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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주 새벼리 도로에 있는 '형평운동가 강상호 묘소' 안내판.
진주 새벼리 도로에 있는 '형평운동가 강상호 묘소' 안내판. ⓒ 윤성효

 강상호 선생 비석과 무덤.
강상호 선생 비석과 무덤. ⓒ 윤성효

"모진 풍진의 세월이 계속될수록 더욱 더 그리워지는 선생님이십니다."

경남 진주시 새벼리 기슭에 있는 백촌(栢村) 강상호(姜相鎬, 1887~1957) 선생 묘비 뒷면에 새겨져 있는 글귀다. 앞면에는 '형평운동가·독립운동가'와 '2005년 애국지사 추서-대통령 표창'이라 새겨져 있다.

이 비석은 누가 언제 세웠는지 모른다. 비석 뒷면에는 '작은 시민이'라고만 되어 있다. 유가족도 세우지 않았고, 형평운동기념사업회도 세우지 않았다고 한다. 5~6년 전 한 시민이 세웠다가 애국지사로 추서된 뒤 올해 4월 글자를 추가로 새겨 넣었다.

현재 강상호 선생의 무덤은 볼품이 없다. 비석 하나 없이 50년 이상 지내온 것이다. 그 흔한 잔디도 씌워져 있지 않다. 비석이 세워지지 않았더라면, 무덤의 주인공이 누구인지도 모를 정도였다. 장례를 지낼 때는 자기 땅이었지만 후손들은 가난으로 인해 이 땅마저 팔아야 했다.

진주사람들은 새벼리 도로를 지나면서, 강상호 선생의 무덤이 이곳에 있는지조차 몰랐는데 1990년대 후반부터 형평운동이 새롭게 조명되면서 그나마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런 백촌 선생의 무덤을 진주사람들은 좋아한다. 강상호 선생은 뒤늦게지만 애국지사로 추서돼 국립묘지 이장이 가능하다. 하지만 유족과 진주사람들은 국립묘지 이장을 거부했다. 대신에 이곳을 새롭게 가꾸어 역사공원으로 조성하기를 바란다.

 강상호 선생 비석 앞면.
강상호 선생 비석 앞면. ⓒ 윤성효

 강상호 선생 비석 뒷면.
강상호 선생 비석 뒷면. ⓒ 윤성효

그런데 쉽지 않다. 시일이 다소 걸릴 모양이다. 올해 4월 진주시는 묘지 위치를 알리는 안내표지판을 세웠다. 묘역 출입로에 나무판을 깔아, 그나마 접근이 쉽도록 해놓았다.

형평운동기념사업회는 이곳을 역사공원으로 조성해야 한다고 제시하고 있다. 형평운동기념사업회는 지난해 11월 '애국지사 강상호 선생 묘역 역사공원화 사업 추진을 위한 청원'이 진주시의회에 제출됐다. 민주노동당 소속 강민아 시의원 등이 이를 받아들여 진주시에 제출하기도 했다.

진주시는 이 무덤 인근에 있는 가좌(석류)공원 인공폭포와 팔각정 주변(5만7321㎡)을 중심으로 '가좌공원 재조성 기본계획'을 수립했다. 한때 진주시는 예산 부족으로 공원화 사업 추진해 난색을 나타내기도 했다.

한나라당 김재경 국회의원과 형평운동기념사업회는 지난 9월 26일 진주시청에서 '형평운동과 강상호선생의 재조명을 위한 공청회'를 열기도 했다. 이날 주최측은 "1923년 진주에서 결성되어 전국으로 번진 인권운동인 형평운동의 역사성과 현재성을 시민과 더불어 공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진주시 녹지공원과 관계자는 "내년 예산에 '가좌공원 재조성 기본계획' 기본설계가 들어가 있다"면서 "강상호 선생 묘역 부분은 당장에 추진하기는 어렵고, 예산이 확보되는 대로 추진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박노정 전 형평운동기념사업회 회장은 "진주의 어린 학생들은 간디나 링컨은 알지만 반세기 전에 진주에서 '백정들의 아버지'로 불리던 위대한 선각자 강상호 선생은 제대로 알지 못한다"면서 "위대한 인권운동가였던 강상호 선생을 진주에서부터 제대로 받들어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강상호 선생 무덤.
강상호 선생 무덤. ⓒ 윤성효

김장하 남성문화재단 이사장은 "강상호 선생의 무덤이 국립묘지에 있는 것보다 고향인 진주에 있어야 더 값어치가 있는 것"이라며 "역사공원으로 가꾸어 후손들을 위한 인권의 산교육장으로 활용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강상호 선생은 백정들의 신분해방에 앞장선 인물이다. 그는 1923년 신현수 선생 등과 함께 "저울(衡)처럼 공평(平)한 사회를 만들고자 한 단체(社)"인 '형평사'를 진주에서 만들었고, 이후 형평사는 전국으로 확대되었다.

진주군 대안면장을 지낸 천석꾼의 아들로 태어난 백촌 선생은 양반 집안의 후손이면서 백정신분해방을 위해 앞장 선 것이다. 강상호 선생은 3·1운동이 일어났을 때는 만세운동을 전개하기도 했으며, 그해 8개월간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강상호 선생 무덤 입구.
강상호 선생 무덤 입구. ⓒ 윤성효


#강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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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부산경남 취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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