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싸움이었다. 불상 앞에서 절을 했다는 이유로 지난 2006년 1월 기독교를 창학이념으로 내세운 학교(강남대)로부터 재임용을 거부당한 뒤 2년 9개월. 그동안 '외로운 투쟁'을 벌였던 이찬수(45) 전 강남대 교양학부 교수는 마침내 법정 다툼을 승리로 끝냈다. <오마이뉴스>는 지난 2006년 9월부터 11월까지 '현대판 종교재판에 멍드는 사학' 제하의 특별기획을 통해 이 교수의 사건을 집중조명한 바 있다.
이와 관련, 지난 23일 대법원 특별3부(재판장 이홍훈 대법관)는 "재임용 거부가 부당하다"는 서울고법 판결에 불복해 항소한 강남대의 상고를 기각했다. 강남대가 상고이유서와 답변서를 대법원에 제출한 지 불과 2주 만이다.
대법원의 상고 기각을 끝으로 강남대는 모든 법적 다툼에서 완벽하게 졌다. 교육과학기술부 교원소청심사위원회의 '재임용 거부 부당' 결정, 서울행정법원과 서울고등법원에서 패소한 것을 합치면 '4전 4패'다.
하지만 이 전 교수가 학교로 다시 돌아갈 수 있을지는 아직 불투명하다. 법의 판단은 내려졌지만, 강남대를 장악한 기독교단의 '아집'은 여전히 살아 있다.
이 전 교수는 "주변에서는 학교 측이 또 다른 (재임용 거부) 구실을 찾지 않겠느냐고 우려하고 있다"며 "하지만 내가 복직하는 것이 학문적, 신앙적 양심에 맞는 일"이라고 학교로 돌아가겠다는 의지를 강하게 내비쳤다.
"사회 정의에 맞는 판결... 강남대, 판결 받아들여야"그는 30일 <오마이뉴스>와 인터뷰에서 "사회 정의에 맞는 판결이 내려져 다행이라고 생각한다"며 "외부에서 내 복직을 요구하기 전에, 강남대 내부에서 먼저 법원의 판결을 겸허히 받아들였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 전 교수는 "(재임용 거부 과정에서) 인간의 욕망이 배타성이 있는 종교(기독교)의 이름으로 포장되고 그것이 관례화, 사회화되는 과정을 봤다"며 "인간의 욕망을 기독교의 이름으로 포장해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또 "사람들이 본연의 양심과 사회적 정의에 맞게 조직이나 학교를 움직이면 좋겠다"면서 "특히 학교는 공공성이 강한 곳이기 때문에 학자적 양심과 종교적 양심이 잘 어우러지는 곳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전 교수는 복직된다면 학생들에게 "현대사회와 어울리는 기독교적 정체성을 지킬 것"을 가르치고 싶다고 했다.
다음은 이찬수 전 교수와 나눈 일문일답.
"복직하는 게 신앙 양심에 맞다"- 23일 대법원에서 최종 판결이 내려졌다. 지금 심정은. "일단 법적인 판단까지 마무리지어야 되겠다고 생각했는데, 어쨌든 다행스럽다. 이제 학교가 취할 수 있는 법적 절차는 모두 끝났다고 본다."
- 앞으로 어떻게 할 생각인가."원상회복되는 것이 당연한 조치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이런 일이 우리 사회에서 다시는 벌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차원에서 학교가 원상 회복시켜 주길 바란다. 외부에서 먼저 요구하기 전에 이번 결정을 겸허히 받아들였으면 좋겠다."
- 강남대가 대법원 판결에도 불구하고 재임용을 거부할 수 있는데, 학교 측 의사를 확인하고 있나."당분간은 기다려 봐야 할 것 같다. 재임용 거부가 무효라는 법적 판단이 나왔으므로 학교 측으로부터 먼저 연락이 오는 게 순리라고 본다. 지금까지 교류가 있던 학내 교수를 통해서 연락이 오지 않겠나. 주변 사람들은 학교에서 또 다른 (재임용 거부) 구실을 찾지 않겠느냐고 우려하지만, 일단 복직하는 것이 학문적, 신앙적 양심에 맞다."
- 2년 9개월 동안 싸워오면서 가장 힘들었던 점은 뭔가."학교 측은 사실이 아닌 얘기를 왜곡, 과장, 포장했다. 학교 측의 항소이유서에 담겨 있는 내용을 보고 '과연 법적 정의가 무엇일까' 하는 고민을 제일 많이 했다. 다행스럽게 사회적 정의에 맞는 판결이 내려졌다. 처음 1년 정도는 마음고생을 했지만 그 이후로는 특별한 고생은 없었다. 돈이 없는 것 말고는… 하하."
"인간의 욕망을 기독교로 포장하지 마라"
- 법적 다툼을 통해 끝내 승소했는데, 이 전 교수 사건이 우리 사회에 준 의미는 뭐라고 보나."사실 종교적 배타성이 '종교적 정체성' 이름으로 횡행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더 중요한 것은 인간의 욕망이 배타성이 있는 종교(기독교)의 이름으로 포장되고 그것이 관례화, 사회화되는 과정을 봤다. 인간의 욕망을 기독교의 이름으로 포장해서는 안 된다. 사람들이 본연의 양심과 사회적 정의에 맞게, 조직이나 학교나 움직이면 좋겠다. 특히 학교는 공공성이 강한 곳이기 때문에 학자적 양심과 종교적 양심이 잘 어우러지는 곳이 돼야 한다."
- 보수적인 기독교에 대한 비판이 많다. 다른 종교라면 무조건 배척하는 지금 교회 지도자들의 태도는 어떻게 보나. "보수라는 것이 보존하고 지킨다는 뜻인데, 무엇을 보존하고 지켜야 할지 되돌아봐야 한다. 100년 전 미국 '문자주의' 선교사들이 전해준 문자를 지키는 것이 보수가 아니다. 지켜야 할 것은 예수적 정신이다. 예수적 정신은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고 이웃을 사랑하며 함께 가는 정신이지 교리의 이름으로, 종교의 이름으로 배타하고 배제하는 게 아니다."
- 이 전 교수는 개신교 목사이기도 한데, 복직하면 학생들에게 어떤 가르침을 주고 싶나. "현대사회에 어울리는 기독교적 정체성을 지킬 것을 가르치고 싶다. 기독교적 아집이 아니라 사회를 향해 열려 있고, 사회에 참여하는 양심으로 살라고…. 먹고 사는 것은 부차적인 문제다. 철학이나 인생관을 뚜렷하게 갖추고 사는 게 우선이라는 가르침을 꼭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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