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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이름 : 엄마 친구 아들

- 글쓴이 : 노경실

- 그림 : 김중석

- 펴낸곳 : 어린이작가정신 (2008.10.14.)

- 책값 : 8400원

 

(1) 우리한테 학교는 어떤 곳인가

 

 겉그림
겉그림 ⓒ 어린이작가정신

밤 아홉 시 무렵, 옆지기는 아기를 등에 업고 두 사람이 골목마실을 합니다. 새벽부터 늦은 저녁까지 아기를 돌보면서 지치고 힘든 우리 둘이는, 아기를 안거나 업고 밖으로 나오면 아기가 고이 잠들어 한숨을 놓기도 하지만, 두 사람이 땅도 좀 밟고 살자면서 숨이라도 돌리고 싶어서 바깥바람을 쐬러 나옵니다.

 

슬슬 거닐며 낯익은 골목도 지나고, 아직 디디지 못한 골목도 지납니다. 어둑해진 밤길을 걸어서 집으로 돌아가는 어른들이 보이고, 학교옷을 입은 아이들이 보입니다. 동산고등학교 옆을 지나고 박문여자고등학교 옆을 지나며 재능대학교 옆을 지납니다. 인문계 고등학교 건물은 가장 높은 층 유리창에 불빛이 환합니다.

 

지난날을 거슬러 생각합니다. 중학생 때나 고등학생 때나, 3학년 교실은 가장 높은 층에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왜 그렇게 했을까 궁금했는데, 가만히 보면, 가장 늦게까지 학교에 남아서 대학입시 공부를 시키려고 1∼2학년 아이들하고 떨어뜨리려고 위층에 올려놓았는지 모릅니다.

 

문득 시계를 보니 열 시하고도 반. 인천은 서울과 달라 시내버스도 일찍 끊기는데, 저 아이들은 집으로 돌아갈 버스라도 넉넉히 있으려나. 보아 하니 열한 시는 되어야 학교에서 풀려날 듯하고, 거의 열두 시 가까워서야 버스를 탈지 모르는데, 학교 선생들은 도무지 무슨 마음으로 아직까지도 저렇게 아이들을 붙잡아 놓고 닦달을 하고 있는지. 원.

 

.. "현호야, 엄마 친구 아들은 영어 말하기 대회에서 일등해서 해외 연수 가는 장학금을 받는대." "누구요?" 나는 텔레비전 만화영화를 보면서 물었습니다. "누군지는 알아서 뭐 하게? 엄마 친구 아들이 한둘이야?" "그럼 엄마 친구 아들들은 다 똑똑해요?" ..  (25쪽)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생각하면, 아이들 스스로 저 굴레를 벗어나지 않습니다. 아이들 어버이도 이러한 굴레에서 아이들을 홀가분하게 풀어놓지 않습니다. 학교가 시키는 대로 따라갑니다. '너희들한테는 다른 볼 것 없어. 오로지 대학교뿐이야' 하는 윽박지름에 고분고분 따릅니다.

 

늦은밤, 햇볕 한 줌도 못 쬐었을 법한 아이들이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아이들 몇몇은 길바닥에 침을 찍찍 뱉습니다. 건널목이 빨간불임에도 바지주머니에 두 손을 꾹 찔러넣은 채 여 보라는 듯이 건넙니다. 이튿날 저녁, 다른 동네 다른 고등학교 앞에서도 비슷한 모습을 봅니다. 사내든 계집이든, 아이들은 주머니에 손을 쿡 찔러넣고는 이죽거리는 얼굴로 길바닥에 침을 직직 뱉습니다.

 

문득 내 고등학교 적을 되돌아보니, 그무렵에도 이와 같은 얼굴로 이와 같은 몸짓으로 이와 같이 침을 내뱉는 동무들이 제법 있었습니다. 하나도 멋있지 않고, 하나도 '불량해' 보이지 않습니다. 그저 딱할 뿐입니다. 그저 안쓰러울 따름입니다. 햇볕이 아닌 형광등 불빛에 하루 열 몇 시간씩 시달리는 아이들이 되다 보니까, 닭우리에 갇혀서 잠도 못 자면서 알만 낳다가 고기닭이 되어 세상을 떠나게 되는 암탉들처럼, 이 아이들도 햇볕 아닌 형광등 불빛에 시들고 길들고 찌들면서, 마음밭이 자꾸자꾸 거칠어지고 메말라 가지 않느냐 싶습니다.

 

.. 이렇게 신기한 점이 엄마와 나 사이에 있는데, 왜 엄마는 나를 보면 활짝 웃는 때보다 툴툴거릴 때가 더 많을까? 내가 알아낸 답을 말해 줄게. 첫 번째 이유, 내가 일등을 못 해서다. 두 번째 이유, 누나와 자꾸 싸워서다. 딱 두 가지 이유로 엄마는 나를 미워하는 것 같아. 그러나 ‘일등’이라는 이유는 조금 억울해. 내가 위인전을 샅샅이 살펴봤지만, 학교 공부 일등해서 훌륭하게 된 사람은 거의 없거든. 오히려 "커서 뭐가 되려고 저러나……." 하고 걱정시킨 위인들이 많아. 그러고 보면 나는 착하고 훌륭한 어린 시절을 보내고 있는 거야. 너도 위인전을 꺼내 놓고 하나하나 조사해 봐 ..  (16쪽)

 

올해에는 아직 옛날 고등학교 적 선생님들 뵈러 찾아가지 못했습니다. 한 해에 한 번씩 옛날 동무들이 모여서 예전 선생님을 뵈러 찾아가곤 합니다. 꼭 스승날에 맞추지는 않고, 예전 선생님 시간에 맞추어 찾아뵌 뒤 소주 한잔을 걸칩니다. 학교에서 뵙기도 하고, 선생님 사는 집 둘레 소주집에서 만나기도 하는데, 학교에 갈 때면 으레 예전 교실도 둘러보지만, 예전 교사나 요즘 교사나 똑같이 한손에 들고 있는 '몽둥이'도 살펴봅니다. 남자교사 책상 한쪽에 올려져 있거나 옆에 서 있는 ‘몽둥이’를 물끄러미 바라봅니다. 세상은 틀림없이 ‘민주화’가 뿌리내렸다고 말하고, 우리 나라는 어김없는 ‘자유민주주의’라고 하지만, 아직도 제 고향땅 인천에 있는 학교에서는 선생님들 매타작 소리가 학교를 쩌렁쩌렁 울립니다. 더욱이, 매타작 소리를 듣는 어린 후배들은 이러한 매타작을 ‘잘못을 했으면 마땅히 받아야 할 벌’로 여기고 있어서 아찔하다고 느낍니다. 그래서 그때그때 되묻습니다. '그래, 그러면, 선생님들이 잘못했을 때에는 어떻게 하지? 그때에는 너희들이 몽둥이를 들고 선생님을 두들겨패면 되니?'

 

.. 대신 지섭이는 고개를 푹 숙이고 다른 말을 했지요. "그게 어때서? 우리 엄마는 공부만 일등하면 다른 건 하나도 못해도 나를 왕자처럼 모실 거야." ..  (44∼45쪽)

 

되물음에 대답을 해 준 후배는 아직 없습니다. 앞으로는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20회 후배들(지금 고2)은, 아니면 30회 후배들은, 아니면 40회 후배쯤 되어서는 있을지 모르겠습니다(저는 4회 졸업생입니다).

 

옆지기와 아기와 함께 밤마실을 하다가 밤늦도록 불이 켜진 고등학교 옆을 지나가면서, 밤나절 술 한 병 사러 동네 구멍가게를 다녀오는 길에 이웃한 고등학교 아이들 몸짓을 보면서, 마음이 늘 어둡습니다. 우리가 어버이 된 몸으로서, 이러한 일을 모두 치러냈을 뿐 아니라 아직까지 하나도 달라진 대목이 없음을 알고 있는 마음으로서, 우리 아이가 제도권 학교에 다니도록 해야 할는지 걱정입니다. 아이가 제도권 학교를 다니면서 몸과 마음에 생채기를 입을 때 어찌해야 할는지 근심입니다. 아이를 학교에 보내야 하는지, 아이가 학교에 다닌들 무엇을 배울는지 끌탕압니다.

 

고등학교 후배들 이제 갓 고등학생이 된 어린 후배들을 보면서, 이 아이들 또한 '엄마 친구 아들'과 마찬가지로 길들여지면서 자기 삶을 놓치고 있지 않은가를 생각하게 됩니다.
고등학교 후배들이제 갓 고등학생이 된 어린 후배들을 보면서, 이 아이들 또한 '엄마 친구 아들'과 마찬가지로 길들여지면서 자기 삶을 놓치고 있지 않은가를 생각하게 됩니다. ⓒ 최종규

 

(2) 좋은 이야기감이나 섣부른 끝맺음

 

어린이책 <엄마 친구 아들>을 읽습니다. 짧은 이야기 하나를 써도 늘 아이들 눈높이에서 헤아리고 살피면서 아이들 마음결을 보듬어 주는 노경실 님 새 작품입니다. 아들(남자)만 높이 섬기는 한국땅에서, 이웃집 아들과 자기 집 아들을 견주느라 아이들이 사람답게 자라도록 하지 못하는 온갖 문제를 맛깔스러우면서도 앙증맞게 잘 여미어 놓은 작품입니다. 진작에 이러한 글감으로 우리 교육 문제와 집살림 문제를 짚어냄직도 했건만 여태껏 이러한 '우리 삶 자잘한 이야기'를 글감으로 삼은 어린이책이 드물었습니다(어른책도 드뭅니다). <상계동 아이들>과 <복실이네 가족 사진>부터 <어린이 동장 만세>와 <열 살이면 세상을 알 만한 나이>와 <네가 있어 엄마는 행복해>에 이르는 수많은 창작을 일구어 낸 노경실 님을 생각한다면, 이쯤 해서 이분이 이만한 작품을 선보일 만하구나 싶습니다.

 

.. 나는 그냥 보통 어린이야. 바둑은 아마 5급이고, 태권도는 까만 띠야. 교과서에 나오는 노래 정도는 피아노로 대충 연주할 수 있어 ..  (10쪽)

 

그러나 책을 읽어 가면서, 또 마무리를 보면서, 어쩐지 팥소가 빠진 찐빵이라는 생각을 지우지 못합니다. "아들이라는 말이 군대 계급장 같아(12쪽)" 하고 생각하는 <엄마 친구 아들>이 주인공인데, '엄마 친구 아들' 때문에 겪는 아픔이나 생채기가 잠깐 스치듯 보여질 뿐인데다가, 아이가 엄마한테 뿔이 나서 '집을 나가는(가출)' 마지막 대목에서 참으로 싱겁게 '해피 앤딩'이 됩니다.

 

공부도 잘 못하고 누나하고는 허구헌날 싸우기만 하는 주인공(현호)이 딱 하나 잘는 일이라면, 동네 어른들한테 인사 꼬박꼬박 하기라고 하는데, 주인공이 어느 날 불현듯 '나한테도 자랑할 만한 일이 있다'고 느끼며 어머니한테 이 이야기를 하는데, 어머니는 아이 마음을 조금도 읽지 못하는 채 엉뚱한 소리만 늘어놓습니다. 그래서 아이는 잔뜩 뿔이 나서 "나는 엄마가 나를 사랑한다고 생각 안 해요! 그래서 나는 이제부터 엄마 아들 안 할래요. 그러니까 다른 아줌마네 아들을 엄마 아들로 삼아요! 나는 다른 아줌마네 아들 할게요.(57쪽)" 하고 외치고는 집을 박차고 나옵니다. 그런데 13층 집에서 승강기를 타고 내려오는 사이, 주인공네 어머니는 그사이 무엇인가를 깨달았다는 듯 아이한테 미안해 하며 툇마루 창문을 열고 “아들! 아들! 빨리 들어와!” 하고 두 손으로 하트를 그렸다고 합니다.

 

이렇게 이야기를 마무리지을 수도 있지만, <엄마 친구 아들>이라는 책을 죽 읽는 동안, 주인공네 어머니는 이렇게 하루아침에, 아니 갑작스럽게 무엇인가를 깨달으면서 자기 아이를 꾸밈없이 받아들이는 마음그릇이 아닌 분입니다. 더구나 주인공네 어머니가 ‘내가 무엇을 잘못했을까? 나는 왜 내 아이를 '다른 집 아이'와 대면서 마음을 아프게 했을까? 우리 아이(아들)한테 사랑스러운 구석은 무엇일까?’ 들을 찬찬히 짚거나 살피는 이야기나 실마리는 한 가지도 나오지 않습니다. 그러면서, 마지막에 갑작스럽게 모든 문제가 풀려 버리고 말면, 이 책을 읽는 아이들은 어리둥절해지지 않으랴 싶습니다. '저 엄마 왜 저래? 뭐 잘못 먹었나?' 하면서 시큰둥해 하리라 봅니다.

 

어린이책이든 어른책이든 틀림없이 마땅하고 알맞으며 좋은 이야기감을 찾아서 써야 합니다. 그런데 좋은 이야기감이라고 하여 늘 쓸 만한 책으로 태어나지는 않습니다. 좀더 곰삭여야 하고, 좀더 둘레를 살펴야 합니다. <엄마 친구 아들>은 누구보다도 아이들이 읽으라 할 책이며, 아이를 키우는 엄마와 아빠도 읽으라 할 책일 텐데, 뼈가 없는 말만 가득하다면, 아니 뼈까지 바라지 않더라도 재미나마 담지 못한 말로만 이루어져 있다면, 톡톡 튀는 사잇그림이 듬뿍 담긴 겉보기에는 그럴싸한 어린이책은 될는지 모르지만, 아이들이나 어머니들이나 또 아버지들이나 가슴에는 한 가지 고이 남아서 자기 삶을 돌아보며, 왜 ‘엄마 친구 아들’ 따위 허튼 말을 함부로 쓰면서 서로한테 생채기나 입히는 삶으로 서로서로 고달프게 하는가를 한 가지도 건드리지 못하고 맙니다.

 

<엄마 친구 아들>은 섣불리 마무리를 짓지 말고, 2부를 새로 써서, 집을 박차고 나온 아이 마음을 좀더 차근차근 살피는 이야기를 더 쓰거나, 아이가 집을 박차고 나간 까닭을 헤아리거나 짚어나가는 어머니 이야기를 더 쓰거나 했어야 하지 않느냐 생각해 봅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hbooks.cyworld.com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엄마 친구 아들

노경실 글, 김중석 그림, 어린이작가정신(2008)


#어린이책#동화#노경실#학교#제도권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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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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