 까오싱지엔(高行健)은 <나만의 성경(一個人的聖經)>에서 "황허의 물을 한 모금 마시리라"는 애국시인의 시구를 인용하며 황허에 손을 담그면 곧 진흙 빛으로 변하고 햇빛에 석고처럼 진흙이 손에 달라붙는데 어떻게 마실 수 있겠느냐고 반문하고 있다. 중국 속담에 "황허를 보지 못하면 죽어도 마음이 죽지 못한다(不到黄河, 心不死)"고 했는데 멀리 창문 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황허와의 짧은 만남이 아쉽다.
힘겹게 도착한 시안은 찜통 도시!
황허와 작별하는 지점에서부터 산시성(陝西省)은 시작된다. 휴식을 취하던 선생님들이 일제히 왼쪽 창가로 몰려들며 사진기 셔터를 눌러대니 바로 5악(동악-타이산泰山, 서악-華山화산, 남악-헝산衡山, 북악-헝산恒山, 중앙-쑹산嵩山) 중 도교의 성지로 유명한 화강암의 바위산, 서악 화산(華山)이다. 내가 화산의 '화(華)'를 2성으로 발음하자 서현숙 선생님께서 화산이라고 할 때는 '화'를 4성으로 읽는다고 알려주신다. 수많은 바위덩어리들이 우뚝 우뚝 중첩되어 서 있는데 입체감 있는 병풍이 두루마리 그림처럼 꽤 오래도록 펼쳐진다.
시안(西安)의 린퉁(臨潼)에 도착하니 오후 4시가 넘었는데도 날씨는 무척 더웠다. 현지 가이드에게 물으니 36도라고 하며 중국의 '3대 화로(火爐)'가 충칭(重慶), 우한(武漢), 난징(南京)인데 시안까지 포함해서 4대 찜통 도시라고 해야 한다며 연신 손부채질이다.
늦은 점심을 먹고 나니 5시가 넘어 진시황 병마용(兵馬庸) 관람은 다음날로 미룰 수밖에 없었다. 당나라 때의 춤과 노래를 재현한 공연 당가무(唐歌舞)를 보기 위해 린퉁에서 시안 시내로 이동하는데 못 다한 설명을 하느라 가이드의 말이 번개를 튀겨 먹은 듯 빨라진다.
마침 그날이 칠석(七夕)이라 시안 거리에 꽃을 든 연인들을 이따금씩 볼 수 있었다. 밸런타인데이를 중국어로 '칭런지에(情人節)'라고 하는데 서양의 기념일 대신 견우와 직녀가 만나는 칠석을 중국의 밸런타인데이로 하자는 의견이 있어 왔었다. 진시황은 위수(渭水)를 은하수 삼아 별자리에 기초해 양쪽으로 아방궁과 함양궁을 건설하고 복도로 연결했다고 하는데 그 시안에 도착한 날이 때마침 칠석이라니 시공(時空)의 조화가 절묘하다.
포용성이 느껴지는 화려한 당가무(唐歌舞)!
그러나 그 옛 시안의 모습은 이미 사라지고 2012년 완공 예정이라는 지하철 공사에 다소 어수선한 느낌마저 든다. 산시가무대극원(陝西歌舞大劇院)에 도착해 공연을 보려는데 베이징올림픽 개막 바로 전날이라 그런지 통제가 이만저만 까다로운 게 아니다. 캠코더는 물론 크기가 좀 큰 핸드백도 휴대가 금지되었다.
다른 관객들은 식사를 하면서 공연을 관람하는데 늦은 점심을 먹은 터라 우리 연수단은 공연 관람을 마치고 식사를 할 수밖에 없었다. 공연은 당나라의 전성기에 시안에서 성행하던 노래, 춤, 연주를 역사적 고증을 통해 재현해낸 것이었는데 화려한 의상과 다양한 소재로 재미있었다.
당대 시인 백거이(白居易)의 <호선녀(胡旋女)>에 나오는, '달리는 마차보다, 회오리바람보다 빠르게 빙글빙글 도는' 춤은 아마도 비단길을 타고 서역에서 전래된 것이었을 것이다. 중국역사상 가장 외향적이고 가장 개방적이었던 당나라의 수도는 그래서 당시 인구 100만의 세계 최대도시로 발전할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중국이 베이징올림픽 개막식에서 보여준 문화공연도 대부분 당의 전성기를 모델로 삼고 있는 것은 아마도 그때의 부귀와 영화를 재현하겠다는 의지일 것이다.
허난성이 중화사상의 발원지로 중원의 자부심에 멈춰 있었다만 산시성의 시안은 변방이지만 사방으로 문을 열고 모든 것을 '통 크게' 포용하는 것으로 한 단계 더 성숙한 문화도시를 이뤄냈는지도 모른다.
시안역 인근에 있는 숙소 롱하이호텔(陇海大酒店)로 가는데 힘겹게 시안을 찾은 연수단을 환영이라도 하듯 네온사인을 두른 멋진 성곽이 어둠 속에 고개를 숙이고 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8월5일~14일까지 중국여행을 기록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