멍하다. 그리고 답답하다. 환경운동연합 사태를 보면서 그저 멍하고 답답할 뿐이다. 환경운동단체 활동가가 회계비리 사건으로 구치소에 구속되는 장면은 많은 국민들에게 충격을 주기 충분했다. 급기야 6일 환경운동연합 상근활동가들 전체가 사퇴를 하고 무보수 자원활동을 하겠다고 선언했다. 어쩌다 이런 일까지 발생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다.
이번 사태를 통해 활동가들, 즉 사회 곳곳에서 누구도 주목하지 않는 일들을 묵묵히 하고 있는 그들의 박탈감은 더욱 커진 듯 하다. 더욱 참기 힘든 것은 이 바닥을 바라보는 시민들의 시선이다. 활동가에 대한 시민들의 떨어진 신뢰를 회복하는 데는 아주 긴 시간이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이번 사태는 단순히 환경운동연합의 문제가 아닌, 시민사회운동에 대한 전반적인 불신으로 이어질 것이 자명하기 때문이다. 그 파장은 열악한 조건에서 일하고 있는 수많은 활동가들을 더욱 위축시킬 수도 있다. 따라서 이번사태는 시민사회단체들에게는 아주 엄중하고 중대한 사건임에 틀림없다.
이미 수많은 비판을 받고 있는 환경운동연합에 대해 똑같은 비판을 반복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분명한 것은 환경운동연합 사태로 환경운동이 위축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즉 환경운동 자체를 왜곡하지는 말아달라는 것이다. 모든 사람이 편리함과 개발만을 강조할 때 환경운동은 외롭게 환경과 생태를 이야기했다. 댐을 짓고, 산을 파내려고만 하는 개발주의 거대담론에 맞서 그들은 온 몸으로 자연을 지켜냈다. 그 덕분에 우리는 아직까지 아름다운 산을 오르며 신선한 공기를 마시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환경운동연합의 사태가 용서되는 것은 아니다. 시민사회단체들은 이번 사태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를 직시해야 한다. 환경운동연합뿐만 아니라 모든 단체들이 내부적인 문제를 다시 한 번 총체적으로 점검해야 한다. 아무리 훌륭한 주장과 활동이라 하더라도 내부가 곪아 있으면 소용이 없다. 도덕성을 잃은 단체는 짠 맛을 잃은 소금처럼 사람들의 발에 밟히는 존재로 전락할 뿐이다.
시민사회단체들, 정부와 기업 후원 받아야 할까?따라서 시민사회단체의 도덕성 회복을 위해서 몇 가지 문제를 토론거리로 제안하고 싶다. 아주 민감한 문제이지만 이 문제는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한다.
우선 시민사회단체들이 정부 및 기업의 후원을 받아야 하는가에 대한 문제다. 현재 참여연대를 비롯한 몇몇 단체들은 정부의 지원을 받지 않고 있고 기업 후원도 소액후원만을 고집하고 있다. 이들 단체는 이명박 정부 이후 기업후원도 거의 받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단체들은 중앙정부, 지방자치 단체들을 통해 사업비 지원이나 연구용역을 통해서 기금을 지원받고 있고 기업후원도 받고 있다.
이 문제를 어떻게 볼 것인가? 우선 내 견해를 밝히자면 국가나 기업들이 시민사회단체를 지원하는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유럽과 미국에서도 정부는 각종 기금으로 시민사회단체를 지원하고 있다. 그 단체들의 활동이 사회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공무원들만이 정책과 세금을 잘 결정하고 집행할 수 있다는 것은 오만이다. 지금도 사회 곳곳에는 공무원들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곳은 너무나 많다. 그 손길을 미치지 않는 곳도 우리가 보살펴야 할 대상이며 매우 중요하다. 그 일을 위해서 시민사회단체들은 정부 정책을 비판하기도 한다.
정부를 비판하는 단체니까 정부의 지원을 받지 않아야 된다는 논리는 어불성설이다. 이에 대해서 기업후원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정부 및 기업의 후원을 받는 것 자체에 대해서는 우리가 비난할 여지는 없다고 생각한다.
두 번째로 시민사회단체들이 후원받은 금액에 대한 회계감사를 얼마나 철저하게 집행하는지에 대한 여부이다. 시민사회단체들은 이 부분에 대한 고민을 심각하게 해야 한다.
나는 몇년 전 독일 모 재단에서 운영하는 프로그램에 참여한 적이 있다. 당시 우리의 방문을 환영하는 저녁식사 모임이 열렸는데, 그 모임에는 한국에서 방문한 교육참가자, 독일교육책임자. 통역가 등이 있었다. 그런데 이 모임에는 독일교육책임자의 부인도 함께 참석했다. 당시 독일교육책임자는 상당히 높은 직급을 가지신 분이었다. 그 이후 별 생각 없이 교육모임을 시작하였는데, 사실은 이 모임 자체가 문제였던 것이다.
바로 독일 교육책임자의 부인 저녁식사값을 재단 영수증으로 처리하여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교육모임과 관련 없는 다른 사람이 식사를 같이 한 것이 재단 내부 규칙을 위반했다는 것이다. 교육책임자는 그 자리에서 바로 그 부인의 식사값을 지불 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사회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아주 작지만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이런 작은 것 하나가 현재의 독일 사회를 지탱하는 힘이였던 것이다.
그러면 우리의 실태는 어떠한가? 이번 환경운동연합 사태는 회계관리가 얼마나 허술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사건이다. 1억원이나 되는 돈을 횡령 및 유용하고 있는데도 그 사실을 몰랐다는 것은 일반 기업으로서도 상상하기 힘들 것이다. 비단 환경운동연합뿐만 아니라 시민사회단체들의 회계처리가 엄격하게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언제든지 조작 가능한 간이영수증으로 영수증 처리를 하고, 사업과 관계없는 돈을 집행하고 있지 않는지 반성해야 한다. 과연 시민사회가 비판하는 정부와 기업에 비해서 스스로는 얼마나 투명한지 뼈를 깎는 자세로 반성해 보아야 한다.
언제든지 조작 가능한 간이영수증세번째로 우리는 시민사회단체들이 정부와 기업의 돈을 받는 이유와 책임성에 대한 문제다. 정부나 기업이 시민사회단체들에게 지원하는 것은 시민사회단체들이 현장에서 시민들을 만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장에서 뛰어다니고 있는 활동가들의 활동에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기 위해서 지원을 하고 있고, 시민사회단체들을 그 활동의 명목으로 돈을 받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시민사회단체들은 정부나 기업의 후원이 오히려 시민들을 만나는 데 방해가 되고 있지는 않은지 돌이켜 보아야 한다. 시민들을 만나기 위해 후원금을 받는 것이 아니라, 몸집이 불어나고 있는 단체를 유지하기 위해서 돈을 받고 있는 건 아닐까? 이에 대해서는 시민단체들이 스스로 냉정하게 평가해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정부와 기업의 후원을 규모가 커지고 있는 조직의 운영비를 감당하기 위해 받는 것이라면 규모를 줄여서라도 후원을 받지 않는 것이 마땅하다.
마지막으로 시민사회전체의 운동방식에 대한 전반적인 고민을 제안하고 싶다. 몇 년 전부터 지적되어왔던 것이지만 시민사회단체들은 얼마나 시민과 소통하고 있는지 돌아봐야 한다. 시민들의 입장을 대변한다고 하지만 얼마나 시민들의 목소리가 제대로 반영되고 있는지 반성해 보아야 한다.
수많은 단체에 소속되어 있는 회원들은 그나마 사회의 변화를 갈구하며 소중한 자신의 재산을 조금씩 나누고 있는 사람들이다. 시민사회단체와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서 기꺼이 자기 급여를 나누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정작 시민사회단체들은 시민들의 중요성을 제대로 인식하고 있는가? 필자도 몇 개 단체를 지원하고 있지만 그 단체에서 전화 한 통도 받지 못했다. 과연 나는 그들에게 어떤 역할을 하는 존재일까 하는 회의가 들 때가 있다. 항상 잘하고 있겠지 하는 기대만을 가지고 지켜만 보고 있다. 하지만 내가 후원하고 있는 단체 활동가들과 진지하게 소통하고 싶은 것이 회원들의 소중한 바람이다.
우리 사회는 여전히 할 일이 너무나도 많다. 하지만 다른 이유도 아닌, 내부적인 요인으로 산재한 일들을 처리하지 못한다는 것은 시민과 사회에게 너무나 불행한 일이다. 하지만 너무 슬퍼할 필요는 없다. 이번 환경운동연합 사태는 시민사회단체의 위기이자 기회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시민사회단체는 이번 사태를 계기로 지난 20년간의 시민사회운동을 돌아보면서, 스스로 개혁하고 초심으로 돌아갈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가야 한다. 그러한 힘은 우리사회에 여전히 충분하다고 믿고 싶다.
덧붙이는 글 | 전진한 기자는 지난 10월 9일 개소한 정보공개센터(www.opengirok.or.kr) 사무국장입니다.