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안보의식 현주소우리나라에 전쟁이 발발하여도 참전하지 않겠다: 24.9%전쟁이 발발하면 이민을 고려해보겠다: 23.3%다음 생에 세상에 태어난다면 다시 대한민국에 태어나겠다: 56.9%MBC와 한국사회학회가 금년 7월 28일부터 8월 6일까지 전국 성인 남녀 1000명을 면담하여 얻은 자료다(신뢰구간 95% ±3.1포인트 오차한계). 우리 민족의식이나 국가관의 현주소이다.
백령도는 서해 최북단의 섬으로 원래 우리나라에서 12번째 큰 섬이었으나 간척사업으로 8번째 큰 섬이 되었다. 인천광역시 옹진군 백령면에 속한 백령도는 인천에서 228㎞ 떨어져 있는 반면, 북한 황해도 장연군과 불과 17㎞ 떨어져 있어 섬의 북쪽이나 동쪽으로 보이는 곳은 모두 북녘 땅이다.
따오기가 흰 날개를 펼치고 힘차게 비상하는 모습과 유사하다고 하여 백령도(白翎島)라 불렀으나 지금은 간척지 때문에 옛 모습을 잃었단다. 북한 황해도 옹진반도 입구에 위치한 백령도는 북한에게 눈앞의 가시와 같은 존재이다. 전략적으로 중요한 요충지이기 때문에 우리나라의 최고 정예부대인 해병 6여단이 이 지역의 국토방위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백령도 관광과 안보현장 견학나와 집사람은 국정원(국가정보원)에서 시행하는 ‘백령도 안보현장 견학’의 기회를 얻어 10월 1일과 2일, 1박 2일 일정으로 백령도 안보현장을 답사하였다. 백령도 안보현장 견학은 백령도 관광을 겸한 국가안전보장에 관한 견문을 넓힐 수 있는 기회로 많은 분들께 권하고 싶은 프로그램이다.
아침 5시부터 일정을 서둘렀으나 서울 지리를 잘 알지 못한 나와 집사람은 약속 장소 부근에서 길을 찾지 못하는 바람에 동행하는 친구들에게 누를 끼쳤다. 인천 연안부두에서 식사를 마치고 80㎞/h 속도로 달리는 쾌속선을 이용하여 옹기포구에 도착하니 우리를 안내할 국정원 *과장이 우리를 반기며 버스로 안내한다.
점심시간이 지났기 때문에 우리 일행은 바로 평양 옥류관보다 맛있다는 사곶냉면집으로 직행하였다. 점심을 마친 아저씨들은 식후 한 대씩 흡연을 마치고 나서야 모처럼의 나들이에 동심으로 돌아간 듯 여유로운 모습들이다. 따사로운 햇볕에 널린 태양초들이 시골의 정취를 더한다.
버스 기사의 안내를 받아 처음 도착한 곳은 사곶 해수욕장이다. 물이 빠지면 단단하게 다져진 규조토 바닥이 되므로 자동차가 백사장 위로 달려도 모래가 패이지 않는단다. 6.25때는 유엔군 천연비행장으로 사용되어 전초기지 역할을 한 곳으로 이태리 나폴리의 해변과 더불어 세계에서 2곳밖에 없는 아주 진귀한 해수욕장이란다. 천연기념물 제391호로 지정된 이곳 해수욕장도 내년부터 일반 관광객들에게 공개되어 수난을 받을 것이란 생각에 아쉬움이 앞선다.
북녘 땅의 숫사자를 기다리며 한 달에 한번 달거리를 한다는 암사자 바위를 구경하고, 해병 807OP에 도착하니 젊은 관측장교와 대대장이 우리들에게 브리핑을 위한 준비를 마치고 기다리고 있다. 백령도는 휴전 협정 때 미군이 설정한 NLL(Northern Limited line)을 해상 경계선으로 고수하겠다는 우리 국군의 의지와 이를 무시하고 치밀한 도발 계획을 세우는 북한군과 항상 위기감이 팽배한 지역이었다.
브리핑을 위한 모형지형을 통해 NLL이 북한군 활동을 얼마나 제한하는지 알게 되었다. 이를 사수하는 국군들의 노고에 진심에서 우러나는 격려를 보냈으며 서해교전 때 순국한 고 윤영하 소령 외 5명 해군들의 영령들을 추모하기 위해 고개를 숙이지 않을 수 없었다. 언제고 국가가 요구할 때 한 목숨 바쳐 조국을 위기에서 건진 조국의 수호신들에 대한 보답을 조금이라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는 느낌이 절실하다.
OP를 떠나 1950년대와 1960년대 약 20여 년 간 적과 불과 14㎞ 떨어진 지점에서 대치해야 하는 해병들이 삽과 곡괭이만으로 적의 대포공격으로부터 생존을 위해 팠다는 지하벙커를 방문하였다. 벙커 끝 지점인 절벽에 이르러 북쪽으로 향한 50년대 대형 대포를 만져보는 감회를 맛보았다. 영화에서나 봄직한 나바론 요새가 백령도에는 10곳이나 있으며 지금도 한 달에 한 번씩 사격연습을 한단다. 엄청난 위력의 현대화기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구형 대포를 보존하는 것은 상징적 의미가 크단다.
제2 해금강이라 불리는 두문진 해변의 선대암 일대의 바위를 구경하기 위하여 옹기포를 떠난 소형 관광 쾌속선은 항구의 물살을 힘차게 가른다. 선대암에 이르는 길목에 간간히 우리를 반기는 물범들의 모습에 잠시 북유럽 빙하호수를 항해하는 듯한 착각에 빠졌다.
나는 솔직히 이렇게 웅장하고 훌륭한 경치를 구경하리라고는 기대하지 않았다. 선대암 일대의 바위 모습은 놀람과 설레임이었다. 어떠한 희생을 각오하고서라도 우리의 후손들에게 물려줘야 할 의무감이 일었고 선대암 정상 부근의 동굴에서 24시간 북한의 도발에 대한 경계태세를 갖추고 있는 해병들의 모습이 그렇게 믿음직스러울 수 없었다.
아침 5시부터 일어나 지금까지 설치고 돌아다니다가 수련원에 입소하고 이곳에서 제공하는 저녁을 배부르게 먹었으니 남은 것은 졸음뿐이다. 한국사회학회 소속 *박사의 안보교육은 강사나 강의를 들어야 하는 우리들이나 쌍방 간에 매우 부담스러운 2시간이었다.
그러나 타고난 강사 *박사의 명 강의 덕분에 우리는 웃고 웃으며 알차고 알찬 국가안전보장에 관한 교육을 거뜬히 소화해냈고 그에 대한 보상으로 국정원에서 준비한 천연산 생선회와 우리들이 몇 푼씩 갹출하여 구입한 풍성한 꽃게 안주에 거나하게 마시면서 웃음꽃을 피웠으니 어찌 도를 넘지 않을 수 있었을까?
2일 아침엔 일찍 일어났으나 평소의 습관대로 뇌파진동, 생활참선, 백팔배까지 하고 두문진항을 구경하러 나섰더니 발 빠른 친구들은 일출과 항구의 주변을 구경하고 숙소로 돌아오는 중이다. 두문진 항의 꽃게잡이 어선들이 떠오르는 태양을 안고 포구를 빠져나가는 모습을 멀리서 바라보노라니 적과 대치하고 있는 지역이라기보다는 참으로 평화롭고 정감어린 항구의 아침이다.
조식 후 답사한 콩돌해안은 백령도 모암인 규암이 해안의 파식작용에 의해 마모를 거듭해 형성된 콩알같은 잔자갈들이 약 1.5 ㎞ 길이로 오금포 남해안을 따라 펼쳐진 아름다운 해안이다. 양발을 벗고 콩돌해안을 걷고 난 후 입구에서 한잔 한 백령도의 막걸리 맛은 평생 못 잊을 것 같다.
안보현장 견학 후 소감인터넷을 통해 ‘통일을 원치 않는다’를 검색해 보면 우리나라 젊은 사람들의 통일관을 짐작할 수 있다. 아마 상당수 아니면 대부분의 젊은이들은 통일의 경비와 우리나라 주변국의 정세에 의해 우리나라 통일이 ‘불가하다’ 또는 ‘이대로가 좋다’ 는 견해를 갖고 있는 듯하다. 당사자인 우리들의 생각이 이러니 우리나라의 통일은 어렵지 않을까? 하는 염려가 앞선다.
나는 통일에 관한 문제의 전문가도 아니고 경제 전문가도 아니지만 60년 가까이 산전수전 그리고 공중전까지 겪어본 경험자로서 통일에 관한 나의 견해를 피력하고 싶다.
우리는 ‘체력은 국력이다’라는 말을 많이 해왔고 지금도 그렇게 믿고 있다. 이번 북경올림픽에서 우리는 일본을 앞지르고 전 세계 국가 중 7위의 국가 경쟁력을 보여줬고 북한은 33위를 했다. 우리와 북한을 합치면 5위인 독일을 앞지르는 힘이고 국력이다.
이 지구 상에서 분단국은 우리와 중국뿐이다. 중국과 대만은 정치적 이념에 대한 차이는 있을지언정 경제적인 공조체제를 유지하고 있으며 개인적인 사생활의 제한은 별로 없다. 실제로 우리와 북한만이 유일한 분단국인 셈이다. 어떤 이유로든 우리들이 통일을 진정으로 갈망하지 않은 결과일 것이다.
우리는 최근 미국의 서브프라임모기지론(Subprime mortgage loan)과 일본의 제로금리에 기인한 경제 대공황 상태에 직면해 있다. 3개월 사이에 국민소득 년 2만 달러에서 년 1만 3000달러로 추락하고 말았다. 이제 금융 대란은 시작이다. 개인 당 일 년에 7000달러씩 공중으로 증발한다는 얘기이고, 앞으로 손실액이 얼마나 더 늘어날지 예측이 불가한 상태이다. 문제는 사태가 이러함에도 우리 자력으로 손을 쓸 방법이 별로 없다는 것이다.
자국인 인구가 1억이 되면 수출과 수입에 의존하지 않더라도 경제가 자력으로 생존할 수 있는 내수기반이 형성된다는 사실 정도는 상식이다. 우리와 북한이 함을 합치면 주변국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는 경제적으로 독립국이 될 수 있으며 수입과 수출에 일시적인 차질이 생긴다고 하더라도 견딜 수 있는 힘이 생긴다.
북한과 공조를 너무 비관적으로 볼 문제만은 아니다. 독도문제를 누구와 상의하겠는가? 백두산 문제를 우리가 얼마나 걱정하는지 자문자답해 보면 모든 것이 명백해진다.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가 우리들의 고통을 이해하고 분담하기를 바란다면 매우 우매한 처사가 된다. 국가 간에는 자국민의 이권에 관한 문제가 대두되면 언제든지 적으로 돌아설 수밖에 없는 것이다. 특히 미국에게는 우리가 일본보다 우선 고려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우리 민족간의 공조만이 유일한 살 길이다. 속수무책으로 앉아서 당하는 국부의 수탈은 운명이고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위한 통일에 소요되는 비용이 아깝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북한의 최우선 문제는 체제유지에 대한 보장이다. 우리의 당면과제는 경제적 자주독립이고 정치이념이 배제된 개인의 자유보장이다. 서로 원하는 것을 얼마든지 쥘 수 있다. 세월이 흐르면 흐를수록 민족통일의 염원은 희미해진다. 이대로라면 우리는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 손아귀에서 영원히 못 벗어난다.
서양에 노블리스 오블리제(noblesse Oblige)라는 정신적인 뿌리가 있다면 우리에게는 화랑도 정신과 조선의 선비정신이 있다. 영국에 엘리자베스 여왕의 차남 엔드루 왕자의 포클랜드 전쟁 시 위험한 헬기 조종사로 참전하였고, 6.25 전쟁에 참전한 미국장성의 아들들의 절반 이상이 죽었거나 장애자가 되었다. 이런 사실을 상기하면서 우리 사회의 정치면 주요 기사의 제목들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깊은 한숨이 나온다.
흘려들은 얘기지만 우리의 청소년 51%가 6.25전쟁을 모른다면 그 책임은 누구에게 있을까? 누구를 원망하고 누구를 탓하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