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구례군 토지면 오미리에서 볍씨가 밥이 되기까지를 바라만 보고 기록하다.
[2008년 5월 1일]볍씨. 씨벼 또는 종도(種稻). 지정댁이 햇볕 좋은 날 볍씨를 모판에 뿌리는 것으로 일 년 농사의 시작을 알리다. 물론 이전에 볍씨를 소독하고 물에 담궈 두는 며칠이 있었다. 도시에서만 살아온 나는 벼농사의 모든 과정을 살펴보고 가능하면 기록해 두기로 작정하다. 지정댁의 손길이 다른 때보다 정성스럽고 주의 깊다.
뿌려진 볍씨 위로 부드러운 흙이 뿌려지고 물을 뿌린다. 이렇게 일일이 손으로 하는 방법도 있고 기계로 대신하는 방법도 있다. 마당에서 만들어진 모판은 피복을 입고 며칠 대기한다. 올벼. 밀이나 보리를 심지 않은 들판으로 먼저 나갈 모판들이다.
[2008년 5월 11일]각자가 알아서 모판을 만든 올벼는 그렇게 준비되고 마을에서 공동작업으로 모판을 만들고 있다. 이때는 기계로 작업한다. 협업이 중요하다. 노인이건 젊은이건 정해진 위치에서 정해진 몫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모작이라고 말하는 이 모판은 밀과 보리를 베고 난 다음에 모심기에 들어갈 것이다. 이렇게 모판을 준비해서 논으로 나가 현지 적응 훈련에 들어가는 것이다.
기계로 재빠르게, 많이 만들어진 모판을 논으로 옮기는 작업은 많은 손을 필요로 한다. 모판을 경운기로, 트럭으로 옮기고 논으로 내리는 작업이 힘들다. 여러 명이 줄을 서서 작업을 진행한다. 손이 부족한 마을에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별수 없다. 지루하고 고통스러운 시간이 길어지는 것이다. 1년을 바라보니 이 날의 이 품앗이가 1년 농사에서 가장 노동집약적인 장면이었다.
못자리에 정좌하고 피복으로 덮는다. 이렇게 하면 보온못자리다. 이제 볍씨는 모로 변할 때까지 자랄 것이고 농부들은 기다릴 것이다. 물론 그냥 기다리는 것은 아니다. 물과 온도를 적절히 해야 하고 일종의 모종을 재배하는 과정이니 이 과정에서 쌀의 품질이 거의 결정된다. 사람이 태어나 100일이 지나면 잔치를 한다. 그 정도 시간이 지났으면 죽지 않고 계속 살아갈 확률이 높아진 것이니 이를 축하하는 것이다.
볍씨가 발아하지 않거나 좀 올라오다가 썩거나 곰팡이가 피기도 한다. 이런 과정을 세심하게 살피고 교체해 줄 것은 빨리 교체해야 한다. 아침저녁으로 모판의 물과 온도를 살핀다고 노인들의 발걸음이 부산한 시기이기도 하다. 볍씨가 모종으로 자라 직립하기를 기다린다.
[2008년 5월 24일]밀이 거의 막바지를 향해 달린다. 이 들판에서 밀을 키운다는 것은 우리밀을 공급하는 의미는 거의 없다. 우리나라 밀의 자급률은 몇 년 전 통계지만 연간 밀 소비량의 0.1%. 0.1%의 자급률이 높은 수매가를 보장해 주는 것도 아니다. 40kg 기준 3만5000~4만5000원 정도의 수매가다.
사람이 먹는 밀보다는 황금색이 되기 전에 밀과 보리를 베어 사료용으로 수확한다. 그 사료를 필요로 하는 회사에서 밀을 거두고 모심기를 할 수 있는 조건의 논으로 만들어주고 간다. 논의 정비 작업과 비료값을 대신할 수 있으니 농민들은 밀 수확 자체보다는 이 방식을 더 선호하는 듯하다.
볍씨는 모종으로 변했고 곧 밀이 베어진 자리로 거처를 옮길 것이다. 결국, 베어질 밀과 심어질 모종은 들판에 공존한다. 하지만 두 곡식에 대한 농민의 마음은 다른 듯하다. 쌀은 밀이 아니다. 밀은 쌀의 자리를 대신할 수 없다. 그것이 돈이 되건 말건 쌀은 쌀이고 1년 농사의 주인공이다.
품을 비교하자면 쌀이 밀보다 더 많은 화폐로 교환되는 것은 아니다. 쌀은 농민들에게 산수의 대상이 아니다. 쌀은 식량의 대표주자이고, 쌀이 있다면 연명할 수 있는 것이고, 최악의 경우에는 그것으로 족한 것이다.
[2008년 6월 2일]밀을 베어 낸 자리에 물을 채우고 논을 간다. 금년에는 비료값이 올라 문제가 있었다. 문제란 오른 가격만큼 쌀의 수익률이 떨어질 것이란, 눈앞의 불을 보듯 뻔한 이치와 비료공장의 태업으로 비료 공급이 늦어진 일이었다.
[2008년 6월 13일]그럼에도 결국 모심기가 시작되었다. 밀을 베고 모를 심는 일은 동시에 이루어졌다. 들판의 모습은 하루가 달랐고 오전과 오후가 달랐다. 다랑지(계단논)논이 아니라면 경지 정리된 들판의 모심기는 기계가 대신한다. 기계는 젊은 사람들의 몫이고 1단지(900평 정도)에 기계값에 해당하는 수고비를 지급한다.
지금 농촌 현실에서 기계가 있어 농사는 가능하다. 일본에서의 통계를 보면, 면적 차이가 있지만 논 1단지에 투여되는 노동시간이 대략 14시간 정도라고 한다. 1년에. 하지만 우리나라 농촌 노인들이 그렇게 하겠는가? 논 주변으로 콩이며 팥이며 깨, 녹두… 뽑지 않으셔도 된다고 해도 풀을 뽑고….
[2008년 7월 30일]백일홍이 피기 시작할 때 들판은 다시 완연한 초록색이 되었다. 모심기 끝나고 나면 이른바 '약'을 한다. 정해진 바는 없지만 3~5차례는 농약을 뿌린다. 요즘은 친환경단지로 지정하고 '친환경농약'을 뿌리기도 한다. 그것의 친환경적 %는 잘 모르겠다.
농부들은 잡초와 벌레를 도저히 용서하지 못한다. 일류의 농史는 풀과의 전쟁이었다. 그것은 거의 DNA에 각인된 유전적 차원에 해당한다. 논과 논 가장자리의 풀을 보고 그 논 주인의 성실성은 평가된다. 모는 하루가 다르게 벼로 변해가고 있었고, 마을에서는 정자에 모여 함께 밥을 먹는 경우가 많았다. 이 무렵부터는 나도 점심을 마을에서 해결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냥 숟가락 하나 들고 앉는 것이다.
[2008년 8월 24일]콩잎이 반짝거리는 8월이 다 가도록 이곳에는 큰 비도, 큰 바람도 없었다. 노인들은 논과 밭을 오갔고 논이야 물 문제가 없지만 밭들은 이미 마른 장마의 후유증으로 타들어가고 있었다. 고추에 탄저가 왔다. 탄저가 오면 탄저'약'을 뿌린다. 검게 멍든 고추는 그 밭 주인의 성실성을 판단하는 잣대이기 때문이다.
[2008년 9월 9일]모든 농사의 결과물은 어느 순간 비약적이다. 어느 아침에 보면 어제와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벼가 이런 색을 보이면 추석이 코 앞이란 소리였다. 더위가 꺾이고 고추 따서 말리는 손이 바빠진다.
배추 모종을 생각하기 시작하는 시기이다. 육묘장으로 향하는 걸음이 많아지고 언제나처럼, 약속한 바는 없지만 모두 같은 시기에 같은 행동을 한다. 아무리 바빠도 그 시기에 작물을 심지 못하면 그것으로 끝이다.
[2008년 9월 29일]들판의 색감이 안정적으로 변해 가고 카메라를 들고 들판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졌다. 농촌의 1년은 쌀과 함께 저무는 듯하다. 이곳의 한 해 끝이 보인다.
[2008년 10월 8일]때가 되었다. 올벼는 이미 추수를 시작했다.
[2008년 10월 21일]들판의 절반은 비워졌다. 나는 내 사진의 기준이 되는 운조루 논이 베어지는 때를 기다렸다. 오미동 이장님이 논을 베고 계시다. 추수 중에 기계가 고장이 나서 다시 구입을 했다. 1년 농사가 끝나고 있다. 1년 농사에 대한 산수는 어떻게 될까? 직불금 문제가 뭐가 새삼스럽다고 최근 뉴스에 나오는 것일까. 여튼 쌀 농사에 관한 산수를 한번 해보자.
논 1단지를 기준으로 하자. 1단지는 900평, 네 마지기 반이다. 모든 농사 과정을 직접할 수는 없다. 노인들이 대다수인 농촌 현실이 그렇다. 일단 논을 한번 간다. 마을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대략 7만원이다. 1단지에 비료가 8가마 정도 들어간다. 한 가마니에 2만2000원이었다. 17만6000원이다.
다시 물 논 상태를 한번 더 간다. 7만원이다. 볍씨를 준비해야 한다. 나락값 3만원이다. 부직포 등등의 기타 경비가 든다. 3만원 잡자. 모심기를 기계로 해야 한다. 대략 12만원 정도 준다. 제초제를 뿌린다. 초기에 1만5000원, 중기에 3만원 해서 대략 4만5000원이다.
농약을 3회 한다고 보자. 농약값이 한번에 7만원에 노임까지 해서 10만원 본다. 도합 30만원. 추수를 해야한다. 기계로 해야 한다. 15만원. 햇볕에 말리기도 하지만 매상하는 벼들은 건조기로 말리고 바로 나간다. 건조기 10만원. 운반비 2만원. 생각나는 대로 여기까지만 합산하면….
논 1단지 1년 농사 짓는 데 드는 비용은 111만원이다. 논 1단지에 수확이 아주 많이 나오면 40kg 기준 50가마니다. 쌀의 매상가는 한 가마니에 5만원이다. 그래서 5만원 곱하기 50하면 250만원이다.
논란이 되는 직불금은 평당 계산하는데 대략 1단지에 20만원 나온다. 변동직불금이란 것이 있는데 이것도 대략 20만원 잡자. 고로, 수확한 쌀 250만원 + 직불금 40만원 - 들어간 비용 111만원 = 179만원
보통 3단지 정도의 논을 가지신 듯하니 연간 벼농사로 인한 수입은 537만원이 된다. 물론 인건비는 없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인건비는 인권의 측도인데 농민은 인권이 없다. 밭농사로 가능한 수입이 얼마나 될까. 대규모로 경작하는 선수들의 밭이 아닌 시골 노인들이 '만지작 거리는' 밭이 대략 200~300평 정도씩 될까. 고추·콩·깨, 또 뭐 있나? 감나무 몇 그루 있다 보고 밤나무도 좀 있고…. 연봉 1000만원 보면 될까?
쌀농사 중심의 귀농을 꿈꾸는, 마누라와 자식 두 명을 두고 있는 당신은 몇 단지의 논을 가져야 할까? 여쭈어 보았다.
"어르신 그러면 도대체 농사를 왜 짓는 겁니까?""묵고 살라고."
직불금 문제는 이런 것 같다. 원래 고향에 살다가 도시로 나간 사람들이 있다. 부모님 돌아가시고 시골로 돌아올 형편도 아니니 마을 사람들 중 누군가에게 남아 있는 농사를 짓게 한다. 그렇다고 논을 판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언제 자신이 고향으로 돌아갈지도 모른다는 염두를 두고 있다. 쌀 다섯 가마니 정도 받고 그렇게 논을 맡긴다. 사업하다 힘들면 그 논들이 요긴하게 사용될 수도 있다. 아이들 등록금 철에 요긴하게 사용될 수 있다. 둘째 결혼식을 앞두고 죄스러운 마음으로 논을 처분할 수도 있다.
여튼 이런 경우는 도시에 나가 있는 사람들이 직불금을 '먹는' 경우가 거의 없는 듯하다. 직접 농사 짓지 않으면서 직불금 먹은 이들은 대부분 투기 목적으로 농지를 구입해 둔 포유류들이다. 앞선 산수에서 보았지만 쌀농사로 밥을 먹고 살려는 젊은 사람들(농촌 기준 젊은 사람은 60세 이하를 뜻한다)은 가능하면 많은 단지의 논을 경작해야 한다. 30단지는 해야 인건비 제외하고 연봉 5000만원 가능하지 않겠나.
직불금 포기하더라도 농지를 확보하기 원한다. 뭐 30단지 하고 직불금 까짓 것 있는 놈들에게 '줘불지 뭐'. 그러면 대략 4000만원 정도 가능하나. 그러면 큰돈 쓸 일 없는 시골에서 자식 두 명 정도 학교 보낼 수 있다. 그런 것이다. 벼를 말리고 담는 일이 쉽지 않다. 잠시 도왔는데 진땀이 난다.
마지막으로 콩을 거두어 들인다. 벼를 베고 난 들판에 밀을 준비하지는 않을 것이다. 밀은 쌀보다 더 많은 경작비용이 들어가고 1단지에 많이 나오면 30가마니 정도 수확한다. 밀은 금년에 대부분 3만5000원에 매상했다. 그럼에도 운조루 앞의 논 3단지는 밀을 뿌릴 것이다.
"정수씨, 왜 밀을 해요?""뭐… 그냥 내 손으로 하니까. 그냥 하는 거이지 뭐."살아가면서 기름값만큼 쌀값에 대한 압박을 느낀 적이 있는가? 쌀값이 기름값만큼 오른다면 21세기에 14세기 스타일의 반란이 일어날 것이다. 나 역시 쌀값이 지금의 세 배 정도 수준이 된다면 제법 압박을 받을 것이다. 쌀은 돈이 아니다. 쌀은 농사가 아니다. 쌀이 곧 우리다. 그것을 알기에 농민은 힘들다.
들판의 한 해가 저물어 간다. 그 모든 불합리와, 거시기당이다 머시기당이다, 당의 이름만 달리한 같은 종류의 금배지 단 인간들이 싸우는 동안, 들판의 한 해는 끝이 나고 있다.
"뭐 더러?""사진 찍으려고요.""하이고, 나 꼴이 시방 귀신 같은디."엄니, 엄니들 보다 아름다운 여자가 세상 어디에 있는지 좀 알려주세요.
[2008년 10월 22일]뒷집 어르신이 주신 귀한 햅쌀로 밥을 지었다. 그리고 밥 한 그릇 모신다.
밥이 하늘입니다. 하늘 속에 사람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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