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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승리할 때까지!’ 쿠바의 도로에는 혁명구호들이 전시된 표지판들이 곳곳에 있다. 그것은 전투적이고 또 미국에 대한 적대심을 드러내기에 가장 알맞은 홍보수단이 된다. 물론 그 중심에는 그들의 영웅 체 게바라가 있다.
▲ Hasta la victoria Siempre ‘항상 승리할 때까지!’ 쿠바의 도로에는 혁명구호들이 전시된 표지판들이 곳곳에 있다. 그것은 전투적이고 또 미국에 대한 적대심을 드러내기에 가장 알맞은 홍보수단이 된다. 물론 그 중심에는 그들의 영웅 체 게바라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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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를 기억하게끔 만드는 여러 지역들이 있다. 수도 아바나는 달러를 끌어들이려는 카스트로 정부의 의지와 맞물려 말레콘 방파제를 배경으로 과거와 현재 두 모습의 쿠바를 동시상영하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관광도시로 변모해 있다.

살아있는 뮤직과 댄스의 향연을 구경할 수 있는 쿠바 제2의 도시 산티아고 데 쿠바(Santiago de Cuba)나 체 게바라의 영원한 안식이 있는 산타클라라(Santa Clara), 콜로니얼 도시와 살사로 유명한 트리니다드(Trinidad), 가장 현대적인 해변 휴양지 바라데로(Varadero), 절벽과 동굴 등 다양한 자연환경으로 여행자의 마음을 사로잡는 비냘레스(Viñales) 등도 역시 빼놓을 수 없는 쿠바 관광의 주요 아이콘이다.

하지만 보다 클래시컬한 쿠바를 보고 싶다면 결코 빼놓아선 안 되는 장소가 있다. '혁명은 통일이다(Revolucion es Unidad)!' 이토록 강렬한 구호가 선전되는 동시에 쿠바에서 가장 아름다운 공원들이 즐비하게 늘어선 도시 '올긴(Holguin)'. 대항해사 콜롬버스마저 이 지방에 도착해서는 지금까지 본 곳 중 가장 아름다운 곳이라는 찬사를 아끼지 않은 곳이 바로 올긴 지방이다.

‘이상을 위한 투쟁은 앞으로도 계속된다!’
▲ La Batalla de Ideas Seguir adelante ‘이상을 위한 투쟁은 앞으로도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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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쟁으로 당신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라.
▲ El valor se prueba en el Combate 투쟁으로 당신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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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라고 해도 예외는 아니다. 중앙 정부에서 멀어질수록 점차 약화되는 통제 규율을 경험하고 있었다. 나라에서 여행자들이 쉬어가게끔 허가를 내 준 지정 숙소를 이용해 왔던 우리는 수도 아바나를 멀찌감치 벗어난 어느 순간부터 점점 현지인들을 만나고 그들과 교제하면서 그들의 집을 이용하는 경우가 잦아졌다. 이것은 일반 시민뿐만 아니라 경찰에서도 별다른 터치를 하지 않는 예외가 되었다.

올긴 진입을 불과 몇 km 앞둔 작은 동네에서 하루를 마무리하려 숙소를 알아보던 중이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요한이라는 친구가 지정숙소를 가르쳐 주는 대신 자신의 집을 이용하라는 반가운 소리가 들렸다.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우리는 얼른 자전거를 세워두고 이층 숙소로 짐을 옮겼다. 비록 외관은 칠 없이 벽돌구조 그대로에다가 철골 뼈대가 보이는 집, 거기에 침대 하나에 둘이 자는 것이었지만 독립된 방에 화장실 상태도 깔끔하고 선풍기도 있으니 이만한 호사도 없었다.

하지만 최고의 백미는 역시 저녁식사. 넓은 접시에 삶은 돼지고기와 감자조림, 그리고 토마토를 썰어 넣은 샐러드에 두 눈과 코가 정신을 점잖게 제어하지 못하고 왕성한 식욕이 발동되어 밥을 뚝딱 두 그릇이나 비웠다. 이 만찬의 주인공보다 더 흡족해하는 사람은 요리를 만들어 준 요한의 어머니. 그 만족함 끝까지 챙겨드리려 주스도 두 잔 더 리필하며 포식이라는 이름이 아깝지 않을 정도로 감사히 저녁식사를 마무리했다.

식사를 마치고 나니 요한의 가족은 각자의 위치로 뿔뿔이 흩어졌다. 그의 남동생은 오토바이를 몰고 아리따운 여자친구를 태워 데이트하러 나갔고, 요한의 이모는 실내를 환기시켜 놓고 TV로 드라마를 시청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요한의 아버지는 집 앞 도로 맞은편으로 나가 노점을 했는데 주로 농산물과 관련된 것이었다.

이것이 그의 유일한 낙
▲ 시가 이것이 그의 유일한 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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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관과 마당의 경계에는 요한의 할아버지가 있었는데 우리가 도착하던 시점부터 샤워를 하고 식사를 마칠 때까지도 연방 줄시가만 피워댔다. 마치 '내 인생의 유일한 낙이 이거니깐 건들지들 말라구!' 하는 시가 한 개비로 안빈낙도의 삶을 영위하는 모습이었다. 건강이 걱정되었지만 이렇게 시가에 인생의 근심과 무료함을 태운 지 벌써 수십 년째였다. 그래서 가족들도 함부로 터치하지 못한단다.

다음 날 아침, 우리는 나그네를 귀빈처럼 대해준 고마운 요한의 가족과 작별 인사를 하고 바로 코앞에 있는 올긴으로 향했다. 오늘은 단지 몇 km만 가면 된다는 생각에서인지 J의 기분도 푸른 하늘의 한 점 구름처럼 상쾌해 보였다. 올긴에 일찍 도착해서 우리는 최대한 휴가처럼 보내기로 계획했다.

J와 잠을 재워 준 요한의 가족과 함께.
▲ 하룻밤 같이 교제한 이들 J와 잠을 재워 준 요한의 가족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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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지로 들어서기 전 느릿한 여유로 도로를 흘러가는 자전거 여행자를 환영하는 포스터들이 연이어 눈에 띄었다. 주로 혁명, 투쟁, 그리고 체 게바라와 관련된 민중을 선동하는 선전물들이었다. 다른 곳에서도 간간이 선전물을 보지 않은 건 아니었지만 이곳에서는 더욱 고전적인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올긴 지방이 혁명 구호의 최전선에 나설 이유는 별로 없어 보였다. 혁명의 시발점도 아니고, 혁명의 완성점도 아닌 올긴 지방. 그렇다면 대관절 어떤 이유로 이곳에 이토록 많게 느껴지는 선전포스터가 세워져 있는 것일까. 추측하건대 이곳이 혁명의 불씨를 불길로 키워낼 수밖에 없는 지리학적 이유가 타당하지 않을까 싶다.

6개의 기둥. 기념물 6은 아마도 암살당한 이들의 숫자를 상징하는 것 같다.
▲ Monumento de Las 6 Columnas 6개의 기둥. 기념물 6은 아마도 암살당한 이들의 숫자를 상징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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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7년 12월에 암살당한 여섯 인물의 두상을 합쳐 조각한 기념비
 1957년 12월에 암살당한 여섯 인물의 두상을 합쳐 조각한 기념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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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6년 12월 2일 카스트로와 81명의 반란군이 그란마호를 타고 쿠바 섬의 동남쪽에 위치한 카보크루스(Cabo Cruz)라는 작은 반도에 상륙하였는데 그 이유로 이 지역의 명칭이 그란마(Granma)주가 되었다. 그리고 올긴 지방은 그란마 주의 바로 위에 위치해 있다.

그런데 쿠바 섬에 혁명의 파도를 일으키기 위해서는 무기나 병력면에서 절대적 열세인 군사력을 상쇄할만한 전략이 있어야 했다. 그것이 바로 지형을 이용한 게릴라 작전이었다. 쿠바에는 크게 동부, 중부, 서부의 세 곳의 산계가 위치해 있는데 그 중에 동부산계인 마에스트라 산맥은 면적이 가장 넓고 지형적으로 복잡하다.

여기 산악지대에 카스트로와 체는 혁명의 거점을 건설하고, 게릴라전으로 정부군을 공격함과 아울러 농민들의 지지를 확보해 나가는 전략을 썼던 것이다. 마에스트라 산맥을 넘어서면 바로 넓고 기름진 올긴 지방이 가장 먼저 나온다. 어떻게든 정부군과 맞닥뜨릴 수밖에 없으며 반드시 그들을 넘어서야만 수도 아바나로 진격할 수 있는 곳이다.

어디를 가도 그의 인기는 끝이 없다. 하지만 함께 혁명을 이끌던 카스트로의 조각상은 볼 수 없다.
▲ 체 게바라 육각면체 기념물 어디를 가도 그의 인기는 끝이 없다. 하지만 함께 혁명을 이끌던 카스트로의 조각상은 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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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나 올긴 지방은 쿠바의 낙후된 경제에 상당한 영향력을 끼칠 수밖에 없는 중요한 의미를 갖는 땅이다. 사탕수수와 소뿐만 아니라 비옥한 토양에서 쿠바에서 생산되는 대부분의 콩과 옥수수, 커피 등이 바로 이곳에서 재배된다. 그러니 혁명군으로서도 이곳이 지리적 전략지 뿐만 아니라 반드시 정부군을 격퇴시켜야 하는 필승의 요지였던 것이다.

결국 마에스트라 산맥을 중심으로 한 게릴라 활동이 시발점이 되고 올긴 지방에서 불길이 확 퍼지며 애초에 혁명전선에 뛰어든 81명에서 대부분 사망하고 단 17명으로 시작한 투쟁이었지만 혁혁한 성과를 거둔 것이다. 영광으로 남은 역사의 흔적이 수많은 혁명구호로 남아 작금의 시민들에게 그 정신을 일깨우고 있는 올긴은 그래서 더욱 클래시컬한 혁명도시의 면모를 보인다.

하나의 이상을 위해 목숨을 걸고 진격했던 작은 무리의 용사들은 쿠바 섬의 역사의 물줄기를 바꿔 놓았다. 그리고 지금 그 혁명정신은 미국과의 대립에서도 결코 주눅이 들지 않는 쿠바인들의 프라이드가 되었다. 카스트로와 체의 혁명은 용감했다. 하지만 성공했기에 용감했다. 실패했다면 역사는 무모라는 단어를 썼을 것이다.

가게에 있다가 사진기를 보고는 급히 얼굴을 내민다.
▲ 쿠바 남자들 가게에 있다가 사진기를 보고는 급히 얼굴을 내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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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주의다 가난하다 뭐라 해도 술을 즐기는 권리는 누구에게나 있다. 도심 한복판 바에서 한 잔 걸치는 남자들.
▲ 술을 즐기는 쿠바인들 사회주의다 가난하다 뭐라 해도 술을 즐기는 권리는 누구에게나 있다. 도심 한복판 바에서 한 잔 걸치는 남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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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올긴이 이런 모습만으로 여행자의 마음을 황홀하게 만들 수는 없다. 올긴의 매력은 바로 도심 한복판 공원에서 찾을 수 있다. 쿠바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소문이 자자한 올긴의 공원에는 어떤 사연이 있고, 또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을까?

덧붙이는 글 | 필자는 현재 '광야'를 모토로 6년 간의 자전거 세계일주 중입니다. 최근 도전과 열정, 감동의 북미 대륙횡단 스토리 <라이딩 인 아메리카>(넥서스)를 발간했습니다. 세계 자전거 비전트립 홈페이지 http://www.vision-trip.net



태그:#쿠바, #세계일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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