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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등학교 3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일제고사가 치러진 8일 오전 서울 미동초등학교 3학년 학생들이 가림막을 친 가운데 시험문제를 풀고 있다.
초등학교 3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일제고사가 치러진 8일 오전 서울 미동초등학교 3학년 학생들이 가림막을 친 가운데 시험문제를 풀고 있다. ⓒ 권우성

 

미국에서 한국 학생들이 SAT시험문제를 훔친 것으로 추정되는 사건이 적발됐다. SBS의 24일 보도에 따르면 지난 4일 로스앤젤레스의 그라나다힐스 차터스쿨에서 실시된 대학입학시험 SAT에서 일부 응시생들이 문제를 사전에 훔친 것이 드러났다고 한다.

 

학생 5명이 시험 전날 학교 사무실에서 문제를 훔쳐낸 뒤 다른 학생들과 돌려본 것으로 파악되고 있으며, 이 학교 재학생들은 문제지 절도를 주도한 학생들이 한국인인 것으로 알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2월에도 미국의 한 사립학교에서 한국인 학생이 시험문제를 훔치다 적발됐다고 한다. 한국 학부모들의 과도한 성적집착은 이미 유명하다. 학부모는 학부모대로 학생은 학생대로 외국에 가서까지 한국식이 어떤 건지 확실하게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재일동포인 추성훈도 한국에서 벌어지는 시험문제 유출사건에 대해 놀라움을 표시한 적이 있다.

 

우리는 대학에 들어갈 때 성적이 결정적인 변별요인이 되지만 미국은 그렇지 않다. 미국 대학들은 '입학사정관제'라는 제도를 통해 학생을 종합적으로 판단한다. 이것이 좋다는 건 아니다. 시험이건 종합이건 어쨌든 선발은 선발이고, 서북부유럽식 평준화 모델보다는 후진적 체제다. 어쨌든 미국은 우리처럼 시험에 목숨 걸지는 않는다.

 

그런 곳에 가서까지 한국인은 시험점수경쟁에 집착하는 것이다. 미국에서 공부하던 한인 학생들은 방학 때가 되면 한국에 돌아와 수백만원에서 천만원까지 주고 SAT 대비 사교육을 받는다고 한다. 이렇게 되면 시험성적이야 올라가겠지만 정작 학습능력은 쇠퇴한다.

 

대학 가면 바보 되는 학생들

 

미 컬럼비아 대학 박사 과정에 있는 김국명씨가 지난 6월 이 대학에 제출한 교육심리학과 논문에 따르면 미국 내 유명대학 한인 학생들의 졸업율은 56%에 불과하다고 한다. 한인 탈락율이 44%에 달한다는 얘기다. 반면에 탈락율 평균은 34%다. 한국인이 다른 나라 사람들에 비해 훨씬 쉽게 좌절하는 것이다.

 

고등학교까지 그렇게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학교에 매달리다가 왜 정작 교육의 완성이라고 할 수 있는 고등교육엔 적응을 못하는 건가? 국내에서도 고등학교까지의 한국인과 대학에 다니는 한국인은 전혀 다른 나라 사람 같다.

 

고교 때까지는 학력수준, 문제해결능력이 핀란드에 이어 세계 2위다. 그런데 대학에 가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뚝 떨어진다. 툭하면 머리가 똑똑한 민족이라고 자부하면서도, 반세기동안 그 어떤 대학에서도 학문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그저 고등학교 때까지만 똑똑하다.

 

이는 아이 때부터 시험공부 하나에만 맹목적으로 몰아붙인 결과다. 시험만 잘 보면 되는 구조에서 그런 아이들은 세계 최고였지만, 주체적으로 창의적인 학문연구를 해야 할 시점이 되면 '나약한 바보'가 돼버리는 것이다. 이것이 나라망신까지 감수하며 몰두한 한국식 교육열의 실체다.

 

망신스런 학부모·학생 만드는 '나라'

 

 초ㆍ중ㆍ고생의 학력 수준을 평가하기 위한 국가 수준 학업성취도 평가가 치러지는 14일 낮 세종로 정부종합청사 앞에서 무한경쟁교육 일제고사에 반대하는 청소년들이 시험지와 교과서, 문제집을 이용해 모자이크 작품을 만들고 있다.
초ㆍ중ㆍ고생의 학력 수준을 평가하기 위한 국가 수준 학업성취도 평가가 치러지는 14일 낮 세종로 정부종합청사 앞에서 무한경쟁교육 일제고사에 반대하는 청소년들이 시험지와 교과서, 문제집을 이용해 모자이크 작품을 만들고 있다. ⓒ 유성호

 

한국인은 태어날 때부터 '성적집착증후군', '일류대밝힘증' 환자로 태어나는 걸까? 시험지를 향한 사랑이 유전자에 각인되어 있기라도 하단 말인가?

 

아니다. 그것은 본능이 아니다. 후천적으로 형성된 것이다. 바로 한국사회가 한국인들에게 그런 특이한 사고방식을 주입한 주범이다. 사회가 그런 사람을 만들면, 그 사람들이 다시 그런 사회를 형성하고, 그 사회가 또 다시 그런 사람을 만드는 악순환 구조다.

 

시험 잘 본 일류대 학벌만 사람대접 받는 사회, 아이를 시험경쟁이란 트랙 안에서만 20여 년을 달리게 하는 경마장 교육제도가 만악의 근원이다.

 

현 정부 들어 일류대, 일류고 출신자들이 전 정부 때보다 더욱 약진하고 있다. 고위공무원단 출신 학교 비율에서 경기고 출신은 2007년 5.1%에서 2008년 5.6%로, 서울대 출신은 24%에서 30%로 늘었다.

 

고위공무원단 신규진입자 중에서는 서울대 출신이 2006년 22%, 2008년 31%다. 눈길을 끄는 건 고려대와 연세대의 비율이다. 2006년엔 고려대 1.9%, 연세대 7.4%였다. 2008년엔 고려대 13.8%, 연세대 2.8%다.

 

이러니 사람들이 자기 자식을 일류대, 그리고 이왕이면 권력자와 같은 학벌의 명문대로 보내기 위해 혈안이 되지 않을 도리가 없다. 그 방법이 시험이니 한국인은 시험에 목숨을 건 괴물이 되어가는 것이다.

 

경쟁교육에 치여 괴물로 변해가는 한국인들

 

대졸자와 고졸자간 시간당 임금격차도 날로 벌어지고 있다. 1997년 19.5%에서 2007년 29.8%다. 아무리 학력주의, 학벌주의 없애자는 캠페인을 벌여도 이런 상황에선 아무 것도 변하지 않는다.

 

최근엔 특목고, 자사고, 국제중으로 시험경쟁을 더 가열시키고 있다. 일제고사로 전국단위 시험경쟁을 고취한다. 수준별과 우열반으로 아이들이 체감하는 경쟁의 수위를 보다 높인다. 한국인을 더욱 괴물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

 

오로지 시험만 알고, 교육과 시험을 착각하며, 시험성적을 올리기 위해서라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한국인은 이런 구조에서 태어난다. 외국인들에게 '몬도가네'처럼 보이는 한국의 경쟁교육, 국제적인 조롱의 대상인 한국 교육산업과 그 속에서 조련된 한국의 교육수요자들. 그들은 원인제공자이면서 동시에 국가제도의 피해자들이다. 언제까지 이 악순환을 반복해야 하나?


#평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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