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광부 사이트, 사퇴 촉구 누리꾼 글 쇄도
국감장에서 사진 기자들에게 욕설을 퍼부은 유인촌 장관이 궁지에 몰리고 있다. 야당은 이미 사퇴 촉구를 했고 누리꾼들은 분노했다.
26일 오전 9시 현재 문화체육관광부 홈페이지 '나도 한마디' 코너에는 대충 600개 정도의 글이 올라왔다. 문광부 홈페이지 글은 실명제인데 거의 100% 유 장관을 비난하면서 사퇴를 촉구하고 있다.
"장관은 ××해도 되고 네티즌 댓글은 단속하는가? 인터넷 단속할 생각하지 말고 유 장관 당신 험구(險口)나 단속하고 완장찼다고 힘자랑 하지 마시요."
"국감장에서 국민들이 다 보고 카메라가 한두 대가 아닌데 거기서 욕을 하다니요, 대단하십니다. 그게 욕이 아니라는 사람들은 뭐죠. 욕이랑 아닌 거랑 구별을 못하는 모양인데요. 문광부장관이."
"장관과 차관 모두 사퇴하세요."
"솔직히 말해서 브라운관에서 뵜을 땐 팬이었습니다. 인자하실 것같은 부드러운 인상…그런데 동영상 보니 너무 깨네요…어떤 게 진짜 모습이신지."
"유인촌 장관은 국민들에게 ××이라고 욕을 했다. 국회의원들 욕하고 싸우는 것은 봤어도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취재하는 기자들을 향해 ××이라는 욕을 하는 장관은 처음 봤다. 기자들에게 욕한 것은 넓게는 국민들에게 욕한 것과 같다."
유 장관은 때도 좋지 않았다. 가뜩이나 베이징 올림픽 때 연예인 응원단이 흥청망청 돈을 썼다고 비난이 고조되는 상황이었다. 연예인 응원단은 10일 정도 베이징에 머물면서 2억1189만원을 사용해 물의를 빚었다.
이 문제 때문에 24일 국감장에서 유 장관은 사과까지 해야했다. 그래놓고는 같은 날 오후 바로 문제의 욕설을 퍼부었다. 아니 때를 잘못 만난 게 아니라 이런 상황에서 자중하지는 못할 망정 욕설까지 했으니 간덩이가 부었던 것인가?
욕설하지 않았다? 방송 카메라에 찍혔는데도?
욕설 파문 수습 태도 때문에 유 장관은 비난을 더욱 자초했다. 문광부는 24일 밤 급히 "유인촌 장관이 국정감사장에서 기자에게 욕설을 했다는 것은 과장됐다"는 내용의 보도자료를 냈다.
"유인촌 장관은 민주당 이종걸 위원이 국회 문화체육관광부 국정감사 신상발언 중에서 한 '4천만 국민의 사기극으로 정권 잡은 이명박', '장관, 차관 그리고, 공공기관 낙하산 대기자들, 지금 그들은 이명박의 휘하들입니다. 졸개들입니다'라는 지나친 인격모독적 표현에 대하여 정회(停會) 직후 고흥길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장에게 유감을 표명하였습니다.
이 과정에서 이를 촬영하던 일부 기자들에게 사진을 찍지 말 것을 강하게 요구한 것은 사실이나 일부 언론보도와 같이 기자들에게 욕설을 한 것은 아닙니다. 다만, 격한 감정을 스스로에게 드러낸 것이 잘못 알려진 것입니다."
그러나 이미 방송 카메라에 찍혀 유 장관의 발언은 전파를 타고 난 뒤였다. 방송 화면을 보면 유 장관의 발언이 그대로 나온다.
문광부 '나도 한마디' 코너에 올라온 글 가운데 보니 많은 글들이 '완장질'하지 말라는 내용이 들어있다. 누리꾼 황아무개씨가 쓴 글의 제목은 '완장의 위력'이다.
"당신의 모습은 전원일기에서 왕회장댁 둘째아들이었을 때가 좋았습니다. 완장차고 나니 꼭 박통 때 차지철(청와대 경호실장) 같습니다. 그 완장 하나 때문에 얻은 것도 있겠지만 잃은 것이 더 많겠군요. 이제 그 완장을 스스로 벗으시지요. 배우로서도 설 자리를 이미 잃어버리셨으니 연금이나 타서 드시고 또 재산이 많으니 뭔 걱정이 있겠습니까? 당신들의 완장이 나라 경제를 또 말아먹으려고 하니 서민들이야 죽건 말건 무슨 상관이겠습니까."
언론을 언제든지 틀어막을 수 있다는 발상
지난 정권 때 보수 진영은 노무현 대통령의 젊은 참모들을 향해 '완장질'한다고 공격했다. 그러나 그 비난을 이제 이명박 대통령의 참모들이 받고 있다.
'완장'과 '참모'의 차이가 뭘까? 참모는 주군의 뜻을 받드는 데 그치는 게 아니라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도록 직언도 하고 충언도 하는 그런 사람이다.
그러나 이른바 '완장질'이란 권력자의 수하라는 이유로 마치 자신이 그 권력자나 된 것처럼 '호가호위'하는 것이다.
이종걸 의원의 '이명박의 졸개'라는 표현은 지나쳤다. 사과할 만하다. 그러나 그런 표현에 발끈해서 사석에서도 아니고 국감장에서, 더구나 의원들만 있는 것도 아니고 방송카메라가 돌아가고 기자들이 지켜보고 있는 상황에서, 더구나 수십년 톱 연기자로 살아왔던 사람이 그런 '퍼포먼스'를 벌인 것 자체가 이종걸 의원의 발언이 맞을 수도 있음을 역설적으로 보여준 것 아닐까?
더구나 욕설의 대상이 사진 기자였다는 것도 문제가 심각하다.
유 장관이 일그러진 표정으로 고흥길 의원장에게 항의하는 모습은 그 자체가 뉴스다. 국감장에 있던 사진 기자들은 국민들의 알 권리를 위해 찍어서 보도할 수 있다. 사실 그런 장면을 가만히 지켜볼 기자들은 없다.
그런데 이런 사진 기자들에게 "×× 찍지 마"라고 명령한 유 장관의 행동은 현 정권 인사들이 언론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잘 보여준다. 아마 언론 경험이 많은 유 장관은 그런 장면은 반드시 사진으로 찍혀 보도될 것이고, 이후 자신의 이미지에 큰 문제가 될 것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이날 국감이 파행으로 진행된 것은 정연주 KBS 사장이 해임된 직후인 지난 8월 11일 최시중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이동관 청와대 대변인·나경원 한나라당 의원·김회선 국가정보원 2차장 등이 함께 만났기 때문이다.
국정원의 국내 정치 개입 의혹 때문에 여·야 사이에 국정원법 위반 여부를 놓고 고성이 오갔다. 국정원이 언론 문제에 개입하고 있다는 의혹이 불거지고 있는 와중에 국내 언론정책을 다루고 있는 문광부 장관이 사진기자들을 향해 욕설을 퍼부은 것은 단순히 그냥 지나칠 일이 아니다.
마음에 안 들면 언제든 언론에 재갈을 물릴 수 있다는 생각이 무의식적으로 표출된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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