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보기행이 늘 즐거움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더군요. 제주 속살을 느껴보기 위한 제주올레 9코스 도보기행은 안타까운 올레길도 있었습니다.
길을 걸으면 세상이 보인다
장장 22km 올레길을 어찌 아름다운 길만 골라 걸을 수 있겠습니까. 길 위에 펼쳐지는 풍경의 조화와 풋풋한 사람 사는 이야기, 시정돼야 할 뉴스들도 많았지요. 때문에 길을 걸으면 세상이 보인다고 했던가요?
2008년 9월 27일 오후 3시 50분, 바다를 끼고 걷는 서귀포시 성산읍 신천리 올레길 끄트머리에 섰습니다. 추분이 지난 가을해는 빨리 기울더군요. 신천리 바다는 은빛으로 출렁였습니다. 하지만 5시간 이상을 걸어왔던 올레꾼들에게는 힘든 코스더군요. 다리를 절뚝거리며 걷는 올레꾼도 있더군요. 포기하고 싶은 심정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천리 올레만 지나면 표선 앞바다와 당케포구가 펼쳐 질 것이란 기대감이 발걸음을 차분하게 만들더군요.
"빨리 건너세요. 물귀신 되지 않으려면..."
드디어 신천리와 하천리의 경계선인 배고픈 다리를 건널 차례입니다. 그러나 그 경계선 올레길은 참으로 안타까운 사연이 있었습니다. 50m쯤 앞서가던 한 선생님은 차마 그 길을 건너지 못하고 나를 기다리고 있더군요.
“이 길이 바로 배고픈 다리입니다! 사람도 배가 고플 땐 배가 쑥- 들어가잖아요. 다리도 마찮가지예요. 근데 이 다리는 배가 굉장히 고팠나 봐요.”
배고픈 다리를 설명해 주는 한 선생님은 애석한 표정으로 길 위에 서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러게요. 우린 다리가 고픈데, 이 올레길은 배가 고픈가 봐요!”
둘이서 걷는 배고픈 다리 올레를 걷다보니 서니 갑자기 무서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 선생님, 만약에 지금 폭풍우가 몰아친다면 불어난 하천 물에 물귀신이 되는 것은 아닐까요?”
내 말을 들은 척도 하지 않고 한 선생님은 배고픈 다리를 훌쩍 건너 버렸습니다.
“헤--헤--헤-. 빨리 건너와요. 물귀신 되지 않으려면….”
한 선생님의 그 농담은 가슴 아픈 뉴스로 전해지더군요.
하천과 바다 사이 다리는 배가 고프다
배고픈 다리는 서귀포시 성산읍 신천리와 서귀포시 표선면 하천리를 연결하는 다리입니다. 일명 ‘세월’이라 하더군요. 배고픈 다리 길이는 30m 정도 될까요? 폭은 4-5m 정도 되는 듯 했습니다. 그 배고픈 다리는 한라산에서부터 성읍을 경유해서 흐르는 천미천 꼬리 부분입니다.
따라서 배고픈다리 오름 쪽에는 하천이 있고 왼쪽에는 바다로 이어지더군요. 하천과 바다의 경계선인 셈이죠.
배고픈 다리는 다리인지 도로인지 구분이 되지 않았습니다. 길 아래 4개 정도 구멍을 뚫어 하천의 물이 그 구멍을 통해서 바다로 흘러내려가고 있었습니다.
하천 바닥에서 다리까지 높이는 1-2m 정도 될까요? 이날은 날씨가 맑았는데도 하천물이 유유히 흘러내리고 있었지요. 그런데 만약 태풍이나 장마, 집중호우가 몰아친다면 배고픈 다리는 어떻게 될까요? 만약 그때 마을 사람들이나 올레꾼들이 길을 건너고 있다면 어떻게 될 까요. 생각만 해도 아찔했습니다.
"장마철만 되면 이길은 물바당 되주!"
신천리 올레에서 하천리로 이어지는 배고픈 다리의 기울기는 30-40도 정도 되는 것 같았습니다. 배고픈 다리 주변에는 농부들이 일궈놓은 콩밭과 감귤밭들이 존재하고 있더군요. 그러니 두 마을에 사는 농부들이 이 길을 자주 건너는 것은 당연하겠지요.
농부 한분이 등에 짐을 지고 배고픈 다리 올레길을 건너고 있었습니다.
“장마철 되면 이 길은 물바당 되주!”
신천리에 산다는 할머니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길을 건너버리더군요.
사실 배고픈다리는 서귀포시에서 재해위험지역으로 관리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도로와 하천의 정의를 놓고 관련부서끼리 떠밀리기 행정을 펼치다 보니 해마다 이 배고픈 다리를 건너는 사람들은 무서움에 떨어야 했다고 합니다. 배고픈 다리가 가슴 아픈 다리로 변했으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고픈 배를 채워줄 이 누구 없소?
비가 내리지 않을 경우에는 교량으로, 하천을 횡단하는 경우에는 도로의 역할을 하다가도 폭우로 하천에 물이 불어날 경우 물속에 잠겨 버리는 배고픈 다리. 그 다리를 건너는 올레꾼의 마음은 참으로 아팠습니다. 제주시 표선면 하천리 배고픈 다리, 30m 올레길의 고픈 배를 채워줄 이 누구 없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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