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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송백 씨의 과수원. 한켠에 거름이 듬뿍 쌓여 있다. 과일을 딴 다음 과원에 넣을 것이란다.
김송백 씨의 과수원. 한켠에 거름이 듬뿍 쌓여 있다. 과일을 딴 다음 과원에 넣을 것이란다. ⓒ 이돈삼

드넓은 배밭 사이로 난 샛길을 따라가니 자동차 바퀴자국을 따라 흙먼지가 희뿌옇게 날린다. 차창 사이로 친환경 배밭이라는 걸 확인이라도 시켜주는지 매캐한 냄새가 스며든다. 차에서 내리니 아예 거름냄새가 진동을 한다. 자연스레 인상이 찌푸려진다.

그 냄새를 참아가며 배밭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흙이 푸석푸석하다. 퇴비를 얼마나 넣었는지 땅에 솜이불이라도 깔아놓은 것처럼 푹신하다. 풀도 여기저기 자연스럽게 자라있다.

'나주배'의 주산단지인 전라남도 나주시 왕곡면 화정리에서 16만5000㎡의 과원을 운영하며 14년째 배를 따고 있는 김송백(48)씨. 그의 겉으로 보이는 배밭 풍경이다.

눈길을 과원 안으로 돌려본다. 푹신한 땅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나무에는 배가 탐스럽게 익어 주렁주렁 달려 있다. 봉지 하나를 벗겨본다. 열매가 튼실하게 생겼다. 때깔도 좋다. 당도도 14도브릭스(BX)까지 나가 달단다.

배를 하나 따서 권하는 김씨의 손길에 엉겁결에 한입 배어 물었다. 혀끝에 감도는 맛이 달짝지근하다. 씹는 맛도 부드럽고 아삭아삭하다. '이게 진짜 배맛이구나' 싶다.

 김송백 씨의 과원에는 아직도 나주배가 주렁주렁 열려 있다. 예년 같으면 다 출하하고 앙상한 가지만 남았을 텐데...
김송백 씨의 과원에는 아직도 나주배가 주렁주렁 열려 있다. 예년 같으면 다 출하하고 앙상한 가지만 남았을 텐데... ⓒ 이돈삼

 김송백 씨가 나주배 하나를 따서 한입 베어물고 "맛있다"면서 직접 하나 따서 먹어볼 것을 권하고 있다(오른쪽). 왼쪽 사진은 김씨의 부인이 배를 따고 있는 모습이다.
김송백 씨가 나주배 하나를 따서 한입 베어물고 "맛있다"면서 직접 하나 따서 먹어볼 것을 권하고 있다(오른쪽). 왼쪽 사진은 김씨의 부인이 배를 따고 있는 모습이다. ⓒ 이돈삼

"햇볕으로 목욕을 시켰습니다. 보십시오. 나무와 나무의 간격이 넓고 가지치기도 잘 돼 있잖아요. 햇볕이 충분히 들어오니까 색깔이 좋고 당도가 높은 거예요."

배맛이 좋다는 말에 대한 김씨의 설명이다. 모든 과수가 마찬가지지만 밀식상태에선 절대 맛있는 과일이 생산될 수 없다는 게 그의 확신이다.

김씨는 과원에 '햇볕목욕' 외에도 발효퇴비를 직접 만들어 듬뿍 넣어준다. 화학비료를 쓰지 않는 대신 축산부산물에 효소를 발효시킨 퇴비를 만들어주는 것. 감초와 당귀, 마늘, 흑설탕, 막걸리 등으로 사람이 섭취해도 좋을 정도의 한방농약도 만들어 과원에 뿌려준다. 미나리, 현미식초, 바닷물, 생선액젓, 유산균 등으로 만든 천연영양제도 넣어준다.

"토양을 살리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거든요. 그러려면 유기물을 꾸준히 만들어 줘야해요. 유기물이 많이 생성되면 나중에 퇴비를 쓰지 않고도 농사지을 수 있습니다. 농사비용도 오히려 줄고요."

병해충에 강하면서도 튼실한 배를 따는 김씨의 농사비법이다.

 김씨가 자신의 과원에서 밀식재배 하지 않고 가지치기도 잘 해줘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이렇게 해줘야 햇볕이 충분히 들고 당도를 더 높여준다고.
김씨가 자신의 과원에서 밀식재배 하지 않고 가지치기도 잘 해줘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이렇게 해줘야 햇볕이 충분히 들고 당도를 더 높여준다고. ⓒ 이돈삼

그러나 이 배가 요즘 골칫거리다. 과잉 생산과 소비 둔화로 판로가 막혀버린 것. 유례없는 대풍작으로 공급물량이 넘치고 있기 때문이다. 일조량도 많고 태풍피해도 비켜간 덕에 '과일을 싼 봉지가 터질 정도'로 작황이 좋다. 농가 입장에서 보면 하늘까지 도운 풍작인 셈이다.

이처럼 풍년농사를 지은 농민들이지만 얼굴에 웃음은커녕 수심만 가득하다. 추석이 빨라 대목을 놓친 데다 계속된 경기침체 등의 여파로 소비가 크게 줄었기 때문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올해 기름값이 살인적이다 싶을 정도로 올랐다. 각종 농자재 값도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아 농민들의 고통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사정이 이러한데도 김씨는 여유를 보인다. 저온창고가 수용할 수 있는 물량은 저장하고 나머지는 정면 돌파 방침을 세웠기 때문이다. 그동안 직거래를 하며 맛과 품질로 신용을 쌓아온 전국의 고객들에게 편지를 띄워 구매를 권할 생각이다.

그렇다고 헐값에 수확한 배를 넘길 생각은 추호도 없다. 소비자들한테 배밭을 개방하고 정직하면서도 빼어난 맛으로 어려움을 극복해나가겠다는 것.

김씨는 "한번 배 값이 폭락하면 좀체 회복시키기 힘들다"면서 "지금까지 맛과 품질로 승부해왔듯이 이번에도 가격을 제대로 받되, 몇 상자 사면 한 상자를 덤으로 주는 방식을 택할 것"이라며 자신감을 보였다.

 하늘까지 도운 풍작으로 과원에는 배가 주렁주렁 달려있다. 그러나 소비가 위축돼 농가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하늘까지 도운 풍작으로 과원에는 배가 주렁주렁 달려있다. 그러나 소비가 위축돼 농가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 ⓒ 이돈삼


#나주배#김송백#왕곡농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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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찰이 일상이고, 일상이 해찰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전남도청에서 홍보 업무를 맡고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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