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지구반대편 에콰도르 산골마을, 순박하고 천진한 어린이들에게 작은 희망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과 앙헬에게 좋은 소식이 있기를 함께 기원해 봅니다”라는 문구로 끝맺고 있는 편지를 보면서 타임머신을 타고 60-70년대로 돌아간 느낌을 받았습니다.
에콰도르에서 해외봉사활동을 시작한 지 삼 년 째 되는 심규정씨는 요즘 앙헬을 생각하면 마음이 편치 않다고 합니다. 앙헬은 심씨가 에콰도르 뿌까쿠르즈에서 빈민가 문맹퇴치를 위한 여름학교를 시작하며 알게 된 열두 살 소년입니다.
마흔이 채 안된 엄마, 아빠와 아홉 명의 형제자매들이 살아가고 있는 앙헬의 집은 방이 두 칸입니다. 방이 두 개나 있는 집이라고 하지만, 난민촌 막사와 다를 바 없는 환경입니다.
방은 고르게 다진 흙 위에 시멘트 포대 같은 종이를 깔아, 방안인데도 먼지가 풀풀 털리고, 아홉 식구가 깔고 자기에는 턱도 차지 않을 것 같은 이불가지하며, 부엌도구 역시 변변한 게 없습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그 좁은 방구석에 화장실이 딸려 있지 않았다는 겁니다. 화장실이 집 안에 없는 게 뭐 그리 다행이랴 하겠지만, 불편을 감수하더라도 위생을 생각하면 차라리 자연을 감상하며 실례하는 게 백 배 나을 성 싶다는 게 심씨의 생각입니다.
앙헬의 아버지는 막노동을 하십니다. 일을 하신다고 하지만, 말 그대로 입에 풀칠하기도 버거워, 앙헬 위의 세 형들은 초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다른 도시에서 공사판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초등학교를 다닐 때부터 형들은 학교보다는 길거리와 공사판에서 사는 날이 더 많았었습니다. 그리고 열두 살 난 앙헬은 아래로 줄줄이 달린 다섯 명의 동생들을 돌봅니다.
앙헬만 그런 건 아닙니다. 앙헬의 가족을 비롯한 보통의 인디헤나들은 제도권 교육 혜택을 받지 못하여 가난을 대물림합니다. 가난과 열악한 주거환경 속에서 낙태를 금하는 가톨릭 국가이다 보니, 형제들은 많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앙헬 또래의 친구들은 대물림되는 가난과 문맹 속에서 가족의 생계를 위해 구걸을 하러 거리로 내몰리거나, 가정부로 팔려가거나, 앙헬의 형들처럼 공사판에서 힘든 일을 하거나, 돈이 되지 않는 농사를 숙명처럼 받아들이며 살아갑니다.
그런 동네인 뿌까쿠르즈 마을에 올 해 운 좋게 중학교에 입학한 녀석이 둘이 나왔습니다. 그 중 한 명이 학교에서 또릿또릿하기로 소문났던 앙헬입니다. 사실 앙헬의 부모는 앙헬이 초등학교를 졸업하면 제 형들처럼 공사판에 보낼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부모를 심씨가 설득하고 나섰다고 합니다. 지난여름의 일이었습니다.
심씨는 일면식도 없던 앙헬의 부모를 찾아, ‘앙헬의 중학교 입학금과 일정 부분 학비를 책임질 테니, 중학교 입학만이라도 허락해 달라’고 사정을 했다고 합니다. 결국 올 가을, 앙헬은 꿈에 그리던 중학생이 되었습니다.
뿌까쿠르즈 마을은 하루 버스가 두 세 번 다니는 산골이다 보니, 문화 혜택은 꿈도 못꾸고, 물도 귀하여 공동수도를 이용합니다. 생활면에서 모든 것이 부족하다 보니, 아이가 똑똑하고 공부하고 싶어 해도, 학교 공부를 꿈꾼다는 건 호사라 여깁니다.
그런 인디헤나 어린이들을 보면서 심규정씨는 마음이 아팠다고 합니다.
“어린아이의 눈에 희망과 꿈이 아닌 생활고에 찌든, 너무 일찍 철이 들어버린 어른의 모습을 발견할 때 마음이 아픕니다. 앙헬이 중학교라도 제대로 마쳐서 가족의 꿈이 되고, 지금보다 나은 모습으로 삶을 살아간다면 동생들뿐만 아니라, 지역사회에도 희망을 주는 사람이 될 거라고 봐요. 이참에 교육의 중요성 또한 부모들이 인지하는 계기도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이들은 미래가 없습니다. 오늘 벌어 오늘 다 쓴다는 생각을 갖고 산다고 합니다. 이 또한 교육의 부재에서 오는 어리석은 삶의 반복이 아닌가 싶지만, 이 곳 아이들이 교육을 통하여 무지한 부모의 삶을 답습하지 않기 바라는 마음입니다. 교육이 삶의 변화를 가져다 줄 수 있다는 것을 인디헤나들이 깨닫기 바라는 마음이며, 분명히 우리의 작은 도움이 이들에겐 삶의 발판에 큰 보탬이 될 것입니다.”
그렇게 시작된 앙헬의 중학교 생활이 한 학기가 지났습니다. 그런데 심씨가 마음이 편치 않은 이유는, 앞으로 반 년 후면 심씨는 해외봉사단원 활동을 마치고 귀국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심씨는 남들과 달리 2년의 봉사활동을 마치고, 앙헬과 같은 인디헤나 어린이들을 생각하며 1년을 더 연장했던 사람입니다.
입학만이라도 하게 해 달라고 부모를 졸랐던 입장에서는, 나머지 2년을 책임지지 못할 행동을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죄스런 마음도 없지 않지만, 누군가 희망의 씨앗을 같이 심어 주기를 기대하며 심씨는 오늘도 기도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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