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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경제의 위기에서 '고전'을 펼쳐야 하는 이유

 

 이번에 새로 번역된 김정환의 <셰익스피어> 작품 5편은 번역자가 오랫동안 숙원했던 작업으로 극작가 셰익스피어의 집필의도와 등장인물의 캐릭터를 온전히 드러내 보인 것 같다. 실제로 번역 문장 한줄 한줄에 번역자의 고뇌를 읽을 수 있었다.
이번에 새로 번역된 김정환의 <셰익스피어> 작품 5편은 번역자가 오랫동안 숙원했던 작업으로 극작가 셰익스피어의 집필의도와 등장인물의 캐릭터를 온전히 드러내 보인 것 같다. 실제로 번역 문장 한줄 한줄에 번역자의 고뇌를 읽을 수 있었다. ⓒ 아침이슬

세계 금융위기로 촉발된 한국경제의 위기조짐을 두고 혹자는 제2의 IMF라고 일컫기도 한다. 이번 위기는 단지 규모만의 위기가 아니라 신자유주의와 물신주의에 묻혀 있던 인간의 가치와 삶의 방식 등 근본적인 반성을 하게 만들기 충분하다.

 

이에 맞춰 CEO들의 인문학강좌 열풍이 언론에 소개돼 화제다. 금융위기의 한복판에서 위태로운 처지에 몰린 증권회사의 한 간부는 "월가의 금융위기가 우리나라에도 곧 닥치겠지만 10년 전 외환위기 때와는 다르게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며 수강신청 소감을 밝히기도 했다. (시사IN 58호)

 

하지만 '근본적인 반성'이라는 것은 쉽게 도달할 수 없는 경지다. 우리들은 자신의 앞가림하기에도 바쁘기 때문에 맘 편히 앉아서 사유하기가 쉽지 않다. 깊이 사유하고 반성하기 위해서는 선각자의 가르침이나 고전의 진수에 의지해야 한다. 우리는 사색적 생활이라는 오랜 전통을 이어오고 있었던 민족이었지만, 언제부턴가 사유의 밑바닥을 드러내고 말았다. 고전 읽는 사람이 없어졌다는 말이다. 그래서 어떤 고전을 읽어야 할지에서부터 생각이 막히지만, 나는 셰익스피어에서부터 시작하기로 했다.

 

셰익스피어의 비극은 불안정하고 허무하기 짝이 없는 인간의 운명과 감정을 낱낱이 드러내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한다. 굳건한 지위는 협잡군은 얕은 속임수 앞에 모래성처럼 무너지고 복수의 감정은 또다른 비극을 불러온다. 진정어린 사랑과 곧은 충성심도 머뭇거림과 편견 앞에서는 맥을 못 춘다. 셰익스피어의 불행한 인물들은 우리들의 삶을 지나칠 정도로 명명백백히 고발한다. 불편할 정도로.

 

배신, 맹목적 복수심, 광기의 이름은 '햄릿'

 

삼촌(클로디어스 왕)의 존속 시해로 허무하게 아버지를 잃게 된 햄릿은 아버지 유령에 의해 사건의 전모를 알아차리고 살인사건과 동일한 설정의 연극 초연에서 삼촌 왕이 당황하는 것을 보고 실상을 모조리 알게 된다. 하지만 어머니에 대한 배신과 분노는 삼촌의 그것에 비할 바가 못 되었다.

 

맙소사, 하느님은 최상의 코미디 작가지! 사람이 유쾌하지 않을 수가 있나? 봐, 내 어머니가 얼마나 명랑해 보이는지, 아버지가 죽은 지 두 시간도 안 돼서 말야.

- <햄릿>(아침이슬), 100쪽

 

동양적으로 표현하자면 '남편에 대한 탈상이 끝나기도 전에' 어머니 거트루드 왕비가 죽이고 싶을 정도로 미웠지만 "네 영혼이 네 어머니께 어떤 벌도 획책하지 말 것. 그녀는 하늘에 맡길 것"(햄릿, 45쪽)라는 아버지 유령의 충고 때문가 햄릿으로 하여금 불 같은 증오를 표현하는 것을 막아세웠다. 햄릿이 왕비의 내실에 숨어 염탐하던 클로디어스의 충복이자 햄릿의 연인 오필리아의 아버지 폴로니어스를 죽인 사건이 있고부터 국면은 급격히 악화되고 운명의 잔인한 장난이 시작된다.

 

맹목적 복수심에 사로잡힌 햄릿을 열렬히 사랑했던 오필리아는 아버지의 죽음으로 상처를 입게 되고 사랑과 가족을 잃은 슬픔에 자살하고 만다. 이로 인해 오필리아의 오빠이자 폴로니어스의 아들인 레어트스의 복수심은 극에 달하고 클로디어스 왕은 이를 이용해 햄릿을 죽일 계획을 세운다.

 

<햄릿>에서 가장 슬픈 대목은 햄릿의 맹목적인 복수심이 불러낸 또다른 살인과 복수, 사랑의 좌절이다. 가혹한 운명의 장난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레어트스와 햄릿, 클로디어스 왕, 거트루드 왕비가 모두 죽고 나서야 종국에 다다른다. 이 모두 삼촌인 클로디어스 왕이 불러낸 비극이지만, 사실 아버지 왕의 죽음은 이들의 가혹한 운명에 비하면 사소하기까지 하다.

 

맹목적 신념, 절망 앞에 사라지는 삶의 가치

 

<햄릿>의 상황은 우리네 인생사에서 똑같이 재현될 수는 없겠지만, 그 이치만은 고스란히 다가온다. 경제성장이라는 맹목적 목표에 사로잡혀 결코 버려서는 안 되는 삶의 가치와 인간의 존엄을 '사소한 희생량'으로 치부해버렸던 근래의 모습이나, 상대방에 대한 비방과 맹목적 공격은 옳은 주장도 쉽게 묵살해 버린다.

 

미군정, 독재 시절에 이미 사라졌어야 할 색깔론은 2008년 대한민국에서 더욱 찬란한 색깔옷으로 갈아입고 '좌파척결'이라는 치맛자락을 휘두른다. 당당한 사회의 일원인 시민들은 세상을 변화시키기보다는 패배감에 젖어 있고, 삶을 포기한 극단적인 선택인 자살사례는 너무 흔해서 뉴스에도 소개되지 않는다.

 

<햄릿>이 절박한 우리 삶의 단면에서 가르침을 줄 수 있는 것은 좌절과 불행에 대한 카타르시스에 머무르지 않는다. <햄릿>에서 보이는 불행은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아버지 왕의 불행을 첫 번째 불행이라고 한다면, 복수에 사로잡힌 햄릿이 불러낸 불행은 두 번째 불행이다. 첫 번째 불행은 피할 수 없었지만, 두 번째 불행은 피할 수 있었다. 이것이 <햄릿> 비극의 핵심이다.

 

어려운 경제상황, 말도 안 되는 정치적 탄압, 날마다 나를 괴롭히는 좌절과 공포는 피하기 어려운 불행일 수도 있지만, 이후에 만나게 되는 자살과 패배감 등의 불행은 피할 수 있는 불행이다. 누구나 불우한 순간을 피할 수는 없지만, 그 다음의 불행을 자초하느냐 마느냐는 순전히 본인의 몫으로 남는다.

덧붙이는 글 | 블로거뉴스에도 올렸습니다


햄릿

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음, 김정환 옮김, 아침이슬(2008)


#햄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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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놀이 책>, <인문고전으로 하는 아빠의 아이 공부>, <공자, 사람답게 사는 인의 세상을 열다> 이제 세 권째네요. 네 번째는 사마천이 될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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