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세와 재정지출 확대를 동시에 추진하겠다."
강만수 기획재정부장관의 말을 듣고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큰일 났다! 결국 최악의 상황까지 가야하는 건가'
경제정책의 생명은 일관성이다. 좌로 가든 우로 가든 일관성이 있어야 예측이 가능하고, 예측이 가능하면 적어도 최악의 상황은 피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 동안 '감세와 작은 정부(재정지출축소)'를 표방하다가 갑자기 180도 선회한 이번 발언에서 알 수 있듯이 최근에 보여준 경제수장의 언행은 좌충우돌 그 자체이다.
좌충우돌하는 경제수장의 모습을 볼 때 경제주체들의 심리는 불안해질 수밖에 없다. 경제정책이 어디로 튈지 모르기 때문이다. 불안한 심리 하에서 보이는 경제주체들의 반응은 '우왕좌왕'이며, 우왕좌왕하는 경제주체들은 다시 경제상황을 예측 불가능한 국면으로 몰고 가게 된다.
좌충우돌 경제수장, 우왕좌왕 경제주체
좌충우돌하는 언행만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감세와 재정지출확대의 동시추진'이라는 재정정책 자체가 갖는 위험성 역시 매우 심각하다.
지난 수십년간 자본주의 국가의 경제정책에 영향을 준 경제학의 주류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뉘어진다. 하나는 케인지안 경제학이고, 다른 하나는 공급중시경제학이다.
케인지안 경제학의 키워드는 '유효수요(소비+투자)'이다. 케인지안경제학에서는 불황과 실업의 원인을 유효수요의 부족에서 찾기 때문에 적극적인 재정지출을 통하여 유효수요를 창출하는 것이 경제정책의 핵심을 이룬다.
케인지안 경제학은 큰 정부를 원한다. 정부는 조세를 통하여 필요한 만큼의 재원을 조달하고 이 재원으로 적극적인 공공투자를 하여 민간부문의 투자부족을 메꾸어야 한다.
한편, 공급중시경제학은 완전경쟁시장의 자기조정기능을 신봉한다. 따라서, 시장에 간섭하는 행위는 기본적으로 나쁜 것이 된다. 세금은 사중손실(Dead Weight Loss)을 초래하여 시장에 나쁜 영향을 주고 경제의 효율성을 해치므로 적을수록 좋다.
공급중시 경제학은 작은 정부를 원한다. 시장에 간섭하지 않고 아무 것도 안 하는 정부가 좋은 정부이며, 정부가 하는 일이 없을수록 세금은 적어지게 된다.
케인지안 경제학과 공급중시 경제학을 비교하면, 조세정책에서는 '증세 대 감세', 정부기능에서는 '큰 정부 대 작은 정부'로 대비될 수 있다.
이러한 두 주류 경제학의 영향으로 자본주의 국가의 경제정책은 크게 '증세와 적극적인 재정지출'의 조합을 취하거나, '감세와 재정지출 축소'의 조합을 취해왔다.
미국의 경우, 70년대까지는 케인지안 경제학이 주류를 이루다가, 80년대 들어서서 레이거노믹스를 시작으로 공급중시 경제학이 경제정책에 큰 영향을 미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최근 금융위기를 계기로 '고소득자에 대한 증세와 복지 확대'를 표방하는 오바마 대통령후보가 큰 주목을 받고 있으며, 오바마 후보가 당선될 경우 미국의 경제정책은 다시 ‘증세와 적극적인 재정지출’의 조합으로 선회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런데,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은 두 주류 경제학을 뒤섞어서 '감세와 적극적인 재정지출'의 조합을 경제정책으로 표방하였다. 이를 강만수 경제학이라고 해야 하나?
주류 경제학 뒤섞어 '강만수경제학'
케인지안 경제학과 공급중시 경제학의 공통점은 중장기적으로는 재정균형을 지향하고 있다는 점이다. 케인지안 경제학은 재정지출을 확대할 경우 일시적으로 재정적자를 초래할 수 있지만, 공공투자 확대로 경기가 회복될 경우 누진적인 조세로 인해 고소득자를 중심으로 세수가 늘어나 중장기적으로 재정균형을 이룰 수 있다고 본다.
한편, 공급중시 경제학은 래퍼곡선에 의해 감세하면 오히려 세수가 늘어난다고 한다. 즉, 감세로 인해 투자가 활성화되면 비록 세율은 낮아지지만 전체적인 세수는 늘어난다는 것이다.
두 주류 경제학이 구조적인 재정적자를 기피하는 것은 다 이유가 있다. 재정적자가 구조화되면 정부는 적자를 메꾸기 위해 매년 천문학적인 국채를 발행할 수밖에 없다. 국채를 발행하면 시중의 돈이 국채로 흡수가 되므로 금리가 올라가게 되고 금리가 올라가면 민간부문의 투자가 위축된다. 이를 구축효과(Crowding-out Effect)라고 하는데, 구축효과는 적극적인 재정지출 또는 감세가 초래할 긍정적인 효과를 상쇄하게 된다.
그런데, 역사적 경험으로 비추어 볼 때 공급중시 경제학이 자랑하는 래퍼곡선이 작동한 적이 없다. 레이거노믹스의 결과를 보면 알 수 있다.
1980년대 후반의 미국 할리우드 영화를 보면, 일본 자본이 미국의 특정 도시나 특정 분야를 지배하는 내용이 자주 나온다. 실제로 1980년대 일본자본이 미국의 주요 부동산을 마구잡이로 사들이는 현상을 당시 미국언론은 '제2의 진주만 공습'으로 표현하곤 했다. 이러한 현상은 1980년대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이어진 미국의 경제 암흑기를 반영하는 것으로 레이거노믹스의 실패를 의미한다.
레이거노믹스의 결과 감세는 확실히 이루어졌다. 그런데, 국방비의 증가와 복지비용 축소에 대한 저항으로 재정지출은 오히려 증가하였다. 그 결과, 원래 표방한대로 '감세-재정지출 삭감'이 아니라 '감세-재정지출 증대'로 이어져, 천문학적인 재정적자가 구조화되었다. 게다가 감세가 투자를 활성화시켜 세수를 증대시키는 소위 '래퍼 효과'도 나타나지 않았다.
레이건정부의 막대한 국채발행은 '구축효과(crowding-out effect)'를 초래하였고, 금리상승이 달러가치의 상승으로 이어져 미국 제품의 국제경쟁력을 떨어뜨려 경상수지 적자를 초래하였다. 이로 인해 '재정적자-경상수지적자'의 쌍둥이 적자가 탄생되었다. 쌍둥이 적자는 미국경제를 벼랑 끝으로 몰았고 빈부격차는 점점 더 심해졌다.
천문학적인 재정적자로 인한 금융시장의 혼란은 1992년 클린턴 정부가 집권하여 소득세와 법인세를 인상함으로써 안정되었다(소득세 최고세율 28%에서 36%, 법인세 최고세율 34%에서 35%로 각각 인상). 이 조치는 재정적자 감소의 기대감을 불러일으켜 이자율을 하락시켰고 금융시장은 안정을 되찾게 되었다. 이로써 1990년대 중반 컴퓨터 및 IT 산업에 대한 본격적인 투자기반이 조성되었으며 미국경제는 회복기에 접어들게 된 것이다.
경제 활성화로 재정적자 해소? 희망사항일 뿐
레이거노믹스의 경우 '감세와 작은 정부'를 표방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마음대로 되지 않아 재정적자를 구조화시켰다. 그런데, 강만수 경제팀은 대놓고 '감세와 재정지출확대'를 말하고 있으니 앞으로 엄청난 재정적자가 초래될 것임은 불보듯 뻔한 일이다.
이에 대하여 앞으로 경제가 살아나면 세수가 늘어나 재정적자 문제는 자연스럽게 해소될 것이라고 변명하겠지만, 이는 예측이 아니라 그냥 희망사항을 얘기하는 것일 뿐이다. 감세로 인한 재정적자의 구조화를 미국정부도 못 막았는데, 우리나라 정부는 막을 수 있다고 자신하는 근거가 도대체 무엇인가? 자신들은 미국 관료보다 실력이 있다고 믿는 것인가?
미국정부의 경우, 70년대까지는 케인지안경제학의 영향으로 적극적인 재정지출 정책을 채택하였기 때문에, 불황기의 일시적인 재정적자를 관리하는 능력을 꾸준히 키워왔다고 볼 수 있다. 이에 비하면 우리나라 정부관료들의 재정적자 관리능력은 거의 제로에 가깝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우리나라는 그동안 양입제출의 관행으로 재정을 운용해왔기 때문이다.
양입제출의 관행은 재정수입규모를 먼저 결정하고 이에 맞추어 재정지출을 결정하는 관행을 말한다. 이러한 관행에서는 중장기적으로는 물론 단기적으로도 재정균형을 이루게 된다. 이로 인해 우리나라 경제관료들은 그동안 심각한 재정적자를 경험한 적이 거의 없다. 그런데, 어떻게 '감세와 재정지출 확대'의 조합이 초래할 천문학적인 재정적자를 관리할 수 있다는 것인가?
예측하건대, 현 정권 실세들이 한 가지 믿는 구석이 있다면 현재의 우리나라 국가부채 규모가 심각하지 않다는 것이다.
양입제출의 관행으로 우리나라는 오랫동안 재정균형의 상태를 유지해왔기 때문에 복지확대를 위해 적극적인 재정지출을 해온 선진국에 비하여 국가부채 규모가 작은 편이다. 예를 들면, 2004년 OECD 기준 GDP 대비 국가부채 규모를 보면, OECD 평균은 76.3%인데, 우리나라는 19.6%에 불과하다(OECD, 'Economic Outlook 78 database').
이 정도 규모라면 향후 몇 년 동안은 재정적자를 버틸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지난 정권동안 유지해왔던 재정균형이라는 자산으로 현 정부의 임기동안은 재정적자를 버틸 수 있다는 계산이 가능하다. 현 정권 실세들의 희망대로 재정적자의 폭탄이 현 정권의 임기동안 터지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그렇지만, 그 이후의 정권 어느 시점에서인가 반드시 터지게 마련이다. 그 때 책임은 누가 질 것인가?
현 정권실세들의 주관적인 생각이 어떻든 대규모 감세정책으로 인해 우리나라의 국가재정은 천문학적인 재정적자가 구조화되는 길에 들어서게 되었다. 이제 우리 국민들은 재정적자의 폭탄이 언제 터질지 가슴 졸이며 권력자들의 폭탄돌리기 게임을 지켜보는 수 밖에 없게 되었다.
[관련기사] ☞ 정부, 은행 달러빚 3년간 지급 보증하기로 ☞ "우린 매일 일제고사... 고딩이 부럽다" ☞ "쓰리쿠션계의 마이클 조던" 고수 이상천 ☞ 반포 래미안의 굴욕... 흔들리는 "강남 불패" ☞ [단독] 일제고사 반발 중학생 "집단 백지답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