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40개나 기사를 쓴 시민기자가 있어요. 174개가 아니라 1740개지요. 하루에도 몇 개씩 기사가 올라오는 시민기자의 이름은 최종규입니다. 그는 <오마이뉴스>뿐 아니라 여러 매체에 글을 쓰는 사진책 도서관 '함께살기' 지킴이지요.
우리말 바로 쓰기 방법에 대해 끊이지 않고 글을 쓰는 그가 궁금하더군요. 헌책방, 책동네, 사진, 자전거, 육아일기까지 기사를 올리는 열정에 마음이 움직였지요. 만나 보고픈 마음에 연락을 취했고 겸손하게 주저하는 그와 약속을 잡았지요.
24일 오전에 인천 배다리 헌책방 골목에 있는 사진책 도서관 '함께살기'를 찾았지요. 지난해 4월부터 헌책방 골목에 자리잡은 '함께살기'는 이웃들과 즐겁게 책을 나누고자 꾸린 장소지요. 반갑게 맞아주며 대화가 시작되자 그가 품고 있는 뜨거운 마음만큼 <오마이뉴스>에 애정 어린 비판을 쏟아내더군요.
생긴지 8년이 지나 5만여 명이 넘을 정도로 '성공'한 인터넷신문 <오마이뉴스>는 어느새 큰 힘을 지니게 되었지요. 이럴 때일수록 처음을 돌아볼 필요가 있겠지요. 2000년부터 시민기자로 활동한 최종규 기자와의 대화는 <오마이뉴스>와 시민기자들 모두에게 의미 있는 기회라 여겨지네요.
사람과 사람이 이어지는 개인도서관, '함께살기'
- 도서관을 운영할 정도로 책이 많은데, 얼마나 책을 가까이 하는지요."한 해에 책 1000권을 샀을 때부터 이미 책 몇 편 읽었는지 세지 않았습니다. 그게 벌써 10년 전이네요. 책이 가지를 쳐서 나가 자꾸 보게 됩니다. 읽으면서 쌓인 책이에요. 쓸모없으면 덜어내고 귀한 책은 모으게 되지요. 좋은 책을 골라서 읽으면 허튼 책 물리치게 되지요.
제가 장서가가 되거나 자료 제공하려고 책을 모은 것은 아니었고 개인서재를 하려고 한 일도 아닙니다. 제 길 찾아가면서 읽을거리 모아놓은 도서관입니다. 책꽂이에 머무르지 않고 사람과 사람이 이어지는 도서관이 있었으면 했는데 아무도 이러한 개인 도서관을 안 했지요. 누구에게 바라기보다 제가 해야겠다고 느끼고 이렇게 차려놓았지요."
- 고 이오덕 선생님과 관계는 어떻게 되는지요."이오덕 선생님 돌아가신 뒤에 원고정리만 했을 뿐입니다. 이오덕 선생님께서 내신 책은 2개 빼고 원본을 다 갖고 있습니다. 좋아하는 사람 책은 다 갖고 있어요. 권정생, 황정환, 리영희, 문익환, 김남주처럼 훌륭한 분들이 쓴 책은 수없이 읽고 또 읽습니다. 그들과는 책으로밖에 만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죠."
- <오마이뉴스>에 글을 많이 올리던데."나오는 대로 쓰는 게 글이지요. 글을 쓸 때는 써야 하는 게 있기 때문에 책상에 앉지요. 날이 갈수록 세상 사람들은 다른 사람 생각이 없어지고 있습니다. 옆 사람이 왜 저렇게 사는지 느끼질 않지요.
이런 부분에서 <오마이뉴스>도 문제가 있습니다. <오마이뉴스>와 시민기자는 글로만 만나는 사이지요. 사람은 깊이 파고들지 않으면 알지 못하지요. 당연히 <오마이뉴스> 측은 독해력이 좋아야 합니다. 다른 처지에 있는 사람들의 묻혀있는 마음까지 읽어내려면 독서량도 많고 사람도 많이 만나봤어야 합니다. 경청도 잘 할 줄 알아야 하고 무엇보다 가난하게 산 경험이 있어야 합니다.
스스로 느끼지 못하면 숫자에 얽매이게 됩니다. 영향력 순위 발표에 민감하게 반응하는데 도토리 키재기입니다. 조회수 이런 것은 중요하지 않아요. 비난성 댓글이 많을 지라도 뜻이 있는 글이면 올려야지요. 예전에는 그러한 시도들이 있었지만 지금은 없어요. 직원이 늘어나고 <오마이뉴스>가 커진 만큼 다부지게 걸어가지 않고 타협하는 듯싶습니다. 흐지부지 해졌어요.
회사가 커지고 규모와 조회수에 치우치게 되면 일하는 사람도 보람보다는 월급에 치우치게 되지요. <조선일보> 월급과 비교하게 되면 초라하게 되지요. 사람들이 생활비도 안 되고 술값도 안 되는 작은 돈을 받아가면서 왜 글을 올리는지 <오마이뉴스>는 다시 고민해야 해요."
"정작 함께 생각하고 나눠야 하는 이야기 뒤로 밀려나"
- 문제점을 느끼고 계신데, 더 할 말이 있다면."<오마이뉴스> 초기에는 시민기자에게 연락을 하여 '이런 점은 앞으로 이렇게 해줬으면 좋겠다' 또는 '뭐는 괜찮은데, 이 부분은 그렇더라'라고 도움말을 많이 했는데 요즘은 많이 줄어든 느낌이에요. 올라오는 글 수준도 많이 떨어졌고요. 책동네도 서평으로만 이뤄지고 있어요. 그냥 줄거리 소개하면 출판사 보도자료 보는 게 낫지요.
무엇보다 자기들 입맛에 맞지 않는 사람도 껴안을 수 있어야 합니다. 처음에는 둥지를 틀고 있다가 나간 사람이 많아요. 시민기자 숫자가 중요한 게 아니에요. 5만 넘은 게 뭐가 중요해요. 포털 가입자는 천만이 넘어요. 그렇게 큰 자랑거리가 아니에요. 시민기자 한 사람이 하나씩만 기사 올려도 <오마이뉴스>는 일 못해요. 그런 숫자로 포장하지 말고 시민기자 움직임과 활동을 중요하게 여겨야 해요.
또, 밖에서 보면 느껴져요. 인터넷신문이라고 하면서 서울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만 실려요. 그게 무슨 인터넷신문이에요. 서울이야기뿐 아니라 여러 지역 소식이 실려야 하는데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통 알 수가 없어요. 바쁘고 힘들고 인력에 한계가 있겠지만 독자는 이런 핑계를 이해하면서 신문을 보지 않지요. 다 알려고 하는 게 아니잖아요. 정성껏 지역 사람들 이야기를 받아서 쓰는 게 중요하지요. 그런 게 없어요.
기륭전자 이야기, 중요하지만 못 마땅한 면도 있어요. 기륭전자 서울에만 있지요. 전국에 비정규직으로 투쟁하는 분들 많으세요. 다른 쪽 띄우면 조회수가 없으니 안 띄우죠. 안 써서 모르게 되죠.
정치, 굵직한 사고 기사가 아닌 다른 기사를 못 찾겠어요. 촛불집회 끝나자 맥아리가 없어지잖아요. 시의성에 너무 집착해요. 정작 우리가 생각하고 돌보아야 하는 일은 뒤로 밀려나지요. 상근기자들이 쓰는 정치이야기만 중요한 게 아니라 삶이 어떻게 나아가는지 나누는 글이 있어야 합니다. 사회를 바꾸려 하는 몸부림이 들어 가야 합니다. 조회수로 먹고 사는 것과 금을 그어야 해요."
- 초심을 잃은 모습을 느낀다고 하는데 <오마이뉴스>가 자만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나요?"모든 기사의 원고료를 없애는 게 좋아요. 그러면 시민기자들의 기사질이 달라질 겁니다. 글 올라오는 수는 줄겠지만 진짜 써야 하는 글만 올라오게 되지요. 수고했으니 적은 값이라도 줘야 하면 원고료를 통일하면 되고요.
계급도 아니고 기사의 등급을 매기는 건 이상한 일이지요. 기사 하나 하나가 땀방울인데 똑같이 대우해줘야 합니다. 글은 그대로 가치가 있지요. 돈으로 글 값을 따질 수 없습니다. 글 하나하나에 돈을 매기면 안 됩니다. 농사라면 하나하나에 값을 매기지만 글은 생산하는 게 아닙니다.
사회 구석구석 바꾸려고 애쓰는 분들이 계시죠. 뭐든지 삶의 뿌리를 바꿔야 보입니다. 바꾸는 길 찾아서 바꾸면 되어요. <오마이뉴스>도 스스로 바꿀 수 있는 것을 바꿔야 하겠죠. 꼭 영향력 있는 매체가 되는 게 중요하지 않아요. 꿋꿋하게 자기 길 가면 되지요.
제 모든 글은 자원봉사예요. 원고료를 주거나 말거나 홀가분하고 재미있게 씁니다. 제 글이 부족한 면이 있지요. 그건 제가 바꿔나가야 하겠지요."
"자기가 만드는 물건의 의미를 알아야 참된 노동자"- 현실이 호락호락하지 않아 어쩔 수 없는 부분도 있지 않은가요."사회가 그렇게 가더라도 꿰뚫어 봐야 하지요. 어쩔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은 스스로 바보가 됐다는 얘기예요. 자기 삶을 바꿔야 진정한 노동자예요. 그래야 자기 자식에게 당당하고 자랑스럽지요. 부끄럼 없이 살면 자식은 자연스럽게 본받지요. 그러면 부모가 사는 모습을 보고 가업이 이어지죠.
엊그제 어떤 사람에게 선언했어요. 현대자동차 노동자는 노동자가 아니다. 자동차를 만들기 때문에. 자동차는 사회를 어지럽히는 물건이지요. 자원도 엄청나게 소비하고 환경오염을 일으키고 수많은 사고가 나지요. 공장노동자라고 다 노동자가 아니에요. 노동자는 자기가 만드는 물건의 의미와 사회영향력을 알아야 참된 노동자예요. 노동자가 가야 할 길은 좋은 물건 만드는 거예요. 자동차는 안타면 좋겠지만 되도록 적게 타야겠지요."
- 육아 일기를 올리고 있던데. "보통 아버지들이 쓰는 육아일기는 회사 나갔다가 돌아와서 조금 거들고 어떻다고 쓰잖아요. 다른 남자들도 그렇게 해왔고 '모든 아버지는 어떻다'라고 사람들에게 새겨져 있어요. 저는 아이를 낳아서 기르고 키우는 육아일기예요. 남편으로서 회사를 안 다니고 애 곁에서 모든 일을 같이 하는 아버지로서 쓰고 있습니다. 이런 남자를 받아들일 수 없나 봅니다. 여자들은 집안일 도맡고 젖 먹이고 힘들어서 육아일기 쓰고 싶어도 여력이 없어 못 써요.
남자가 집안 살림 안 하는 게 문제지요. 누구나 먹고 자고 화장실 가고 그 모든 걸 할 줄 알 듯 살림도 할 줄 알아야 합니다. 살림 못 하고 어머니와 아내에게 부탁하는 건 한 사람으로서 덜 된 겁니다. 어릴 때부터 교육을 받아야 하고 젊은 부부들부터 일을 같이 해야 합니다. 그리고 가사분담, 집안일 나누기가 아니라 집안일 함께하기가 되어야 합니다."
"부모가 똑바로 사는 것이 아이들 교육"
- 아이를 앞으로 어떻게 키울 건지. "아이들 교육은 따로 없어요. 아이들은 부모가 사는 대로 보고 배워요. 부모가 똑바로 살아야 하지요. 부모는 고생해서 여태까지 키웠다고만 생각해요. 은혜를 내렸다고 생각하니 자식은 자연스럽게 부모를 떠나 포근한 사람을 찾게 되지요.
저는 늘 곁에 있어주려고 해요. 사진을 찍으면서 느껴요. 아이들이 귀엽다고 어릴 때는 사진을 그렇게 많이 찍는데 왜 나이 들수록 아이의 사진을 부모들이 안 찍을까 생각해보세요. 아이가 커갈수록 부모와 보내는 시간이 적어져요. 볼 시간이 줄어들죠. 아이들이 같이 어울리는 친구들과는 허물없이 사진을 찍지만 부모와는 스스럼없이 찍지 못하고 어색해 하지요."
물질이야 넉넉하지 않지만 마음이 넉넉하기에 그는 탐욕스럽기를 자랑스러워하는 한국의 군상들과 다르지요. 도서관 운영을 도와주시는 분들이 있고 글 쓰고 사진을 찍으며 생활하는 그는 한국 주류의 반대편에서 묵묵히 자기 길을 가고 있네요. 뜻을 품고 소신대로 사는 그의 발걸음은 가볍지 않고 흔들리지 않지요.
최종규 기자는 꿈이 있냐는 물음에 "지금 이대로 사는 게 가장 좋습니다. 왜냐면 가장 좋은 모습으로 살려고 하니까"라는 대답을 하더군요. 인터뷰 도중 내린 소나기 때문에 그는 빨래를 걷으러 갔습니다. 그가 차려준 뜨거운 녹차를 마시며 여러 가지 생각을 해봅니다. 지금 우리는 어떻게 살고 있으며 삶에 만족하고 있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