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과외', 환상의 노동이긴 하지만...11년 전이었다. 순전히 돈 때문이었다. 새벽에는 신문배달, 오후에는 햄버거집에서 일하던 나. 과외로 용돈을 꽤 벌던 친구들을 보니 도무지 급여의 효율성면에서 3D 업종은 상대가 되지 않음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중학생 한 명을 가르쳤다. 물론 시급 1700원짜리 햄버거 가게 아르바이트에 비해 개인과외는 그야말로 환상의 노동이었다.
군대를 제대한 후 과외 자체에는 관심이 없었지만 꼭 과외를 해야 할 상황은 언제나 발생했다. 그렇게 돈이 필요한 일이 늘 발생했다. 내 스스로 만족할 노동을 하고 싶었는데 그러한 망상만 가지다가는 생필품도 못 살 지경이었다. 그렇게 간간히 과외를 했다.
내가 잘못해서 과외를 단기간에 마친 적도 있었지만 스스로도 1년이상 은 절대 안 했다. 그렇게 무의미하게 돈 벌기도 싫었고 무엇보다도 재미가 없었다. 오직 '교과서'(자습서)에 나온 이야기만을 해야 하고 그외의 상상력은 무조건 금지였다. 난 그게 싫었다.
하지만 대학원에 올라와서는 이런 생각도 사치라는 것을 알았다. 석사 1학기 때부터 집에서 완전히 독립하게 되면서 경제적으로 모든 것이 벅차게 되었다. 그래서 난 정규직(?)으로는 신문배달과 조교생활을, 그리고 간간히 과외를 부수입으로 삼았다.
과외는 일단 언제든지 중단될 가능성이 다분하기 때문에 '제때' 돈이 필요한 사람이 이것만을 신뢰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푼돈이라도 제 날짜에 항상 돈이 들어오는 시스템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전문 과외라 '구라쳐' 대치동에서 몇달 과외하기도처음에는 노트북을 너무 사고 싶어서 과외를 했다. 대학원 신분에 학교 컴퓨터실에 죽치고 앉아서 과제를 준비하는것도 '쪽팔렸다'. 다음에는 지하 고시원 방에서 탈출하고 싶어서 악착같이 과외를 했다. 그렇게 2년을 지내니 여름에는 덥고 겨울에는 추운 옥탑방 하나를 얻을 수 있었다.
그렇게 대학원 생활 5년이 지났다. 다세대 주택 한 칸을 얻게 되었다. 결혼까지 했고 딸도 생겼다. 결혼 이후부터는 그냥 과외를 했다. 배가 고프기 때문이다. 그리고 얼마 전에 중학생 과외를 하다가 그만두게 되었다. 학생이 힘들어한다는것이 주이유이지만 사실상 내가 '짤린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리고 결심했다. 다시는 과외 안 한다고. 죽이되든 밥이되든 내가 하고 싶은거 해서 돈 벌겠다고.
나는 전문 과외교사가 아니다. 그래서 이 시장을 사실 잘 모른다. 물론 누군가가 날 전문 과외교사라고 '구라쳐서' 대치동에서 몇 달 거짓 과외를 한 적은 있었다. 들통날 것이 두려워서 나름 열심히 했다. 바닥을 치던 학생 성적도 꽤 올랐다.
하지만 필요 이상의 돈을 받으니 이건 마치 내 미래가 바로 전문 과외교사인 것처럼 자동적으로 맞춰지기 시작했다. 상상력이, 꿈이 없어지기 것이 싫어서 얼른 그만두었다. 거긴 퇴직금(?)도 주더라. 으허허.
어쨌든 10년간 몇십 명의 학생을 만났다. 다양한 학생들이다. 학생을 구분할 여러가지 변수가 있겠지만 대개 다음의 도식으로 정리할 수 있다. 현직 교사들이 보면 별다른 느낌이 없겠지만 나에게는 나름 10년의 결산이다.
집안의 경제력 등을 먼저 생각할 수 있겠지만 과외는 결국 1:1 커뮤니케이션이기 때문에 학생들과 교사의 교감이 가장 중요하다. 즉 학생의 학습력 정도와 과외교사에 대한 태도 말이다. 이것으로 그 과외현장의 분위기는 다 결정된다.
[유형1] 공부도 잘하고 예의도 바르고4칸으로 나눌 때 좌측상단의 유형은 공부도 잘하고 교사에 대한 예의도 바른 경우다. 교사에게 환상적인 학생이다. 일단 교사가 잘못하면 그것이 '실수'인 줄 학생 스스로 안다. 그리고 교사를 편안하게 해주어야지만 궁긍적으로 자신이 많은 것을 배운다는 것을 잘 안다. 그래서 과외시간에 대한 문제, 보강의 문제, 하루 진도의 문제 등에 대해서 결코 선생에게 따지지 않는다.
약간 노골적으로 말해 과외 안 해도 머리가 워낙좋아서 좋은 성적을 유지할 학생들이다. 물론 학생이 고마워서 교사 스스로도 뭔가 열의를 불태운다. '윈-윈' 전략은 바로 이런 거다. 어쨌든 별 긴장도 하지 않고 과외생활을 했는데 지금도 연락오는 녀석들이 있다. 인생의 스승이라나 뭐라나. 고마운 녀석들.
과외 2시간 동안 학생 스스로 문제 읽고 문제 푼다. 그리고 다 맞힌다. 내가 하는 것이라고는 "자 다음은 몇번 풀어보자"가 전부. 감기가 걸려 과외를 쉬게 되어도 다음 시간에는 알아서 공부를 더 해 온다.
[유형2] 선생이 모를 때 한숨을 크게 쉬고좌측하단의 유형은 개인교사들이 가장 꺼리는 스타일이다. 일단 싸가지를 밥 말아 먹은 놈들이다. 과외선생을 로보트로 생각하고 있다. 시험기간이 되면 알아서 스케줄을 다 짠다. 쓸데없는 이야기가 등장하면 스스로 중단시킨다. 과외 도중에 교사가 간혹 모를때, 여지없이 눈치를 준다. 얼마나 한숨을 크게 쉬는지 쪽팔려 죽을 뻔했다. 뭐, 그러한 효과 때문에 나부터가 열심히 준비는 하게 되더라. 무서워서 말이다.
이런 학생들은 과외선생이 가진 모든 것을 다 빼가고자 한다. 주로 학생이 "자 이제 몇번 풀어주세요"라고 수업을 이끈다. 교사가 무척 아파도 이 친구한테는 가야 한다. 아픈 것은 내 사정이지 학생 사정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학생들 2시간 과외하고 나면 힘이 쭉 빠져서 그날은 일단 쉬어야 한다.
[유형3] 예의는 바르되 공부는 지지리도 못하고우측상단의 유형은 개인과외를 오직 경제적인 이유에서 한다고 가정할 때 가장 선호하는 스타일이다. 예의가 바르다. 그래서 선생을 스트레스 받지 않게 한다. 다만 공부는 지지리도 못한다. 그래서 과외현장에서는 거의 '기초'만을 가지고 2시간을 때운다. 심화과정은 나갈 필요도 없다.
학습력이 떨어지니 내가 하는 말이 교과과정에 포함되어 있는 순수(?)한 말인지, 아니면 교사의 사상과 이념이 강요되는 불필요한 말인지 구분도 못한다. 내가 틀려도 틀린지를 모른다. 나름 열심히 한다고 하지만, 졸려도 선생 앞에서는 절대 졸면 안된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성적은 언제나 그대로다.
그래도 언제나 착하다. 대개 집안 자체가 착하다. "선생님, 열심히 가르쳐주셨지만 제가 잘 못 따라가서 죄송해요. 다음에는 잘할게요"라는 버전을 꼭 유지해 준다. 교사는 긴장감을 형성하지 않으니 또 대충 가르친다. 그러니 성적이 올라가기가 힘들어진다. 악순환이다. 그래도 그걸 모른다. 교사는 알면서도 몸이 편안하니 그냥 내버려둔다.
[유형4] 동갑내기 과외하기의 '권상우' 같고우측하단은 영화 <동갑내기 과외하기>의 '권상우' 스타일이다. 일단 과외가 무섭다. 그리고 어이가 없다. 한번은 너무 화가 나서 약간 꾸중을 한 적이 있었다. 돌아온 대답은 "뭐라고요?"라는 싸늘한 느낌. "지금 뭐라고 하셨죠?"라는 마무리 멘트까지 해주신다. 이 정도 대화가 오가면 그나마 다행. 일단 약속시간에 집에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
부모도 속수무책. 오토바이 타고 놀고 있는 녀석을 함께 포획하자는 부모의 부탁으로 007 작전을 병행한 적도 있었다. 과외를 마치고 나면 무슨 50대 가장이 회사에서 욕 먹고 어깨가 쭉 늘어진 채 귀가하는 모드. "내가 이런 일을 해야 하나?"라는 푸념 속에 소주 한잔 마시고 들어가지 않으면 도무지 안될 상황의 연속.
유형은 달라도 무조건 과외는 해야 한다?10년의 과외생활을 정리해보면서 가장 신기한 것은 이렇게 유형은 달라도 모든 유형에서 '개인과외'를 필요로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유는 없다. 그냥 성적을 향상시켜 달란다. 우리나라의 사교육이 이렇다. 그냥 해야 되는 거다. 무엇이 가장 필요한지 모른다. 사교육이 필요없는 학생도 해야 하고 사교육과 전혀 상관없는 학생도 일단 과외는 해야 한다. 그러니 사교육시장이 결코 망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게 바로 대한민국의 현실인 듯하다. 아무튼 난 이제 그만두련다. 내 스타일 아닌 것 같다. 나에겐 학원 선생, 혹은 개인 과외교사의 유전자가 없는 것 같다. 학생을 저따위 도식으로 평가하려고만 하니까 말이다. 그것을 절실히 체험하는데 10년이나 걸렸다. 먹고 사는게 뭔지.
덧붙이는 글 | http://blog.daum.net/och7896 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