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 직불금’ 파문을 보며 다소 엉뚱하지만 지금이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위기에 처한 우리 농업을 살릴 수 있는 ‘전화위복’의 기회라고.
농업위기, 식량위기, 먹거리 안정성 위기 등이 그동안 대두되었지만 그것은 말뿐이었다. 정작 근본적 해결책을 찾으려는 노력도 없었고 국민적 공감대도 없었다.
직불금 문제 출발지점은 쌀 시장 개방이다. ‘쌀 소득보전 직불금제도’는 DDA 쌀 협상 이후 시장개방 폭 확대로 쌀 가격이 떨어지더라도 쌀 농가 소득을 적정 수준으로 유지하기 위해 2005년부터 실시한 제도다. 직불금은 지역마다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ha당 약 74만6천 원 정도다.
'직불금', 농민들에게는 가뭄 날 단비였는데!
많지 않은 돈이지만 농가 입장에서 직불금은 가뭄 날 단비처럼 고마운 것이었다. 농사에 필요한 비료·농약 값은 매년 큰 폭으로 올랐지만 쌀값은 수년간 거의 제자리였기 때문이다.
연초부터 국제유가 상승으로 기름 값이 급등하더니 뒤이어 원자재 및 곡물파동에 따른 비료 값과 농약 값이 크게 올라 쌀 재배 생산비가 큰 폭으로 상승했다.
작년 8월 말 리터(ℓ)당 650원 안팎이던 면세유는 올 8월 말 기준으로 1200원대가 돼 87%나 급등했다. 이러다 보니 모내기부터 수확까지 농기계에 기름을 넣을 때마다 생산비 상승은 농민들에게 큰 부담이 됐다.
또 지난해 20㎏ 1포대 8700원이던 비료값도 올해는 2만2천원으로 껑충 뛰었다. 그렇다고 비료를 안 쓸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농약 값은 더 큰 문제다. 내년에 농약값이 큰 폭으로 인상될 것이라는 전망에 사재기가 심화되면서 일부 품목의 경우 품귀 현상까지 발생하고 있다. 이에 따라 농가들의 경우 실제 필요한 물량을 구하지 못해 영농에 차질을 빚을 것으로 예상된다.
농약의 품귀현상은 값 인상을 예상한 일부 대농가의 사재기와 함께 물량을 대량으로 확보한 농약대리점 등이 판매를 기피하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되고 있다.
하지만 쌀값은 도리어 떨어질 전망이다. 농촌경제연구원은 올해 쌀값이 생산량 증가 등 이유로 지난해보다 약간 낮아질 것이라 전망했다. 농경연은 지난 8월 18일 발표한 쌀 관측을 통해 쌀 생산량 증가와 공공비축 매입량 감소 등으로 지난해보다 0.7~3.3%가량 낮아질 것이라 전망했다.
쌀 농가 지원금이 지주들 탈세에 악용됐다
이런 상황에서 쌀 농가가 그나마 기댈 수 있던 것이 ‘직불금’이었다. 따라서 쌀 생산단가가 높아질 거라 예상되는 내년에는 ‘직불금’을 높이는 방안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엉뚱하게도 우린 현재 ‘직불금 파문’에 휩싸여 있다.
농민들에게 내려야 할 단비가 서울 부자들에게 내려진 것이다. 이봉화 전 차관의 쌀 직불금 부당 수령 문제로 촉발된 파문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전망이다. 지금까지 부당 지급된 쌀 직불금은 1680억 원에 이르고 비경작인 약 20만명이 농지를 소유한 것으로 밝혀졌다.
쌀 직불금을 부당 수령한 사실이 밝혀진 고위 공직자는 약 7명이고 한나라당 국회의원도 3명이나 포함되어 있다. 그렇다면 왜? 이들이 쩨쩨하게 ha당 1백만원도 안 되는 직불금을 챙겼을까?
각종 언론에 보도된 대로 ‘세금’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투기 목적으로 부동산, 특히 농지를 소유하고 있으면 매매시 60%가 넘는 세금이 붙는다. 하지만 직접 짓는 것이 확인되면 8년 뒤에는 양도소득세 감면 혜택을 본다.
또, 국민연금이나 의료보험료 혜택도 본다. 농촌지역에 주소지를 두고 농사를 지으면 의료보험료와 국민연금 감면 혜택이 있다.
문제가 발생했으면 해결책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정치권은 해결책을 제시하기보다는 ‘네 탓 공방’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직불금 파문’을 전 정권의 실책으로 규정했다.
지난 21일 쌀 직불금 파문과 관련 이명박 대통령은 "지금 정부의 책임은 아니지만, 제도가 미숙한 상태에서 시행돼 많은 문제를 낳았다"며 "전 정부의 책임이라고 하더라도, 철저한 개선책을 마련해 실제 농사를 짓는 농민들에게 혜택이 돌아가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민주당은 그동안 제도 개선하지 않은 것을 질타했다. 민주당 박영선 의원은 노무현 정부 때까지는 계속 개선안이 준비됐지만 이명박 정부 들어 개선안이 사라졌다고 지적했다.
농민들 구호연금 갈취하는 공직자... 더 이상 희망이 없다
네 탓 공방에 열을 올릴 것이 아니라 해결책과 재발 방지책을 내놓아야 한다. 또, 죽어가고 있는 농업을 살릴 수 있는 길을 제시해야 한다. 이번 일은 단순하게 부당하게 제공된 직불금을 회수해서 농민들에게 돌려주고 해당 공직자를 징계하는 차원에서 끝낼 문제가 아니다. 이번 기회에 보다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농지법을 개정해서 경자유전 원칙을 재정립해야 한다. 따지고 보면 비경작자에게도 농지 소유를 허용한 농지법에 근본적 문제가 있는 것이다. 농지법을 개정해서 농사짓는 자만이 농지를 소유하게 해야 한다.
정부에서 나서서 농업에 대한 장기적인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직불금 문제’ 출발점은 ‘피폐해진 농업’에 있었다. 점점 죽어가는 농업, 특히 쌀농사를 살리기 위해 도입한 것이 ‘직불금’이었다.
세계적인 식량 위기다. 특히, 국제 쌀값이 폭등했다. 또, 멜라민 파동 등으로 모처럼 국민적 관심이 안전한 우리 농산물에 모아지고 있다. 지금이 기회다. 망해가는 농업을 살려 우리 땅에서 나는 안전한 우리 먹거리로 식량을 자급할 수 있는 장기적인 대책을 세워야 한다. 이것이야 말로 ‘직불금 파문’의 근본적 해결책이다.
그렇다고 눈앞에 닥친 일을 덮어두자는 것은 아니다. 근본적인 대책 세우기 전에 반드시 처리해야 할 일이 있다. 부당하게 직불금 수령한 인사들 가려내서 명단 공개하고 일벌백계해서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해야 한다. 특히, 공직자나 정치인들은 처벌의 강도를 일반인과 달리해서 이번 기회에 확실하게 기강을 바로 잡아야 한다.
농민들 구호연금 같은 ‘직불금’까지 갈취하는 공직자들이 설치는 나라! 더 이상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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