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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토막 펀드, 집값 폭락… 미국에서 불붙은 세계 금융위기가 국내 금융시장과 실물경제를 거쳐 가정경제까지 위협하고 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경제교육전문기업 '에듀머니'와 함께 '가정경제 119' 캠페인을 진행합니다. 물가는 가파르게 오르고 실질소득은 줄어드는 경제 위기 상황에서 무방비로 노출된 서민과 중산층. 주식·부동산 등 무모한 재테크의 함정에서 벗어나 우리 집 위기 상황을 점검하고 최소한의 안정된 삶을 지키는 대안을 제시합니다. [편집자말]
 투자자들이 주식 시세판을 바라보고 있다.
투자자들이 주식 시세판을 바라보고 있다. ⓒ 최경준

"모든 것이 내 잘못이야. 내가 욕심부려서 우리 가정이 너무 힘들어졌어.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정말 잘 될 줄 알았어. 이번에 잘되기만 하면 주식 같은 건 다시는 안 하려고 했는데. 그런데 빚만 고스란히 남았어. 어떻게 해야 할지…. 정말 너무 답답하다. 죽고 싶은 마음 뿐이야."

잘못된 학습효과 '바닥에서 도박해야 대박난다'

빚으로 주식투자를 해서 큰 손실을 입은 어느 가장이 동생에게 느닷없이 전화를 걸어 이런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그는 이미 주택을 사면서 적지 않은 부채를 갖고 있었다. 시가 3억 원 가량의 주택을 매입할 당시 5천만 원의 부채가 있었던 것. 그런데 거기에서 1억 원을 더 끌어다 주식투자를 한 것이다.

문제의 시작은 외환위기 당시로 거슬러 올라간다. 하루가 다르게 떨어지는 주식시장을 보면서 "쥐고 있는 목돈만 있었어도..." 하고 무릎을 친 사람이 적지 않다. 그 목돈으로 없는 돈 셈 치고 주식투자를 하면 부자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그럼에도 어디가 바닥일지 아무도 알 수 없는 지경까지 떨어지고 또 떨어지는 주식시장 분위기에서 웬만한 사람들은 그런 생각을 쉽게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그러나 끝도 없이 추락할 것 같던 경제는 다시 살아나기 시작했고 심지어 곧바로 이어진 IT 버블로 주식 부자들이 속출했다. 짧은 기간에 이뤄졌던 폭락과 버블은 많은 사람들에게 바닥에서 도박을 해서라도 투자를 하게 되면 부자가 될 기회를 잡는 것이란 학습효과를 만들었다. 사례자도 바로 그런 학습효과를 갖고 있었다. 소문으로 떠도는 주식대박 부자 이야기에 허탈한 마음을 가졌던 것이다.

때마침 주가가 2천포인트를 넘어 3천포인트까지 상승하리란 전망을 뒤엎고 1800에서 1700으로 다시 1600을 거쳐 1400포인트까지 떨어졌다. 매 시기 바닥론은 끈질기게 나왔다. 1800선에서는 긴호흡으로 매수 관점을 가지라고 주문했다가 1700선으로 무너지니 의미있는 지지선이라며 바닥확인 시점이라고 했다.

이어 1600선으로 떨어지니 실적대비 증시 저평가 매수기회라고 했다가 1500선에서는 적극적인 매수와 보유의 기회라고 전망하는 전문가들이 많았다. 드디어 1500선도 무너지고 1400선에 다가섰을 때 증시가 체질 변화중으로 저가 매수의 '절호의 기회'라는 식의 바닥론이 다양한 표현으로 탈바꿈되어 하락 시기마다 제기됐다.

그렇게 해서 최소 2200포인트를 넘보던 주가가 1000선마저 무너지며 허탈하게 주저앉기까지 일년도 안 걸렸다. 사례자는 1400선에서 집을 담보로 빚을 내서 무리한 바닥 투자, 대박을 바라고 도박을 감행했다. 그러나 바닥이라 믿었던 주가는 10월 초부터 무너지기 시작해 한 달도 안돼서 1000선을 무너뜨렸다. 투자한 돈의 대부분이 손실로 이어졌다.

증권 선물거래소와 증권업계에 따르면 10월 한달간 국내 주식시장에서 시가총액이 185조여 원 증발되고, 개인투자자들이 보유했던 주식관련 자산 80조 원이 사라졌다고 한다. 사례자의 집을 담보로 빌린 1억 원이 사라진 80조 안에 껴있는 것이다.

말 그대로 주식은 거의 사라지고 빚만 고스란히 남게 되었다. 바닥에서 투자하면 대박이 터진다는 잘못된 학습효과가 불러온 화다. 바닥은 지나봐야 바닥인지 알 수 있다는 위험에 대한 경고는 학습되지 않은 채 하락 시기마다 애타게 들려오는 '바닥론'에 가족의 미래를 걸어버린 것이다.

미래에 대한 '공포'가 대박투자로 이끌어

 한 증권사의 적립식 펀드 통장
한 증권사의 적립식 펀드 통장 ⓒ 오마이뉴스 자료사진

투자 책임은 결국 개인에게 돌아가는 것이다. 그 누구도 등을 떠밀어 빚까지 내서 주식투자에 나서게 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평범한 직장인이 가족의 미래를 걸고 잘못된 학습효과로 도박을 하게 된 것은 비단 개인의 책임만은 아니다. 우리 사회에는 평범한 사람이 성실히 사는 것만으로는 평범한 일상도 유지하기 어렵다는 공포심이 유령 같이 떠돌고 있다.

점점 수명은 늘어나는데 일을 해서 돈을 벌 수 있는 경제 수명은 자꾸 단축되고 있다. 거기에 자녀의 대학 등록금을 생각해 보자. 연간 8% 이상씩 고공행진하는 등록금은 이미 연 1000만 원 시대를 연 지 오래다. 지독한 경쟁 사회를 살다보니 대학생들마저 감당하기 어려운 등록금에 저항할 여유가 없다. 결국 제어장치를 상실한 대학들의 시커먼 등록금 장삿속은 저축만으로 자녀를 대학에 보낼 수 없다는 공포심을 만들기에 충분하다.

심지어 고용시장의 축소로 대학을 졸업하고도 사회진출은 만만치 않다. 사회진출이 늦어지니 자연히 결혼과 출산이 늦어진다. 경제수명은 자꾸 단축되어서 40대 후반부터 가장의 어깨를 늘어뜨리게 하는데 늦은 출산으로 사회에서 퇴출당한 이후에 자녀가 대학에 진학하는 지독한 현실을 감당해야 한다.

심지어 한창 소득이 집중되는 시기조차 사교육비 때문에 저축은커녕 빚없이 살기도 어렵다. 결국 상당히 많은 보통 사람들은 '대박 재테크'가 아니면 안된다는 미래에 대한 유령 같은 공포심에 갇혀 버리는 것이다.

집을 담보로 빚까지 내서 주식투자를 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이성적인 판단력을 상실한 광기로 볼 수 있다. 광기로 인해 가족들을 극도의 위험으로 내모는 무책임하고 무모한 가장이라고 손가락질할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지난 몇 년간 이보다 더한 광기가 보편적이었다. 20년, 30년 돈 벌기도 어려운데 20년, 30년 장기 대출로 집을 샀다. 그것도 자기 연소득의 몇 배에 달하는 주택을 미래의 가처분 소득을 끌어다 사는 것이 보편화됐다.

국민은행 자료에 따르면 연소득 대비 주택가격 비율인 PIR(Price Income Ratio)은 전국 평균 6.6배, 서울은 11.6배, 강남은 12.3배에 달한다고 한다. 즉, 서울 강남에서 집을 사려면 12년 이상 번 돈을 한 푼도 쓰지 않고 모아야 만 살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빚을 내서라도 그렇게 엄청나게 비싼 집에 투자하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집은 반드시 오른다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확신은 사례자가 1400포인트가 바닥이라는 확신으로 빚까지 내서 주식투자에 나선 것과 다르지 않다.

결국 지나친 확신으로 비이성적 판단을 하는 '광기'라는 공통점이 있는 것이다. 부동산 투자에 나섰거나 그러지 않았거나 부동산을 둘러싼 많은 사람들의 생각은 비슷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광기' 상태였다고 봐야 한다.

그러나 이런 광기는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방법으로는 미래의 평범한 꿈을 이루며 살 수 없을 것이란 공포심이 유령처럼 떠도는 지독한 경쟁사회가 만들어낸 필연인지도 모른다.

'내 탓'이라는 극단적 좌절 털어내야

 서울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를 비롯한 아파트 단지 모습.
서울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를 비롯한 아파트 단지 모습. ⓒ 연합뉴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는 무려 1만2174명이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고 한다. 하루 평균으로 따지면 34명이 빈곤과 신병 비관 등을 이유로 자살을 하는 셈이다. 그야말로 '자살 공화국'이라 할 만한 수준이다.

사람을 극단적인 자살로까지 내모는 이유는 여러 가지겠지만 그중 주요한 원인이 빈곤이다. 빈곤으로 인한 자살도 내면을 잘 들여다보면 가족에 대한 미안함, 자신의 무능에 대한 극단적인 좌절이 큰몫을 한다.

10월 한 달 만에 주식이나 펀드 투자로 개인투자자들의 80조 원이 실종했다는 사실을 감안했을 때 향후 투자 실패 비관이 자살률 증가에 한몫 할 수도 있다는 우려를 해야 할 시점이 아닌가 한다.

많은 사람들이 합리성을 상실한 과도한 투자로 실패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앞서 밝힌 대로 그것은 다분히 사회가 개인들을 위험한 투자에 내몰았다는 점을 감안해서 해석해야 한다. 모든 문제의 원인을 사회탓으로 돌릴 수만은 없겠지만 그렇다고 이미 벌어진 투자 실패를 모두 자신의 무능탓만 해서도 안될 것이다.

특히 최근 투자 실패자의 다수는 실패를 용납하지 못하는 자존심 강한 중산층이다. 자칫 미안함, 창피함, 이미 무너진 경제 현실에 대한 좌절이 미래 공포심을 더 키워 극단적인 선택을 쉽게 할 수도 있다.

무엇보다 '내 탓'만이 아닌 사회 전반에 걸친 문제였음을 자각하는 것이 필요하다. 또 이제라도 막연한 공포심을 털어내고 가족과 함께 무너진 가정 경제를 새롭게 구축하려는 노력이 절실하다. 더불어 사회가 이들을 위로하고 해법 마련을 위한 노력을 병행해야 할 것이다.

과도한 투자의 책임은 개인에게 있다는 식의 냉소가 아니라 사회 구조의 모순으로 대다수 개인들에게 위험이 노출되어 있다는 자각이 필요하다. 이속에서 시급히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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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실패#주식#공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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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계부채가 심각한 수준으로 악화되고 있다. 짧은 기간 동안 금리가 급격히 상승하면서 가계발 금융부실이 크게 우려된다. 채무자 보호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는 대한민국의 현실은 수많은 채무자들을 빚독촉의 고통으로 내몰고 있다. 채무자들 스스로도 이제 국가를 향해 의무만 강요받는 것이 아니라, 권리를 보호받을 수 있는 목소리를 내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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