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3일 내놓은 경제위기 극복 종합대책은 한마디로 막대한 국민 세금으로 건설·토목 경기를 일으키고, 각종 부동산 규제를 없애 경기를 살리겠다는 강한 의지를 내보인 것이다.
문제는 이같은 대책이 정부의 기대치대로 효과를 얻을 수 있느냐는 것이다. 정부의 이번 대책을 바라보는 전문가들의 시각은 기대보다는 우려가 더욱 크다. 정부의 대책이 경제 위기의 직격탄을 맞은 서민이나 중소기업을 살리기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고소득층과 부동산 땅 부자, 대기업이나 대형 건설사에 혜택이 집중될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특히 정부의 부동산 규제 대폭 완화는 서민의 주거 안정보다는 1가구 다주택자 중심의 땅 부자나 건설업체를 살리기 위한 것이라는 지적이 많다. 막대한 국민 세금을 건설회사 등에 퍼주면서 오히려 정부가 나서 부동산 투기를 부채질할 수 있다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정부의 자기반성 없는 태도도 비판거리다. 이번 대책을 놓고 보면, 정부는 현재의 경제 위기를 여전히 외부환경 탓으로만 돌리고 있다. 그동안 경제정책 실패에 따른 막대한 국민 세금 사용 등에 대해서 진지하게 반성하는 모습을 찾아보기 어렵다.
이에 따라 경제위기 극복이라는 이름 아래 시행된 고강도 처방이, 오히려 엄청난 규모의 재정 적자와 각종 규제 완화를 통한 부동산 거품 유지, 빈익빈 부익부 등 양극화 심화 등의 부작용으로 나타나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든다.
재정지출 10조원 가운데 절반은 토목 건설공사에 투입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이 이날 발표한 경제위기 극복 종합대책 가운데 눈에 띄는 대목은 실물경제를 활성화시킨다는 부분. 이를 위해 정부는 총 14조 규모의 돈을 풀고, 부동산과 건설경기를 일으키겠다고 발표했다.
특히 국민세금 14조 가운데 일자리 확대와 내수 진작을 위해 재정지출을 10조로 확대한다는 것이다. 나머지 1조는 공기업 투자, 3조는 감세 등 세제지원에 들어간다. 재정지출 10조 가운데 지방의 교통과 물류시설 등 사회기반시설 확충에 4조6000억원이 사용된다. 강 장관은 "지역경제 활성화와 일자리 창출을 위해 기간 교통과 물류시설 등에 투자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중소기업과 영세상인, 농어업인 등의 보증 지원에는 3조4000억원, 실업대책과 저소득층 생활안정에는 1조3000억원이 들어간다고 밝혔다.
정부의 이같은 방안에 대해 김진방 참여연대 시민경제위원회 위원장(인하대 교수)은 "현재 사회기반 시설에 대해 갑자기 (재정을) 확대할 단계는 아니"라면서 "현재도 지방에는 정부의 과잉 부실 투자가 많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재정지출의 절반 이상을 여기(사회간접 시설 등)에 투자하겠다는 것은 결국 국민세금으로 건설회사의 이익을 챙겨주고, 토목 국가 경제로 돌아가겠다는 것 밖에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부동산 거품 붕괴 막으려 인위적인 건설 경기부양
재정지출 확대와 함께 정부의 경제활성화 핵심은 각종 부동산 투기 규제 완화를 통한 건설 경기 살리기로 모아진다.
정부 대책에 따르면, 기존 집을 허물고 새로 지을 때 현재 최고 250%까지로 묶여 있는 용적률 제한을 없애고, 임대주택을 의무적으로 넣어야 하는 규정도 사실상 사라지게 된다. 또한 주택투기지역 등으로 묶였던 서울지역(강남·서초·송파 등 강남3구 제외) 대부분이 해제되고, 수도권의 전매제한 기간도 대폭 줄어든다.
이미 건설업체에 9조원이 넘는 공적자금을 투입하고, 각종 부동산 관련 세금을 완화해 주기로 한 정부로서는, 이번 정책을 통해 남아 있는 부동산 규제 완화 카드를 모두 내놓은 셈이다. 그동안 6차례에 걸쳐 부동산 대책을 내놓았지만, 아파트값 하락을 막기엔 역부족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부동산 거품 붕괴=금융기관 부실'을 인위적으로 막겠다는 의도다.
강 장관도 이날 브리핑 자리에서 직접 "부동산 경기 침체가 금융기관 부실로 전이되지 않도록 부동산 및 건설경기 활성화를 추진하겠다"고 밝힐 정도였다.
국민세금으로 서민보단 부동산 개발업자, 땅부자들 투기 보장
하지만 정부의 이같은 인위적인 부동산 경기 부양책이 얼마나 실효성이 있을지는 의문이다. 서민의 주거 안정보다 1가구 다주택자 중심의 땅부자에게 혜택이 돌아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이런 탓에 막대한 국민 세금을 건설회사에 퍼준데 이어, 오히려 정부가 나서 부동산 투기를 부채질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김헌동 경실련 아파트값거품빼기운동 본부장은 "지난 3개월 동안 6번에 걸친 부동산 대책 내놨지만 전혀 시장이 움직이지 않으니, 재건축 완화 등 마지막 카드를 다 꺼낸 것"이라며 "인위적인 부동산 경기 부양책으로 거품 붕괴를 잠시만이라도 막아보겠다는 생각"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김 본부장은 "정부가 막대한 국민 세금으로 건설회사의 미분양 아파트나 토지를 사주고, 각종 투기 규제를 완화하는 것은 부동산 개발업자나 땅부자들만을 위한 특혜성 정책"이라며 "이미 주택 공급이 과잉상태이고, 높은 분양가가 해결되지 않는 한 정부의 대책은 별 효과가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홍종학 경원대(경제학) 교수도 "정부는 세계 여러나라의 위기 대응에 맞춰 감세와 재정지출을 한다고 하지만, 내용을 보면 전혀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면서 "서민이나 중소기업을 살리기 위한 진지한 고민보다는 소수 부유층과 대기업을 위한 정책만 내놓고 있다"고 지적했다.
홍 교수는 "미국에선 개인들의 주택담보대출의 이자 등을 어떻게 경감시켜줄지에 대책의 초점이 맞춰져 있다"면서 "현재 국내 가계대출이 크게 늘고, 이자부담이 소득의 10%를 차지할 정도로 위험수위에 있지만, 이를 위한 구체적인 대책은 전무한 상태"라고 비판했다.
김진방 교수도 "종부세나 상속세, 법인세 등 각종 감세방안이 일반서민과는 동떨어져 있다"면서 "경제 위기 상황에선 서민들의 세금을 깎아주고, 이자부담 경감 등을 통해 소비가 줄어드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
홍 교수는 "앞으로 실물경제가 급속히 악화될 텐데 경제 활동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서민과 중산층에서 소비를 줄이게 되면, 곧장 중소기업 도산으로 이어진다"면서 "1가구 1주택자에 대한 세금 감면 등 서민과 중산층을 살리기 위한 진정한 경제위기 대책이 나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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