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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오늘은 어머님이 병원에 가시는 날이다. 당뇨병이 악화되어 뇌혈관이 막혀 혈전을 없애는 치료를 한 다음 오른 발과 발바닥 신경이 손상되어 통증이 심하시다. 잘 걷지 못하시고 잠을 잘 때도 말초신경이 손상된 탓에 고통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어머님 말씀대로면 누워있어도 아프고 걸어다녀도 아프기 때문에 차라리 밭이랑 논이랑이 마구 돌아다니면서 일부러 일을 하신단다.

 

이런 수고 덕분에 시골에 갈 때마다 밑반찬은 말할 것도 없고 단풍깻잎 김치, 꼬들빼기 김치, 고추볶음 호박나물 등 종류도 다양한 '어머님표 반찬거리'를 늘 한아름씩 안고 집에 온다. 고맙기도 하지만 아프신 발을 끄시면서 걸어 다니시는 어머님을 생각하면 언제나 마음이 시큰하다. 그래도 하나라도 더 음식을 만들어 자식과 손자들에게 주시려고 늘 바쁘시다.

 

어머님과 함께 병원에 가면서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면 금새 병원에 도착한다. 사실 어머님이나 아버님이 병원에 가시는 날이면 전날부터 비상이다. 4시간 가까이 운전을 해야 한다. 그래서 전날에 조금 일찍 잠을 자고 새벽에 일어나 시골집이 있는 진안으로 간다. 그래도 고향에 계시는 부모님을 만나면 미안함과 기쁨이 교차되는 감정을 매번 느낀다.

 

어머님과 이런 얘기 저런 얘기를 하는데 갑자기 콩 이야기를 하신다. 지난해 묵은 콩으로 콩나물을 길렀는데 잘 자라서 잔뿌리가 하나도 없이 그렇게 예쁠 수가 없으시단다. 저에게 주려 어제 온종일 다듬어서 냉장고에 넣어놓았는데 깜빡하셔서 저에게 주지 못해서 안타까워 어쩔 줄 몰라 하신다.

 

그리고 지난여름에 콩이 무던하게 잘되어, 메주콩과 검정 쥐눈이 콩(일명 약콩)을 어제 아버님과 타작을 했는데 올해는 수확이 좋아서 내년 된장과 청국정은 문제없다고 소녀처럼 해맑은 미소로 웃으신다. 그리고 검정콩도 윤기가 잘잘 흘러서 참 보기가 좋으시단다. 아픈 다리를 만지시면서 '아이고 다리야!'가 이야기 중간 중간에 장단을 맞추신다. 

 

갑자기 콩나물과 콩나무 이야기를 들으니 녹색평론에서 읽었던 글이 떠오른다. '<위대한 작은 학교>- 풀무농업고등기술학교를 찾아서'라는 전인순의 글의 첫머리에서 전인순 선생님은 다음과 같이 이야기 하고 있다.

 

"누군가 교육을 콩 기르는 일에 비유해 설명한 적이 있다. 그 설명에 따르면 콩을 기르는 데는 두기지 방법이 있는데, 하나는 콩나물 기르기이고 다른 하나는 콩나무 키우기이다. 콩나물은 햇볕이 안드는 응달에서 물만 주면서 키운다. 이 때 콩은 콩 속의 생명력이 죽어가면서 콩나물로 자란다. 그러나 콩나무를 키우는 것은 이것과는 정반대다. 콩을 땅에 심어 가꿀 때 콩은 스스로 땅속의 자양분을 흡수하며 자라서 수 십배의 열매를 맺게 되는 것이다. 콩나무는 약간의 보살핌만 있으면 스스로 창조적인 삶을 꾸려나가게 된다."

 

맞는 말이다. 콩나물과 콩나무는 분명히 같은 콩에서 나오지만 성장과정이나 결과는 완전히 다르다. 우리 교육과 비교하면 더욱 그렇다. 콩나물은 물만으로 자란다. 콩나물은 물만 자주 주고 온도만 적당하게 맞추어주면 잘 자란다. 진짜 특이한 것은 모든 식물은 햇빛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콩나물은 햇빛을 받으면 콩나물로서 가치는 떨어지고 콩나물의 역할을 하지 못한다. 그리고 잔뿌리가 없다. 잔뿌리가 많으면 콩나물은 질기고 잘라내야 하기 때문에 상품가치가 떨어진다. 그렇지만 콩나물은 물만이 필요충분조건이라고 할 수 있다. 콩나물은 콩이라는 자양분으로 자란다. 자신을 죽여 하나의 콩나물을 만드는 것이다. 콩나물 대가리와 줄기 하나만을 남기고 영원히 사라진다.

 

현재의 우리 교육도 마찬가지다. 우리 교육에서 필요한 것은 입시가 전부다. 입시를 제외하면 아무것도 남는 것이 없다. 인성도 도덕도 그다지 필요하지 않다. 콩나물이 물만을 필요로 하는 것처럼 입시교육만이 필요하다. 나를 위하여 또 다른 나만을 만들어내는 콩나물처럼 나만 성공하면 그만이고 나만 명문대학에 들어가면 된다. 콩나물의 목표가 하나이듯 학교교육의 목표도 하나다. 나만의 성공이 유일한 목표다.

 

서로 부딪히며 부대끼며 자연의 바람과 비와 햇빛 속에서 자라는 콩나무와는 달리 콩나물은 안전한 콩시루에 가득 담긴 콩들 사이에서 자신을 다른 콩보다 먼저 고개를 내밀기 위해 다른 콩들을 깔아뭉개고 발로 딛고 일어서야 한다. 우리 교육도 마찬가지다. 콩 시루 같은 교실과 학교에서 학생들은 다른 학생과의 경쟁과 대결에서 살아남아야 한다. 다른 학생을 짓밟고 올라서야 1등급이 될 수도 있고 명문대학에 들어갈 수 있다. 물론 그래야 성공했다는 말도 듣고, 내 이름이 박힌 현수막이 교문에 걸릴 수도 있다.

 

콩나물과 반대로 콩나무는 밭이나 논두렁에서 자란다. 특히, 콩나무는 많은 자연의 시련과 영향분을 필요로 한다. 햇빛도 필요하고 물도 필요하고 거름, 바람, 이슬, 찬바람, 그리고 사람의 손길도 필요하다. 게다가 자신을 희생해야 한다. 논두렁에 콩을 심는 이유는 병충해가 콩잎이나 콩대공에 와서 서식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콩의 희생이 없으면 벼도 다른 농작물도 병충해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햇빛이나 바람이 없는 콩나무는 존재할 수 없다. 뜨거운 햇빛과 찬바람이 바로 콩나무를 자라게 만든다. 게다가 낮과 어둠의 무수한 반복이 있어야 가을에 예쁜 콩을 맺을 수 있다. 가로등 밑에서 자라는 콩나무는 가을 서리가 내리고 아무리 찬바람이 불어도 시퍼런 잎사귀를 뒤집어쓰고 꽃만 무성할 뿐 열매를 맺을 줄 모른다.

 

또한, 밭이나 논두렁에 있는 콩은 서로 의지할 줄 안다. 혼자 서 있는 콩나무는 비바람에 쓰러지게 된다. 그렇지만 함께 어울려 자라는 콩나무는 서로 가지를 맞대고 의지하며 강한 바람과 세찬 비를 이겨낸다. 대지라는 보금자리에서 아름다운 꽃을 피우며 미래의 누렇고 까만 열매들을 주렁주렁 키운다. 하나의 콩이 썩어서 수없이 많은 열매를 맺는 것이다. 바로 콩나무가 콩나물과 다른 점이다.

 

학생들도 마찬가지다. 학교라는 보금자리에서 수많은 필요충분조건을 이용하여 시련과 고난을 이겨내면서 성장하고 마침내 하나의 완전한 사회인이 되는 것이다. 비로소 나를 불태우면서 사회와 다른 사람들을 위해 봉사도 하고 희생도 하는 것이다. 콩나물 같은 학생이 아닌 콩나무 같은 학생은 언제나 나를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속한 공동체와 타인을 먼저 생각하는 따스함이 있다.

 

물만으로 자라는 콩나물 같은 학생과는 달리 콩나무 같은 학생은 다른 사람의 도움도 필요하고 시련도 필요하고 인내도 필요하고 서로서로 의지하는 배려도 필요하다. 콩나물시루 같은 교실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은 혼자만 고개를 내밀면 된다. 그것도 다른 학생보다 더 일찍 그리고 더 미끈한 머리를 내밀어야 살아남을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사회의 낙오자가 되는 것처럼 콩시루에서 고개도 내밀도 못하고 뿌리부터 시커멓게 썩어간다. 오직 경쟁과 대결에서 살아남는 콩나물만이 사람의 눈길과 손길을 받을 수 있다.

 

나머지는 쓰레기 취급을 받거나 아무런 관심도 받지 못한다. 우리 교육도 마찬가지다. 콩밭이나 논두렁에 있는 콩나무처럼 학생들도 사람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으면서 자랄 수 있다. 그렇지만 신자유주의에 입각한 이명박 정부의 교육정책은 경쟁과 대결만이 유일한 필요충분조건이다. 경쟁과 대결에서 낙오하거나 실패한 학생은 더 이상 관심과 사랑의 대상이 아니다. 80%에 해당하는 학생들은 좌절과 실패가 자신의 노력에 따른 선택이 아니라 어쩔 수 없는 필수가 되어버린다.

 

이제 교육당국자나 학교, 학부모가 심각하게 고민할 때가 되었다. 우리 아이들을 콩나무로 키울 것인가 콩나물로 기를 것인가를 말이다. 한 알의 콩알이 썩어 하나의 콩나물만을 만들어내는 교육을 할 것인가 아니면 수없이 많은 열매를 맺는 콩나무를 길러내는 교육을 할 것인가를.

 

어머님 주신 콩나물과 콩자반과 함께 먹는 한 그릇의 밥이 오랫동안 목안에 머문다.


#콩나물#콩나무#이명박정부 교육정책#녹색평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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