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7시 30분] 출근준비요즘 아침에 일어나면 날씨부터 챙기는 버릇이 들었다. 출근길 선택이 달린 문제이기 때문이다. 오늘 날씨 맑음. 아침을 먹고나서 본격적인 자출 준비에 들어간다. 먼저 옷차림.
온몸을 무장해제한 후 검정 쫄바지에 기능성 티셔츠를 입는다. 속옷을 입지 않으므로 땀 흡수는 기본이고 살갗에 닿는 감촉은 매끄러울수록 좋다. 그 위에 노란 재킷을 걸치면 일단 자출 옷차림 완성이다. 겉옷을 눈에 띄게 화려하게 입는 이유는 안전을 위한 배려다. 마지막으로 버프를 목에 걸고 장갑을 낀 다음 헬멧을 쓴다. 자출을 위한 복장준비 끝.
다음은 자전거 점검. 중요한 것은 타이어 공기압이다. 펑크가 나지 않는 한 바람이 한꺼번에 빠지는 일은 없지만, 손가락으로 눌러보아 적은 느낌이 들면 언제라도 보충해야 줘야 한다. 경험상 타이어가 탱탱할수록 페달을 굴리는 힘이 적게 든다. 시간이 날 때 체인과 다른 구동부위 오일을 쳐주고 전체를 한번 닦아주면 점검 끝. 출발에 앞서 마지막으로 앞뒤에 빨간 안전등을 작동시켜 놓는다. 자출준비 완료.
출근길을 함께 할 애마는 검정색 알로빅스 500. 2년 전 인터넷에서 공동구매한 녀석이다.
휴양림 첫 자출을 무사히 이끌어 준 파트너인데다가 그 해 가을
아내와 일본여행까지 동행한 '준마'다.
[오전 7시 40분] 출발출발이다. 목적지는 칠갑산 중턱에 위치한 칠갑산 맑은물 공장. 전에 비해 출근시간이 1시간가량 빨라졌다. 아침 자유시간이 좀 줄어 들었지만 별 불만은 없다. 자전거를 탈 수 있으니 걸어다닐 때보다 한결 즐겁다는데 위안을 삼는다.
1년 전까지 휴양림으로 자출을 하다가 군청으로 자리를 옮긴 후 자전거를 탈 기회가 없었다. 군청이 집에서 걸어 10분거리니 그럴 수밖에. 자동차도 자전거도 멀어진 세월이었다. 마침 한 달 전 물공장으로 인사발령이 나면서, 구석에서 먼지를 쓴 채 낮잠을 자고 있는 알로빅스를 깨웠다.
자출 코스는 36번 국도. 그동안 자출 경험이 있으니 국도 통행은 그리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집앞 고샅을 빠져나오는 길은 워밍업 코스. 시내를 통과하여 대치면을 지날 때까지 오르막이 없는 평지다. 평지라해도 빨리 달리려 하지 말아야 한다. 서두르게 되면 힘들어지고 힘들어지면 자전거 타는 일이 재미없어진다. 즐거운 라이딩을 유지하는 비결은 여유를 갖고 '샤방샤방' 달리는 것이다. 그래야 지치지 않고 오래 지속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무슨 일이든 즐겁지 않으면 지속하기 힘들다. 기어비는 보통 2×5를 놓는다.
[오전 7시 46분] 탄정삼거리자전거 위에서 맨살로 느끼는 아침바람이 신선하다. 이맛에 모두들 자전거를 타는 것이리라. 라이더를 키운 것은 8할이 바람이라는 말, 다시 깨닫는다. 요즘은 안개가 많이 끼는 날씨다. 안개 낀 날은 자전거가 더 위험할 것 같지만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다. 운전자들도 더 조심을 하기 때문이다. 국도에 들어서서 모퉁이를 돌면 삼거리가 보인다. 우회도로 합류지점이라 꽤 분주하다.
36번 국도는 차량 통행이 많은 편이다. 아침에는 공주 쪽에서 오는 출근차량이 줄을 잇고 서해안에서 대전 쪽으로 물자를 공급하는 차량도 많다. 횟감을 실은 바닷물 탱크 차와 돼지를 실은 차는 거의 매일 아침 만난다. 요즘은 돼지값이 올랐는지 평소한 두 대 만나던 돼지차가 서너대씩 다닌다. 냄새가 제법 고약하지만 먹고 사는 일들이니 어쩌겠는가. 휴양림 자출 때부터 이미 익숙해진 냄새요, 풍물들이다.
[오전 7시 52분] 주정삼거리첫 번째 오르막이다. 경사는 30도 가량? 휴양림 자출 때도 이곳이 고비였다. 기어비를 최저로 낮추어도 꽤 힘이 드는 곳이다. 그동안 요령이 생겼다. 오르막에 진입 전에 미리미리 기어를 낮추고 진입하는 것이다. 경사가 심해짐에 따라 2×4, 2×3… . 2×1까지 낮춘다. 기어를 낮춘다 해도 여간해서 앞기어를 1로 낮추는 일은 없다.
마지막 1단의 여분은 마음의 여유를 위한 것이다. 쓸 수 있는 것을 다 썼다고 생각하면 왠지 마음이 더 팍팍하고 불안해진다. 앞으로 더 쓸 것이 없다는 긴박감 때문이리라. 스스로를 막바지까지 몰지 않고 최후의 보루로서 하나를 남겨두어 마음의 여유를 갖고자 함이다.
요령이 하나 더 있다. 오르막을 다 올라왔다고 서둘러 기어를 올리지 말 것. 다 올라온 후에도 여유를 갖고 느긋하게 진행하다가 기어를 변경하는 것이다. 서둘러 기어를 변경하게 되면 언덕을 오르느라 기운이 소진된 몸에 더 부하를 주어 몸과 마음을 지치게 한다. 요컨데 고갯길 등판 요령은 오르기 전에 일찌감치 기어를 내리고 올라와서 천천히 올리는 것이다.
500m가량 오르막을 다 오르면 등에 땀이 돋기 시작한다. 이어서 완만한 주로가 이어지고 조금 더 진행하면 저수지를 가로지른 다리가 나타난다. 칠갑대교다. 다리 위에서 보는 저수지의 시원한 전망은 언제나 좋다. 맑은 날, 흐린 날, 안개낀 날. 매일매일이 변화무쌍하다.
[오전 8시 2분] 청풍휴게소 앞완만한 주로가 계속 이어진다. 기어비 다시 2×5. 산모퉁이 도는 곳에 더러 굴곡이 있긴 하지만 주행이 힘든 정도는 아니다. 휴게소 앞을 지나노라면 부지런한 휴게소 주인양반이 항상 노래를 틀어 놓는다. 주로 70~80년대 노래로 옛생각을 떠오르게 하는 목소리들이 등장한다. 노래를 들으며 달리노라면 기분이 괜찮아진다. 취향이 같은 걸 보니 나와 같은 연배인 듯하다.
보통 휴게소 음식이라면 그다지 기대할 만한 것이 못된다지만, 이곳 음식은 꽤 괜찮다. 우리 사무실 식구들도 점심을 여기서 해결하는 경우가 많은데 음식솜씨가 여느 휴게소와 다르기 때문이다. 하루하루 메뉴가 달라지고 그중에도 아욱된장국 끓이는 솜씨가 일품이다.
감나무가든 모퉁이를 돌면 본격적인 오르막이다. 기어를 다시 2×1까지 낮추고 상체를 조금 숙인다. 주위는 금빛 조각보라도 펼쳐 놓은 듯 다랭이 논들이 풍성하다. 논둑 감나무에 매달린 감들도 선홍색으로 물들었다. 올해는 일기가 좋아 감들이 알이 굵고 튼실하다. 한티 마을입구를 지나노라면 길가의 늙은 느티나무가 반겨준다. 느티나무는 고향집 동구밖을 지키는 너그러운 품격을 지녔다. 아침햇빛의 후광을 받아 노년의 단풍이 더욱 빛난다.
마을에서 터널입구까지는 본격적인 오르막이다. 페달에 제법 힘이 들어가고 마지막까지 남겨둔 1×1을 써야 하나 망설이게 되는 곳. '고지가 바로 저긴데 예서 말 수는 없다'를 마음 속으로 몇 번 외쳐야 비로소 터널이 보이기 시작한다. 터널은 오르막의 정점이다.
[오전 8시 14분] 대치터널 입구한달 전 인사 발령 후 시간을 내어 자출코스 답사를 할 때 걱정이 되었던 곳이 이곳 대치터널이다. 길이 500m 남짓으로 긴 거리는 아니지만 갓길이 없고 오래된 터널이라 조명도 어두워 상당히 위험한 곳이다. 고민 끝에 자전거 뒤에 높은 조도의 안전등을 하나 더 추가하는 것으로 위험을 보완했다. 어두운 곳에서는 눈에 잘 띄게 해줘야 하니까.
출근길은 내리막이라서 그래도 다행인 셈이다. 돌아오는 퇴근길은 반대로 오르막이라 터널에 지체하는 시간이 오래 걸린다. 터널 지체 시간이 길어지면 상당히 위험하다. 다른 방법이 없는가. 결국 퇴근길은 옛길로 우회해 칠갑산 고개를 넘는 방법을 택하기로 했었다.
터널입구부터 내리막이라서 통과시간이 오래걸리지는 않는다. 2~3분 남짓. 게다가 출근시간에는 공주로 넘어가는 차량들도 그리 많지 않다. 기어비를 높이고 최대한 빠른 시간에 통과하면 된다. 반대차선에서 오는 차는 더러 만나지만 뒤에서 따라오는 차는 드문 편이다.
터널 안에서는 자동차 한 대만 스쳐 지나가도 소리가 증폭되어 엄청 시끄럽게 느껴진다. 짧은 통과시간이 길게 느껴진다. 터널을 빠져나가면 옛길 입구까지 시원한 내리막이 이어진다.
[오전 8시 17분] 칠갑산 옛길 입구칠갑산 옛길은 1983년 대치터널을 뚫기 전까지 한티고개를 넘는데 사용했던 옛 도로다. 수많은 S자 도로가 수없이 이어졌던 신작로. 말 그대로 칠갑산 옛 고갯길이다. 길이 좁아 옛날에 버스가 낭떠러지로 구르다가 큰 나무에 걸려 큰 위기를 면했다는 소문이 전해진다. 지금도 버스 통행금지 표지가 붙어있을 정도로 폭이 좁아서 승용차끼리 비켜 지나가기도 빠듯할 정도다.
옛길 입구에서 사무실까지는 거리는 1km남짓. 본격적인 오르막이다. 무리를 해서라도 끙끙거리며 자전거를 타고 오르려 한다면 못 오를 것도 없겠지만 내려서 걷는 쪽을 택했다. 주변 경관이 출근길 라이딩 마무리 겸 아침산책 코스로서 손색이 없는 곳이기 때문이다.
처음 코스 답사 때 이곳 오르막을 대비하기 위해 다양한 자전거로 등판 능력을 시험해 본 적이 있다. 지인의 27단 자전거를 빌려 그 자전거로 힘들이지 않고 올라간 적도 있었다. 과연 27단의 등판 능력은 뛰어났다. 얼마간 자전거를 바꿀 것인가를 고민했다. 그러나 자전거를 끌고 걷는 것으로 결정했다. 아름다운 공간이었다. 걸어서 올라갈 충분한 가치가 있었다.
옛길에 들어서면 기다렸다는 듯이 숲 내음이 몰려온다. 이제 버프를 벗어야 한다. 길가의 붉나무가 하루하루 가을의 깊이를 더하고 노린재나무는 날마다 더 깊은 노란빛을 뿜어낸다. 오래된 골짜기에서 이름 모를 새소리도 들려오고 하나 둘 낙엽이 떨어진 길에 가을정취가 깊어 가는 공간. 그곳을 걸어보면 왜 고생을 사서하느냐는 물음에 대한 답을 알수있다.
[오전 8시 30분] 사무실 도착적당히 흘린 땀으로 마음이 충만해지는 시간…. 자출의 큰 즐거움이다. 숙직실에서 샤워를 마치고 옷을 갈아 입는다. 산 바람이 더 신선하게 느껴진다. 창밖으로 보이는 가을 풍경이 한결 정겹게 다가오는 아침. 자출은 나에게 매일매일을 상쾌하게 시작하는 생활비결이다.
아침마다 짧은 자전거여행을 한다고 생각하면 더 즐겁다. 그렇게 경험이 쌓이다 보면 언젠가 훌쩍 긴 여행을 떠날 수도 있을 것이다. 여행이란 늘 새롭다. 처음으로 하늘을 나는 어린새의 마음과 같다. 첫 하늘에 수많은 경험을 수놓아 가는 끊임없는 시작의 연속이다.
[오후 6시 10분] 퇴근길직장생활의 즐거움은 뭐니 뭐니 해도 퇴근시간이다. 아무리 즐겁게 일한다 해도 일은 언제나 일이다. 퇴근시간이 되면 숙직실에 들어가 아침과 같은 순서로 옷을 갈아 입고 퇴근길을 나선다. 처음 자출을 재개했을 때, 그러니까 한 달 전만 해도 석양 무렵 호젓한 칠갑산 옛 고개를 넘는 퇴근길은 자출코스의 백미였다. 시인 프로스트가 가지 않고 아껴 두었던 숲 길처럼, 사람의 자취가 적은 낙엽쌓인 길을 새소리를 들으며 혼자서 걸었으니까.
그동안 낮이 점점 짧아지면서 이제 퇴근길은 깜깜한 밤길이다. 어두운 산길은 걷다 보면 호젓하다 못해 무서운 생각까지 들 정도다. 자출코스가 아무리 다이내믹하기로서니 야간 라이딩까지 포함되는 것은 좀 심하다. 다행히 출근길이 온통 오르막인 대신 퇴근길은 거의 다 내리막이다. 칠갑산 고개만 넘으면 페달링 한 번 없이 20리를 거저 갈 수 있으니 퇴근길은 거의 식은 죽 먹기다.
[밤 11시 30분] 마무리자출이 위험하지 않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 충분히 준비하고 길을 나선다면 생각만큼 위험하지 않다. 자전거를 배려해주는 운전자들이 생각보다 많기 때문이다. 힘들지 않느냐고 묻는 사람들도 있다. 힘들지 않은 일이 어디 있나. 그저 헬스클럽에 등록을 했다고 생각하라고 대답한다. 답답한 벽을 보고 의미없는 운동을 하는 것보다 아침바람을 맞으며 자전거를 타는 것이 훨씬 상쾌하지 않겠는가. 따지고 보면 자전거만한 아침 운동이 없다. 하고자 하는 마음만 있다면 자출은 누구나 시작할 수 있는 일이다. 그저 시작만 하면 된다.
자출은 내 삶에 큰 즐거움이다. 기름값을 아껴 생활비를 줄이는 것은 물론, 환경도 생각하고 게다가 건강까지 챙길 수 있으니 완벽한 일석삼조다. 아낀 자동차 유지비를 저축하여 자전거 여행 경비로 쓴다면 또 어떤가. 자출의 즐거움은 생각보다 훨씬 다양하다.
그렇게 건강을 챙겨 몇 백년을 살 거냐고? 몇 백년을 살면 뭐하나. 의미없는 나이는 그저 숫자의 나열에 불과할 뿐이다. 위대한 자연주의자 스콧 니어링 선배님의 말씀을 빌면 오래사는 것은 인간의 목적이 아니어야 한다. 목적을 찾는다면 건강하게 의미있는 삶을 사는 것이다. 스스로 살아있는 몸을 움직여 몸과 마음을 다듬어 건강하게 사는 것이야말로 내 자출이 지향하는 목적이다.
덧붙이는 글 | 2008 자출도 여행 응모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