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데 뭐하는 사람들이유?""아아. 네, 사진 찍고 글도 쓰곤 하지요.""어쩐지 그래 보였어. 나중에 우리 동네도 놀러 한 번 와요.""아주머니는 어디에 사시는데요?""여서 좀 떨어졌는데 산촌리라고 얼마 전에 마을 회관도 새로 짓고 거기서 날마다 모여서 맛난 것도 해먹고 하니까 놀러 한 번 와요."올해 설 대목을 앞두고 선산장에 갔을 때 만났던 한 아주머니와 나눈 이야기예요.
'산촌리', 마을 이름만 들어도 벌써 정겹지 않나요? 또 이름만큼이나 산골짜기에 있을 듯한 마을, 장에서 만난 아주머니 이야기를 들은 뒤로 내내 이 마을엔 꼭 한 번 가보리라 마음먹었는데 이번에 참말로 가게 되었답니다.
경북 구미시 옥성면 산촌리까지 가는 길은 우리한테 매우 낯익은 곳이에요. 앞서 기사로 소개했던 '낙동강 국화축제'가 열리는 원예수출단지를 지나 지난 봄 모내기가 한창이던 어느 날, 산길을 따라 갔다가 아내 사랑이 지극했던 옥관 저수지 밑에 사는 김명돈 할아버지가 사는 마을을 지나쳐 가야 하지요. 참 여긴 신라 눌지왕 때 세운 '대둔사' 절집도 있답니다. 산촌리는 바로 대둔사와 옥관2리를 지나 더 높은 골짜기에 자리 잡은 마을이랍니다.
자전거 타는 이들은 언제 만나도 반갑다지난번과는 달리 산을 넘지 않고 아랫마을 구봉리에서 올라가기로 했어요. 거꾸로 가면 가는 내내 오르막이기 때문에 힘들기도 하겠지만 천천히 가을 풍경을 구경하며 가도 좋겠지요.
농사꾼들이 가을걷이로 거둔 나락들이 찻길에 널려 있습니다. 차선 하나를 통째로 다 차지하고 널어놓아도 누가 뭐라 할 이가 없어요. 그만큼 차가 드문드문 다니는 매우 한적한 시골길이거든요. 이제 막 물이 들기 시작하는 단풍과 골짜기에서 흐르는 맑은 물소리를 들으면서 느긋하게 올라가니 어느새 땀이 흐릅니다. 한 이틀 앞서부터 감기 기운이 있어 몸이 영 좋지 않았는데, 넉넉한 가을 풍경을 온몸으로 느끼며 가는 사이 아픈 것도 싹 잊어버립니다.
부지런히 발판을 굴리며 올라가는데, 저기 위에서 우리처럼 산 자전거를 탄 이들 여럿이서 내려오고 있어요. 반가운 마음에 내려서서 서로 인사를 하고 보니, '상주MTB' 식구들이었어요. '대구경북연합라이딩'과 '상주코렉스배MTB대회'에서 여러 차례 만났던 이들이라 금세 알아봤지요.
"아니! 상주 분들이 어떻게 여기까지?"알고 보니, 이곳 구미시 옥성면은 상주와 맞닿아 있는 곳이었어요. 아니, 구미보다 상주가 더욱 가깝지요. 이들은 옥성 휴양림까지 잇닿아 있는 임도를 타려고 왔다고 하네요. 상주 식구들과 반가운 만남을 뒤로 하고 또다시 올라갑니다.
낮은 돌담, 대문도 없는 산촌리이윽고 산꼭대기까지 올라서니 작은 마을이 눈에 들어옵니다. 산 위부터 높다랗게 층층이 내려오면서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고, 한눈에 봐도 매우 소박하고 정겨운 곳이었어요. 가장 먼저 눈에 띈 건 지난날 선산장에서 만났던 아주머니가 말했던 '산촌리 마을회관'이었어요. 깔끔하게 지은 집이 이 마을에서 가장 현대식 건물인 듯 보였어요.
회관 앞을 기웃거렸으나 사람들은 보이지 않아요. 아마도 모두 들판으로 나가 한창 가을걷이에 바쁜가 봐요. 층층이 오르막으로 된 골목을 돌면서 보니, 한 가지 매우 남다른 게 있었어요. 바로 돌담인데요. 우리가 시골 마을을 다니면서 돌담 마을을 꽤 많이 가봤는데, 생각 밖으로 아직 오래된 돌담이 많다는 것에 놀란답니다.
산촌리도 그랬어요. 그런데 담장이 하나 같이 낮아요. 게다가 집마다 대문이 없는 거예요.
"이야! 이 마을 사람들 인심이 참 좋은가 보다.""응? 그걸 어떻게 알아?"부지런히 사진을 찍던 남편이 말합니다. 집집이 담장이 낮고 대문이 없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고 하네요. 그러고 보니, 참말로 그랬어요.
언젠가 또 다른 시골마을에 갔을 때, 마을 한 가운데에 꽤나 크고 예쁘게 지은 집을 봤는데, 한눈에 봐도 부잣집이구나! 하는 걸 알겠더군요. 그런데 담장을 어찌나 높이 쌓았던지 이웃 사람들이 가까이 다가서기가 어려워보였어요. 그리 좋아 뵈지는 않았지요.
담장이 낮고 대문이 없다는 건, 그만큼 이웃들과도 오순도순 잘 지내고 거리낌 없이 산다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답니다.
정겨운 고향집 같은 풍경을 보며 모퉁이를 도는데, 어디선가 "쏴아!" 하는 소리가 나서 보니 저 곁에서 누런 소 한 마리가 오줌을 누고 있어요. 시골에도 조립식 건물로 축사를 만들어놓고 소를 칸칸이 한 마리씩 집어넣고 키우는 곳이 많지요. 그런데 이 마을엔 마당 한쪽 너른 터에다가 말뚝에 매어놓은 소가 많았어요. 우리가 곁에 다가가서 사진을 찍고 말을 걸어도 조금도 아랑곳하지 않고 우적우적 여물을 씹고 있는 게 여간 평화스러워 보이는 게 아닙니다.
"가만, 그러고 보니 이 마을 참 희한하다.""왜? 뭐가?""개 짖는 소리가 안 들려."남편 얘기를 듣고 보니 참말로 그렇더군요. 다른 마을 같았으면 모퉁이 하나 돌 때마다 개 짖는 소리에 얼른 빠져나오곤 했는데, 온 마을을 다 둘러볼 동안 우리를 보며 꼬리를 치는 개는 봤어도 짖는 소리 한 번 듣질 못했어요.
"저것 좀 봐!"
"그렇구나! 범죄 없는 마을!""어쩐지 담장 낮은 것만 봐도 알겠더구먼, 봐라 이 마을 사람들 인심이 어떤지 알 만하지?"그랬어요. 마을 사람은 하나 못했지만 마을 끝에 '범죄 없는 마을'이란 알림판이 서 있는 걸 보면서 둘이 서로 고개를 끄덕였지요. 산촌리 구경을 마치고 마을을 벗어나 나오려는데 때마침 할머니 한 분이 지나가기에 여쭈었어요.
"어르신, 마을이 참 예쁘네요. 그런데 이 마을엔 개가 별로 없나 봐요?""왜 없어? 집집이 다 있지.""그런데 개 짖는 소리가 하나도 안 들리네요?""어이구 안 그래. 낮에는 조용해도 밤에는 엄청 짖어대지. 오죽하면 산짐승도 여긴 얼씬도 못해. 딴 동네는 산짐승이 내려와서 밭이고 논이고 마캉 헤집어 쌌는데, 여긴 그런 거 없거든.""거봐! 내가 늘 말했지? 개도 사람을 닮는다고, 이 마을엔 착한 사람들 맘씨를 닮아서 개도 착하다니까…….""하하하! 맞아 맞아, 자기 말이 딱 맞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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