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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선을 따라 서쪽에서 동쪽으로 이동하면 1200km가 된다.
▲ 우즈베키스탄 도보횡단 붉은 선을 따라 서쪽에서 동쪽으로 이동하면 1200km가 된다.
ⓒ http://www.lib.utexas.e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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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실크로드'라는 단어를 들으면 중국의 서쪽, 신장 위구르 자치구역을 떠올리는 경우가 많다. 그 지역은 터키의 이스탄불에서 중국의 시안(장안)을 연결하는 육상 실크로드의 동쪽 일부에 해당한다.

중국에서 서쪽으로 국경을 넘어가면, 그야말로 실크로드의 중심지라고 할 만한 곳이 등장한다. 과거 육상 실크로드가 한참 전성기를 누리던 시절에 중국이 '서역'이라고 불렀던 장소, 고구려 출신 당나라 장수인 고선지가 점령했던 곳, 동양과 서양이 만나는 장소로 세계의 수많은 상인과 학자들이 모여들었던 지역, 바로 지금의 우즈베키스탄이다.

우즈베키스탄의 수도인 타쉬켄트를 포함해서 역사도시 사마르칸드와 부하라는 실크로드의 대표적 도시들이다. 특히 사마르칸드는 '중앙아시아의 로마'라고 불리울 만큼 커다란 도시였다.

하지만 현재의 우즈베키스탄은 일반적으로 낯선 나라다. 1991년에 독립할 때까지 소비에트 연방의 일부였기에 방문하기 어려웠고, 유목과 이슬람 문화의 전통이 강하게 남아있다는 점도 그런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그나마 최근에는 TV 프로그램 <미녀들의 수다> 자밀라 덕분에 나름대로 유명해졌다.

커다란 사막을 어떻게 통과할까

"우즈베키스탄을 혼자서 도보로 횡단하자!"

이 생각이 머릿속에 떠올랐던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실크로드를 따라서 걷고 싶은 욕심 때문이었다. 물론 이것을 실현하기에는 여러가지 어려운 점이 있다. 우즈베키스탄의 서쪽에 있는 도시 누쿠스에서 출발해서 타쉬켄트까지 간다면 그 거리는 대략 1200㎞ 정도다.

가장 어려운 점은 그 가운데에 중앙아시아의 대표적인 사막인 키질쿰이 400㎞에 걸쳐서 놓여 있다는 것이다. 여름 한낮에는 기온이 50℃ 가까이 올라가는 곳이다. 도보횡단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그 사막을 걸어서 통과해야 하는데, 그 일은 결코 만만치 않을 것이라고 짐작되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 사막 때문에 더욱 욕심이 생겨났다. 아무도 없는 사막을 따라서 뜨거운 태양빛을 받으며 지평선을 바라보고 걷는다는 것, 매력적인 여행이 되지 않을까?

과거에 육상 실크로드가 한창일 당시에도 상인들은 낙타를 타고 이 사막을 통과했을 테지만 돈 없는 상인이나 하인들은 아마 걸어서 갔을 것이다. 1200년 전에 상인들이 이 사막을 도보로 지나갔다면, 이제 와서 내가 못할 이유도 없을 것이다.

수많은 상인들이 오고갔던 사막을 밟으며 실크로드의 중심지를 혼자서 도보로 횡단한다, 말하자면 나는 이 생각에 사로잡혔던 것이다. 그리고 한번 떠오른 계획은 좀처럼 머릿속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무조건 올 여름 이 구상을 실현에 옮기겠다고 마음속으로 다짐하기에 이르렀다.

실질적인 준비에 들어가자 어려운 점들이 구체적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우선 나에게 그 정도의 체력이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체력이야 준비하고 키우면 된다 하더라도, 그곳에 어떤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지 모른다는 것도 문제다. 도보여행 중에 최악의 상황에서는 사막에서 텐트 치고 혼자 야영을 해야 하는데 그 때 무엇을 만나게 될지 모른다는 것도 두려운 점이다.

꼬리를 세운 채 사막을 기어다니는 전갈이 나한테 달려들지도 모르고, 독을 품고 있는 뱀이나 거미가 있을지도 모른다. 간단하게 말해서 사막 안에 어떤 괴생명체가 있을지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동물들이야 대충 피해간다고 하더라도, 그곳에서 어떤 현지인들을 만나게 될지도 의문이다. 친절한 사람들이 많겠지만, 독한 우즈베키스탄 보드카를 마시고 정신이 반쯤 나가버린 사람을 만나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경험 부족으로 인해서 생기는 어려운 점

비행기에서
▲ 우즈베키스탄 도보횡단 비행기에서
ⓒ 김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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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면 물도 식량도 다 떨어진 채 정처없이 사막을 걷다가 픽 쓰러지게 될 수도 있다. 말이 안 통하기 때문에 현지인들과 매번 손짓 발짓으로 대화해야 한다는 사실도 어느 순간부터 스트레스가 될 것이다. 그러니까 우즈베키스탄은 나의 '홈그라운드'가 아니기 때문에 어떤 일이 생길지, 비상시에 어떻게 대처해야할지 모른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걱정거리가 생기면서부터 내가 얼마나 얼빠진 계획을 세우고 있는 것인지 조금씩 알게 되었다. 낯선 곳에서 장기간 혼자 도보여행을 하기 위해서는 단순한 체력 이상의 것들이 필요하다는 것을 나는 뒤늦게야 깨달았다.

구체적인 현지 사정도 모르고 체계적인 준비과정도 없는 상태로, 머릿속에 떠오른 것을 무작정 실행에 옮기려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것이 전형적인 풋내기의 실수라는 것을 알면서도.

해외에서건 국내에서건 내가 그동안 도보여행을 한번도 해본 적이 없다는 것도 문제다. 낯선 곳에서의 배낭여행은 몇 차례 했지만, 도보여행의 경험이 없다는 것은 분명히 현지에서 나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하긴 어쩌면 경험이 없기 때문에 이번 모험을 구상하고 실행에 옮기는 무모함이 튀어 나왔는지도 모른다.

이런 나에게 용기를 주었던 것은 혼자서 오랫동안 도보여행을 했던 사람들이다. 1년에 몇개월씩 4년에 걸쳐서 실크로드 전체를 걸어서 여행한 프랑스의 베르나르 올리비에, 일본 열도 3000㎞를 55일 만에 혼자서 도보로 주파한 우에무라 나오미, 유목민의 천막을 전전하며 단독으로 고비사막을 걸어서 횡단한 라인홀트 메스너가 그런 사람들이다.

그리고 도보여행의 달인이라 할 수 있는, 캐나다를 떠나서 지금까지 8년째 전 세계 도보여행 중인 장 벨리보도 빼놓을 수 없다. 이런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무엇이 이들로 하여금 그렇게 먼 길을 혼자 걸어서 떠나게 만들었을까'라는 질문이 떠오른다.

어렵겠지만 떠나련다

SKY114(www.sky114.net)의 조상식 사장님이 여행경비를 후원해주었다.
▲ 중앙아시아 전문여행사 SKY114(www.sky114.net)의 조상식 사장님이 여행경비를 후원해주었다.
ⓒ 김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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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모험에 나서는 이유는 여러가지다. 지역의 아름다움에 반해서, 의미있는 기록을 남기기 위해서, 모험 그 자체에 도전하고 싶어서 또는 정체된 삶이 싫어서. 어떤 이유에서건 혼자서 먼길을 나서면 누구든지 예외없이 '고독'에 직면하게 된다. 육체적으로는 장기간 동안의 걷기에 적응해야 하고, 정신적으로는 끝없이 밀려오는 외로움과 싸워야 한다.

이 두 가지를 극복할 수 있다면 도보여행도 반쯤은 성공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 중에서 두번째가 더 어려운 문제다. 체력이야 출발 전에 열심히 단련하면서 준비하면 되지만, 고독에 대비하는 연습은 쉽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 여행 중에 고독에 직면하면 어떻게 할까.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가 아마 그 답이 될 것이다. 외로움이야 피할 수 없는 일이고 그렇다면 그것을 즐기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자유를 꿈꾸며 여행을 떠나지, 외로워지기 위해서 길을 가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 두 가지는 동전의 양면 같은 것이다. 고독하다는 것은 그만큼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얘기다. 혼자이기에 외롭다면, 혼자라서 자유를 만끽할 수도 있는 것이다.

여행을 준비하면서 나는 현지에서 생길 수도 있는 어려운 점들을 이런 생각들로 극복해 나갔다. 다행스럽게도 중앙아시아 전문여행사 SKY114(www.sky114.net)에서 여행경비를 후원해 주었고, 일반 여행객에게는 발급하기 어려운 3개월짜리 비자도 대행해 주었다. 조상식(56) 사장님은 "고생스러울 텐데…"라며 걱정했고, 나는 "고생하러 가는 겁니다"라고 감사의 인사를 대신했다.

그래, 가서 고생 한번 해보는 거지 뭐. 정말 이렇게 생각하고 밀어붙였다. 1200㎞를 혼자서 걷는다? 힘들겠지만 도전해볼 만한데! 사막에서 혼자 야영? 그것도 나름대로 재미있겠는걸! 덥다고? 한여름 서울도 얼마나 더운데!


태그:#우즈베키스탄, #도보여행, #중앙아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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